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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해운대의 밤은 여전히 뜨겁다. 주말을 맞아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영화 제작·배급사들이 연달아 파티를 개최하고 있다. 정답게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계의 최신 정보를 나누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의 근황을 전해들으며, 영화인들간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기 쉽다는 점에서 영화제 파티는 ‘네트워킹의 꽃’이라 부를 만하다. 토요일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 행사와 앞으로 열릴 파티 일정을 소개한다.
8일 오후 7시, ‘롯데의 밤: 레드 피버’ 파티장은 축하 인사를 건네는 영화인들로 성황이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최종병기 활>이 700만을 돌파하며 올 하반기 극장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이 파티에는 <삼총사 3D>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로건 레먼과 최근 <공주의 남자>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종병기 활>의 세령, 문채원 등 주최쪽 추산 1200명의 영화인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오후 10시 그랜드호텔에서
영화제는 파티와 함께 무르익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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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일본영화계엔 쓰마부키 사토시를 위한 시나리오 저장고가 있는게 아닐까. 이상일 감독과 작업한 <악인>으로 부산에서 만난 지 1년 만에 어느새 신작. 끊임없는 생산이다. “그럴 리가, 간신히 한 작품 한 작품 하고 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과도 꼭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인연이 됐다. 제안을 받자마자 ‘왔다!’ 하면서 잡았다.”
<마이 백 페이지>에서 사토시가 맡은 역할은 전공투 세대를 겪는 아사히신문의 초짜 기자사와다다. 급진적인 상대 우메야마(마츠야마 켄이치)처럼 행동하지 못하지만, 그에 대한 이상과 동경으로 시대를 관조하는 인물이다. “그 시대 청춘들은 지금과 온도 자체가 달랐다. 필요한 건 뭐든 고를 수 있고, 자기만 생각하는 지금 젊은이들과 달리, 그들에겐 나라를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사와다의 눈을 통해 그런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시대의 중심에 있지만, 저널리스트로서 부채의식을 가진 청년 사와다. 야마시타 감독은 회한과
순수소년,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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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밴드들의 좌충우돌 생활기도,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던 산들바람도 사라졌다. 소소하고 정감 있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세계’로 보기엔 너무 가혹한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시기. <마이 백 페이지>는 그 시절을 통과한 이상주의자 저널리스트 사와다(쓰마부키 사토시)와 과격한 운동권의 리더 우메야마(마쓰야마 겐이치)의 이야기다. 1971년 일본에서 있었던 실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영화는 전공투 시대를 재구성한다. 동경과 회한의 교차 속, 여전히 야마시타 감독의 촉수는 성장하는 ‘청춘’에 도달해 있다. 달라진 이야기와 스타일, 규모로 인해 마치 자신을 ‘리셋’하는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마이 백 페이지>, 쉽지 않았던 그간의 연출과정을 들어본다.
-오랜만의 장편이다. 전공투 세대의 이야기라니, 당신 작품이 아닌 줄 알겠다.
=영화 속 쓰마부키 사토시가 맡은 사와다의 실제 모델 가와모토 사브로가 지금은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내 작품을 평론한 적도 있었
그 시대의 뜨거운 에너지를 불러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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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이유> The Reason Why I Step
김철민 | 한국 | 2011년 | 85분
한류 바람에다 각종 오디션 법석까지 대중매체에 멋 빛난 노래들 차고 넘친다. 그런데 아직도 “노래로 세상을 바꾸려” 들고 “음악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노래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려는” 바보가 있다. ‘혁명동지가’같은 꽤 알려진 운동가요 만들고 ‘우리나라’라는 노래패에서 활동하면서 “아픔 있는 사람들 달래고 기쁨 있는 곳에서 그걸 나누고, 새로운 세상과 통일에 대한 염원” 펼치려는 뜻 높은 사람이 그다. 바로 백자라는 민중가수다.
돈 안 되는 일 하느라 하나 뿐인 아이와 오랫동안 떨어져 살고, 공연조차 줄어들어 하루하루 생존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면서도 투쟁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힘찬 사람이다. 경비마저 스스로 마련해 일본 조선학교 지원 위한 행사를 강행군하다가도 이 영화 찍은 감독에게 친형처럼 따뜻한 결혼식 축가 불러주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동안 이바지한 것 기리
서툴지만 잔잔한 영상으로 삶을 전달한다 <걸음의 이유> The Reason Why I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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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바조 부족을 다룬 아름다운 성장영화다. 이 영화로 감독 카밀라 안디니는 인상적인 데뷔를 치렀다. 아버지인 가린 누그로호 감독은 인도네시아의 거장으로 부산영화제와도 연이 깊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레 밝히며, 그녀는 영화 속 아이들처럼 밝게 웃어보였다.
-바조인들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부터 다이빙과 여행을 좋아해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2009년에 와카토비 섬을 방문했을 때, 말로만 들었던 바조 부족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30여 가구가 모여 한 부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육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찍고자 했다. 이후 극영화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30여명 남짓한 스탭과 2명의 직업배우(파키스의 엄마 역, 과학자 역)만을 데리고 현지인들과 어울려 영화를 찍었으니, 이 영화
극영화지만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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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봉 영화에 유청운이 짧은 머리에 꽃남방을 입고 나온다면, 그건 무조건 봐야하는 영화다. 두기봉의 신작 <탈명금>에서 모처럼 그런 모습으로 등장한 유청운을 보는 건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두기봉 스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한 <무미신탐>(1995)을 비롯해 <진심영웅>(1998)과 두기봉의 수제자인 유달지가 연출한 <암화>(1998) 등에서 유청운은 ‘홍콩영화계 최고 인상파’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하지만 <탈명금>의 유청운은 어딘가 좀 ‘모자란’ 모습이다. 계속 눈을 깜빡거리며 오지랖 넓게 아무 때나 나서는 조직의 늙은 똘마니다.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신 뒤 트림을 할 정도로 철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경찰서에 끌려간 형님을 보석으로 꺼내주기 위해 사방팔방 돈을 구하러 다니는 의리의 사나이기도 하다.
두기봉의 영원한 형제
1964년에 태어난 유청운은 양조위, 유덕화와 함께 출연한 TV시리즈 <녹
널 보면 옛 홍콩이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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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의 역사를 알고 있다. 아무도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던 일을 어느 포르투갈인의 모험 의지와 투지가 이룩해냈다.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한 도전, 이들에게 그 도전은 지리적 이탈임과 동시에 자신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했다. 포르투갈의 문호 사라마구는 소설 <미지의 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모든 남자는 섬이다. 그런데 섬을 보기 위해선 그 섬을 벗어나야 한다”라고. 이베리아 반도 서남단의 작은 국가 포르투갈은 그렇게 15, 16세기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21세기, 격감한 세계 속의 자국 인식이 이들에게 어떻게 새겨졌을 지가 궁금하다면 올해 부산영화제의 포르투갈 특별전을 찾아보길 권한다. 미지의 여섯 감독이 열다섯 편의 새로운 영화를 통해, 서로 다른 고민과 색채로 자국의 미래를 보여준다.
가족, 무의식, 드라큘라, 음악 등 다양한 이야기
현재 활동하는 인물 중 가장 연로한 감독이자, 포르투갈의 거장
역동성, 독창성, 탐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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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 The Cardboard Village
에르마노 올미 | 2011년 | 87분 | 월드 시네마
에르마노 올미는 현존하는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감독 중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가톨릭 영화인인 그의 작품 세계 60여년을 관통하는 주제는 신과 종교다. <판자촌> 역시 이런 올미의 관심이 반영된 작품으로,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을 성당에 받아들인 사제의 일화를 다룬다.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 50년간 같은 자리에 있었으나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성당의 철거가 결정된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크레인에 묶여 끌려내려오자 사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새 신도가 생긴다. 몸둘 곳을 찾아 마을을 헤매던 불법이민자들은 성당 안에 새 보금자리를 튼다. 다양한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한 <판자촌>은 단순히 성당 안의 사람들을 선으로, 외부인들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예수의 제자 중에
삶에 대한 분노로 인해 선을 악으로 갚는다 <판자촌> The Cardboard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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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Blue Bird
구스트 반 덴 베르케 | 벨기에 | 2011년 | 86분 | 월드 시네마
파랑새를 쫓아 신비로운 여행을 하는 남매 이야기.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동화극은 오랜 세월동안 영화감독들의 영감이 되어주었다. 구스트 반 덴 베르게의 <파랑새>는 작품의 무대를 유럽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겨온 이국적인 환상영화다. 새와 함께 놀던 남매는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새가 사라져버리자 그 흔적을 찾아 집을 떠난다.
장면의 대부분을 눈이 시리도록 파란 화면으로 채운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한 크고 작은 수수께끼로 가득차 있다. <파랑새>의 어린 남매들은 영화가 숨겨놓은 의미와 상징을 찾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버리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보는 어른 관객들만큼은 그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을 것 같다. 원작을 전복하고 인간의 출생과 신의 의미에 대한 상징을 영화의 곳곳에 심어놓는 건 구스트 반 덴 베르게의 스타일로 자리잡은 듯하다. 이같은
생에 대한 크고 작은 수수께끼 <파랑새> Blu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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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 Blood of My Blood
주아옹 카니조 | 포르투갈 | 2011년 | 139분 | 특별기획 프로그램2
차라리 들어오기 싫은 집도 있다. 리스본 외곽 빈민촌. 중년 여성 마리사에게 집은 지옥이다. 밥상머리에만 앉으면 대화는 어김없이 싸움으로 변질된다. 왜 아니겠나. 마약조직에 연루된 아들, 유부남과 연애를 하는 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어머니에게 희망은 요원해 보인다. 포르투갈 감독 주아옹 카니조는 끈질기게 가족의 일주일을 클로즈업한다. 극도로 좁고 낡은 집은 이들의 현실을 구현하는 가장 큰 극적 장치다. 엄마와 딸이 싸우는 동안 한 프레임 안에 걸린 옆방에선 이모와 조카가 언성을 높이고 있다. 이들의 언쟁은 집 밖의 소음과 한데 섞여 곧 빈민촌 전체의 소음으로 규정된다. 폭력과 가난은 이토록 겹겹이 중첩돼 한 꺼풀 벗겨낼 엄두를 못 내게 만든다. 영화 말미의 충격적 파국이 오히려 당연한 수순처럼 보일 지경이다. 복잡한 가족사 탐구를 통해 가장 콤팩트하게
복잡한 가족사로 세계의 단면을 탐구한다 <혈육> Blood of My 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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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바다의 물병> A Bottle in the Gaza Sea
티에리 비니스티 | 이스라엘, 프랑스, 캐나다 | 2011년 | 100분 | 월드 시네마
우리 모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는 영화들에 조금 질려 있는 상태다. 이 해결 불가능한 지구의 화약고에 대한 영화들을 언제까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한 가지 다행한 일은, 새로운 세대의 이스라엘 감독들이 점차 대중영화적인 화법으로 분쟁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그려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시와 자거>의 에이탄 폭스가 지난 2006년 내놓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퀴어 시네마’ <거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자지구 바다의 물병>은 국내에도 출간된 발레리 제나티의 베스트셀러 <가자에 띄운 편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유대인 소녀 탈은 일상적인 자살폭탄 테러에 지친 나머지 미지의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병에 넣어서 바다로 보낸다. 편지를 우연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로미오와 줄리엣 <가자지구 바다의 물병> A Bottle in the Gaza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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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백 페이지> My Back Page
야마시타 노부히로 | 일본 | 2011년 | 141분 | 아시아영화의 창
“지금의 나보다 어른인 체했던 그 시절의 나.” 혈기에 가득 찬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 밥 딜런의 명곡 <My Back Page>야말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마이 백 페이지>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영화는 1960년대 말. 젊음을 바칠 비장한 각오로 학생운동에 가담한 우메야마, 그리고 학생운동을 취재하는 선배를 따라갔다 뒤늦게 투쟁의 세계에 빠져든 <아사히신문> 기자 사와다의 만남을 쫓는다. 두 젊은이의 사고방식은 바로 전공투세대를 거쳐온 일본 청춘의 단면과도 같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평론가 가와모토 사브로의 논픽션 <마이 백 페이지 어느 60년대 이야기>를 다룬 작품. 감독은 직접적인 방식 대신 ‘과거’라는 필터를 통해 지난 시절에 대한 냉철한 정리를 시도한다. <마을에
과거라는 필터로 지난 시절을 냉철하게 정리 <마이 백 페이지> My Back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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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꼬박 11시간 비행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 체코. 정확한 거리도 가늠할 수 없는 이 먼 나라와 한국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의 전 프로그래머 율리에타 시셀 덕분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상한 그녀는 1999년부터 꾸준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으며 한국영화를 체코에 알렸다.
율리에타 시셀이 체코에 처음 알린 한국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당시 이창동 감독과 주연배우들을 이끌고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GV를 진행했을 때를 그녀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그때의 열기 때문에 다음해엔 한국영화특별섹션까지 기획하게 됐다.” 한국영화특별섹션이 마련되고 나서부터는 체코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엔 배급사를 통해 극장 개봉한 작품도 있으며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김기덕 회고전도 열렸다. 올해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의 개막작 또
부산이 주는 상이라 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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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목>은 도미노 게임을 연상시킨다. 필리핀의 파사이 로톤다 교차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조각조각 모여 그림이 완성됐을 때 폭발하는 식이다. 그러나 사건들이 특별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동생과 누이가 꽉 막힌 도로의 차 안에서 말다툼을 나누고, 아버지와 아들은 버스를 기다리며 농구 시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해 쩔쩔매고 노점상 주인은 동네 양아치들과 내기당구에 골몰해있다. 사건들은 마닐라의 뜨겁고 습한 날씨와 함께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리고 결국 한 남자에 의해 모든 것이 파국을 맞는다. “쉽게 흥분하고 짜증내는 도시에서 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로렌스 파자르도의 말처럼 <아목>은 한 날, 한 시, 한 공간에 엮여있다는 이유로 아무 상관없는 일에 휘말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일상적인 사건들이 제각각 의미하는 바는 크다. 로렌스 파자르도 감독은 남동생과
옆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