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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이 어떤 외화의 ‘더빙 연출’을 맡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잠깐 헷갈렸다. 외국에 나가 연출을 한다는 말도 아니고 외국 배우와 외국영화를 만든다는 말도 아니고, 그럼 무슨 뜻일까. 말 그대로다. 생소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가 9월 중 국내 개봉예정인 일본영화 <소중한 사람>의 더빙 연출을 했다. 작업을 끝낸 건 벌써 7월의 일이다. “사실은 몇몇 지인들이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고 그 재단에 내 이름도 올라갔다. 그런데 역시 그분들이 영화 한편을 수입했다며 더빙 연출을 맡아달라고 한 것이다.” <소중한 사람>은 치매 가족을 둔 사람들의 따뜻한 가족애를 다룬 영화다. 수입사가 “자막 읽기가 불편한 중, 노년 관객층을 위해 국내 개봉 외국 극영화로는 최초로 한국어 더빙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들어보니 좋은 취지여서 코꿰었다. (웃음)” 그런데 더빙 연출은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해서 물었다. “나도 극영화의 후시 녹음을 해본
[이 사람] 자막 읽기가 불편한 관객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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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러스하고 간결하고 더없이 진실된 이야기다.” 페마 체덴 감독의 <올드 독>이 제5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이하 CINDI)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양치기 개와 그 개를 기르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 <올드 독>은 국내외 디지털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감독들이 선정한 레드카멜레온상과 함께 그린카멜레온, 화이트카멜레온상을 수상했다. 국내외 비평가들이 심사하는 블루카멜레온상에는 산지와 푸시파쿠마라 감독의 <플라잉 피쉬>가 선정됐다. <플라잉 피쉬>는 스리랑카 내전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영화로 “스리랑카의 복잡하고 불안한 상황을 대담하게 그려 훌륭한 시각적 탁월함을 보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레드카멜레온 부문 심사위원들에게 ‘특별언급’되기도 했다.
CJ E&M 영화사업 부문과 차기작을 기획, 개발할 수 있는 버터플라이상 부문에서는 최진성 감독의 <이상, 한가역반응>, 양정호 감독의 <밀월도 가는 길&g
[국내뉴스] 티베트에서 날아온 <올드 독> 3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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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의 영화는 음악도 감각적이다. 주로 스코어와 삽입곡의 대비를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는데 <127시간>도 그랬다. 아론 랠스턴(제임스 프랑코)은 오른팔이 바위에 끼어 꼼짝 못한 채 127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영화의 전부다.
인상적인 건 그의 심리 변화다. 처음엔 어이없어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겁에 질린다. 그러다 침착하게 상황을 개선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가능한 시도가 죄다 실패하자, 좌절하고 포기한다. 이게 다 꿈이라면, 뭐 그런 쓸데없는 기대도 품는다. 삶의 모든 난관들, 가령 기말시험이나 화가 난 애인이나 대출금 상환일 혹은 원고마감 같은 고난에 대한 우리 마음과 똑같다. 천재지변에 바위가 스윽 밀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천만에, 팔이라도 자르지 않고선 도대체 여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
스릴 넘치면서도 몽환적인 스코어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A. R. 라흐만이 맡았다. 현실에는 스코어, 환상에는 사운드트랙으로 대비된 구성이 강렬하다. 영화의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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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다.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마야의 달력: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2012 신들의 귀환> <아포칼립스 2012: 최고의 시간과학자 마야가 예언한 문명 종말 보고서> <2012 아마겟돈인가, 제2의 에덴인가?: 고대마야와 현대과학이 밝힌 최고의 비전>.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심장이 요동을 치고 아드레날린이 좌뇌우뇌에서 아이슬란드 화산처럼 분출했다. 그러니까 이건 나의 오래고 격정적인 길티 플레저다. 종말론 말이다.
내가 종말론에 심취한 게 언제부터인가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 도서관에는 <세계의 불가사의>니 <1999년 지구 멸망>이니 하는 하드커버 전집들이 가득했다. 80년대의 폭압적인 한국사회에 지친 도서관 담당 선생이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니힐리즘을 전파하고자 그런 책들을 무려 초등학교 도서관에 비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전집
[타인의 취향] 종말론-마조히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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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 직함을 달았지만 일은 안 할 생각입니다. 저기 계신 강철만 회장님 낙하산이죠.” SBS <여인의 향기>의 재벌 3세 주인공 강지욱(이동욱)의 대사다. 재벌이라고 부를 만한 부의 규모를 가진 집단의 2세들은 대충 50줄이 넘었으니 드라마에도 이젠 3세 시대가 왔다. 재벌 2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에서는 자식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캐릭터의 매력에 경영권도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었다. 고난을 이겨낸 연인들의 해피엔딩인 ‘…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아마 그 회사도 행복하게 경영했겠지. 그리고 문제는 드라마 밖에서 벌어졌다. 경영권 세습은 상속세를 내고 아버지의 부를 물려주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세습한 2대 경영인의 무능이나 부패가 알려지면서 무능력한 자식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일이 구려도 보통 구린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트렌디 드라마는 유행뿐만 아니라 시대의 정서도 민감하게 포착해서 반영한다. 재벌 2세들의 무능이나 부패를
[유선주의 TVIEW] 나 무능하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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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미술관 앞의 나무. 시각에도 관성이 있나보다. 그림을 구경하다 나온 눈은 무심코 나무한테서도 태도와 표정을 찾는다. 줄기가 잎을 지탱하는지 잎이 줄기를 버티고 있는지 분별할 수 없다. 쓰기 위해 생활하는지 생활하기 위해 쓰는지 흐릿한 날이 있는 것처럼.
8월9일
유인원이 혁명에 성공한 미래가 왔다고 치자. A.A.(After Ape) 100년경 출생한 영화사 연구자 찰튼 시저 3세는 시네마테크에서 2011년 여름의 사료를 뒤적이며 “호모 사피엔스가 자랑하던 할리우드의 창의력은 이즈음 고갈의 징후를 보였다”고 결론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부심어린 한줄의 메모를 덧붙일 수도 있겠다. “단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개중 돋보였다.” 확정된 시작도 끝도 없는, 즉, 총체적 설계가 유예된 프리퀄과 속편으로 포화 상태를 이룬 2011년 할리우드를 보면 적어도 주류 오락영화에서는 브랜드와 코드가 마침내 창작자(auteur)를 대체한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블록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어쩌면 인간의 진보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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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수를 제작하는 국가, 영화 관객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세계에서 티켓 값이 가장 싼 나라 중 하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튜디오(라모지필름시티)를 보유한 나라. 인도영화를 이야기할 때 ‘규모’는 빠지지 않는다. 이미 50년대 이후부터 서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인도에서와 다름없는 인기를 구가해왔지만 인기의 중심에 있는 이른바 발리우드영화는 세계로부터 B급영화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칸, 베를린, 베니스 등 메이저급 국제영화제에서 인도의 대작영화들을 소개하고 인도의 최고 스타들을 초청하면서 발리우드영화의 위상은 격상되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인도의 거대자본이 속속 발리우드에 합류하면서 할리우드와의 제휴는 물론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거대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추진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도영화의 이러한 화려한 비상에는 그림자도 있다. 이른바 ‘작가영화’나 ‘예술영화’의 존재 자체가 미미해져버린 것이다. ‘인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인도의 새로운 미학적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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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알고 지냈던 지인을 베를린에서 만났다. 그녀는 내게 어느 민족종교의 경전을 내민다. 안 받겠다고 한사코 사양해도, 자꾸 내밀며 “그냥 읽어보기만 하라”고 강권한다. 이미 만나자고 할 때부터 그녀의 목적은 전도에 있었던 모양이다. 2년 뒤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느니, 내년에 다시 천연두가 부활할 것이라느니, 계속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기에 앞으로 다시 만나지 말자며 연을 끊어버렸다. 그 정도면 이미 정상적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이런 상태에 빠진 사람들과 ‘논리적’ 대화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논리를 초월한 ‘믿음’을 통해서만 특정한(물론 더 고차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을 ‘신앙주의’라 부른다. 물론 신앙주의가 곧 광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주의는 사실 종교적 심성의 문제이고, 광신은 그 심성을 이성과 어떻게 조합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신은 그저 신앙주의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의 아이콘] 눈에 보이는 아무 증거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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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The Thing
존 카펜터가 연출한 걸작 <괴물>(1982)의 프리퀄. 원래 리메이크로 기획됐으나 “이미 완벽한 오리지널을 다시 만드는 건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는 것과 같다”고 느낀 제작자들이 프리퀄로 만들었다. 오리지널의 주인공들이 노르웨이 캠프에 도달하기 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헤치는 영화다. 전편의 주인공인 커트 러셀이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할 거라는 소문도 있다. 올해 10월14일 미국 개봉예정.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우리는 이미 슈퍼맨의 역사를 알고 있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았단 말인가. 워너브러더스와 잭 스나이더는 아직 할 말이 있다고 여긴 모양이다. 이게 리부트인 건 분명한데 프리퀄이 맞는가? 아직 확신할 순 없다만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이야기이며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앤 레인이 클라크의 부모로 캐스팅됐다. 뭔가 새로운 탄생신화를 열어젖힐
개봉예정이거나 현재 제작, 기획 중인 블록버스터 프리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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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훌륭한(혹은 가장 훌륭한 꼼수를 부린) 프리퀄 10편을 뽑았다. 현대적인 프리퀄의 시대가 개막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다. 아직도 <석양의 무법자>와 <대부2>를 프리퀄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만 이 리스트에서 빼버리는 건 걸작과 프리퀄의 기원에 대한 모독 아니겠는가.
1. <대부2>(1974)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속편이자 전편을 능가하는 드문 속편인 동시에, 아마도 가장 훌륭한 프리퀄이다. 사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대부2>를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프리퀄이라고 할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편의 과거로 회귀한 뒤 오히려 전편의 텍스트를 더욱 풍요롭게 일구어낸 코폴라의 솜씨는 지금 프리퀄을 만드는 모든 감독들이 모범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2.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시리즈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방법은? 역시 프리퀄이다. 하지만 J.
걸작은 두번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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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쁜 프리퀄의 몇 가지 법칙을 정리해보자.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좋은 프리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엑스맨 탄생: 울버린>), 관객이 이미 모든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프리퀄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스타워즈> 프리퀄), 무엇보다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악당 캐릭터의 과거는 아예 건드리지도 말지어다(<한니발 라이징>과 롭 좀비의 <할로윈>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프리퀄일수록 더 훌륭한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법칙도 있을 것이다. <스타워즈> <엑스맨 탄생: 울버린> <한니발 라이징>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의 감독과 오리지널 시리즈의 감독을 생각해보라. <스타워즈> 프리퀄은 예외가 아니냐고? 이 경우에는 ‘더 좋은 각본가를 영입하라’라는 또 다른 법칙을 만들 수 있다. 오리지널 시리즈와 달리 <스타워즈> 프리퀄의 시나리오는 모두 조지 루카스가
좋은 프리퀄과 나쁜 프리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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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먼저 던질 만한 질문이 있다. 지금 할리우드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프리퀄 시대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2>를 (아마도 우리가 인식하는) 최초의 프리퀄로 역사 속에서 끌어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폴라는 젊은 비토 콜레오네가 마피아로 성장하는 과거와 마이클 콜레오네의 현재를 교차 편집하며 <대부2>를 이끌어간다. 전편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이 걸작은 속편인 동시에 프리퀄이다. 블록버스터 시대가 개막한 80년대 가장 주목할 만한 프리퀄은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인디아나 존스2>)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작자 조지 루카스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배경을 피하기 위해 전편으로부터 1년 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인디아나 존스2>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2>와 <인디아나 존스2>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프리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부2> 프리퀄의 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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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할리우드의 미래다. 새로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개봉을 앞두고 우리는 10년 전이라면 생각지도 않았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주인공들의 과거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프리퀄(Prequel)의 시대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 속편의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프리퀄은 할리우드의 진화인가, 아니면 잠시 유행하고 지나갈 할리우드의 꼼수에 불과한 것일까.
어떻게 할리우드는 속편을 포기하고 프리퀄의 시대를 사랑하게 됐는가. 2011년 여름은 프리퀄의 전성기라고 불릴 만하다. <엑스맨> 시리즈의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아찔하게 여름을 열어젖혔고, 고전 시리즈를 리부트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여름을 근사하게 닫는 중이다. 이쯤 되면 프리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세 이 낯선 단어의 용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프리퀄은 속편을 의미하는 시퀄
블록버스터: 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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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짜 내과의사 아냐? <사고친 후에>
켄 정이 주드 애파토우와 만난 역사적인 순간이다. 원래 직업이 의사라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한 것일까, <사고친 후에>에서 탯줄이 목에 감긴 세스 로건과 캐서린 헤이글의 아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그를 보고 누구건 간에 실제 의사를 캐스팅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 켄 정의 아내는 그에게 배우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단다.
2.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롤 모델즈>
켄 정의 아내는 <트랜스포머>나 <행오버> 시리즈 외에 좋아하는 작품으로 <롤 모델즈>를 꼽았다. <사고친 후에>에 의사로 출연한 남편을 보고 감격해 계속 배우의 꿈을 꾸길 권했던 아내가 볼 때, 남편이 처음으로 ‘단역 그 이상’으로 출연한 작품이 바로 <롤 모델즈>이기 때문. 영화에서 중세시대 놀이에 빠진 주인공들의 상대편이자, 리더인 아고트론 왕으로 나와 죽어도 죽
켄 정 최고의 순간 베스트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