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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일~8월10일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02-580-1300
말로 자주 듣는 것보다 한번 눈으로 볼 때 오는 강력한 문화적 충격이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제주도에서 단식 투쟁 중인 양윤모 영화평론가를 만나고 오는 길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 양윤모 평론가가 입원한 병실에는 강정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에메랄드색 물빛과 은빛 바위, 서울에선 절대 볼 수 없을 사진 속 핏빛 노을을 보고서야 비로소 인간이 이 땅에 무슨 짓을 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마음에 와닿은 거다. 생각해보면 환경문제란 것이 늘 그렇게 가깝고도 멀다. 환경오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표면적으로는 친환경적인 생활 방식과 입장을 옹호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당장 시야에 들어오지 않거나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 때 환경문제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종종 밀려나게 된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를 탓하려는 건 아니다.
[전시] 이것이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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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해 부산에 여행을 다녀왔다. ‘부산에 여행’이라고 썼지만 ‘사직구장 관람’이라고 바꿔 읽는 편이 옳겠다. LG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주말 3연전 관람이 부산행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을 연고로 한 팀은 무려 3개나 있고(LG트윈스,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잠실이건 목동이건 어디서 경기를 치러도 홈팀 관중만큼(때로 그 이상의) 원정팀 관중이 들어서게 되어 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비행기로 1시간이면 넉넉한 이 아담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라고 봐야 하나,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를 몸소 실천하는 국민들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에는 서울 토박이보다 많은 타지인들이 살고 있고, 그러다보니 서울을 연고로 한 팀(과 그 팬들)은 “홈은 홈이되 홈이 아닌” 구장에 익숙해 있다. 부산 사직구장이 궁금했던 건 그래서였다. 구도(球都)라고 불리는 도시, 홈팬들만으로 만원 관중을 거뜬히 이뤄내는 곳, KTX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데 갈등이 없었던 이유는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야구 속설의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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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물은 약간 뜨거워야 맛이다. 몸을 담그기엔 약간 뜨거운 물에 발끝부터 밀어넣고(“앗뜨! 앗뜨!”), 약간은 고통스럽지만 뜨거움을 참은 다음(“흡…”), 살이 익는 듯한 뜨거움에서 시원함을 느끼기 시작한다(“아아아아아…”). 여기에는 약간의 ‘양성’ 마조히즘이 있다. 뜨거움의 고통이 쾌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왜 인간은 고통까지를 포함한 쾌락을 즐길까.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는 쾌락의 메커니즘을 논한다. 이야기를 즐기는 심리는 어떨까. 여기서는 데이비드 흄을 인용한다. 높은 탑에서 철창 밖으로 몸을 내미는 사람은 “완벽하게 안전한 줄 알면서도 겁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믿음과 가(假)믿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믿음은 사물이 실제로 어떤지에 대한 생각이고, 가믿음은 좀더 원초적인 태도로,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반응이다. 믿음은 안전하다고 말해도 가믿음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가믿음은 논리로는 어리석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
[도서] 우리는 잠자리에서 누구와 사랑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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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브래드 퍼먼의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원작과 비교해서 가장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은 변호사 미키 할러(매튜 매커너헤이)와 함께 타이틀 롤을 맡은 링컨 차의 등장이다. 코넬리가 원작 소설에서 아무리 꼼꼼하게 이 차의 가치와 역할과 기능을 묘사해도, 영화에서 이 검고 모나고 거대한 리무진이 매튜 매커너헤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영화의 우위를 인정한다. 어떤 때는 정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일 때가 있다.
그렇다면 링컨 차는 이 영화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링컨은 주인공 미키 할러의 실질적인 사무실이다. 여러분이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이나 법정물에 익숙하다면 할러가 어떤 인물인지 꼼꼼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형사법 전문가로, 오로지 자신과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미국 사법체계의 시스템을 이용한다. 그에게 정의란 임의적인 것으로 의뢰인의 유죄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
베스트셀러 각색 영화라는 틀 안에서 여전히 모범적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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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서커스다.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은 ‘슈퍼 8’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70년대 아이들의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그런데 갑자기 ‘에이리어 51’에서 기차로 운반되던 중 탈출한 괴물영화의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두 이야기를 합치기로 한다. 거기다가 80년대 스필버그 사단과 엠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영화, 특히 <E.T.>의 오마주도 한번 해보고 싶다. 보통의 감독이었다면 애초에 포기했을 이야기다. 그러나 <슈퍼 에이트>의 감독은 J. J. 에이브럼스다. 그는 떡밥의 천재일 뿐만 아니라 원체 이야기를 배배 꼬거나 이어붙이며 노는 데 능한 남자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79년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릴리안. 조이(조엘 코트니)는 아마추어 감독 지망생 찰스(라일리 그리피스), 마틴(가브리엘 바소), 캐리(라이언 리), 프레스턴(작 밀스), 앨리스(엘르 패닝) 등과 함께 ‘슈퍼 8’ 카메라로 좀비영화를 찍어 영화제에 보낼 계획을 세운다. 밤에 몰래 기차역에서 촬영
J.J.에이브람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의 유쾌한 탕진 <슈퍼 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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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영화는 마술적 환영을 자아내는 도구였다. 영화의 사실성을 사진이 담당하였다면 움직임은 그 자체로 스크린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이었다. 라틴어로 ‘살아 움직이게 하다’라는 애니메이션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어쩌면 애니메이션이야말로 가장 영화적인 표현수단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적’이라는 말은 진짜 같아야 한다는, 그러나 결코 진짜가 아님을 나타내는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애니메이션은 그것이 진짜냐 아니냐의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에 도리어 진정한 현실로 도약할 수 있다. 프랑스로부터 날아온 걸작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는 세월에 잊혀져가는 한 마법사의 이야기를 통해 현란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영화의 진정한 마법을 일깨운다.
세월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나이 든 마술사 ‘타티셰프’는 무대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돈다. 자신을 찾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마술사는 파리의 극장을 전전하다 영국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역시 록
섬세하게 재현된 에든버러의 풍광이 주는 위로 <일루셔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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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체코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KJ라는 11살의 피아노 신동인데, 아이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 시간을 훌쩍 넘어 이제 카메라는 홍콩에 사는 17살의 KJ를 교차해 비춘다. 그는 천재라는 단어보다 우수한 재능을 가진 학생의 외양에 더 가깝다. 6년 전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명문사립학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격으로 소년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삶의 목표도 변했다. 그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은 사건이 아닌 운명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사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특이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적 선택은 극단적 평가를 불러올 여지가 있다. 몇몇 관객에게 아이의 삶은 선명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관객에게 이는 그저 심심한 개인의 기록으로 치부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소년 KJ>가 사용한 시간의 점프컷을 효과적으로 받아
그의 마음을 변화시킨 건 사건이 아닌 운명이다. <소년 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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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은 대개 ‘더 크게, 더 화려하게’의 강박을 안고 출발한다. 전작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면서 새로운 관객까지 공략하기 위해 규모와 스펙터클을 동원하고픈 욕망은 일정 부분 납득이 가고, 실제로 어느 정도 유효한 전략이다. 하지만 때론 속편의 화려함이 전작의 참신함을 빛바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3D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며 돌아온 <빨간 모자의 진실2>는 아쉽게도 여기에 해당한다.
전작에서 결성된 ‘해피엔딩수사국’은 동화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더욱 뛰어난 요원이 되고 싶은 빨간 모자가 쿵후 자매에게 특수훈련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수사국만으론 감당 못할 사건이 발생한다. 사악한 마녀로부터 헨젤과 그레텔을 구하려던 작전이 실패하고 심지어 할머니까지 납치되고 만 것이다. 사건 해결과 할머니의 구출을 위해 복귀한 빨간 모자는 파트너인 늑대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난관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 사이 비밀의 레시피를 둘러싼 숨겨졌던 음모가 빠르게 진행
다소 진부했던 영화에 유쾌한 패러디와 더빙이 생기를 불어넣다. <빨간 모자의 진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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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생일을 맞은 레이첼(지니퍼 굿윈), 남들 눈엔 변호사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녀는 외로운데다 직업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친구인 달시(케이트 허드슨)가 열어준 생일파티에서 술에 취해 달시의 약혼자인 덱스(콜린 이글스필드)와 하룻밤을 보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튿날 깨어난 레이첼은 난감하다. 대학 시절 덱스를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곤란하고, 덱스가 오래전부터 그녀가 좋았다고 말하자 더욱 난처해진다. <러브 앤 프렌즈>는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로맨틱코미디물이다. 이 극의 주인공은 ‘서로’ 좋아하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상호간의 호감은 로맨틱코미디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동안 할리우드영화들은 관습을 변형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500일의 썸머>는 이미 헤어진 남녀를 상정해 이야기를 풀어갔고,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깨어진 믿음을 복원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여자주인공이 중
"여자친구 사이에 이런 애 꼭 있다" <러브 앤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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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 버디> Hop
감독: 팀 힐 / 실사 출연: 제임스 마스덴 / 목소리 출연: 러셀 브랜드, 휴 로리 / 개봉예정 7월21일
어수룩한 인간과 당돌한 CG캐릭터가 만났다. <바니 버디>는 ‘부활절 토끼’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실사·애니메이션 합성영화다. 한국 관객에겐 낯설지만 부활절 토끼는 서양 어린이들에겐 봄날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란다. 다만 이 영화의 토끼는 그런 역할은 못할 듯싶다. 드러머가 되겠답시고 이스터 아일랜드를 떠나 할리우드로 향하던 토끼 E.B(러셀 브랜드)는 우연히 사고를 당해 인간 프레드(제임스 마스덴)의 집에 묵게 된다. 사고뭉치 토끼 때문에 프레드가 괴로워하는 사이, 이스터 아일랜드의 병아리들은 반란을 꿈꾼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영화라니, 잘못하면 대재앙을 부를 수 있는 장르지만 같은 영화 <앨빈과 슈퍼밴드> 1편으로 3억달러에 가까운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둔 감독 팀 힐의 연출력을 믿어보자.
[Coming soon] 감독 팀 힐의 연출력을 믿어보자. <바니 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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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우리가 자꾸만 악당에 끌리는 이유는...
[올드독의 영화노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우리가 자꾸만 악당에 끌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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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독일 관객은 전설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최신 복원판이 5월 중순부터 독일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메트로폴리스> 오리지널 프린트의 복원 사연은 극적이다. 지난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박물관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영화의 30분 분량의 원본이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계만이 아닌 독일 전체의 경사였다. 수많은 공을 들여 살려낸 복원판은 지난해 제6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첫선을 보였다.
<메트로폴리스>의 각본은 랑의 부인 테아 폰 하르부가 썼다. 랑이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 영감을 받아 표현한 영화 속 미래도시는 현대 대도시의 모습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당시 프리츠 랑이 쏟아부은 제작비는 총 600만마르크였고, 촬영 기간은 꼬박 1년 반, 분량은 모두 380시간 분이었다. 지금 남아 있는 <메트로폴리스>는 그 엄청난 자료로부터 겨우 1/148 분량
[베를린] 전설의 영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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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의 주인공 은주(함은정)는 밴드 핑크돌즈의 굴욕 움짤을 거꾸로 돌려 들으며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냅니다. 실제로 이런 식의 백워드매스킹이 가능한가요?
A. 백워드매스킹은 가능합니다만 일부러 넣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고의적인 백워드매스킹의 시초는 비틀스의 《Revolver》 앨범입니다. 존 레넌은 대마를 피우다가 <Rain>에 장난삼아 괴상한 사운드를 백워드로 삽입했습니다. 일부 종교인들은 록계의 사탄주의자들이 백워드매스킹으로 사탄의 메시지를 심는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왔는데요, 가장 유명했던 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들으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는 주장이었죠. <씨네21>에 ‘귀를 기울이면’을 기고 중인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백워드매스킹 논란이 “얼마만큼 그 음악이나 인기있냐는 방증”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설명도 덧붙입니다. “미국의 1950~60년대에는 백워드매스킹이 서브리
[Cinepedia]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실제로 이런 식의 백워드매스킹이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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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캐비어 삼겹살님. 아주 노릇노릇 잘 구워지셨네요.
=인터뷰 시작하시기 전에 일단 한점 걸쳐보세요. 녹습니다 녹아요.
-제가 캐비어 삼겹살님을 지금 잡숴버리면 인터뷰를 더이상 못하는걸요. 한점 혓바닥 위에 탁 걸치고 싶지만 일단은 참겠습니다. 하여간 요즘 장안의 화제시더라고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에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라는 철갑상어알 캐비어까지 얹었으니 당연히 화제가 될 만하지요. 얼마 전엔 방송사에서 사람들을 엄청 데리고 오셨더라고요. 이 진미를 하루빨리 TV에 소개해야 한다면서 말이에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캐비어 삼겹살님은 진짜 캐비어가 맞나요?
=그럼요. 제 목에 두른 이 아름다운 캐비어의 광택을 보세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빨간 건 연어알, 새카만 건 캐비어입니다.
-원래 캐비어는 30g에 30만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1천원만 추가하면 삼겹살에 캐비어를 얹어서 먹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네? 캐비어가 그렇게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인간이 죄지 삼겹살이 무슨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