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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없애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얼마나 처연한 일인가. 반대로,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없애고 내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영화 <화차> 속의 세상은 그런 일들을 부추기는 무서운 곳이다. 멀쩡하게 살고 있던 사람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도 잘만 돌아가는 비정한 곳이다.
나는 울적함과 공포심을 달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리 호락호락 사라질 수는 없다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의문을 가져보았다. 누군가가 어느 날 내 이름, 주민번호, 사는 곳 등 나의 신분을 도용하여 내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한발 더 나아가 ‘굳이’ 성형까지 받아 나와 똑같은 외모까지 갖춘다(모르긴 해도 돈 좀 들 거야. 웅장한 턱선과 골격 만들기가 어디 쉽나). 하지만 나의 스타일은 어디까지 흉내낼 수 있을까? 제아무리 철두철미하게 나를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민무늬 양말보다는 줄무늬 양말을 좋아하는 사소한 취향까지 흉내낼 수가 있을까? 아니, 그보다
[fashion+] 주민번호보다 도용하기 힘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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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이런 앨범은 난감하다. 팅팅스의 첫 앨범 ≪We Started Nothing≫과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하긴 어렵다. 여전히 개러지 록과 일렉트로닉이 더해진 이 앨범의 가장 간단하고 솔직한 평은 “1집과 별로 다를 것 없음”일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1집이 줬던 신선함마저 휘발되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Soul Killing>과 <Day To Day> 같은 인상적인 싱글이 이 앨범을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크게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사랑하는 작품이 있다. 팅팅스의 데뷔앨범이 그랬다. 한없이 명랑하고 싱싱해서 모든 곡의 후렴구 앞에서 흥분하곤 했는데, 애정을 당분간 철회하게 됐다. 재미와 생기를 완전히 걷어낸 작품 앞에서 나온 반응은 당혹감이자 배신감이다. 많이 느려지고 무거워진 덕에 변화의 차원에서 평가를 얻을 만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우수하
[hottracks] 그때 그 신선함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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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10일~5월5일
장소: 신당창작아케이드
문의: 02-2232-8833
어느 소설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 예술가 사회에 산다. 거리에는 DSLR 카메라로 자신만의 작품을 담아내는 사진가들로 넘쳐나고, 인터넷은 발 빠른 정보와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수십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작가들이 점령하고 있다. 예술가 되기가 어렵지 않은 사회, 서울시창작공간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도 ‘나도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입주 예술가들이 강사로 참여해 단순한 기술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예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매주 토요일의 일일체험 프로그램은 도자, 섬유, 금속 분야의 3기 입주 예술가들이 진행하는데, 머리 장식, 펠트 브로치, 화분, 접시, 금속 이름표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어린이에서 성인까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한편 좀더 심도 깊은 교육을 원한다면 4주 혹은 8주간 진행되는 공예?디자인 교육 워크숍에 참여할 만하다. 먼저
[아트인서울] 일상 속의 예술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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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1일까지
장소: 갤러리현대 강남
문의: 02-519-0800
잘나가던 동양화과 교수가 갑자기 제주도로 떠나겠다고 짐을 꾸렸다. 낯선 제주도에 머물기를 20여년, 외로움에 고통스러운 나날도 있었지만 그의 작풍은 제주도의 자연을 만나 비로소 만개했다. 동양화가 이왈종 화백의 이야기다. 그의 작품세계를 아우른 개인전이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린다. 회화, 부조, 목조, 도자기, 향로 등 작품 60여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의 테마는 ‘제주생활의 중도(中道)’다.
“주체나 객체가 없고 크고 작은 분별도 없는 절대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 이왈종 화백이 밝히는 ‘중도’의 의미다. 그의 말을 반영하듯 이왈종 화백의 동양화에서 나무와 꽃은 사람과 집만 하거나 혹은 더욱 거대한 크기로 묘사된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작은 미물일지 모르나, 생명의 크기로 따지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다 동등한 존재라는 뜻에서다. 골프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재미있다. 흐드러지게 꽃이
[전시] 제주에서 찾은 절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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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29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문의: 02-762-0010
성적비관 자살 기도, 단체 커닝, 시험지 유출 청탁. 치열한 입시경쟁을 둘러싼 뉴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명문 외고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 <모범생들>을 “진부해”라고 섣불리 단정짓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막이 오르면 무한 반복되던 소재는 우리에게 다시금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엔 당연하게도 연출과 배우의 힘이 기반한다.
연극 <모범생들>의 이야기는 화장실에서 시작한다. 검정 슈트를 쫙 빼입은 두 남자가 거울 앞에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서로를 의식하던 이들은 동창임을 알게 되고 인사를 나누지만 어딘지 가식적이다. 리미티드 만년필과 명품 지갑 등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뽐내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친구들이었을까. 이야기는 그들의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친아’를 연상케 하는 명문가 출신의 반장 민영, 상위 3
[공연] 모범적인 젊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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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안 좋은 상황에서조차 잘도 적응한다. 사랑받을 타이밍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얻어맞을 타이밍을 알아챌 수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적응이란 그런 것. 그래서 게을러진다. 혹은 두려워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커닝해볼까 하는 꼼수였는데 이게 웬걸. 생각했던 것과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와 그의 주저인 <수상록>을 다룬 책이다. <수상록>을 읽어주는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몽테뉴는 어떻게 살았기에 <수상록>을 썼을까”를 말한다(책을 1/3쯤 읽고 나서야 <수상록>을 읽어주는 책이 필요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수상록>은 살인무기로 써도 될 정도로 두껍다는 압박이 있으나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현대 에세이스트들의 고조할아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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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은 온통 녹색이었다. 걸프전쟁 말이다. <CNN>을 통해 방송된 야간폭격장면은 이후 전쟁영화의 표현양식을 바꾸었다. 전쟁은 게임에 가까워졌다. 무한히. 피와 살을 전시할 수밖에 없었던 베트남 전쟁의 시각적 충격이 반전운동으로 이어졌다면 녹색 화면에서 작게 반짝이는 섬광은 마치 그게 인간의 죽음이 아닌 0과 1의 디지털 세상에 속한 듯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 <CBS> 온라인 뉴스의 과학기술 전문기자인 피터 노왁이 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그 녹색 화면을 다름 아닌 패리스 힐튼의 섹스비디오 유출사건과 연관짓는 데서 출발한다. 패리스 힐튼 섹스비디오에 나오는 속살은 화사한 분홍색이 아니라 온통 에메랄드빛. 야간투시기법으로 촬영된 화면이 부르는 기시감. 단순한 호기심은 파고들수록 소비재 전반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서, 비닐봉지부터 헤어스프레이, 비타민, 구글 어스까지 군에서 출발한 기술에 기반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포르노산업
[도서] 섹스와 전쟁, 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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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Avengers
감독 조스 웨던 /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에반스, 마크 러팔로, 제레미 레너 / 개봉 4월26일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아이언맨부터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 최강 슈퍼히어로들이 모두 모였다. 예상치 못한 적들의 등장에 지구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국제평화유지기구인 ‘쉴드’의 국장은 대재앙을 막기 위해 슈퍼히어로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일명 ‘어벤져스 작전’ 아래 사상 최강의 팀을 결성한 이들은 지금껏 보지 못한 ‘슈퍼 팀플레이’를 선보인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티격태격하는 히어로들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협동의 과정은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물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도심 한복판에 한데 모인 이들의 존재감은 실로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이다.
[Coming soon] 슈퍼히어로 종합선물세트 <어벤져스> Ave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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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첫사랑의 신화’를 가장 지독한 성장통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열여섯살 소년 블라디미르는 언제나 많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던 5살 연상의 지나이다와 어렵사리 가까워지고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의 아버지와 은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게다가 자신에게는 한없이 도도했던 그녀가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연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또다시 괴로워한다. <건축학개론>의 첫사랑이 <첫사랑>만큼이나 고통에 몸서리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불현듯 찾아온 첫사랑의 불가항력적인 힘, 그리고 그 우연과 찰나의 첫 순간이 어떻게 이후 그 사람의 남은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치밀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은근히 겹친다. <건축학개론> 역시 변치 않는, 아니 사실은 ‘나는 변했지만 너만은 변치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첫사랑의 신화에 대한 영화다.
건축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
첫사랑의 신화에 대한 영화 <건축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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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제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는 인신매매조직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성매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취재한 젊은 프리랜서 기자 더그와 범죄학자 미아가 잡지 <밀레니엄>에 합류한다. 기사가 완성되기 직전 최종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더그와 미아가 살해당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리스베트 살란데르(노미 라파스)가 지목된다. 더군다나 리스베트의 보호감찰을 담당하던 비우르만 변호사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해 리스베트는 궁지에 몰린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미카엘 뉘키비스트)는 사건의 배후에 잘라쉥코가 있음을 알게 되고, 리스베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잘라쉥코를 찾아다닌다. 미카엘은 잘라쉥코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리스베트의 복잡한 전사(前事)를 알게 되고, 리스베트 역시 자신을 위기에 빠뜨린 잘라쉥코의 뒤를 추적해 나간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두 번째 장 역시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 내용을 옮겨내는 데에 충실하다. 곁가지처럼 뻗은 사소한 사건들은 전부 들어내고,
시리즈를 무난하게 이어주는 이야기 <밀레니엄: 제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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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프랑스 박스오피스 10주 연속 1위, 누적 관객 1800만 돌파로 역대 흥행순위 3위, 유럽 각국의 박스오피스 1위 석권, 도쿄국제영화제 작품상, 뤼미에르영화제 남우주연상에 이어 ‘프랑스의 아카데미’인 세자르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차지한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이 거둔 성적을 살펴보자면 전대미문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그러나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이 영화의 진면목을 전하기엔 모자란 감이 있다. 화려한 간판이 주는 권위보단 눈과 마음으로 직접 확인해야 하는 흔치 않은 감동. 전혀 다른 두 남자 사이에 싹튼 특별한 우정은 탁 트인 수평선처럼 가슴 시원한 상쾌함을 전한다. 상위 1%의 부자지만 전신마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24시간 자신을 도와줄 도우미가 필요한 그의 앞에 어느 날 이민자에 무일푼인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가 나타난다. 장애인인 자신에게 거침없이 농담을 날리는 그에게 흥미를 느낀 필립은 2주간 자신의 손발이 되
웃음과 여유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언터처블: 1%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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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영웅이 대세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팔 걷어붙인 주인공들이 나오는 건 요즘 액션영화의 추세다. <테이큰>이나 <콜롬비아나> <엣지 오브 다크니스> 같은 변주를 보더라도 아직 얼마든지 이야깃거리는 존재한다. 딸도 부모도 아내도 아니고, 이번에 구해야 할 대상은 무려 처남이다.
크리스(마크 월버그)는 전직 프로 밀수팀 리더였지만 지금은 손 씻고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한번 발을 들인 범죄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건 본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가보다. 크리스 몰래 처남 앤디가 마약밀수에 손을 대고, 운반 중이던 마약을 잃어버리자 그 손해배상이 고스란히 크리스에게 넘어간다. 만회하지 않으면 가족 모두 위험에 빠진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크리스는 다시 컨테이너선에 탑승해 목숨을 건 불법이송작전에 뛰어든다.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는 점에서 <콘트라밴드>의 리듬은 시종 숨가쁘다. 변주를 하는
숨가쁜 리듬과 다양한 캐릭터 <콘트라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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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는 질문이다.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절대적이고 주관적인 질문들. 그 힘겨운 몸짓은 신을 향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할애되었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질문과 답’이 아닌 ‘질문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색하는 구도자의 길. 의심과 고뇌 끝에 맺힌 질문은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성찰과 절제된 묘사를 수반한다. 사실 베리만만큼 원초적인 인간의 심리와 관계에 관한 묘사에 탁월했던 감독도 드물다. 그중에서도 1978년작 <가을 소나타>는 생의 마지막을 이 영화와 함께했던 위대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불꽃 같은 연기가 보태져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올봄, 그 불꽃은 3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스크린 위에 다시금 피어오른다.
어머니와 딸. 따스함과 원망, 미안함의 애달픈 울림이 섞여 있는 특별한 단어. 부자(父子)처럼 딱딱하거나 서먹하지도 않고 세월이 지나면 사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 <가을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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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날리기 장면으로 시작한다. 초점이 불분명한 남자의 눈은 공중에서 흐느적대는 연을 보는 대신 몸에 부딪히는 바람을 읽으려고 하는 것 같다. 실타래를 쥐고 있는 남자의 옆에는 키 작은 여인이 서 있다. 영찬씨는 시청각장애인이다. 척추장애를 안고 있는 순호씨는 영찬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달팽이의 별>은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전구도 갈고 산책도 하는 이들 부부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사건이 되는, 실로 거대한 이야기가 이 일상에 담겨 있다.
이승준 감독은 2년간 이들 부부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태어나서 한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 없었다”는 영찬씨가 순호씨의 눈과 귀를 빌려 세상을 지각하는 과정이다. 점화(點話)로 대화하는 부부의 손이 지속적으로 클로즈업되는 것도 그래서다. 점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이 낯선 행동 자체에 주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 <달팽이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