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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곧잘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다. 어른들은 혼냈지만 나는 때가 되면 음악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나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노하우였는데 사실, 비효율적이었다. 몇 십분을 제외하고 내내 음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영화 볼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음악이 훨씬 더 잘 들리고, 어떤 작품은 다 끝날 즈음에야 음악을 감지하게 된다. <말하는 건축가>는 후자였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에야 아, 음악이 있었지, 했다.
나는 다큐멘터리 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상계동 올림픽> 같은 작품들로 접해서 그런지 다큐멘터리란 일단 기록이며,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정치를 향하고, 그러므로 음악(이란 연출)은 그 본래의 힘을 해치는 장식이라 믿는다. 하지만 <말하는 건축가>에는 음악이, 춘천의 자두나무집처럼 숨어 있다. 강민국 음악감독과 정재은 감독은 어쩌면 정기용 건축가마냥 조화와 숨음에 대해 고민했을 것 같다. 여기서 음악은 또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숨어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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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3월21일) 새벽 4시45분에 시작하는 코파 이탈리아 4강 AC밀란 대 유벤투스 경기를 볼 생각이다. 어디서 중계하냐고? 안 한다.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 사는 AC밀란의 팬들은 이 경기를 생생한 HD화질의 중계로 볼 수 없다. 심지어 AC밀란과 인테르가 격돌하는 밀란 더비를 해도 중계해주는 곳이 없으니 고작 코파 이탈리아 경기 따위 누가 신경이나 쓸까. 약간의 서러움을 토로해보자. 유럽 축구에서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도 간혹 중계를 해준다. 셀틱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성용, 차두리가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제발 세리에A에 누군가 진출해달라!
그렇다면 그 경기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네트워크의 시대 아닌가. 몇몇 해외의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국내의 아프리카TV 같은 그런 것들이다. 스웨덴 어딘가에 서버를 두고 있는 한 사이트에 접속하면 AC밀란과 유벤투스의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한글 해설은 없다. 그 방송화면은
[타인의 취향] AC밀란 팬의 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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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종류의 오빠가 있다. 첫 번째는 혈연이나 법적인 친족관계에서의 손위남자에 대한 여자의 호칭, 두 번째는 대개 이성애자 커플 사이에서 남자쪽의 나이가 많을 때 여자가 부르는 애칭, 종종 다정이 지나친 경우 연하남에게도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있지만 그런 건 피차 못 본 척 지나쳐주도록 하자. 그리고 세 번째는 소녀들이, 혹은 소녀의 마음을 지닌 누나와 이모들이 애정과 신심을 갖고 마음 한구석에 모시는 특별한 존재들에 대한 통칭이다. 대표적으로는 아이돌이 있지만, 원빈이나 강동원 같은 배우 혹은 메시를 비롯한 바다 건너 스포츠 선수들까지도 넓게 보면 다 ‘오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빠는 나이가 아니라 신분이므로 이 호칭을 사용하는 자의 생물학적 연령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거다. 데뷔 시절 중학교 3학년이었던 샤이니의 태민(1993년생)이,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의 아역을 연기한 여진구(1997년생)가 전국 수많은 80년대생들에게 ‘오빠
[최지은의 TVIEW] 오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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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찬은 시청각장애인이고 김순호는 척추장애인이다. 나이는 김순호가 훨씬 연상이다. 두 사람은 부부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두 사람은 시골에서 연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김순호가 다 준비해주고 조영찬은 기다린다. 이들의 일상은 대개 이런 식이다. 김순호가 조영찬의 수발을 들어준다. 흔하게 표현하자면 두 사람의 밀착된 관계의 힘을 사랑이라고 해야겠지만 나는 그들의 관계에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이 두 사람을 저토록 한몸처럼 묶여 있게 하는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부부라고 하지만 김순호가 조영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영찬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준다. 그녀의 그늘 아래서 조영찬은 당당하다. 그는 시를 쓰는 예술가이다. 눈과 귀가 막힌 상황에서도 그는 다른 수단으로 세계를 감각하며 자작시에서 자신을 ‘우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눈과 귀가 달린 것이 보편적 인간의 물리적 조건이라고
[김영진의 인디라마] 화면에서도 인과의 틀을 부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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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깡패를 만났다. 친절하게도 깡패는 선택의 기회를 준다. 돈 줄래, 죽을래?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가 아니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 주어진 선택의 기회. 경험적으로 볼 때, 내가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회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당연하게 나는 더 나쁜 것을 피해 나쁜 것을 택해왔고 그래도 최악의 경우를 피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차>에서 가장 싸늘한 장면은 사채업자의 폭력에 시달리던 경선(김민희)이 자신의 신체포기각서에 지장을 찍는 순간이다. 그 장소는 다름 아닌 ‘버스터미널’이다. 그녀가 화차에 올라탄 건 벌건 대낮의 공공장소지만, 그녀를 향한 구원의 손길은 없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탐욕스런 자본의 욕망은 은밀할 필요도 없는 공공연한 삶의 태도일 뿐이다.
복합성을 지워버린 멜로드라마적 슬픔
이러한 경선의 선택을 두고 ‘더 나쁜 것’을 피해 ‘나쁜 것’을 택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전영객잔] 슬픔은 달콤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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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를 가까이서 보면, 혹은 멀리서 보면 어떤 드라마일까? 멀리서 보면 사기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정도가 아닐까 싶다. MB식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정치부 기자 해봐서 아는데’ 가까이서 본 한국 정치는 각본 없는 코미디였다.
대통령을 꿈꿔본 적이 있다. 직접 되는 것 말고 만드는 것, 진짜 만드는 것 말고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것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킹메이커’인 셈인데, 현실 정치에서 풀지 못한 ‘철인정치’에 대한 로망을 픽션으로나마 풀고 싶었다. 진짜 직접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을 만한 사람을 내 생애에 보지 못할 것 같아서 허구로라도 창조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대통령 시나리오’는 차고 넘친다. 여의도에는 299편의 대권 시나리오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국회의원 숫자만큼 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들 비호감에 ‘듣보잡’들인데, 그들은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씩 품고 있다는
100% 실화! 무조건 대박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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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뭐야?”라고 옆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무미건조하게 키보드를 누르며 말한다. “도마 안중근.” 테러와 관련해 검색하다 보니 숙제하던 학생이 올려놓은 듯한 질문이 보인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테러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그 근거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댓글 전쟁이 펼쳐진다. 채택된 댓글의 요지는 ‘테러는 의거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없다’였고 이에 민족정기 충만하신 분이 분기탱천하여 올린 긴 반박의 댓글이 뒤를 잇는다.
테러는 공포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죽음과 고통을 야기한다. 테러에 대한 공포는 일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이며 생명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모욕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거둘 때 가장 완벽한 삶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데 테러는 그 가능성을 불시에 차단한다. 안중근의 행위를 ‘의거’와 ‘테러’로 엇갈리게 호명할 수 있는 건 그 안에 행위의 폭력성과 정치적 정당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
누가 테러리스트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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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개봉한 영화 <반두비>에서 백진희가 연기하는 여고생 ‘민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급료를 떼어먹은 사장의 집으로 쳐들어가, 거실 탁자에 놓인 <조선일보>를 흔들며 외친다. “만수야, 언제 인간 될래? 이 따위 신문이나 읽으니까 네가 쓰레기처럼 살지!”라고. 영화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면 신동일 감독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2006년의 일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영화의 제작스탭으로 두어달 참여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제작실장이었던 선배를 불러 감독님이 말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영신씨,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모든 제품은 S전자의 것들이어야 해요. 대한민국은 S공화국이니까.” 난 신동일 감독의 그런 직설적인 화법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가 지적한 디렉션은 연출적이기보다 정치적 의도에 더 가까워 보였는데, 극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작은 디테일이기도 했다. 물론 저예산 예술영화를 꾸려가야 하는 제작팀한테
뉴스를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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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 마트 진열대에서 대여섯건의 ‘가격혁명’을 목격한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수사로 기능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정치적인 사건으로서의 혁명은 마치 오래된 유품처럼 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체 게바라 티셔츠도 더이상 핫 아이템이 되지 못하는 지금, 혁명이라는 단어는 이미 휘발되어버린, 아득한 열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흑인 민중시인 랭스턴 휴스의 시구를 빌리자면, 그것은 바싹 마르거나 축 늘어진 “지연된 꿈” 같은 것이다. 도저히 나부끼는 깃발, 조밀한 스크럼 사이로 솟구치는 함성, 혈관을 덥히는 열기…, 혁명이 환기하는 이미지들은 여전히 센티멘털리즘을 자극하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향수 속에 과거의 절박한 신념들에 대한 무지와 패배의식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때로는 우연한 계기가 실패한 혁명과 같은 불온한 유산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랜드 앤 프리덤>(1995)도 그러한 계기들 중 하나였다. 영국의 한 소녀가 할아버지 데이빗이 남
언젠가 그날은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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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스캔들>은 ‘벽안도’라는 미술품의 진의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과속스캔들>은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당신들 과속했구먼” 하고 농담할 때의 그 과속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성균관 스캔들>은 성균관의 수많은 유생 중 하나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극적 암시다. 셋 다 제목에는 스캔들이 달려 있지만 말뜻 그대로 꼭 추문은 아니다. 솔직한 인정이 먼저 필요하다. 우리는 스캔들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게 무엇이든 이미 은밀히 즐길 준비를 한다. 특히 그 어떤 스캔들보다도 여파가 큰 것이 정치 스캔들이므로 이게 소재가 되는 정치영화는 흥미로워질 여지가 생긴다. 거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아직 다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 스캔들을 다룬 예를 생각하다 단숨에 떠오른 작품이 <그때 그사람들>이다. 차기작 <돈의 맛>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임상수 감독이 “돈의 맛은 권력의 맛이자 결국 섹스의 맛이다”라고 한
대한민국의 고달픈 임상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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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관한 아주 악랄한 사건은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벌어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경험은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 투표장에서 겪었다. 선거일 3일 전에 사퇴한 심상정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버젓이 들어 있었던 건 후보자의 갑작스런 사퇴로 인쇄물을 변경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고 싶다. 그런데 투표소 입구 저 귀퉁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A4 정도 되는 작은 종이 한장으로 심상정의 사퇴 공지문이 붙어 있었던 것도, 잘 보이는 곳에 공지문을 붙이기 어려웠고 큰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그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무효표는 예년에 비해 3.6배인 18만표가 나왔다고 한다.
영화 <스윙보트>에서는 반대의 풍경이 벌어진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 과정 중 기계의 오작동이 일어나고 재투표를 해야 할 투표자가 발생한다. 뉴멕시코주에 사는 거의 반건달에 가까운 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즈음 선거결과는 박빙으로 치닫
당선, 그 이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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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몇분 동안 두 사람은 격렬하게 다투었다. 여자는 얼굴이 벌게진 채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팔을 휘저으며 남자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남자는 한손을 여자의 어깨에 올리고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몸짓은 여자를 더욱 화나게 할 뿐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드잡이를 그만두고 각자의 비행기로 돌아갔다.”(존 하일먼?마크 핼퍼린, <게임 체인지>, 245쪽) 연애소설의 한 대목이라고 해도 속을 것 같다. 2007년 12월,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공항의 활주로 위에서 낯뜨거운 사랑(?) 싸움을 연출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힐러리 로뎀 클린턴이었다. 당시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출사표를 던진 양쪽 진영은 레이스 시작 전부터 한치의 물러섬 없이 으르렁거렸다. 힐러리에게 오바마는 풋내기였고, 오바마에게 힐러리는 늙다리였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네거티브 공습이 연일 계속됐으며, 급기야 위에서 말한 전대미문의 해프닝
정치는 전쟁이자 롤러코스터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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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키워드는 단연, 대선이다. 한쪽에선 바꿔야 산다고 하고, 또 한쪽에선 바뀌면 죽는다고 한다. ‘정치는 트렌드’라는 말까지 사방에서 수시로 튀어나온다. 3월22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한 4?11 총선은 누가 봐도 연말 대선의 전초전이다. 여야 모두 백척간두에 섰다. 봄에 밀려나면, 앞으로는 쭉 겨울이다. 언제 봄이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다. 어쩌면 여의도 꽃은 더 빨리 필지도 모르겠다. 벼랑 끝에 선 정치인들의 비명에 놀라서 말이다. 절호의 기회를 잡았거나 비명횡사했거나 집에서 도망쳐나가 딴살림을 차렸거나 상관없다. 여의도는 지금, 절박함으로 가득하다. 여론 향배에 따라 정치인들의 심박수도 요동치고 있다. 여의도가 뛴다고 충무로까지 덜컹거리진 않는다. 하지만 2012년은 다르다. 여의도의 소란에 충무로도 조금씩 들썩인다. 조지 클루니의 4번째 연출작이자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킹메이커>(4월19일 개봉)도 서둘러 개봉한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여의도에 바람이 분다. 권력이 가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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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용주 감독으로부터 <건축학개론>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불신지옥> 이후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던 그는 동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내 의견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절박했다. “이 영화를 해야 다음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건 그가 큰 산에 봉착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첫 작품으로 평단의 관심을 얻었지만 당시 그는 고작 관객 25만명을 동원한 신인감독이었고, 해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상업적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당시 내가 어줍잖은 시선으로 우려했던 지점은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건축학개론>은 그가 거의 10년을 매달린 프로젝트였고, 주변의 만류엔 이미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수정고 파일만 몇 백개가 존재하는 <건축학개론>은 그에게 결코 놓을 수 없는 첫사랑이었다. 그는 내 의견을 새겨듣겠다고 했지만 몇달간 시나리오 작업 끝에 완성된 최종고
[이용주] “스무살의 나에 대한 반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