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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얼굴을 들여다보길 좋아한다. 진짜 말고 드라마 주인공들의 절박한 거짓말에 한정해서. 일상생활의 거짓말은 대개 아무렇지도 않은 말간 얼굴로 저질러지기 때문에 거짓말의 스펙트럼을 펼치는 배우들의 얼굴에 매료되는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거짓말 연기는 인간의 마음을 잠시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의 순간을 선사한다. 거짓말하는 연기는 인물의 내면을 숨기면서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물론 오열하는 연기의 함정과 마찬가지로 신체와 감정 통제가 안되면 그야말로 민망 대폭발이더라. 아무튼 요 근래 여주인공의 절박한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리는 드라마가 풍년이라 덕분에 그 얼굴들을 실컷 구경하는 중이다. <욕망의 불꽃> 윤나영(신은경)에 이어 <로열 패밀리>의 김인숙(염정아) 그리고 <미스 리플리>의 장미리(이다해)까지.
콤플렉스 덩어리 윤나영의 변검 같은 얼굴은 위선과 위악 사이의 진심을 파악하
[유선주의 TVIEW] 비천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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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드라마를 위한 완벽한 공간이다. 의사와 간호사 등 상주하는 인물에 더해 가벼운 상처에서부터 위급한 상태까지 다양한 환자의 상황과 각자의 사연을 가진 온갖 군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63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8년간 이어져온 미국의 일일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이나 15년간 방영되었던 <ER> 등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에는 병원이라는 드라마틱한 공간의 힘도 포함될 것이다. 두 장수 드라마와 비교하기는 힘들어도 나름 장수 중인 <그레이 아나토미>와 <하우스> 역시 각각의 특색은 있지만 의사가 중심에 놓였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의학드라마들과 궤를 같이한다.
2009년 여름에 첫 시즌 방영을 시작해 현재 시즌3가 방영 중인 <쇼타임>의 <너스 재키>는 병원의 중심은 간호사라고 선언하는 색다른 의학드라마다. 뉴욕 올세인츠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이 TV시리즈는 “의사는 진단하고, 간호사는
[안현진의 미드앤더피플] 평범함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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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중에 뭐가 담겼건 보디 페인팅은 시각 호소력에서 극단을 달리는 표현체이다. 벗은 알몸과 채색 묘사가 공존한다. 상업광고나 절박한 의사를 전달하려는 집단이 보디 페인팅에 의존하는 이유는 보디 페인팅의 검증된 호객 능력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의 시위와 홍보물에 등장하는 동물 피부를 딴 보디 페인팅은 언어가 다른 동물의 의사를 대변하는 수단일 것이다. 집창촌 여성의 괴이한 얼굴 분장은 생존권 위협에 맞서는 결사의 다짐과 신분 은폐의 가면일 것이다. 전쟁터 군인의 안면에 올려진 위장은 구명을 목적으로 보디 페인팅이 복무하는 것이다. 보디 페인팅은 타협과 협박이라는 상반된 협상 카드를 쥐고 있다. 벗은 몸으로 다중의 시선을 일시에 끌어오되, 관음 대상인 벗은 몸을 채색으로 살짝 가린다. 이것 말고도 보디 페인팅의 이중성은 더 있다. ‘어느 선까지 알몸으로 봐야 하나’,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대립’ 따위의 대립적 쟁점을 던지기 때문이다. 응시하는 건 필시 알몸 같은데 성에 차지 않는 결핍감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보디 페인팅을 보는 모호한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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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호에서 계속) 베를린파의 영화적 실험이 주류 독일영화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내러티브영화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즉 그들의 작업은 (베를린파 1세대의 산실인 독일영화텔레비전아카데미(DFFB) 교수들인) 하룬 파로키나 하르트무트 비톰스키의 아방가르드적 실천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베를린파 영화는 최소한의 플롯을 구실로 삼아 인간과 환경(milieu)이 상호작용하는 비가시적 장(場)의 역학을 탐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적잖은 수의 베를린파 영화에서 외국의 도시나 휴양지, 국경지대 등이 무대로 제시되고 집을 떠나 있거나 새로운 장소에 막 도착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비가시적 장의 떨림을 가장 용이하게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분히 안토니오니적인 방식으로 ‘일상을 모험화’하는 방법론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로는, 마르세이와 베를린을 오가는 과정에서 실존적 궁지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그들은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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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불신의 결과물이다. 세계는 일종의 꼭두각시놀이가 펼쳐지는 무대이고, 그 위의 모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된 결과라는 것, 달리 말해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원인’을 상상하는 것이 음모론의 일반적 성향이다.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시대, 공공의 사회가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그렇게 믿음이 사라진 공백의 자리를 음모론으로 채우려 한다. 이러한 면에서 ‘정부 위의 정부’라는 거대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모비딕>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도록 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정부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모비딕>이 배경으로 하는 1994년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두 시대의 유사성은 이미 박인제 감독도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시대가 과연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진실에 대한 믿음의 문제에
[전영객잔] 그 영화적 태도가 믿음직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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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7호에는 비디오 다이어리 혹은 자전적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이번주는 몇몇 작품을 통해서 작품 구상을 어떻게 하는지를 추적해보려고 합니다. 롤랑 바르트의 자전적 텍스트인 <사랑의 단상>의 ‘검은 안경’이라는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감추기 CACHER.
심의적 문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게 그의 사랑을 고백해야 할지 어떨지를 자문하는 게 아니라(이것은 고백의 문형이 아니다), 정념의 혼란을(그 소용돌이를) 어느 정도로 감추어야 할지를 자문한다. 그의 욕망, 절망, 간단히 말해 그의 지나침(라신의 용어로 광란(fureur)이라는 것)을.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역설적인 방식을 취하는데요. 자신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의 ‘혼란을 어느 정도로 감추어야 할지’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발자크의 소설 <가짜 정부>를 인용하는데요. 여
[영상공작소] 감추면서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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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는 할리우드를 바꾸어놓았다. 특수효과가 굉장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특수효과에 관해서라면 로봇보다는 털이 날리고 근육이 움직이는 생물체를 만드는 게 훨씬 고차원적인 과제다. 중요한 건 <트랜스포머>가 다소 유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로봇을 블록버스터 세계 속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트랜스포머> 이전까지 거대 로봇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메의 영향을 받은 B급 괴작들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스튜어드 고든이 만든 <로봇족스>(1990). 강대국들이 120피트짜리 거대한 로봇으로 격투를 벌인다는 내용의 <로봇족스>도 꽤 특촬물스러운 재밌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이걸 할리우드 리얼 로봇물의 효시라고 부르긴 남부끄럽지만 말이다.
<리얼 스틸>은 ‘<트랜스포머> 이후’를 상징하는 로봇영화다. <나는 전설이다>의 원작자 리처드 매드슨의 1956년작 단편 <스틸>(Steel)을 원안으
‘리얼’한 로봇의 3D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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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는 우리에겐 낯선 슈퍼히어로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동네에서는 ‘배트맨’이나 ‘슈퍼맨’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반세기 동안 누려왔고, 몇번에 걸쳐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퍼스트 어벤져>를 보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해두는 편이 좋다.
*1941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캡틴 아메리카를 처음으로 코믹스계에 데뷔시켰다. 이 애국주의적 히어로가 히틀러에게 주먹을 날리는 창간호 표지는 최근 공개된 <퍼스트 어벤져>의 한정판 레트로 포스터에서 오마주됐다.
*1944년
리퍼블릭 픽처스가 <캡틴 아메리카> 15부작 시리얼 무비(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단편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던 당대 오락영화의 일종)를 내놓았다. 캡틴 아메리카의 주요 무기인 방패는 사라지고 주인공도 원작과 달라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1973년
터키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주인공으로 한 괴작 <3 Dev Adam>이 만들어졌다.
캡틴 아메리카, 미국적 영웅의 영화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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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어벤져>의 원제는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다. 주인공의 이름인 ‘캡틴 아메리카’가 빠진 이유? 그걸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캡틴 아메리카는 1941년 처음 코믹스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미국적 애국주의를 표방하는 히어로였다. 백악관에 걸려 있는 성조기를 떼다 지은 듯한 쫄쫄이와 방패부터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변자라는 증거다. 미국 외 관객이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라는 제목을 근심없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캡틴 아메리카는 시대착오적인 히어로다. 그가 활동하던 무대는 2차대전이며 적은 나치 독일이었다. 옛날의 금잔디에서 동산의 매기가 꿈꾸던 히어로를 대체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
재미있게도 마블 코믹스는 정면돌파를 선언한 듯하다. 그들은 시대를 바꾸지도 않았다. <퍼스트 어벤져>의 무대는 여전히 2차대전이고, 영화는 오리지널 코믹스의 창조 신화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 세계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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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에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까지 무려 11년이 걸렸다. 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대니얼 래드클리프, 에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말했듯이 귀여운 꼬마에서 다 자란 성년이 됐다. 2011년 7월14일 이 모든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한달도 남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개봉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은 전작들이 모두 마법학교 호그와트에서 벌어진 사건을 담은 것과 달리 처음으로 호그와트를 벗어났다. 해리와 친구들은 어둠의 제왕 볼드모트의 영혼 조각이 보관된 호크룩스를 파괴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여정을 떠났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에서는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볼드모트의 마지막 호크룩스를 파괴하기 위해 호그와트로 돌아온다. 볼드모트 역시 자신의 호크룩스가 파괴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호그와트로 향한다. 호그와트에서
해리의 대장정, 그 최후의 막이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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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신(新) 서부개척시대인가. 당찬 10대 소녀의 서부(<더 브레이브>)와 도마뱀을 비롯한 온갖 양서류의 서부(<랭고>))에 이어 이번에는 외계인이 침공한 서부다. 웨스턴의 리부팅 흐름에서 볼 때, 존 파브로의 <카우보이 & 에일리언>은 가장 과격한 실험일 것이다. <랭고>를 끝낸 고어 버빈스키가 조니 뎁과 함께 <론 레인저>(1956)의 리메이크를 준비 중이고, 론 하워드가 스티븐 킹의 웨스턴 판타지 시리즈인 <다크 타워>를 연출할 예정이지만 카우보이가 외계인과 싸운다는 설정의 황당함으로 보자면 <카우보이 & 에일리언>을 능가할 듯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중 한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촬영 전, 존 파브로와 시나리오작가인 로베르토 오치를 데려다 <수색자>와 <미지와의 조우>를 함께 보았다. 두 영화의 키워드는 <카우보이 & 에일리언>에
에일리언, 서부를 침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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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일본 언론들이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최근 쇼케이스를 연 샤이니에 대해 "아시아의 비틀스"라며 극찬했다.주니치스포츠, 스포츠호치, 산케이스포츠, 스포츠닛칸 등 일본 스포츠지들은 21일 샤이니의 지난 19일 런던 쇼케이스를 일제히 보도하며 이같이 평가했다.주니치 스포츠는 "샤이니는 아시아의 비틀스, 아시아 최초 애비로드 스튜디오 라이브"라는 제목으로 런던 현지 팬들의 열정적인 반응을 다루며 샤이니가 이 무대에서 뛰어난 댄스와 가창력으로 잠재력을 보여줬다고 전했다.또 스포츠호치는 애비로드 스튜디오 앞에 모인 1천여 유럽 팬들의 모습을 전하며 "비틀스 이후 이런 열기는 없었다"는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신문은 이어 비틀스의 성지이자 스티비 원더, 로드 스튜어트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공연한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의 라이브는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의 쾌거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비틀스처럼 역사
日 언론 "샤이니는 아시아의 비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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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시리즈는 80년대 한국 방송사들이 작정하고 주말마다 틀어젖히던 고정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팀 버튼의 <혹성탈출>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팬들이라면 이 시리즈의 역사를 숙지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터미네이터>처럼 배배 꼬인 시간대를 품은 대하 서사극이다.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1968
60년대 말 이십세기 폭스가 스타 찰턴 헤스턴과 할리우드의 1급 기술진(특히 특수분장의 릭 베이커!)을 모조리 끌어와 만든 당대의 블록버스터. 잘 알다시피 원숭이 혹성에 떨어진 우주비행사 테일러가 갖은 모험을 겪다가 결국 원숭이 혹성이 핵전쟁 이후 미래의 지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해변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 중 하나.
<혹성탈출2: 지하도시의 음모>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 19
역대 <혹성탈출> 시리즈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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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리부트 열풍이다.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시작하듯이,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오랜 프랜차이즈를 새롭게 시작하는 중이다. 그런데 잠깐. <혹성탈출> 시리즈를 굳이 리부트할 이유가 뭘까. 이미 팀 버튼은 지난 2001년 <혹성탈출>의 리메이크를 만든 적이 있다. 게다가 팀 버튼의 영화 역시 시간의 짜임새와 극의 얼개를 살짝 바꾸면서 일종의 대체역사로 빠져나간 일종의 리부트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십세기 폭스가 이 시리즈를 되살리려는 이유는? 그렇다. 테크놀로지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특수분장사 릭 베이커가 창조한 원숭이 분장은 이제 전설이 됐다. 1968년에 나온 첫 번째 <혹성탈출>을 봐도 원숭이 분장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할리우드는 CG, 그리고 <아바타>에서 결정적으로 선보인 퍼포먼스 캡처(그에 더해 ‘이모션 캡처’)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인간에게 원숭이 분장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아예 인
CG로 진화한 원숭이 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