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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몹시 덥고 습해 친구가 아닌 사람들도 노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맥주를 들이켜는 어느여름밤이었다. “저한텐 이상한 일이 굉장히 많이 생겨요. 낮에 본 영화 배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퇴근길 서점에서 집어 든 책 뒷표지에 들어가 있다거나, 같은 음악을 이틀에 네 번이나 다른 편곡으로 듣게 된다거나, 무작위로 읽은 소설 두 권의 작가가 생일이 같다거나 그런 신기한 일이 믿을 수 없이 자주 일어나요. 무슨 별자리처럼 막 연결되면서….” 나는 손으로 허공을 휘적거리며 늘어놓았다. 남들 앞에서 처음 떠벌리는 얘기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땅콩을 씹으며 고개를 까닥하곤 한 귀로 흘리곤 했다.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대꾸해준 사람은 홍상수 감독님이 처음이었다. “전혀 이상한 게 아니죠. 우연은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걸 보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것뿐이에요.” 취한 나는 감독님의 짤막한 코멘트가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열쇠인지 당장은 충분히 알아차리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우연은 가까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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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은 음악 바깥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시선은 음악의 내부를 향한다. “음악을 믿나요?”란 질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제까지 잘 몰랐던, 혹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질문을 스트레이트로 던진다. 세계적인 기타 제조사인 콜트/콜텍은 메이저의 OEM으로도 유명하다. 100억원 이상의 연간 순이익을 남긴 이 회사의 박용호 사장은 국내 부자 중 120위다. 하지만 그 이면에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사기에 가까운 계약 위반이 있었음은 아무도 몰랐다. <꿈의 공장>은 음악이라는 영토에서 이런 사실을 캐낸다.
제대로 사는 건, 요컨대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고 그에 일조하지 않고 사는 건 힘들다. 하여 ‘윤리적인 소비’는 피곤하다. 돈도 더 든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면 훨씬 곤란해진다. 윤리가 ‘사람’에 대한 문제라서 그렇다. 돈과 경제지표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는 더 피곤해져야 한다. <꿈의 공장>은 바로 그걸 이야기한다.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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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친구네 집에 모여서 봤던 내 인생 최초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더티 댄싱> 때문이다(지금 보면 대체 왜 청소년 관람불가인지 이해 불가다). 그땐 주인공들의 춤이 살사나 차차차의 변형임을 알지 못한 채, 어떻게 인간이 저런 동작을 취할 수 있는가만 궁금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바즈 루어만 감독의 <댄싱 히어로>를 봤다. 황금색 재킷을 입은 주인공 스캇이 무도회장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미끄러져 나오는 클라이맥스에서 소리를 꺅 질러버렸다. 한동안 스캇을 연기한 폴 머큐리오를 만나러 호주로 유학가겠다는 얘기를 헛소리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춤을 실제로 배운 건 2004년부터다. 스윙댄스 동호회와 살사댄스 동호회에 가입하여 각각 4개월씩 무용 슈즈가 닳도록 연습했다. 어떤 면에서 춤은, 그러니까 ‘막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춤’을 배운다는 건 거의 막노동에 가까울 만큼
[타인의 취향] 끊을 수 없는 발레의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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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시저와 매그니토의 공통점
[올드독의 영화노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시저와 매그니토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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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안에 맞추어 순서 편집이 다 되었나요? 그럼 이제 윈도 무비메이커에 있는 효과 기능을 활용해서 영화를 보다 멋지게 만들어봅시다. 윈도 무비메이커 왼쪽에 있는 메뉴에는 ‘2. 동영상 편집’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 항목 아래에 있는 ‘비디오 효과’, ‘비디오 전환’, ‘제목 또는 제작진 만들기’를 통해 영화에 효과를 넣고 자막을 삽입할 수 있어요.
1. 비디오 효과 넣기
‘비디오 효과’는 편집을 하고 있는 클립 하나 하나에 효과를 넣어 화면을 꾸며주는 기능입니다. 메뉴에서 ‘비디오 효과 보기’를 클릭하면 가운데 모음창에 다양한 효과들이 보입니다. 화면을 회전시키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할 수도 있고, 한 클립의 속도를 빠르거나 느리게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필름 입자 같은 효과를 내거나 화면을 수채화 그림처럼 만들어주기도 하죠. 모음창에서 각 효과를 더블 클릭하면 오른쪽 재생창을 통해 미리보기를 할 수 있습니다.
효과를 넣는 방법은 정말 간단해요. 어떤 효과를 넣을 것인지
[영상공작소] 영화다운 영화를 만드는 편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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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0억원을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대교를 폭파하겠다.’ 테러리스트의 범죄 예고 시한이 10분 남은 상태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소집된다. KBS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비상대책위원회’는 고위 공직자들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어떤 궤변을 늘어놓는지를 풍자한다. 경찰청장으로 짐작되는 비대위 본부장 김원효는 늘 “야 안돼애~”부터 시작해서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오만 핑계를 들어가며 타박을 놓고, 군인인 소장 김준현은 “지금부턴 내 지시에 따른다!”고 소리치더니 결국 “이거 예전이랑 다르네. 안돼, 사람 불러야 되겠네”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급기야 2분 남기고 나타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앞두고 5초 남은 시간을 쪼개 얼굴에 미스트를 뿌린다. 오랜만에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었네.
그런데 이 사람들 설정은 고위 공직자인데 가만 보면 평범한 중년 아저씨의 디테일을 갖고 있다. 당장 다리를 통제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김원효는 통제에 관련된 청장이며 장관들, 불편에 항의하는
[유선주의 TVIEW] 너무 뻔해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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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스터 모노레일>이라는 장편소설을 발간하고,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 가게 됐다. 그냥 가서 만나기만 하면 되는 건데, 어쩐지 어색하고, 내 책을 본 사람들을 만나는 게 뻘쭘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학 얘기 하게 될까봐 민망해서 뭔가 준비를 하기로 했다. 뭐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특별한 파일을 만들어보고 싶어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소설의 문장들을 여러 사람이 읽은 다음 그걸 하나로 합치는 거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른지,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들려주고 싶었다.
15일 동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녹음을 부탁했다. 모두 흔쾌히 응해주었다. 재미있어했고, 신나게 녹음해주었다.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 녹음을 끝마친 뒤 편집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이렇게 당황스러울 데가 있나. 몇 개의 목소리 주인을 모르겠는 거다. 아무리 들어봐도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흘러나오는 음악에다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경계를 두지 않는, 무심한 목소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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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자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국가로 한국, 일본, 인도가 손꼽히지만 인도네시아가 5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있다. 공포영화나 멜로드라마, 섹시코미디 등은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반면에 지난 몇 년간 작가영화는 침체기를 겪었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거장감독 가린 누그르호는 무대극 연출에 집중하고 있고, 리리 리자나 난 아크나스 등도 지난 2, 3년간 신작이 없었다. 젊은 감독 중에서는 데뷔작으로 주목 받았던 <날고 싶은 눈먼 돼지>(2009)의 에드윈이 신작을 준비 중이고, 조코 안와르와 루디 소자르워는 주로 상업영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올해 인도네시아영화는 뛰어난 신인감독의 대거 등장과 독립영화 제작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뛰어난 시나리오작가로 인정받는 살만 아리스토가 자카르타의 일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낸 <자카르타 마그립>, 퀴어시네마의 새로운 장을 연 테디 소리앗마자의 <사랑스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인도네시아에서 탄생한 놀라운 여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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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신체는 전쟁터다.” 미국의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는 그 유명한 작품을 통해 신체의 정치학을 부각시킨 바 있다. 원래 이 작품은 여성의 출산선택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캠페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크루거의 작품들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맴도는 듯하다. 신체의 정치성(“당신의 신체는 전쟁터다”), 응시의 권력(“당신의 응시가 내 옆얼굴을 때린다”), 상품시장의 논리(“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그대로 미용성형에 관한 담론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미레이유 수잔 프랑세트 포르트는 세간에 ‘오를랑’(Orlan)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녀가 ‘성 오를랑의 환생’이라는 제목으로 실행한 엽기적(?) 퍼포먼스 덕분이다. 그녀는 1990년부터 창작의 일환으로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미용성형 수술을 받았으며, 그때마다 자신의 수술장면을 촬영하여 세계의 유수 갤러리에서 공개했다. 마취 상태에서도 맨 정신
[진중권의 아이콘] 성형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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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모 영화감독에게서 제주도 출신의 감독이 만든 희한한 영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평론가로서 그런 영화를 챙겨보는 것은 의무라고, 만듦새에 상관없이 심금을 울리는 영화라고 그는 열변을 토했다. 그러겠노라고 답해놓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잊어버렸다. 얼마 전 오멸 감독의 <뽕똘>을 보는데 그가 얘기했던 감독의 영화라는 걸 직감했다. 그가 말한 영화는 오멸의 첫 장편 <어이그, 저 귓것>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말한 오멸 영화의 장점이 <뽕똘>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이그, 저 귓것>을 보지 못했으나 전해주는 정서는 비슷할 거라고 예상한다. 종래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감성, 제주도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경험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에게 이입되는 것이 <뽕똘>의 매력이다.
낯선 공간, 낯선 캐릭터가 주는 충격
영화 초반부터 그런 건 아니다. 초반 약 20분간 이건 도대체 뭐 하자는 영화인가, 라는 의문이 뇌리에 맴돈
[김영진의 인디라마] 내부자의 절실함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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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유인원 시저를 사랑하게 되었나. 많은 필자들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혹성탈출>의 감흥을 이 물음에서 찾았다. 인간과 동물, 배우와 CG 사이 그 어딘가에서 감정의 진폭을 만들어내는 이 존재는 ‘스펙터클’ 앞에 ‘섬세한’이라는 수사가 붙는 순간의 영화적 울림을 증명해 보인다. 수많은 영화들이 인간적이나 인간은 아닌 것, 그러니까 실은 그 미묘한 차이가 자아내는 외설적 쾌감을 호기심으로 넘보았지만 <혹성탈출>에서만은 그 차이를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차이에는 ‘인간적’이라고 믿어져왔으나 더 이상 인간에게는 없는 것, 미개함이 아닌 정신적, 육체적 우월함이 있다. 이 진실하고 정의로운 존재의 핵심이 앤디 서키스이건 퍼포먼스 캡처이건 시저라는 캐릭터의 성정이건 간에 이와 관련된 진중한 논의들은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그러니 영화의 논점에서는 다소 벗어난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좀 엉뚱한 질문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전영객잔] 그 사랑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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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작가도 완전한 무에서 작품을 창조해내지는 못한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텍스트는 분명히 이전에 존재한 어떤 텍스트에 기대어 서 있다. 그러니 기시감을 느낀단 것이 영화 감상에 해가 되는 조건은 아닐 것이다. 영화 <푸른 소금>을 보는 동안 스쳐 지난 무수한 편린들 그리고 결국 남은 것들, 지금 나는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있고,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보일 정도의 나이 차가 난다. 그렇지만 둘은 등장하자마자 연인의 뉘앙스로 서로에게 다가가기에, 그들의 관계는 어색할 틈조차 없이 남녀 사이가 된다. 이어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여자가 남자를 감시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이렇게 영화는 ‘표적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킬러’에 대한 이야기로 급변한다. 하지만 이 빠른 전개는 이내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송강호가 연기한 ‘두헌’이 갑작스런 사랑 탓에 원래의 목표를 포기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두 남녀가 사랑을 통해 구
[영화읽기] 팝콘 같은 사랑을 원한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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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소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를 기다려왔다. 신세경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순간부터 말이다. 한국 TV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 악명 높은 명장면을 마지막으로, 신세경은 잠시 멈췄다. 유상헌 감독의 <어쿠스틱>(2010)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신세경은 모습을 숨기는 듯했다. 물론 그녀의 시간이 정말로 멈췄던 건 아니다. 신세경은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현승 감독의 11년 만의 복귀작 <푸른 소금>을 찍고 있었다.
<푸른 소금>의 신세경은 여전사다. 일단 외양은 그렇다.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진하게 장식한 눈매, 면도칼로 슥슥 잘라낸 듯한 머리카락, 세상의 모든 총알도 막아낼 것처럼 단단한 가죽 재킷, 항상 타고 다니는 제 몸집의 세배는 될 것 같은 오토바이, 전직 사격 선수이자 현직 암살자. 우리가 당연히 기대하는 것은 작은 몸집으로 바이크를 몰고 뛰어다니며 장총으로 정확하게 타
[신세경] 멈추었던 여배우의 시간이 다시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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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금>의 송강호는 경계에 서 있는 남자다. 자신을 미행하는 괴한들을 공격하기 위해 순식간에 소주병을 맞부딪혀 깨트리는 짐승 같은 본능,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소년 같은 심성이 한 몸에 있다. 힘든 세상사에 지친 그는 계속 그 고향집에 머무르고 싶지만 옛 조직의 동료들은 자꾸만 그의 옷소매를 붙든다. 고향 동네에 조그만 식당이라도 하나 차려 조용히 살고 싶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의 몸에서 결코 피 냄새가 지워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두헌’ 자신도 그것을 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육체에 새겨진 본능과 기질은 결코 육체라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방파제 난간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먼 바다만 본다. 그곳에 있으면 뭐가 보여서 보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본다. 그렇게 그는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송강호] 능란한 절제미, 그 연기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