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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미국 TV시리즈들은 특별 편성된 프로그램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휴방과 재방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 맞춰 드라마들은 한 시즌을 종료하기도 하는데, 2011년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두편이 최근 첫 시즌의 막을 내렸다. 한편은 <씨네21> 827호 ‘미드의 역습’에 소개된 <홈랜드>(<쇼타임>)이고, 다른 한편은 이번에 소개하려는 <보스>(<스타즈>)다. 두 드라마 모두 고른 호평과 시청률을 기록해 2012년 시즌2 방영을 예정한 상태다.
<보스>는 <스파르타쿠스> 시리즈와 <카멜롯> 등의 오리지널 TV시리즈를 제작한 케이블 채널 <스타즈>에서 기획한 야심작으로, <스타즈>를 <HBO> <쇼타임> <FX> <AMC> 등의 케이블 채널들의 경쟁자로 급부상시킨 주역이다. 파일럿은 시카고시의 시장인 톰 케인(켈시 그래머)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추락할 권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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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대정원이 사유 재산이던 18세기 유럽 귀족에겐 조망권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로 가옥들이 밀집된 현대적 주거 조건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거머쥔 실력자라 한들 인접 건물의 부피와 각도에 따라 전망의 일부는 쉽게 훼손되기 십상이다. 조망권 확보를 위해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이유다. 대기업 오너간 소송까지 연결된 조망권 다툼은 한쪽이 다른 쪽 집을 구입해버림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림에서 인물의 크기를 작게 그리는 대신 배경에 넉넉한 여백을 배당한 흔치 않은 풍경화도 있다. 인물보다 그의 소유 부동산을 과시할 목적에서다. 전망의 확보를 드러내는 건 그 소유자의 능력과 지위를 증명하는 방편이다. 오늘날 관광지 중에는 한 시절 군사시설이던 곳이 많다. 경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높게 쌓아올린 성채나 요새의 넓은 시야가 우연히 현 시대 관광객의 조망 욕구와 맞닿기 때문이다.
조망권은 유려한 자연 경관을 바라볼 권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지만, 인류의 욕망은 자연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풍경과 조망의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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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란 무엇보다 시각예술이며, 따라서 제작의 측면에서나 감상 및 비평의 측면에서 최우선으로 강조해야 할 것은 이미지라고 하는 믿음은, 유성영화가 도래한지 80년이 넘은데다 미디어간 간섭에 의해 영화의 ‘순수성’이 점점 의문에 부쳐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미장센 비평(및 그와 결부된 시네필리아)에 토대를 부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동시대 영화의 상당수가 미장센에 입각해서만 바라보면 어쩐지 무언가 미끄러져 달아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 덜 ‘영화적’으로 비치거나(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 심지어 공허해 보이기까지(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쉬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장센 개념을 폐기하고 창작의 애티튜드만을 강조하거나 영화와 인접한 예술의 영향을 추적하며 비교에 매달리는 것은 게으른 이들의 방편일 뿐일 터, 오히려 이
[유운성의 시네마 나우] 시네필리아의 가능성 (다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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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에서 정명훈은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 <환희의 송가> 앞부분과 독창이 등장하는 부분을 짜깁기해서 지휘를 했다. (…) 정명훈은 음악을 지휘하던 지휘봉을 이명박에게 활짝 웃음 띤 얼굴로 선물한다. 이튿날 대형 기득권 보수참칭(僭稱) 종이신문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을 잘 지휘하라는 의미로 지휘봉을 준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명박의 부역자
김상수라는 이름의 연출가가 여러 진보매체를 오가며 집요하게 지휘자 정명훈을 물고 늘어졌다. 정명훈은 세계적 지휘자가 아닌데 과도한 연봉을 받았다는 것이다. 무지로 점철된 그의 글은 이미 여러 클래식 애호가들의 반박을 받아 한갓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으니, 그 얘기를 굳이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가 정명훈을 물고 늘어지던 그 ‘정치적’ 방식의 고약함에 대한 지적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치 독일 치하에서 히틀러의 생일 전야제 공연으
[진중권의 아이콘] 자유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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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9일 CGV압구정에서, 무비꼴라쥬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씨네톡 행사를 진행하는 평론가들이 모두 모여 대담하는 행사가 있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인 남인영 동서대 교수가 가장 힘을 줘 절찬한 영화가 최근 개봉한 <Jam Docu 강정>이었다. 옆에서 그의 얘기를 듣다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여덟명의 감독이 100일 동안 각자의 컨셉으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형식이 전혀 다른 여덟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평이한 것도 있고 색다른 것도 있지만 모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편에 서서 찍은 것이다.
참신한 시도 돋보이는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
볼 때는 쓸데없는 장난처럼 보였던 작품인데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인적으로 최진성이 연출한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이었다. 항공모함에 타고 싶어서 해군에 자원입대했다는
[김영진의 인디라마] 타인의 고통 껴안으려는 자세 존경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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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의 무책임한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분노하거나 울지 않고 어느덧 자기들끼리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큰아들의 제사를 위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모의 집에 모인다. 함께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들의 마음은 엇갈리며, 실은 서로 다른 기억을 쳐다보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영화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해두지 않는다. 감정적인 해소 이후의 화해나 결속은 불가능하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 삶은 언제나 이별 혹은 죽음을 품고 있고,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는 (가족의) 현실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코이치, 류노스케 형제와 이들의 친구, 가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후<기적>)의 세계도 위의 두 영화
[전영객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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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민지 조선인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전쟁을 경험하며 만주와 소련, 유럽의 노르망디를 경유한다. 대단한 우연이지만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난다. 한장의 사진과 몇줄의 소략한 기록을 토대로 제작된 <노르망디의 조선인>(2005)이라는 SBS 다큐멘터리는 만주와 모스크바, 노르망디를 경유한 조선인의 전쟁 여정을 다룬 바 있다. 문제는 한명이 경험하기에도 기구한 우연이 두명에게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에 있다. 식민지 조선 청년과 제국 일본 청년. 이 둘은 마라토너이자 라이벌이다. 일본 청년에게 마라톤이란 그의 조국 일본이 치르는 성전(聖戰)의 등가물이다. 그는 전쟁을 등지고 유학하기보다는 마라토너로서 남기를 바란다. 그에게 질주란 전쟁에의 몰두다. 하지만 조선 청년에게 마라톤이란 무엇이었으며, 그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이 점이 영화가 분명하게 질문하지 않은 점이다. 이 미진함은 영화의 끝까지 이어진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보다 퇴보한 준식
영화는 194
[영화읽기] ‘왜’를 묻지 않는 소박함, 초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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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리소설을 각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명탐정이라는 인물들이 얼마나 정적인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도 않고 육체적 액션도 많지 않다. 작가의 인기만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당하기 일쑤다. 셜록 홈스 영화가 그렇게 많은 건 그가 보통 명탐정들보다 훨씬 육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심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 각색 영화들 중 성공한 작품들을 보라.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처럼 탐정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 아마 예외가 있다면 토미와 터펜스 정도? 하긴 가장 먼저 각색된 크리스티 소설도 이들의 출연작이었다.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 드루리 레인도 각색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온 엘러리 퀸 영화들 중 한편이라도 아는 게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살리려면 영화보다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게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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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는 100년의 영화사를 통과하며 드라마나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수없이 각색됐다. 홈스의 외양이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1929 <셜록 홈스의 귀환>(The Return of Sherlock Holmes)
홈스 역 클라이브 브 룩
1939 <셜록 홈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
홈스 역 바질 래스본
1959 <바스커빌가의 개>(Hound of the Baskervilles)
홈스 역 피터 쿠싱
1970 <셜록 홈스의 미공개 파일>(The Private Life of Sherlock Holmes)
홈스 역 로버트 스티븐스
1976 <명탐정 등장>(The Seven-Per-Cent Solution)
홈스 역 니콜 윌리엄슨
1984 <명탐정 번개>(名探偵ホㅡムズ)
1985 <피라미드의 공포>(Young Sherloc
사진으로 보는 홈스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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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황금가지 펴냄)은 문학계에서 찾아온 홈스 메이크오버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홈스 시리즈의 외전이 존재한다. 이 책이 조금 특별해 보이는 건 ‘아서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적으로 선정한 작가 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책이라는 사실 덕분이다. 후손들이 공식적으로 선정했든 아니든 좋은 외전은 좋은 외전이고 나쁜 외전은 나쁜 외전이다. 다만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좋은 홈스 소설’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는 앤서니 호로비츠의 소설이 마치 코난 도일이 쓴 것처럼 원전 시리즈의 문체와 에센스를 거의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왓슨 박사의 서문과 함께 시작된다. “여기서 공개하려는 사건이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라 출간할 수가 없었다.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금고에 넣어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된다는 지시 사항도 첨부할
사건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드는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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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 메이크오버의 시작은 2009년 개봉한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였다. 물론 셜록 홈스 시리즈의 변용은 <셜록 홈즈>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코난 도일이 활발하게 시리즈를 내놓던 1892년에 역사상 최초의 모작(模作) <페그람의 수수께끼>가 나왔으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나온 모작을 모두 거론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코난 도일의 가장 위대한 후배 중 한명인 엘러리 퀸 역시 모작들을 수록한 <셜록 홈스 앤솔로지>를 펴낸 바 있다. 가이 리치의 영화에서 홈스와 왓슨의 아슬아슬한 성적 긴장감이 영 거슬렸던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인터넷에 가서 검색해보시라. 홈스와 왓슨을 본격적인 동성애 커플로 만들어버린 모작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깜짝 놀라게 될 거다.
사실 가이 리치의 홈스 시리즈는 그리 나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이게 쓸모있는 비교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이클 베이가 최근에 내놓은 블록버스터 시나리오와 비교하
더 과감해진 현대의 셜록 홈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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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베이커가 221번지 B호의 프록코트를 입은 명탐정이 21세기에 컴백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두 번째 홈스 영화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의 개봉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아예 무대를 현재로 옮겨버린 영국 <BBC>의 미니시리즈 <셜록> 시즌2가 방영을 시작했고, 코난 도일 재단의 인증을 받은 홈스 소설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출간됐다. 물론 홈스는 지난 100여년간 한번도 팝문화와 랑데부를 멈춘 적이 없는 역사적 아이콘이다. 컴백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2012년의 컴백은 뭔가 조금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홈스 익스트림 메이크오버(Makeover)’라고 부를 만도 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오덕들이 있다. <스타트렉>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트레키(Trekkie)라고 부른다. 몇년 전만 해도 트레키는 한낱 우주 사이파이물에 인생을 바치는 오덕들을 경멸스럽게 부르는 단어였
홈스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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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은 누구인가?
1954년 8월15일에 태어난 스티그 라르손은 반나치 공산주의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 일찍부터 정치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극우주의에 대한 그의 저항심은 1977년 그가 스웨덴의 대형 통신사에서 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1980년대의 스웨덴은 특히 인종주의적 살인이 빈번했던 시기여서 기자들 사이에서 스티그의 극우파에 대한 정보력은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그는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위를 주지 않자 1999년, 스티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1995년에 자신이 창간한 ‘엑스포’에 헌신하기로 한다. 엑스포는 그가 1982년부터 통신원으로 있었던 영국의 반파시즘 월간지 <서치라이트>를 사례로 삼아 설립한 신문사였다. 앞서 1991년에도 안나레나 로데니우스와 함께 <극우파>라는 책도 냈던 그는 평생 극우파들의 테러 협박에 시달렸다.
스티그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밀레니엄>
[밀레니엄] 2편도 핀처가 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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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에서 먼저 영화로 완성됐고 뒤이어 할리우드에서도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스웨덴 버전과 미국 버전이 한주를 사이에 두고 개봉했다.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해보자. 1번은 스웨덴 감독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연출작 <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번은 미국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작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3번은 기타 내용.
상영 정보
1. 인터내셔널 버전 152분. 스웨덴 확장판은 180분.
2. 158분. 첫 번째 최종 완성본은 187분(“관객이 지루해할 만한 장면을 삭제했다.”-데이비드 핀처)
원작과의 관계
1. 다소 소박한 규모. 사회드라마의 정서 유지.
2.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규모. 사회적 배경보다 스릴러물로서의 장르적 성격에 치중.
3. 신의 진행 순서는 두 작품 모두 매우 유사. 원작에서 취하거나 제외하는 일화들도 상당수 겹침. 예컨대 원작에서 헨리크 방
[밀레니엄] 비교! 스웨덴판 vs 미국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