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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이에르 가의 광기> Almayer’s Folly
샹탈 애커만 | 벨기에, 프랑스 | 2011년 | 130분 | 월드 시네마
소설을 영화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샹탈 애커만의 진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갇힌 여인>에서 이미 발휘된 바 있다. 애커만은 복잡다단한 프루스트의 세계를 간소화시키면서도 타자와의 경계를 극복하려 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깊이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7년 만에 연출한 신작 <알마이에르 가의 광기> 또한 조셉 콘래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말레이시아의 한 백인 가정이 배경이다. 무역업자 가스파르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하지만 큰 실패를 맛본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주민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니나뿐이다. 가스파르는 딸에게 모든 기대를 건 채 그녀를 유럽의 정숙한 기숙학교에 보낸다. 동양인을 멸시하는 기숙학교에서 니나는 서서히 파멸해가고,
애커만의 매혹적인 롱테이크 <알마이에르 가의 광기> Almayer’s Fo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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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소년> The kid with Bike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 2011년 | 87분 | 월드 시네마
크레딧을 지우고 보자. 이건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아니라고 치자. 분명 수긍할 것이다. 비전문배우를 고집하던 이들이 세실 드 프랑스 같은 유명 여배우를 기용했고, 일체의 음악을 배제한 소리만을 채집했던 전작들과 달리 영화음악이 사용됐다. 황량한 풍경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계절도 초록이 우거진 여름이다. 무엇보다 믿기지 않는 것은 영화가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피했던 모든 걸 조금씩 수정하면서 형제들은 <자전거 타는 소년>을 만들었다.
<자전거 타는 소년>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소년이 한 여성을 만나고, 그녀가 아무 조건 없이 소년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사한다는 내용. 지극히 간소한 내용의 드라마로 러닝타임도 87분에 불과하다. 영화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는 이미지는 다르덴의 인장 같은
이건 현대의 동화다 <자전거 타는 소년> The kid with B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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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Himizu
소노 시온 | 일본 | 2011년 | 129분 | 아시아영화의 창
거두절미하고,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소노 시온을 따라갈 자는 없다. 그의 전성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차가운 열대어>부터 시작됐다. 거의 고어영화에 가까운 이 범죄극에서 소노 시온은 인간 내부의 광기, 우리 모두가 남몰래 갖고 있는 욕망을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파고든다. 표백제로 씻어낸 것 같은 팬시영화와 지나칠 정도로 재단된 기획영화가 지배하는 지금의 일본 영화계에서 소노 시온은 80년대 이후 현해탄 건너 영화쟁이들이 거의 잃어버린 칼날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일본 만화계에서 후루야 미노루를 따라갈 자는 없다. <이나중 탁구부>로 데뷔한 이 시대의 천재는 이후 <크레이지 군단> <두더지> <시가테라> <심해어> 등 패배한 인생들의 마음속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걸작들을 지속적으로 내
사회적 리얼리즘과 일본 만화 예술의 결합 <두더지> Him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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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산에서 단 한편의 한국영화를 선택하라면 박정범의 <무산일기>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무산일기>는 로테르담, 도빌, 폴란드, 러시아 등 출품된 국제영화제마다 상을 휩쓸었다. 1년 만에 박정범 감독은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신작을 들고 참여한다. 제목은 <살다>. 강원도 산골 청년이 고향에서 좌절한 꿈을 이끌고 서울의 형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이건 혹시 <무산일기>의 속편일까? 박정범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1년만에 부산에 돌아온 기분은.
=처음엔 해외영화제에서도 멋모르고 상을 받았는데, 예닐곱 번 정도 받으니까 다음 영화를 정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더라. 요즘은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마음먹고 시나리오를 열심히 수정중이다.
-그럼 APM 사이트에 소개된 시놉시스와 달라질 거란 소린가.
=그건 그대로고 디테일이나 작은 사건들이 바뀔 듯하다. 플롯은 원래 순차
“<무산일기>와 달리 밝은 감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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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 감독은 올해 부산에 영화 대신 비전을 가지고 왔다. 1980년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는 침체된 홍콩 영화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무기로 3D를 선택했다. 서극 감독은 현재 자신이 제작하고 이혜민 감독이 연출한 <신용문객잔>(1992)을 리메이크한 3D 영화 <용문비갑>의 후반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최초의 3D 무협영화가 될 <용문비갑>은 11월 중 영화 제작을 완료하고 12월20일경 중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서극 감독은 <용문비갑>과 관련해 7일 열린 3D 입체영화 제작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무협영화의 액션을 어떻게 3D로 구현하느냐는 것이다. 서극 감독은 무협영화를 3D로 제작하는 것이 기존의 2D영화에 비교했을 때 용이한 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2D 영화에서는 액션 동작 등을 강조하고 공간감이나 입체감을 만들어내기
아시아의 상상력, 무협 3D로 구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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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흥분>은 <마지막 늑대>를 연출했던 구자홍 감독이 약 7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다. 전작의 주인공이 시골마을의 순경이었다면, 이번에는 마포구청 공무원이다. “차기작으로 준비중인 <역습>은 사채추심업자와 세탁소 주인의 하드보일드 영화다.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들의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다.”(웃음) 영화는 언제나 거기 없는 것처럼 살아가던 공무원 한대희가 한 인디밴드를 만나면서 겪는 ‘흥분’을 그리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이라는 ‘위험한’ 취미에 조금씩 젖어들던 주인공은 급기야 직접 기타를 손에 쥐고 무대에 오른다. “1998년에 쓴 시나리오였다. 그때 홍대의 한 클럽에서 관객 3명을 놓고 노래를 부르던 허클베리 핀의 공연을 봤다. 그때 나도 흥분을 느꼈다. 그러다 직업적인 호기심으로, 넥타이를 맨 직장인이 이 광경을 봤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됐다.” 한동안 쏟아져 나온 음악영화들 혹은 <베토벤 바이러스>와 같은 드라마를 떠
딴 생각, 즐겁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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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밀집한 집합주택(social housing). 주아옹 카니조 감독의 <혈육>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간다. 방과 화장실이 한 프레임 안에 잡히고, 이 방의 언쟁이 옆방의 언쟁과 한데 뒤섞인 채, 바깥의 소음으로 이어지는 좁디좁은 공간. 이미지와 사운드의 절묘한 중첩은 복잡하게 얽힌 영화 속 하층민의 생활을 상징한다. 마약조직의 하수인으로 일하는 아들, 유부남과 사귀는 간호사 딸, 식당주인과 사귀는 엄마 그리고 이모까지, 영화는 끝내 소통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이들의 생활을 담는다. “집합주택은 1960년대 이후 대도시를 규정하는 하나의 모습이다. 높은 건물 뒤엔 항상 이렇게 소외되고 가난한 주거지들이 함께 존재해 왔다.”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카니조 감독은 이들의 끔찍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2년 동안 배우들과 함께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촬영 또한 그곳에서 모두 이뤄졌다. 영화는 이렇게 철저한 조사와 오차 없는 장면 구성을
포르투갈 영화를 여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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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청춘 스타’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테일러 로트너, 샤이어 라보프…. 이들에 비해 로건 레먼은 아직 낯선 이름이다. <나비효과>에서 애쉬튼 커처의 아역으로 출연했다거나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의 퍼시 잭슨이라고 설명하면 그제야 무릎을 치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살의 로건 레먼은 블록버스터의 간판스타로 등장해 수년간 같은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리는 또래 배우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자.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그리스 신화를 비틀어 만든, 범상치 않은 어린이 슈퍼히어로 물이었다. 로건 레먼은 이 영화에서 아이팟에 정신이 팔린 ‘메두사’ 우마 서먼의 머리를 단칼에 베었다. 르네 젤위거의 아들로 출연한 <마이 원 앤 온리>에선 철없는 엄마 대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는 맏아들로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다. “
귀여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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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정민입니다. "SS501 그... 걔?"라고 생각했어요, 안했어요? 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잠시 제 소개를 하자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상을 수상한 <파수꾼>에서 베키 역을 맡았던... 이래도 모르신다면 모 자양강장제 광고에서 붐마이크를 들고 졸던 그 붐마이크맨인데 그래도 잘 모르시겠으면 그냥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안 궁금하다, 안 물어봤다. 하신다면 우선 패th.
그리고 이번 영화제도 패th. 기분 나빠서 빠이. 해변가에서 낭만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딱 보니까 영화 스탭 같으신데 내일 저희 행사에 참석해주세요”라는 여학생 때문에 진짜 빠이. 거기다 대고 “저 배운데요.”라고 하기엔 송구스런 내 행색 때문에 레알 ‘빠이’ 하려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겠기에.
주제는 맛집. 일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부산인데 어느 식당을 소개하는 게 맞을까 고민하다, 내 첫 영화제의 첫 끼가 생각났습니다. 부산이야
48년 전통 해운대 원조 할매 국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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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에>는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다. 카메라가 잡아채는 건 오로지 클럽에서 만나 하룻밤 정사를 나누는 남녀뿐이다. 그들은 끝없는 대사를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의 상념들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꽤나 프랑스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한밤 중에>의 감독 안 에몽은 캐나다의 프랑스 문화권인 퀘벡주 출신이다. 그녀는 부산의 첫 인상에 대해서 “소피아 코플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말한다. “호텔방에서 보이는 도시에 영감을 받아 지금 뭔가를 쓰고 있는 중이다.(웃음)”
-하룻밤의 사랑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내 세대의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이건 리얼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친구들과 나눈 대화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지만 진짜 그들의 생활을 담은 것도 아니다. 우리 세대가 지닌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해보려는 영화다.
-단 두 명의 배우가 끌고 나가는 영화다
촬영전에 모두 함께 보드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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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 특강 수업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까. 임권택, 이장호, 강우석 감독, 배우 강수연이 8일 오후 3시 반 해운대 비프 빌리지에서 열린 오픈토크 ‘후배들, 노거장에게 청해듣다’에 참여했다. 이들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자신의 영화인생을 꺼냈고, 미리 관객으로부터 받은 다양한 질문에 대해 대답했다.
만들어 온 영화가 다른 만큼 네 사람이 생각하는 영화도 제각기 달랐다. 이장호 감독은 “어릴 때 영화는 ‘직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때는 먹고 살기 위해 영화를 찍었던 것이다. 1976년 대마초 파동으로 4년 동안 활동이 금지 당했을 때 영화가 사회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면서 “최근에 또 생각이 바뀌었다. 신앙이 생기면서 세상에 대한 신앙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여러분은 앞으로 ‘재미없는 이장호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주가로 유명한 강우석 감독에게 어울리는 질문도 있었다. “영화와 술의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강우
거장과 나누는 속 깊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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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장동건과의 격투신에서 내 펀치가 그의 얼굴에 맞았을 때였다. 한국 대표 배우의 얼굴에 상처를 입혀 입국을 못할까봐 걱정했다”
- <마이웨이>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오다기리 조
“나 역시 몰랐다. 다들 말린다”
- <복숭아 나무> 관객과의 대화에서 구혜선 감독. “계속 연출을 할지는 정말 몰랐다”는 사회자의 말에.
“사실 다음 작품 구상과 관련해 아무것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오직 그대만>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다음 부산국제영화제 전까지 준비를 마치도록 하겠다”
- 감독 버전 <써니>를 들고 부산을 찾은 강형철 감독.
“나 역시 몰랐다. 다들 말린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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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여행> Mourning
모르테자 파르샤바프 | 이란 | 2011년 | 84분 | 뉴 커런츠
농아인 부부 샤라레와 캄란은 조카 아샤를 뒷좌석에 태우고 긴 여정에 오른다. 언니 부부를 만나러, 더 정확히는 간밤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샤의 부모를 찾으러 가기 위해서다. 길이 폐쇄되고, 차가 고장이 나고, 수리공을 불러 정비소로 이동하고 하는 몇 가지 난관이 이어지는 동안, 샤라레 부부는 사고의 자초지종과 아샤를 누가 기르게 될 것인가를 두고 수화로 대화를 나눈다. 별 다른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영화는 이들의 사실적인 대화와 몇몇 촌극만으로 한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긴장을 유지한다.
<소리없는 여행>의 미덕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거리두기에 있다. 샤라레와 캄란이 말다툼을 하는 동안 이들 부부의 오랜 상처가 불거지지만 영화는 이들의 슬픔을 섣불리 증폭시키지 않는다. 아샤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아샤는 이 길고 지루한 여행에 크게 동요하지
불확실한 현재 속에서의 슬픔과 애도 <소리없는 여행> Mou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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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거짓말> Off White Lies
마야 케닉 | 이스라엘 | 2011년 | 86분 | 플래시 포워드
열세 살, 주근깨 소녀 리비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엄마 곁을 떠나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아빠 샤울은 집도 없는 떠돌이 신세에, 뻔뻔하고 대책 없이 낙관적이기까지 하다. 친구에게 신세를 지려던 샤울은 때마침 폭격을 맞아 난민수용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딸과 머물 장소를 찾아 묘책을 세운다. 바로 난민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집에 들어가 난민 행세를 하는 것. 이때부터 이들 부녀는 이러저러한 거짓말들을 꾸며내며 공범이 된다. 이들은 샤울의 잡동사니 창고에서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함께 무전취식을 하고, 또 소박한 생일 파티도 하면서, 서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공백들을 채워나간다. 리비가 샤울에게 마음을 여는 동안, 그들을 받아 준 레히만 가족과의 어색한 관계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
2차 레바논 전쟁 속 어떤 부녀의 해프닝 <회색 거짓말> Off White L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