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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굿 윌 헌팅> 혹은 <파인딩 포레스터>쯤 될까. <완득이>는 마치 하나로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학교에서는 같은 교실의 담임과 학생, 집에서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애매한 이웃이지만 사사건건 다투기만 한다. 물론 그 관계가 곧 행복하게 봉합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이다. 거칠기만 한 선생이 알고 보니 ‘개념선생’이고 불량학생처럼 보이는 완득이가 가족의 가치를 깨달아간다. <완득이>는 그 뻔한 과정을 사람 냄새 진득하게 보여준다.
고교생 완득이(유아인)는 등이 굽은 키 작은 아버지(박수영)와 언제부터인가 가족처럼 돼버린 삼촌(김영재)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담임 선생 동주(김윤석)다. 그러던 어느 날, 동주 선생이 그 존재를 전혀 모르고 살던 완득의 엄마(이자스민)가 어딘가에 살고 있음을 얘기해준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뒤늦은 행복한 보고서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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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도 정말 더럽게 꼬여간다. 한 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위도로 파견된 형사 강인철(정찬)이 내뱉는 이 대사가 <위도>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한다. 조사하던 중 인철은 단순 사고사로 보이는 사건의 뒤에 지저분하게 꼬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도무지 어디서부터 이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다. 이후 인철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광기의 파도에 휩쓸린다.
이질적인 공간에 고립된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영화는 <이끼>나 <극락도 살인사건> 등에서도 익히 봐왔던 익숙한 그림이다. <위도>의 뚝뚝 끊기는 장면과 인물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모양새를 얼추 짐작하게 하지만 처음의 그 불균질함은 일정하게 지속되어 영화가 끝나가는 지점까지도 결국 실타래의 매듭이 어떤 모양인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초반부, 낯선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불안함은 <위도>의 미스터리를 끌고
섬에서의 살인사건, 그러나 긴장감은 없는 스릴러 <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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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 스포츠의 불모지 한국에서도 심장을 울리는 엔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남 영암에서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린 뒤부터 모터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코리아 그랑프리에 맞춰 개봉하는 <세나: F1의 신화>(이하 <세나>)는 F1 팬이라면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전설적인 드라이버 아일턴 세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또 코리아 그랑프리를 계기로 F1에 관심이 생긴 관객에게도 <세나>는 F1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다.
영국식 로맨틱코미디로 유명한 워킹 타이틀이 내놓은 최초의 다큐멘터리인 <세나>는 1994년 이탈리아 산마리노 그랑프리가 열리는 이몰라 서킷에서 34살의 나이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세나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좇는다. ‘레인마스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 모나코 그랑프리부터 숙명의 라이벌인 알랭 프로스트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일본 그랑프리, 기어가 고장나면서 6단 기
세나의 삶과 F1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 <세나: F1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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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지 20년이 된 아들 게이브릴(루 테일러 푸치)을 찾았다는 소식이 어느 날 헨리(J. K. 시몬스) 부부에게 전해진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오랜 노숙자 생활을 했던 게이브릴은 뇌종양 수술로 기억이 15년 전에 멈춰 있다. 뇌기능 손상 환자에게 음악이 좋은 치료가 된다는 기사를 읽은 헨리는 게이브릴에게 어린 시절 함께 들었던 음악을 들려준다. 하지만 게이브릴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음악에는 관심이 없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록음악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 끝을 붙잡고 미궁을 헤매는 테세우스처럼 게이브릴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음악의 전주를 따라 기억을 되짚어간다. 게이브릴의 암전된 기억엔 순간만 있을 뿐 연속성이 없다. 현재의 시간에서도 수시로 뚝뚝 끊기는 게이브릴의 사고(思考)는 어쩌면, 미궁 안쪽에 도사리고 있는 ‘엄격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의지와 무관하게 지워져가는 기억은 고통이다. 기억에 연속성이 없으
그때 그 시절의 명곡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뮤직 네버 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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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최남단 칼라브리아의 한 시골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는지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한 마을은 인적이 드물다. 이곳에서 한 노인(기우세페 부다)이 홀로 수십 마리의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병을 앓던 그는 교회 바닥에서 모은 먼지야말로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약이라 믿는다. 매일 교회를 찾아가 먼지를 염소 젖과 바꿔 물에 타 마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느 날 그는 염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고, 다음날 아침 아기 염소가 태어난다. 아기 염소는 풀을 먹기 위해 다른 염소들과 함께 들에 나갔다가 길을 잃고 전나무 밑에서 잠든다. 시간이 지나고 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 염소가 누웠던 곳에 있던 전나무를 잘라 축제에 사용한다. 축제가 끝난 뒤 전나무는 숯장수에게 팔려간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 안에서 전나무는 숯이 되고, 우리는 가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윤회(輪廻). 이 말은 중생이 죽은 뒤 그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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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책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던 중 궁금증이 들었다. 영화평론가들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할까. 그래서 세 가지 항목으로 물었다. 1. 복간되어야 할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2. 번역되어야 할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3.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출간되면 좋을 상상의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셋 중 한 항목을 선택하셔서 한권의 책을 추천해주시고 짧은 선정 이유도 부탁드립니다. 필자에 따라 세 항목 모두에 답하거나 한권 이상 추천한 분들이 계신다.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 아마도 추천자들은 그들의 영화책 베스트를 적었다기보다는 함께 읽으면 좋을 목록을 우리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들의 추천 명단을 보자.(이하 가나다순)
김봉석
-번역되어야 할 영화책
=<映畵はおそろしい>(영화는 무섭다) 구로사와 기요시: 구로사와 기요시가 쓴 공포영화론
=<See No Evil: Banned Films and Video Controversy>, 데이비드 케레케스, 데이
제발 나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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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기 권장 지수 ★
패러독스 지수 ★★★★
고다르의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지수 ★★★★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일상에 휩싸이던 어느 찰나, 문득 우리 속 심연이 말을 걸어온다. 네가 처음에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냐? 지금 당신의 모습이 정말 처음에 원한 것과 같아? 그제야 떠오르는 <극장전>의 마지막 대사. “생각을 해야한다.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 고칠 수 있다. 생각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이제 이 질문을 영화한테로 돌린다. 영화를 생각하다 혼란에 빠질 경우 보아야 하는 지평,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고다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영화는, 그렇게나 고다르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데이비드 스테릿이 엮은 <고다르X고다르>는 고다르의 장편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가 나온 2년 뒤, 그러니까 <비브르 사 비>가 개봉된 1962년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1996년 <필름 코멘트>
장 뤽 고다르의 34년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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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시네필 지수 ★★★★★
정성스런 번역지수 ★★★★
읽고나서 일본영화 지식 증폭지수 ★★★★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의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미 1993년에 “동아시아에서 활약하는 28명의 감독들을 열전의 형태로 다루어, <전영풍운>이라는 책을 상재한 적이 있다”. 한국, 중국, 타이완, 홍콩, 필리핀,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에 대한 감독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영화사의 전반적인 개설과 북한의 영화 상황에 대한 논문을 덧붙였”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다음 요모타 이누히코는 외국의 친구들에게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당신은 동세대의 일본 감독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가?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가 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월간지 <세카이>에 1997년 7월호부터 1998년 12월호에 걸쳐 <전영풍운, 일본 영화의 신예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이고 이후 대폭 수정 보완을 통해 19
80년 이후 일본을 이끄는 전영풍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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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펴냄
스타 등장 지수 ★★★
시각 자극 지수 ★★
다독 요구 지수 ★★★★
빨리 구입하라고 권할 만한 사진집은 아니다. 그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빔 벤더스의 카메라는 시신경을 자극할 요소들을 찾아내고 추출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극적으로’ 포착하려고 안달하지도 않는다. 더 다가갈 수 있는데도, 더 물러설 수 있는데도, 빔 벤더스의 ‘눈’은 언제나 모호한 위치에서 서성인다.
하지만 이러한 망설임은 대상을 대하는 그의 확고한 태도다. 늙은 텍사스 카우보이(280∼284쪽)를 보라. 빔 벤더스는 카우보이에게 다가가서 그의 육체에 새겨진 굵은 주름을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사진은 보는 것보다 듣는 행위에 더 가깝다.” 언젠가 빔 벤더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에 담긴 수백장의 이미지들 역시 주목보다 경청을 요한다. 구부정한 허리와 느린 걸음걸이의 카
풍경의 이야기를 들어봐 ·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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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극장 단성사 1907-1939> 이순진 지음 / 한국영상자료원 펴냄
학술적 가치 지수 ★★★★★
자료 활용도 지수 ★★★★
간편한 휴대성 지수 ★★★
영화 <접속>이 인상적으로 포착했듯 종로라는 공간은 개인의 영화 경험을 환기시키는 정서 공간이자, 그 경험을 공유하는 대중의 무의식이 자리잡은 대중지성적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진의 <조선인 극장 단성사 1907-1939>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 영화체험의 중심 공간이던 단성사의 위상을 복합문화생산의 맥락으로 풀어낸 알찬 학술서적이자 영화사적 증언이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 대상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출발했던 단성사의 등장, 번영, 몰락을 다루고 있다. 1907년 구극 공연장으로 설립된 단성사는 1918년 흥행의 귀재 박승필에 의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활동사진관으로 재편되었다. 키네오드라마, 키노드라마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동사진의 일부로 도입하며 변사와 악사
오래된 극장에서 조선영화의 힘을 보다 · 불꽃처럼 살다간 30년대 중국의 국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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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등 도판 수록 지수 ★★
한 분야 깊이 파기 지수 ★★★
필자의 준비성과 박식함 지수 ★★★★
“나는 많은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다. (…) 나는 타이완 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에 요즘 독립을 강력히 원하는 타이완 토박이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중국으로 되돌아간다면, 그곳에서는 타이완인이다. 현재 나는 미국에 살고 있고 어디를 가든 이방인 같은 존재다.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힘든 것이다.” _1993년 리안의 말
리안은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중국 문화권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영국의 고전과 미국 역사, 대중문화를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인 인물이다. 리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쿵후, 제인 오스틴, 남북전쟁, 헐크, 우드스톡 사이의 공통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리안의 영화세계에서는 하나로 묶인다. 정체성과 아이러니, 이것은 리안을 관통하는 단어다. 이 두 단어조차 사실은 아이러니한 정체성이라고 묶을 수 있다. 타이완 스신대
경계를 허무는 이방인,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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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치는 밤이다. 바깥은 어둡고 바람이 몹시 불어, 소녀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그날 밤 아이는 침대에 누워서 ‘사람과 동물, 지구, 탄생과 사후’ 등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의 생각은 다른 생각을 낳고, 얽힌 생각들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비트윈 숏 앤 숏’에 초대된 단편애니메이션 <폭풍의 밤>의 내용이다. 제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테마는 ‘비트윈’(Between)이다. 이 짧은 애니메이션에 담긴 내용처럼 올해의 영화제는 건축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침투해 그들과 맺고 있는 역학적 관계를 조망한다.
개막작은 차드 프리드리히의 신작 <프루이트 아이고>(2011)다. 세계무역센터의 건축으로 유명한 ‘미노루 야마사키’가 설계한 모더니즘 양식의 대단지 아파트 ‘프루이트 아이고’를 다룬다. 50년대 중반에 이 아파트가 처음 완성됐을 때, 미국건축가협회는 건축상을 줬고 매스컴은 ‘모더니즘의 정상’이란 수식을 댔다. 한때 가
건축과 인간의 관계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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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루냐주에서는 ‘영화 만들기’를 교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들이 있다. 이는 ‘Cinema en Curs’(학교에서 배우는 영화)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부터 피레네 산맥 산골짜기의 학교들까지 고루 참여한다. 교육과 예술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만드는 아바오아쿠(A Bao A Qu)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기획한 이 행사는 카탈루냐주 정부와 영상자료원, 각 도시의 교육청이 후원해 공립학교에서 진행된다. 2005년에 시작해 7년째를 맞은 올해는 20군데 학교에서 영화를 제작 중이다.
아이들은 시나리오 쓰기부터 연기, 촬영, 더빙, 편집 과정을 거쳐 6∼9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고 학기 말에 작품 시사회를 연다. 잘 만든 영화들은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해외 상영’ 된다. 프랑스에선 1995년부터 이미 ‘Le cinema, cent ans de jeunesse’라는 이름으로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영화는 주로 학교생활과 교우관계에 초점이 맞
[바르셀로나] 영화도 조기 교육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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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5일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송페스티벌에 대만의 최고 배우 겸 가수 하윤동이 내한했다. 채림, 장나라와 함께했던 드라마는 물론 <진심화>(1999)를 시작으로 <착신아리2>(2004)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며, <소피의 연애매뉴얼>(2009)에서는 장쯔이, 소지섭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특히 내년 개봉예정인 견자단, 주윤발, 곽부성의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쫓는 이랑신 역으로 출연한다. 내한 직전 그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견자단, 주윤발과 함께한 영화 <서유기>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다. 영화에서 이랑신 역할을 맡았는데, 서유기와 이랑신 역할에 대해 소개해달라.
=영화 <서유기>는 할리우드의 뛰어난 특수기술 및 3D 특수효과팀을 초청해 찍었다. <서유기>에서 잘 알려진 ‘대뇨천궁’ 이야기가 배경인데 인물 성격에 개성을 좀더 불어넣었다. 이랑신의 경우가 그렇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새로운 시
[Cinetalk] 한국영화는 소재를 극한까지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