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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은 미혼의 남자가 경성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소설을 잘 쓰기로 다짐하며 새벽 2시에 귀가한다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얘기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지대하여, 그 뒤로 적어도 두명 이상의 문인이 그의 모티브를 차용한 것으로 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의 인물 ‘구보씨’는 보들레르가 거의 현대성(modernity)의 상징으로 여겼던 만보객(flaneur)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파리와 경성의 만보객
이 작품이 만보객에 주목한 베냐민의 보들레르 연구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거의 동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 문단에서 수입한 보들레르의 얘기를 동경에서 접한 조선의 한 유학생이 이를 식민지 조선의 현대화를 기술하는 프레임으로 재도입한 것이리라. 스위스의 작가 로버트 발저가 최초의 만보객 문학(<산책>)을 발표한 게 1917년임을 고려할 때, 식민지 조선의 문학이 차라
[진중권의 아이콘] 포스트 만보객을 근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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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가 무성영화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그 시절을 재현하는 영화라는 말은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완전한 무성영화가 아니며, 무성영화의 형식적 요소를 차용하여 영화사의 한순간을 해제(解題)하는 알레고리 텍스트로서 흥미를 자아낸다. <아티스트>는 한 무성영화 스타의 흥망의 자취를 따라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영화사(史)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에 ‘액션’과 ‘사운드’라는 영화언어가 대립하고, 갈등하며,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따라서 그것은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등장한 희귀한 무성영화도, 역사를 되살리는 재연드라마도 아니며, 영화에 소리가 없었던 시절로부터 소리가 영화와 융합하는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공한다.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이 무성에서 유성으로의 이행기를 풀이하는 키워드는 ‘장르의 통합’이라는 관점이다.
영화사적 전환기에 대한 알레고리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기인 1
[정영객잔] 무성의 형식은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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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수영과 산책, 침대에서 혼자 눈뜨는 아침. 작전이 실패하자 요원 스마일리는 은퇴했다. 영화는 이 진부하고 고독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영국 첩보국은 민활하기보다 부패와 반응지체 속에 침체되어 있다. 아마도 금세기 들어 가장 격조 있는 스타일을 보여주었을 오프닝에서 첩보국의 서류함이 서서히 올라가듯, 리프트가 참을 수 없이 느리게 내려가듯 그렇게. 영화는 존 르 카레의 1974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야기는 원작보다 10년 정도 뒤인 1970년대 중반의 런던을 배경으로 정보국 내 이중스파이를 색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금속 피로’ 속에서 오래 지속된 냉전은 첩보전의 언저리에 모호한 모럴의 인플레를 만들어놓았다. 영화는 이 침전물을 헤집어낸다. 이 침전물들은 노련한 자의 회고록 문체처럼 낡은 질서와 늙은 유럽에 대한 향수 어린 수사적 은폐 속에 쌓여 있다.
긴장, 의심, 공포, 그들은 피로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영국·프랑스 합작의 첩보영화로 &
[영화읽기] 모럴의 인플레를 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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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_사람들이 내게 분노를 기대했지만 막상 나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는 타블로씨 말이 감동이네요. 감히 제 사연과 얽으려는 건 아니지만 저도 <무릎팍 도사> 나가서 과거 이야기를 할 때 모나게 굴지 않았던 건 그 모습이 좋아 보일 것 같아서가 아니라 진짜 제 상태가 그래서였거든요. 그런 성격의 DNA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요. 하지만 진정으로 관심 없는 사람들은 본인이 겪은 일이 아니니 알 길이 없는 거죠. 시련이라 불리는 어떤 경험도 어설프게 빗맞으면 망가질 수 있지만 제대로 정타로 잘 맞으면 그게 뭐든 인간 자체는 점프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웬만한 이야기는 다 들어줄 수 있고 심정도 잘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나쁠 게 없는 거죠.
타블로_공감해요. 힘든 일 겪고 음악이 좋아졌다는 ≪열꽃≫에 대한 세평 때문은 아니고요. 음악을 발표하기 전 완성하고 먼저 듣는데 저의 현재 상태를 여한없이 잘 담았다고 느낀 것만으로도 만족했어요. 좋은 평가는 보너스고요.
고현정의 '쪽' - “저의 자아 역시 일부는 대중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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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_안녕하세요. (정중한 목례) 정말 뵙고 싶었어요.
타블로_(마주 정중한 목례) 저도 뵙고 싶었습니다.
고현정_전부터 타블로씨를 만나보라는 권유는 받았고 에픽하이 음반도 꼬박꼬박 들어왔지만 힙합이 제가 즐겨 듣는 장르는 아니다보니 이런 코너를 진행한다고 부러 만나는 인상을 줄까봐 망설였어요. 제가 타블로씨 음악에 좀더 감흥을 받고 방아쇠가 당겨질 때 만나야 좋지 않을까 했어요. 근데 우연히도 그 계기를 오늘 여기 온 조인성씨가 마련해줬어요. 어느 날 영화 얘기를 포함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니, 나쁜 일도 있는 거지” 하고 있는데 인성이가 “누나, 그런데 요즘 제가 이 노래로 살아요” 하면서 들려준 음악이 ≪열꽃≫이었어요. 1번 트랙 <집>부터 흘러나오는데, 처음엔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제가 점점 (곁눈질 시늉) “야아, 이거 장난 아니다. 왜 이래 이 노래?” 하면서 급기야는 전곡을 초집중해서 두번인가 세번 연달아 들었어요. 그리고 인
고현정의 '쪽' - 눈물 없인 못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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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울렸어요.” 고현정은 좋은 음악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인사를 그렇게 했다. “죄송합니다.” 타블로는 귀기울여주어 감사하다는 답례를 그렇게 했다. 옆자리에서 못내 신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훤칠한 청년은 배우 조인성이다. 참으로 그악스러웠던, 학벌을 겨냥한 시비를 치르고 이해할 만한 침묵의 시간 끝에 지난해 10월 발표된 타블로의 첫 솔로 앨범 ≪열꽃≫을 고현정에게 들려준 장본인이 조인성이었다. 왜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친구와 이슥하도록 수다를 떨다가 “참, 너 이 노래 한번 들어볼래?” 하며 이어폰을 건네, 요즘 하루에도 열번 넘게 돌려 듣는 음악을 전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날. 친구가 탄성을 지르며 공감을 표할 때의 조촐하지만 짜릿한 행복의 기운. 조인성은 그 유쾌한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고현정을 대신해, 언젠가 인사 나눈 인연이 있는 타블로에게 “우리 다같이 만날까요?” 조심스러운 초대를 타전했고 흔쾌한 승낙으로 세 사람의 회동은 성사됐다.
고현정의 '쪽' - 유통기한을 넘어 숨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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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락없이 내 눈앞에서 멀어지지 말거라!”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에서 왕 이훤(김수현)의 월(한가인)을 향한 명령은 고스란히 20, 30대 여성 시청자를 향해 전이된다. 시종 ‘감히!’를 언급하며 뭇 여인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이훤은 백성의 안위와 정국의 안정을 꾀하는 기존 사극 속 왕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조정 정사를 논하던 왕은 이제 그의 권위를 온전히 월을 향해 열어둔다. 이른바 로맨틱코미디물에서 최고 위치를 점하는 남자주인공 캐릭터로서 정의해야 할 왕의 표본의 새로운 정립이다. 현대극으로 따지면 실장 혹은 본부장으로 통칭되는 부류로,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가 유학생 강태영에게 재량껏 베풀었던 아량과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이 빈털터리 이수정에게 과시적으로 퍼부었던 물량공세,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액션배우 길라임에게 보여주었던 복지부동의 자신감을 똑같이 나눠 가진 캐릭터다.
이 경우 사극의
실장보다는 왕이 절대적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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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口 亡 己. 죽은 이가 남긴 글자는 뚫을 곤, 입 구, 망할 망, 몸 기다. 집현전 학자와 반촌 사람들이 저마다 해석을 내놓는다. 입을 뚫어 몸을 없앤다. 몸을 뚫어 입을 없앤다. 입을 없애 몸을 뚫는다. 곤의 1획은 전하요, 구의 3획은 3정승, 망과 기의 획을 합쳐 6은 6조를 뜻한다. 4개의 한자음이 사실 훈민정음을 뜻했고, 결국 ‘밀본’을 지칭했다는 결과보다 수많은 해석을 낳는 과정이 더 흥미로웠던 <뿌리 깊은 나무>의 한 챕터다. 연쇄살인의 음모를 파헤치는 가운데 해석에 참여한 등장인물과 시청자도 탐정이 됐다. 정확히는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나 <다빈치 코드>의 랭던 교수 같은 기호학자가 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사극에서 탐정이 아닌 주인공이 없었다. <허준>의 허준이 무술실력까지 뽐내며 갖가지 미스터리를 돌파한 이후, <대장금>의 장금은 의술로 부모의 죽음에 얽힌 음모를 풀어냈고, <성균관 스캔들&g
조선시대에도 탐정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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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저입니다.”
<선덕여왕> 속 유신랑의 말이 아찔했다. “그럼 나중에는 궁궐로 쳐들어가는 거예요?” <추노>의 초복이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던진 질문에, 업복이는 사색이 됐고 보는 이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선덕여왕>과 <추노>는 각각 2009년과 2010년에 방영된 사극이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굳이 돌이킬 필요는 없다. 그저 당시의 정치 현실이 국민에게 안긴 아픔이 있었고, 할 수 있는 게 촛불을 켜는 것뿐이었다는 것만 떠올려보자. 심간(心間)의 고통이 있었으나, 정치와 이성의 논리 때문에 차마 구중(口中)에 올리기는 어려웠던 역심(逆心)의 말들이 많았다. 그것을 당대의 사극이 먼저 내뱉어준 것이다. 배설의 쾌감과 다를 게 없었다.
사극의 전성과 쇠락이 현실정치의 국면을 따른다는 건 가설이 아닌 정설이다. 1980년대에는 <조선왕조 오백년>이 금기의 영역을 건드린 반면, 문민정부가 출범
정조와 세종은 왜 자꾸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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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광해군의 숨겨진 비밀을 소재로 한 팩션사극이자, 이병헌의 첫 사극 출연으로 화제가 된 <나는 조선의 왕이다>(가제)를 비롯해 조선시대 얼음저장고를 둘러싼 코믹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세종이 임금이 되기 전 거지와 자리를 바꿔 겪는 사회상을 그린 코믹사극 <나는 왕이로소이다>, 한 여자를 둘러싼 왕과 내시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 <후궁: 제왕의 첩> 등이 촬영 중이거나 촬영준비 중이다. 조선시대 관상쟁이를 통해 어두운 시대상을 조명한 한재림 감독의 <관상>, 전령과 그에 맞서는 세력간의 대결을 그린 권종관 감독의 <전령>, 사도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다룬 김한민 감독의 스릴러 <충신>, 조선의 옥쇄를 삼킨 귀신 고래를 둘러싼 산적과 해적의 대결을 그린 천성일 작가의 <해적> 등도 현재 제작준비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 위에 떠오른 작품이 줄잡아
역사 속에서 답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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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이 38.4%의 시청률을 올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른바 퓨전사극의 등장과 함께 사극을 소비하는 층에도 일대 변화가 오고 있다. 중장년층의 고정 관객을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사극은 이제 20~30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승부수를 둔다. 지난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최종병기 활>로 관객 동원에 성공한 충무로도 새로운 사극과의 조우를 서두르고 있다. 사극이 가진 과거라는 판타지가 소재의 고갈로 허덕이는 충무로에 멜로와 코믹, 액션과 스릴러라는 다양한 장르를 배양할 토양 역할을 하고 있다. 정통사극과 결별한 새로운 사극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2012년 한국영화의 키워드가 된 사극. 충무로는 왜 사극에 열광하는지, 또 사극의 유형별 강점은 어떤 것인지 조목조목 살펴본다.
이리 오너라, 사극이 납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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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형제들' 후속으로 방영될 KBS 새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능력 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꼽아온 커리어우먼 차윤희(김남주)가 완벽한 조건의 외과 의사 방귀남(유준상)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댁 등장'으로 생기는 파란만장 사건들을 담은 드라마로 오는 2월 25일 첫 방송 된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강민혁,"김남주 유일하게 무서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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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워 호스>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위안
[올드독의 영화노트] <워 호스>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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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선(37) 촬영감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0년대 중반 조명 스탭으로 일찌감치 영화 일을 시작했고, <바람난 가족>(2003)으로 남들보다 빨리 조명감독 타이틀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비스티 보이즈>(2008) 때부터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있다.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에게 촬영을 맡겼다. “조명감독 출신이라 빛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 촬영으로 멋을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찍어서가 아니다.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찍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배우의 눈을 겨냥한 그의 카메라는 투박하고 동시에 묵직한데, 그런 시선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윤종빈 감독은 다른 촬영감독들과 다른 그의 이력이야말로 그의 카메라가 갖는 장점이라면서 “다음 작품도 무조건 같이할 것
[고락선] 클래식하게, 정석대로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