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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였다. 영화에서는 선동열이 최동원을 우러러보는 쪽이었는데, 사진촬영 중에는 조승우가 양동근을 흘끗거리는 쪽이었다. 쉴새없이 미간을 쥐었다 놓았다 부산히 근육을 놀리는 조승우 뒤에서 양동근은 해탈한 부처인 양 무덤덤한 표정으로 떡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두 시간 남짓 지켜본 인상으로 섣불리 판단하건대, 그는 승부사의 기질을 아예 혹은 거의 타고 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라이벌과의 설전보다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하는 인간형에 가까웠고, 그가 해석해낸 <퍼펙트 게임> 속 선동열도 비슷했다. “선동열 감독님이 최동원 감독님에게 품었던 감정은 단순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자꾸 비교하는 소리 듣기 싫으니 확 그냥 이겨버리고 잊어버리자. 뭐 그런 마음 아니었겠어요?” 선동열 감독의 당시 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양동근의 성미는 짐작이 갔다.
양동근은 야구공 한번 던져본 적 없는 초짜 중의 초짜였다. 마이클 조던의 팬이지만 그가 야구로 외도했던 시기에조차 경기 한번 본 적 없다고
[양동근] 쿨한 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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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가 금색 잠자리 안경을 쓰고 돌아왔다. 그는 <퍼펙트 게임>에서 전설이 된 고(故) 최동원 감독을 연기했다. 어린 시절 야구선수를 꿈꾸었던 조승우에게 최동원으로 살아볼 수 있는 <퍼펙트 게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회사 대표님이 저 보라고 <퍼펙트 게임> 시나리오를 차에 놔두셨어요.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하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시나리오를 다 읽었죠. 바로 결정했어요.” 부산 사투리를 구사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가 영화를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세 가지가 있어요. 양동근이랑 해보고 싶다, 손병호 선배와 한번 만나보고 싶다, 야구영화 해보고 싶다. <퍼펙트 게임>에서 그게 다 이뤄졌죠.”
<퍼펙트 게임>의 출연을 결정한 조승우는 시나리오 속 선동열을 보면서 자연스레 양동근을 떠올렸다. “시나리오에서 동근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예요.” 조승우는 제작사에
[조승우] 고독한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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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과 선동열, 선동열과 최동원의 만남. 이것은 30년 한국 야구 역사의 가장 뜨거운 싸움이었다. 이 두 라이벌이 1987년 5월에 펼친 15회 2 대 2 연장 무승부 경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박희곤 감독의 <퍼펙트 게임>이다. 최동원은 야구선수를 꿈꾸던 조승우가 맡았고 선동열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양동근이 연기한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두 선수의 투구 폼을 판박이처럼 베껴내고자 피땀을 흘렸다. 어떻게 연습했냐는 질문에 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보다 투구 폼의 구분 동작을 먼저 보여준다. 어설프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이들을 악바리로 만들었다. 선동열과 최동원, 최동원과 선동열은 조승우와 양동근, 양동근과 조승우의 앙상블로 2011년 겨울에 다시 창조됐다. 전설의 두 투수와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까지 누구의 이름을 앞에 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함부로 정하기 어렵다.
[조승우, 양동근] 언젠가 한번은 만나야 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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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란 소재는 참 신기하다. 나무치고는 습기에 따른 변형도 적고 내구성도 높아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디지털 기기에 가끔 나무 소재가 필요할 때 대나무가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컬리의 에코팬 프로(ECOFan Pro)란 제품이 있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노트북 쿨러인데, 대나무라는 친환경적인 요소가 각광받았다. 바로 그 업그레이드 버전 격인 에코팬 XL가 등장했다. ‘XL’라는 말이 이름에 붙을 만큼 거대한 쿨러의 팬이 눈에 띈다. 대나무 거치대의 구조는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 거대한 팬을 가지고 있음에도 소음은 비교적 없는 편. XL답게 15인치 노트북도 거뜬히 올려 놓을 수 있다. 노트북에서 많이 활용하는 소재인 알루미늄과 대나무의 만남은 언제 봐도 최적의 궁합이다. USB로 전원이 연결되며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gadget] 대나무로 시원한 e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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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1. 1.5Ghz 듀얼코어
2. 5.3인치 HD슈퍼 아몰레드(1280x800 해상도)
3. 1080p 재생
4. S-Pen 인터페이스
특징
1. 스타일러스 대용의 자연스러운 필기감을 가진 S-Pen의 부활
2. 1080p 동영상을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성능
보기엔 그저 다른 안드로이드OS를 사용하는 기기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제품 아래쪽에서 펜을 뽑아들더니 화면에 이것저것 그리기 시작한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글씨도 쓰고 사진도 찍어 금세 편집한다. 이것저것 빠르게 펜을 사용해 작업하는 그 모양새가 아주 편리해 보인다. 옆에 노트북이며 전화기를 부산하게 들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교차편집되며 제품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이 장면은 삼성 갤럭시 노트 해외판 CF를 요악한 것으로 갤럭시 노트의 강점을 보여준다. 펜을 사용한다는 것. 다양한 작업을 빠르게 수행한다는 것. 필기는 물론 그림까지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는 것. S-Pen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gadget] S-Pen보단 5.3인치 대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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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시절의 켄 러셀> Ken Russell at the BBC(1962~1968)
감독 켄 러셀
상영시간 409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영어
자막 영어 / 출시사 BBC비디오 & 워너(미국, 3장)
화질 ★★★ / 음질 ★★★ / 부록 ★★★★
BFI의 내년 초 DVD 라인업에는 켄 러셀의 <악령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에서 X등급을 받은 오리지널 버전을 수록한 이 DVD는 부록으로 제작다큐멘터리, 단편영화 및 음성해설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DVD가 나오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악령들>은 지금껏 공식적으로 DVD화되지 않았다(외국 온라인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DVD는 조악한 화질의 불법복제물이다). 영국영화 역사상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를 드디어 DVD로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러셀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무용수를 꿈꾸다 군인과 사진가를 거쳐 영화에 발을 들어놓으며
[DVD] ‘지적인 괴물’을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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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짓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한 단어로, 혹은 몇개 단어의 조합으로, 혹은 한 문장으로 전체를 표현해야 한다. 쉬울 리 없다. 글을 다 써놓고 제목 때문에 끙끙댈 때도 많고,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아예 글을 시작하지 못할 때도 많다. 자신의 작품에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을 찾아낸 사람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그 사람들도 제목을 찾아내느라 나처럼 고생했겠지. 수백개의 후보를 떠올렸다가 하나씩 제외하는 과정을 반복했겠지.
제목을 짓는 일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전 <한겨레21> <씨네21> 편집장) 고경태 선배가 그랬다. 어떤 글을 쓰든 제목부터 먼저 만들어두는 버릇이 있었지만 한겨레에서 고경태 선배와 일할 때 그 버릇이 사라졌다. 고경태 선배는 내가 쓴 기사를 꼼꼼하게 한번 읽고는 곧바로 제목을 달았는데, 대부분의 제목은 섹시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읽혔고, 서너 가지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으며, 기사의 내용을 관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그래, 상상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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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한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1월30일
11월의 마지막 날에 어울리는 영화다. 어제의 <아리랑>에 이어 김기덕 감독의 <아멘>을 보러 갔다. 한날 동시상영으로 시사회를 진행하지 않은 주최쪽 결정은 본의와 무관하게 <아리랑>과 <아멘> 사이에 모종의 추측과 기대를 형성하는 24시간의 막간휴식(intermission)을 끼워넣었다. 창작의 벽에 부딪힌 예술가가 본인의 내장에 손을 집어넣어 병소(病巢)를 헤집는 듯한 <아리랑>을 먼저 본 관객이라면, 직후 만들어진 극영화 <아멘>에 대해 공유하는 밑그림이 있을 법하다. 즉, 살풀이 같은 <아리랑>을 통해 김기덕 감독이 3년 동안 뭉쳐 있던 정신적 울혈을 해소하고,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궤도에 발을 들였으리라는 희망 섞인 예상. 그러나 내게 <아멘>은 여전히 <아리랑>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였다. 아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독에 관한 두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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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뜨고 진다. <어글리 베티>가 한참 인기있을 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라틴계 여배우로 샐마 헤이엑이 꼽혔다. 그렇다면 지금은? 시트콤 <모던 패밀리>의 소피아 베르가라다. 콜롬비아 출신인 베르가라는, <모던 패밀리>에서 아버지뻘인 제이 프리쳇의 콜롬비아인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중·장년층 남자가 트로피처럼 얻은 젊고 예쁜 아내) 글로리아로 출연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모던 패밀리>는 여피족 부모와 제멋대로인 아이들로 구성된 핵가족, 게이 부부가 중국 아기를 입양해서 기르는 대안가족, 재혼으로 만난 다문화가족 등 전통적인 가족의 정의와 다른 형태의 가족이 모여 가족간의 사랑, 우애, 신뢰 등 공감의 폭이 넓은 소재를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ABC>의 인기 TV시리즈다.
성인배우에서부터 아역배우까지 하나같이 사랑스러운 이 프리쳇 가족의 구성원은 출중한 한 사람을
[안현진의 미드앤더피플] 당당함은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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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와 상관없이 오로지 배우의 비주얼에 혹할 될 때가 자주 아, 아니 가∼끔 있다. 올해 나에게 그랬던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적과의 동침>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웰컴 투 동막골>의 코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지적인 인민군 장교 역의 김주혁은 군복 피트(fit)가 딱 떨어지는 늘씬한 체격에 피로마저 감미로워 보이는 눈가의 그늘, ‘댄디’라는 단어 외에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로 두 시간 내내 나를 홀렸다. 대학생 때 영화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그를 실제로 본 뒤 “그렇게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며 찬사를 늘어놓던 심정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티가 그려진 분홍 손거울을 들고 면도를 하는 김주혁의 날렵한 턱선 사진으로 홍보를 시작했던 tvN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이하 <SNL 코리아>)에 대한 기대는 그와 별개의 문제였다. 내털리 포트먼
[최지은의 TVIEW] 김주혁 때문에 죽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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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희 감독의 <하얀 정글>은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본업이 의사인 감독이 사명감을 갖고 만든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야박하지만 그렇더라도 할 수 없다. 뭔가 만들다 만 듯한 미진함이 남는다. 좀더 경쾌하게 갈 것인가, 직설적으로 돌파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망설이면서 세련된 완성도를 보여주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갈등하는 창작자의 곤혹스러움이 덜커덩거리는 구성을 피해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얀 정글>에 찍힌 현실에 따르면 환자를 치료 상대가 아니라 돈벌이의 도구로 대하는 의사나 간호사, 병원 직원들은 매일매일 지속적으로 성과주의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당일의 환자, 내원환자 수를 통고하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월별 수익통계를 데이터화해 의사들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병원의 영리지향 경영시스템이 의사와 환자를 모두 돈벌이의 도구로 내몬다. 수익에 따라
[김영진의 인디라마] 대중의 의식엔 칼을 대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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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는 모사적인 재현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反)전통적인 색채가 부각된 다큐멘터리다. 텍스트의 내적 구조는 정교하게 여러 겹을 이루고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보편적인 취향의 관객에게는 다소 난삽하거나 생경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노동’이라는 의제를 다룬 여느 영화들과 달리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선동적이지 않고 명상적일 뿐 아니라 이미 주어진 대상에서 이야기와 의미가 파생되는 다큐멘터리의 전형으로부터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사실의 채록이나 명시, 그에 대한 유, 무형의 논평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소임에 연연치 않으면서 이미지의 본성에 관해 문답하려는 야심은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의 점이지대를 서성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미학이 영화의 신비를 앗아가려 한다는 듯 감독 이강현은 사물이나 현상을 명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대하는 작자의 태도를 드러내거나 제각각으로 분리된 현상들을 쉽사리 논리가 서지 않는 모호한 체계로 묶어냄으로써 다른 각도에서 재구
[전영객잔] 이미지의 힘을 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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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장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1980년대 초반 서울 강북 지역을 촬영한 것이다. 둘째, 당시 건축과 사진을 막 배우기 시작했던 내가 찍었다. 셋째, 이 사진에 등장하는 건물들, 즉 안암동 일대의 한옥과 혜화동 언덕길의 계단, 그리고 대학로의 벽돌 건물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다. 물리적 실체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나 그 이미지를 담은 사진은 남았다.
필멸하는 존재인 인간이 불멸을 꿈꿀 때 하는 것 중 하나가 건축이다. 나만 해도 누군가를 만나 건축가라고 하면 대부분 “좋으시겠어요. 남으니까요”라고 이야기한다. 자기의 흔적이 남는 것이 정말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건축이 실제로 오래가기는 할까? 간단히 말하자면 건축의 물리적인 수명 자체는 엄청나게 길다. 수천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건축물이 지구상에 아주 많다. 물론 그중 상당수가 유적이지만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되지 않고 사람의 손길이 계속 미쳤더라면 상태가 훨씬 더 좋을
[architecture+] 영속성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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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이 음반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미발표곡과 오리지널 레코딩 버전이 섞여 있는 일종의 편집 음반이다. 당연히 정규 앨범의 구성이나 완성도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추모하기에 부족함은 없다. 그 특유의 목소리, 그가 들려줬던 빈티지한 소리들. 즐기자. 그게 그를 기리는 방식일 것이다.
이민희 /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에바 캐시디가 떠올랐다. 살아서 고민하고 설레고 걱정하는 시간을 거친 생생한 노래가 아니라 해도, 타고난 목소리와 표현 능력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녀의 유작은 일러주었다. 와인하우스도 다르지 않다. 세상이 감탄했거나 시기했던 목소리, 그리고 그 재능을 사랑했던 여러 프로듀서들, 흑백영화를 보는 듯 낭만적인 과거 지향의 연출 등등 그녀가 지금 없다는 것 말고는 아쉬움없는 음악이다. 물론 가장 아쉬운 것이 그것이지만.
최민우 / 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장 ★★★
‘미처 다
[hottracks]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