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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Sandcastle
부준펑/싱가포르/2010년/96분/아시아영화의 창
진실은 우연히 찾아온다. 군입대를 앞둔 혈기왕성한 열여덟살 청년 ‘엔’. 아버지 없이 자란 그는 어머니와 함께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느 날 아버지가 쓰던 옛 컴퓨터에서 한 영상을 발견하면서 그는 아버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는 어떤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져 말레이시아에 산다고 믿고 있던 그였다. 그 영상은 1956년 10월 싱가포르 학생운동 관련 뉴스클립이었다. 그러나 가족 어느 누구도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엔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싱가포르의 신예 부준펑 감독의 데뷔작 <모래성>은 아버지 세대와 단절된 한 청년을 통해 그늘진 싱가포르 현대사에 눈을 돌린다. 시종일관 뉴스클립, 사진자료로 보여주는 ‘1956년 10월 학생운동’은 영국 직할식민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싱가포르 학생들의
그늘진 싱가포르 현대사 <모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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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염소> Virgin Goat
무랄리 나이르/인도, 프랑스/2010년/87분/아시아영화의 창
농부 칼리안에게는 딸이 둘이다. 하나는 부족한 지참금 때문에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미나이고, 다른 하나는 암컷 염소 라일라다. 미나보다 라일라를 더 아끼는 칼리안의 최대과제는 라일라의 짝짓기다. 어떤 멋진 수컷 염소들을 갖다놓아도 반응이 없자, 칼리안은 비아그라를 빻아 물에 녹여 라일라에게 먹이는 등 갖은 애를 쓴다. 마침내 라일라의 몸에 반응이 온 어느 날, 칼리안은 딸을 데리고 읍내로 향한다. 하지만 마침 높은 정치인이 마을을 방문하기로 하면서 칼리안과 라일라의 여정은 험난해진다. 가는 곳 마다 길을 막고,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 구금당한다. 칼리안은 라일라의 짝짓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처녀 염소>를 연출한 무랄리 나이르 감독은 인도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풍자해온 감독이다. 집안을 건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아버지와 일이나 공부를 하기는커녕 T
허허로운 집착이 낳은 허허로운 좌절 <처녀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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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이 선데이> Pinoy Sunday
호위딩/대만, 필리핀, 일본, 프랑스/2009년/84분/아시아영화의 창
대만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인 마누엘과 다도의 삶은 낭패의 연속이다. 그들이 꿈꿀 수 있는 건 퇴근 뒤의 안락함이 유일하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녀와 여름밤의 하늘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고 상상해봐!” 그러던 어느 일요일, 두 사람은 길거리에 버려진 빨간색 가죽소파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 소파를 집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트럭을 빌리기는 돈이 부족하고, 버스로 옮기려 하니 태워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그들은 크고 무거운 소파를 직접 들고 가기로 결심한다. <피노이 선데이>는 이들의 ‘뻐근한’ 일요일을 쫓아가는 영화다. 소박한 바람이 좌충우돌 소동극으로 변해갈 때, 애처로운 유머와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난다. 영화는 마누엘과 다도뿐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두 여인의 비정한 현실까지 비춘다. 두 남자에게 그녀들은 다가서고 싶은 아름다운 여성이나,
애처로운 유머와 안타까운 현실 <피노이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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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이영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 영화들을 우리 눈으로 직접 발견해 끌어안기도 전에, 이미 타이영화는 스스로 성년이 됐다. 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올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예로 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근거다. 타이는 영화적으로 그 땅 바깥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그런 타이영화의 감독으로서 아딧야 아사랏의 이름은 올바로 언급돼야 한다. 그는 첫 장편 <원더풀타운>으로 2007년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 임수정 주연 단편 <푸켓>으로 부산을 찾았다. 그가 올해 <하이-소>로 다시 부산에 왔다. 부산이 그에게 거는 믿음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하이-소>에서 연인들은 결국 사랑에 실패한다. 그들은 큰 갈등을 겪는 일도 없다. 그저 실패를 향해 무력하게 끌려간다. 이를 되돌리려는 것은, 마치 도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햇빛의 온기로 채색된 풀이 자라게 하려
홍상수에게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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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은 서울의 혜화동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건 혜화라는 여자의 아이(童)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녀의 겨울(冬) 이야기 혹은 앞으로 나아가는(動) 혜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혜화(유다인)는 유기견을 구조해 돌보는 23살 여자다.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 연인인 한수(유인석)가 찾아온다. 오래전 혜화로부터 도망치듯 사라졌던 한수는 갑작스러운 비밀을 고백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줄 알았던 둘의 아이가 사실은 어딘가로 입양되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혜화,동>으로 장편 데뷔를 한 민용근은 단편 <도둑소년>(2006)으로 독립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던 감독이다. 그는 <혜화,동>이 TV다큐멘터리 PD 경력으로부터 최초 발화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2003년도에 <현장르포 제3지대>라는 다큐 프로그램 일을 하던 중 유기견을 구조하는 여자 에피소드를 찍고 있었다. 그녀는 구조하려던 탈장된 개를 끝내 잡지 못하자 ‘왜 개가 내 마음을
눈으로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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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삶>은 베트남 한 가족의 역사를 내밀하게 묘사한 수작이다. 2007년 아세안문학상을 수상한 응유엔 티 응옥 투 소설가의 단편 <광활한 논>이 원작으로,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메콩강을 떠돌아다니는 한 가족의 역경을 따르는 영화다. 호치민 정권 시절 시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할아버지를 비롯해 온 가족이 영화인이라는 응유엔 판쿠앙빈 감독을 만났다.
-원작의 어떤 점에 이끌렸나.
=원작 작가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책이 발간되기 전에 미리 받을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스토리의 감동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바로 판권을 구입했다.
-아버지, 아들, 딸, 매춘부 역을 맡은 네 배우들의 균형을 잡는 것이 연출의 관건이었을 것 같다.
=아버지 역의 더스틴 응유엔과 매춘부 역의 도 티 하이 엔은 경험이 많은 배우인 반면 아들과 딸 역을 맡은 배우는 신인이었다. 배우들마다 연기 밸런스가 각기 다르다보니 감정선에 관한 지도(map)를
질곡의 역사, 고난의 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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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의 일이다. 故 곽지균 감독의 49제를 맞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그의 모교였던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동문회 주최로 ‘곽지균 감독 추모 영화제’가 열렸다. ‘초여름에 먼 길을 떠난 겨울 나그네’라는 제목의 행사였다. ‘가야할 먼 길’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가 초여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평소 곽지균 감독과 친분을 맺었던 배창호, 이명세, 허진호, 김국형 감독을 비롯해 그의 영화에 출연한 안성기, 강석우, 배종옥, 정보석, 지현우, 김혜선 등의 배우들이 참여했다. 현 서울예대 부총장인 정중헌씨의 첫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곽지균 감독하면 언제나 아스라함, 아련함 같은 단어와 어딘가 젊은 날의 열정과 가슴앓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청춘의 정서, 눈물과 회환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젊은 날의 방황과 불안한 정체성 찾기는 곽지균 감독이 평생 다뤘던 문제다.
도처에 외상이 있다. 현재의 불안에 선행해 사랑했던 사람이나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상실이 있다. 인물의 우울증은
돌아오라! 피리 부는 소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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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플래툰>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고, <닉슨>을 만든 1995년 즈음까지 10여년 간 올리버 스톤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논쟁적인 감독 가운데 하나였다. 블록버스터 열풍이 한창이던 할리우드에서, 올리버 스톤은 꿋꿋하게 ‘정치’영화를 만들었다. 아니 단순한 정치영화가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를, 올리버 스톤은 정면으로 파고들어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도발적이고 열정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올리버 스톤이 그 영화들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지옥의 묵시록>에서 프랜시스 코폴라가 보여주었던 ‘어둠’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구원받길 원했고. 예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죽은 <플래툰>의 엘리아스 상사처럼.
어둠과의 대면을 위해 베트남으로 향하다
올리버 스톤은 1974년 <몰수>(Seizure)로 감독에 데뷔한 후 시나리오 작가로서
광기의 전장에서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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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회 부산영화제였다. 그전까지 부산이란 곳도, 영화제란 곳도 가 본 적이 없어 들뜬 마음에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승합차로 배우들과 스탭 10여명이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영화도 300만원짜리 저예산 영화인데 내려가는 꼬락서니도 참으로 저예산스러워 어떤 기자는 동행 취재를 하겠다는 의견을 물었지만, 고속도로에서 시속 60km밖에 낼 수 없는 차를 함께 탔으면 취재는커녕 민폐만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고 영화제를 무지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영화제란 게 당최 뭔지 모르는 저예산 감독이 촌티를 꽤나 냈던 거 같다. 영화도 3시간 짜리인데 GV()에서 나오는 질문에 상품이라도 걸린 양 보고서 쓰듯이 답변을 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자정을 넘어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는 안성기 선배님이라는 든든한 코치 덕에 공식 기자회견 후에 어떤 답변이 적절한 답변이었는지 평가를 들을 수 있어 대충 가늠을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첫 번째 영화제는
국밥집 아줌마, 제 사인 갖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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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감독 비얌바 사캬는 올해 부산영화제에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들고 왔다. 그의 다큐멘터리 <열정>은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올랐고, 첫 번째 극영화 프로젝트 <리모트 컨트롤>은 PPP에 선정됐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비얌바 사캬 감독은 “두 부문으로 동시에 참가하게 되어서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부산영화제 PPP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공동제작의 기회를 찾고자 참가했다. 처음에는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시아 영화인으로서 부산영화제에 출품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프로모션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부산이야말로 아시아 영화만을 위해 준비된 장소 아닌가.
-몽골에서는 구루 미디어라는 제작사를 직접 공동으로 창립한 걸로 알고 있다.
=몽골에서는 제작사가 있어야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독립 제작자와 감독은 대부분 작은 제작사를 소유하고 있다.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제작사를 만
축하해요! 몽골의 첫 해외 배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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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벡스는 일본에서 선두를 다투는 음반회사다. 아무로 나미에와 하마사키 아유미 등 일본가수뿐만 아니라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의 일본 활동을 관리한다. 6년 전, 영역을 확장한 에이벡스는 홍콩에 새로운 거점을 두면서 아시아 영화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제작비 중 절반을 투자했고, <말할 수 없는 비밀> <이니셜D> <상성: 상처받은 도시> 등의 영화에도 투자했다. 에이벡스 홍콩지사에서 일하는 버디 마리니는 또 다른 합작프로젝트를 찾으려 아시안필름마켓을 찾았다. “부산프로모션플랜(PPP) 선정 프로젝트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6, 7개의 프로젝트 감독들과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이 확실한 프로젝트를 찾고 있지만 현재 아시아의 영화시장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만큼 특별한 기준을 내세우기는 어렵다.” 홍콩의 미디어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그룹, 그리고 빌 콩 프로듀서와
“괜찮은 합작프로젝트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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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마니아들의 열정은 아직 죽지 않았다.” 프랑스의 코-프로덕션 오피스는 유럽의 예술영화 제작과 해외 세일즈를 해온 회사다.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과 츠카모토 신야의 <테츠오: 총알사나이>등의 아시아영화를 세일즈하기도 했다. 코-프로덕션 오피스의 세일즈 에이전트인 셀렌 린은 “칸영화제 마켓과 달리 아시아의 바이어들이 많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미팅을 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아시안필름마켓을 찾았다”고 말했다. 물론 아시아의 예술영화시장에 대한 기대도 있다. “아시아에도 예술영화의 수요가 상당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입지가 좁아졌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찾는 마니아들이 여전히 있고, 그들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할 때 여전히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녀의 세일즈 리스트에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월드시네마 상영작인 <네 번>과 <오로라>가 포함돼 있다.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영화 가운데 <더티
예술영화 마니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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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명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이 12일, 오후2시 신세계 문화홀에서 열렸다. <증명서>는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부부역할놀이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영화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해외에 올로케이션으로 만든 첫 작품이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았다. 줄리엣 비노쉬는 이 영화가 “키아로스타미가 자신의 경험이라며 들려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난 그 모든 게 사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더라.” 이어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내 머릿속에서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가 그녀 앞에서 완성됐다”며 “이후 혼자 시나리오를 쓸 때도, 마치 줄리엣 비노쉬가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다음 작품을 아시아 지역에서 촬영할 계획을 밝혔다. 줄리엣 비노쉬는 13일 오후5시 허우샤오시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오픈토크를 나누며, 이어 6시에는 핸드프린팅 행
줄리엣 비노쉬와 키아로스타미의 찰떡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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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시대, 800년 전 사라진 라마의 유해를 차지하기 위해 전국의 검객이 모여든다. 하지만 유해의 일부를 한 사찰에 맡겨놓고 속세를 떠난 증정(양자경)은 얼굴도 바꾸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간다. 한때 흑석파의 자객이었던 증정을 찾기 위해 흑석파의 우두머리인 왕륜(왕학기)을 비롯해 나머지 킬러들인 옥(서희원), 레이빈(여문락), 마법사(대립인)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그녀를 수소문한다. 한편, 증정은 같은 마을에 사는 심부름꾼이자 허드렛일을 하는 지앙(정우성)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려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함께 들른 은행에서 정체 모를 자객의 공격을 받게 되고, 남편 지앙을 구하기 위해 증정이 옛 실력을 발휘하면서 서서히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고전 무협영화의 팬이라면 매 장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절대 무공을 선사한다는 라마의 시체와 애타게 그를 찾는 사람들,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옛 암살자, 그를 찾는 잔인무도한 자객들, 원수의 자식과 빠진 사랑. 오우삼이 심혈을
무척 간결하고 담백하며 우아한 무협영화 <검우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