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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특수효과와 배우의 미래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퍼포먼스 캡처와 디지털 캐릭터의 시대가 전통적인 배우의 존재 가치를 약화시킨다는 오해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주인공 시저는 심지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보다 더 섬세하고 풍요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시저가 앤디 서키스라는 훌륭한 배우의 연기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덕분이다. 앤디 서키스는 말한다. “실제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면서 동시에 캡처가 이루어졌다.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 때는 세트장에서 촬영한 다음에 모션 캡처 스튜디오에 가서 같은 연기를 또 반복해야 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한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임스 프랑코와 감독, 그리고 나 사이에 감정의 교류가 즉석에서 효과적으로 일어났다.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 때는 모션 캡처 스튜디오에서 일부러 노력해야만 만들어지는 감정이나 현장감을 배우와 현
특수효과와 배우의 미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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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의 개념을 벗어나더라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시나리오는 훌륭한 블록버스터 시나리오의 전범에 가깝다. 영화 속 인간 캐릭터들은 사실상 기능적인 조연 역할에만 충실하다. 영화를 실제로 끌어가는 건 유인원 캐릭터들이다. 놀랍게도 보통 블록버스터에서라면 특수효과를 과시하는 데 낭비됐을 유인원 캐릭터들조차 당당하게 각자의 성격을 부여받는다. 이를테면 유인원 보호소에서 시저를 왕따시키려던 수컷 침팬지 로켓, 몸집이 가장 거대한 고릴라 벅, 인자하고 용기가 부족하지만 시저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오랑우탄 모리스 등은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시저의 각성을 이끌어내고 액션장면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릭 자파의 각본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그는 유인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도 결코 인간 군대의 지휘관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건 <우주전쟁>에서 스필버그와 각본가 데이비드 코엡이 지켜낸 원칙(‘
각자의 개성을 부여받은 유인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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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의 리부트를 이끌어낸 건 순전히 CG의 발전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실 60, 70년대 <혹성탈출> 시리즈의 관건 역시 언제나 ‘어떻게 지능있는 원숭이를 진짜처럼 만들어낼 것인가’였다. <혹성탈출>(1968)은 전설적인 특수분장사 릭 베이커가 창조한 원숭이 분장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영화다. 베이커의 특수분장은 그 자체로 완벽했고, 그는 2001년작인 팀 버튼의 <혹성탈출>에서도 여전히 참여했다. 그러나 2001년과 2011년 사이 CG 기술은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처럼 달라졌다. 피터 잭슨과 웨타가 모션 캡처로 골룸을 만들고, 로버트 저메키스가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퍼포먼스 캡처를 선보이고,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로 이 모든 ‘캡처’ 기술에 정점을 찍으면서, 디지털 캐릭터를 창조하는 기술은 마술에 가까워졌다. 만약 당신이 CG로 완벽한 원숭이를 창조할 수 있다면 <혹성탈출&
테크놀로지의 힘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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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이 리메이크한 바 있는 30여년 전 시리즈의 프리퀄이다. 지겹게 쏟아져나오는 할리우드 리부트 열풍에 힘입어 제작된 블록버스터다. 주인공은 원숭이다. 이런 영화가 괜찮게 뽑혀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이 말도 안되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냈다. 루퍼트 와이어트가 연출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독창적인 새 시리즈의 시작이며, 진화한 테크놀로지와 고전적인 이야기의 아름다운 결합이며, 2011년 여름 당신이 볼 수 있는 최상급의 블록버스터 중 하나다.
먼저 리부트(Reboot) 이야기 좀 하자. 원래 리부트는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시작할 때나 사용하는 단어였다. 요즘 리부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용하는 단어가 됐다. 할리우드에서 말하는 리부트란 이미 존재하는 프랜차이즈를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리메이크가 줄거리와 캐릭터는 그대로 둔 채 제작진만 바꿔서 다시 만드는 거라면, 리부트는 이미 존재하는 영
21세기 환상의 피조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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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결혼이민자인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만드는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한국에 이주한 지 1년이 채 안된 분들이어서 한국말이 서툰 편이었고, 저 역시 달리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강의를 진행했어요. 다행히 사진과 동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말이나 글 대신 이미지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죠. 그때 한분이 만든 <혼자 집에 있는 건 슬퍼>라는 작품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소개하려 합니다.
베트남에서 이주한 ‘미화’씨가 만든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빈집의 곳곳을 카메라가 비추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조용한 거실, 부엌, 화장실, 안방 등이 화면에 등장하고 곧 베트남어로 된 제목이 타이틀로 나타납니다. 아침에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남편이 출근을 하면 청소를 하고 한글 공부를 하고, 혼자 점심을 차려 먹은 다음 한글학교에 가고, 남편이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는 그녀의 하루가
[영상공작소] 주변에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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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이 제작한 올여름의 블록버스터 두편을 보았다. 소문이 무성했던 <퀵>과 <7광구>를 같은 날 연달아 보고 나오면서 두 영화의 유사한 인상에 생각이 닿았다. <퀵>은 윤제균식 코미디가 적절히 버무려진 한여름의 오락물로서 비교적 평이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7광구>는 기대 이하라는 평이 다수다. 그리고 혹평의 근거는 거의 대부분 괴물은 있는데,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데 맞춰진다. 정말 그런가? 이야기의 맥락에서라면, <퀵>이 <7광구>보다 탄탄하거나 고급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할 때, 초점은 거기에 이야기가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이들이 영화 에 이야기를 구겨넣는 방식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야기를 품고 오락을 붙잡는 게 아니라, 오락을 붙잡고서 이야기를 흘낏거리는 모양새의 측면에서라면, 두 영화는 유사한 것 같다.
말하자면 한편에 오락이 있고, 다른 한편에 이 오락과 섞이지 못
[전영객잔] 플래시백의 가장 나쁜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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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가 되는 디지털카메라는 다 좋지만 투박한 디자인을 가졌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소니 TX10을 보면 그런 선입견도 사라질 거다.
TX10은 최근 출시된 가장 최신예 방수 디지털카메라다. 무려 4.9m의 수심에서 1시간가량 방수되는 기능을 지녔으며, 1.5m 높이의 낙하에서도 멀쩡하고 영하 10도에서도 기계적 성능을 유지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런 터프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기존 T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슬림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소니 특유의 칼자이쯔 렌즈를 장착하고 있으며 25~100mm에 1620만 화소, 3D 스윕파노라마는 물론 스틸 3D이미지까지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카메라다. 터치 스크린이 장착되어 조작이 꽤 용이하다.
앞서 언급한 소니 T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슬림함에 두께는 약 18mm, 무게는 118g으로 굉장히 작은 편에 속한다. 방수카메라 같지 않은 디자인이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기존의 T시리즈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디자인으로 소니다움이 이런 것이다,
[gadget] 투박한 건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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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에 일찍이 세상에는 <스타워즈>라는 것이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타워즈>라는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이 SF영화에 흠뻑 빠졌었다. 패션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력을 오늘날에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 다음으로 콘텐츠의 리메이크와 창조가 편리한 게임이라는 장르에서 <스타워즈>의 인기는 진행형이다. 게임 속 제다이들은 아직까지도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타워즈> 게임은 다양한 형태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였었다. 하지만 광선검을 휘두르는 화면 안에 플레이어의 아바타들은 대리만족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Wii용 <스타워즈> 게임이 등장했을 때 그렇게 환호했었나보다. 그러나 Wii 역시 한정된 리소스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때문에 팬들은 불만족. 이런 시기에 키넥트가 등장했다. 키넥트의 출시
[gadget] 제다이처럼 광선검을 휘두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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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들> Milestones
감독 로버트 크레이머 & 존 더글러스
상영시간 199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자막 영어 / 출시사 카프리치(프랑스, 2장)
화질 ★★★☆ / 음질 ★★★☆ / 부록 없음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와카마쓰 고지의 <실록 연합적군>, 울리히 에델의 <바더 마인호프>, 그리고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가 폭발하듯 등장했다. 68혁명을 치열하게 통과한 세 나라에서 온 영화는 공히 혁명을 꿈꾼 좌파의 투쟁과 흥망을 이야기한다. <카를로스>를 본 날, 나는 세편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 까닭이 궁금했다. 평론가 김성욱은 “그 시대가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세 영화의 중심에는 1970년대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어둠에 묻혔으니, 영화가 입을 연 것이다. 세 영화는 좌파의 혁명을 찬양하거나 섣불리 평가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세 영화는
[DVD] 68혁명 이후 그들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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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기적>을 보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명랑하다는 게 놀라웠고 동시에 의아했다. 이런 내 반응이 순진한 것이며 그에 대한 답이 뻔하다는 것도 안다. <종로의 기적>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의 선택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하며 마지막 장면에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주된 활동공간인 종로 밤거리를 당당하게 걸으면서 화면에 나타난다. 이렇게 사는 건 즐겁다, 라고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 공표라도 하는 듯이. 또는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들에게 이곳에 오면 공동체가 있고 좋은 관계가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과 권유의 제스처를 남기려는 듯이.
그게 뭐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솔직히 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의심이 많고 회의적이며 공동체보다는 개별 인간들과의 몇몇 관계에나 집중하자는 쪽인 나같은 인간은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교류하면서 그렇게 활기차게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 화면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을 수도 있으나 화면
[김영진의 인디라마] 참 아름다운 공동체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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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 아니 윤제균 대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8월4일, 개봉을 오전에서 오후로 반나절 연기하는 초유의 사례를 낳았던 <7광구>가 개봉 5일 만에(8월9일 현재) 1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주간 흥행 1위를 기록했지만 동시에 인터넷상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반면 앞서 개봉한 <퀵>은 부지런한 뒷심을 발휘하며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모두가 2011년이 윤제균 대표와 JK필름이 <해운대>를 떨치고 일어서는 원년이 되리라 예상했다. 아직 그 목표와 성과에 대해 서둘러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난 몇달 사이 부쩍 초췌해 보이는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자신의 3년 만의 연출작 <템플스테이> 준비차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JK필름에서 그를 만났다.
-무척 피곤해 보인다.
=너무 마녀사냥식으로 악플들에 시달려서 이거 원. (웃음) 제대로 된 얘기를 해주시는 기자나 기사도 있지만 영화를 안 본 게 분명한 사람
[윤제균] 뭐라해도 앞만 보고 달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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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충분히 대중친화적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전세계 페스티벌을 흥분시키고 있다는 홍보문구는 허언이 아닐 듯하다. 그만한 멜로디가 있고 리듬이 있다. 하지만 이 음악이 새롭게 들리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보위와 에이펙스 트윈, 모타운의 솔이 뒤섞”였다고 하지만 이런 복고와 혼합 자체가 전혀 새롭지 않은 시대가 됐다. 그저 즐길 뿐.
이민희 /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유사 뮤지션을 이야기하자면 MGMT, 패션 피트, 엠파이어 오브 더 선 등등. 데뷔 시절 이들의 특징은 대단히 진지하기 이전에 가성으로 노래하면서 록과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즐거운 사운드를 선보였고, 그래서 평단과 재빠른 청중을 춤추게 했다는 것이다. 고민보다 생기와 여유가 느껴지는 작품이라 만족스럽고, 멜로디와 함께 비트까지 섬세하게 따라갈 수 있어서 유쾌하다.
최민우 / 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장 ★★★
좀더 차트 지향적으로 변한 MGMT? LA 출신의 3인조
[hottracks] 엉덩이가 살랑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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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좋다>
일정: 8월12일~10월14일
장소: 서울 홍은예술창작센터
문의: 02-304-9100
스트레스 푸는 데 춤만한 것도 없다. 몸치, 박치면 어떠랴. 리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다보면 몸속 노폐물은 물론이고 마음속 노폐물까지 쑥 빠져나간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 중인 서울시창작공간 세곳에서 각기 다른 춤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는 본격 커뮤니티 댄스 프로그램 <몸, 좋다>를 마련했다. 8월12일부터 두달 동안 이어지는 <몸, 좋다>는 초등학생, 성인여성, 55살 이상 장년층, 장애인 등 참여 대상에 따른 맞춤 댄스 수업을 진행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무용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과 협동이라는 사회성 발달을 꾀하게 하고, 55살 이상 장년층과 장애인에게는 밴드, 공 등 기구를 활용한 근골격 기능 향상 스트레칭을 가르치는 식이다. 조희경, 주정민, 권수임, 김선이 등 무용 분야 입주예술가들이 강사로 참여하며, 수업은
[아트인서울] 춤으로 말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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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2003년작 <지구를 지켜라!>는 편집증적 비평 방법(paranoid-critical method, 이하 PCM)을 바탕으로 서사의 골격을 세운다. 본래 PCM은 1920년대 살바도르 달리가 무의식적 자동기술법을 대체하기 위해 편집증의 병리적 증상에서 모티브를 따온 초현실주의의 창작 방법이다. 편집증 환자에게 개별적인 사건들은 우발적이거나 독립된 것이 아니라 정교한 인과 관계에 놓인 것이며, 따라서 단일한 원인으로 소급되는 가설의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다. PCM에 따르면 이때의 가설은 단순히 과대망상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밀도 높은 해석의 착란 상태다.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만으로 복잡한 세상사의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면 오히려 인과율을 극단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새로운 현실 개입의 전략도 유도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탓에 PCM은 과대망상의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색다르게 해석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
[design+] 사물들의 과대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