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장소로 들어선 그의 얼굴이 여전히 개구지다. 항상 웃음기가 어린 얼굴은 10여년 전 데뷔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천진하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얼마간 차분하고 복잡한 뉘앙스가 더해졌다. 스물의 잔상이 남은 서른의 얼굴, 소년의 잔상이 남은 남자의 얼굴이다. ‘소년이 남자가 되다.’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남자배우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반드시 한번쯤 듣게 되는 말이다. 그래서 그만큼 닳은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의 맛>의 윤철로 돌아온 배우 온주완의 변곡점을 이야기하자니 그만한 관용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입대 전 그는 방황하는 10대의 초상이었다. 출발선에는 <발레교습소>의 백댄서 지망생 이창섭이나 <태풍태양>의 인라인 스케이터 쨍이 있었다. 두 영화에서 그는 높은 하늘 위로 두둥실 떠가는 꿈을 올려다보며 때로는 세상을 때로는 자신을 원망하는 새파란 젊음을 연기했다. <피터팬의 공식>의 수영선수 김한수의 사정은 좀더
[온주완] 소년, 남자가 되다
-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지난 앨범부터 변화의 조짐이 있긴 했다. 이제 당분간 노라 존스를 재즈 가수라 말할 일은 없을 것 같다. 4집은 새 프로듀서 데인저 마우스와 함께 자신의 본질을 완전히 바꾸는 앨범이다. 전자음에 갑자기 의탁하는 것으로, 맑은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바꾸는 것으로, 그리고 후반에는 완연한 인디록의 옷을 입는 것으로 그녀는 이력의 극단을 향한다. 이쯤이면 잔잔한 버전의 마돈나라 말해도 될까.
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데인저 마우스는 지난해 <Rome>이란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데인저 마우스는 노라 존스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두 앨범 사이의 연결고리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서부영화 사운드트랙이라 소개됐던 <Rome>처럼 <Little Broken Hearts> 역시 복고적인 기운을 품고 묘하게 뒤틀린 정서를 드러낸다. 그 와중에도 노라 존스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매혹은 여전하다.
[MUSIC] 잔잔한 버전의 마돈나
-
기간: 8월26일까지
장소: 덕수궁미술관
문의: 02-2022-0600
“누구냐. 정지.” 돌연 거리를 차단하고 있던 치안대원이 지나가던 사내의 발걸음을 막아 세운다. 사내는 놀란 듯 우뚝 선다. “누구냐.” “지나가던 취객이오.” 소설가 최인호는 1974년 6월5일자 한국일보 칼럼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에서 화가 이인성의 죽음을 이렇게 회고했다. “예술가가 무슨 특권이 있다고 통행금지 이후에 다닐 수 있담 하고 따지지 말라. 이인성의 그림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천재의 재능을 엿보게 한다.” 1912년에 태어난 이인성은 1950년 순경과 다투다 오발탄 사고로 요절했다.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림이 남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린다.
박수근이나 이중섭처럼 딱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없지만 당대 이인성은 조선미술전람회의 입선과 특선을 오가는 내로라하는 작가였다. 한국적인 풍토를 잘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작품들에서는 오히려 묘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전시] 잊힌 천재를 다시 만나다
-
기간: 6월24일까지
장소: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
문의: www.arariogallery.com
2008년 록밴드 ‘킨’(Keane)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던 작가 권오상. 미술사를 전공한 보컬 톰 채플린이 개인전을 본 뒤 그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작가는 자신이 발굴해낸 ‘사진 조각’ 기법을 앨범 재킷 디자인에서도 놓지 않았다. 밴드 멤버들의 실물 사진을 찍고 그 조각 조각의 사진들로 실물 크기의 조각을 만드는 방법. 사진 이미지를 이어붙여 하나의 콜라주-입체를 만드는 권오상만의 방식은 작가 스스로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냄새를 없애고 산뜻한 향을 내는 ‘데오도란트’는 사랑하는 이의 그림자를 남기기 위해 또 부재의 슬픔을 방지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 오늘날 찾아낸 새로운 존재 방식이라 할 만하다. 조소과 친구들에 비해 몸에 근육이 덜했던 권오상은 ‘조각은 왜 가벼울 수 없을까’를 고민했던 20대 초반의 ‘미대
[전시] 사진, 조각이 되다
-
-
“오늘날 한국인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잠깐, 정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인이 한 말도 아니다. 프랑스의 파리 정치대학과 파리 공립경영대학원 MBA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프레데릭 마르텔이 쓴 <메인스트림>은 오늘날 국경을 넘어 소비되는 수많은 문화 ‘상품’, 하나같이 ‘미국과 같은’ 메인스트림 문화를 만들고자 애쓰는 이들에 관한 방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미국 할리우드의 사례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해 발리우드로, 아프리카로, 그리고 아랍세계의 메인스트림으로 등극한 알자지라로 확장되는 화두 그 자체다. 한국은 여기서 한류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성공사례를 통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들여다본다. 566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한국이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대목은 20여쪽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성공 전략과 스크린쿼터는 제3자의 눈으로 분석된다. 예컨대 놀랄 정도로 젊은 배우들에 대한 경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지만 스크린쿼터 축소의 내막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문화로 밥벌이하는 이에게 권함
-
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음악 용어다. 권여선이 15년 만에 내놓은 장편 <레가토>는 사라진 여자 오정연에 대한 기억을 찾고자 과거 30여년의 이야기를 쉼없이 이어간다. 이야기는 1980년 광주항쟁 때 돌연 자취를 감춘 오정연의 행방을 그녀의 동생 하연이 30년이 지난 뒤에야 좇으며 시작된다. 그녀의 행방에 대한 첫 단서는 오정연이 사라졌던 30여년 전 존재했던 전통연구회 서클 카타콤에 있다. 표면적으론 전통연구회이지만 독재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모였던 그곳에 주인공 박인하와 사라진 여자 오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뒤 당시 서클의 회장이던 박인하는 의원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선후배들도 모두 한자리씩 하며 옛 기억은 그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하연이 등장해 오정연에 대한 수소문을 하면서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맞춰보기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이 맞춰본 기억의 조각들은 ‘레가토’란 용어처럼 부드럽게 이어지
[도서] 아팠던 시간을 위한 위로
-
[올드독의 영화노트] <멜랑콜리아> 삶에 대한 기대 혹은 미련
[올드독의 영화노트] <멜랑콜리아> 삶에 대한 기대 혹은 미련
-
파이판(派飯)은 농가로 내려온 간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뜻하는 중국어다. 영화의 배경인 중국 쓰촨성에 위치한 도석촌은 파이판을 의무가 아닌 이웃간의 정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주민들의 관심사는 30년간 도석촌에 머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 선생(이바오안)이 오늘은 어느 집에서 끼니를 해결할지에 쏠려 있다. 어느 날 중국 정부는 파이판이 농가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대신 장 선생의 식사를 책임질 조리사(런린)를 파견한다. 장 선생의 끼니를 챙겨주는 것이 삶의 기쁨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조리사를 무시한다. 도석촌에 살고 있는 소청의 어머니와 재혼할 목적으로 파견을 자청한 조리사는 마을 사람들의 홀대에 속상해하지만 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한편 3년만 시골학교에 머무르면 도시 취업이 보장된다는 말에 한 선생(한후이량)이 도석촌에 내려온다. 한 선생은 따분한 생활에 쉽게 마을과 아이들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엄마가 조리사와 재혼하면 자신을
소박함의 맛을 지키다 <파이판>
-
여기 부안의 모항에 도착한 프랑스 여자 안느(이자벨 위페르)로부터 시작되는 세편의 단편영화가 있다. 첫 번째의 파란 안느는 유명한 감독이고, 두 번째의 빨간 안느는 한국 감독과 몰래 사귀고 있는 유부녀고, 세 번째의 초록 안느는 한국 여자에게 남편을 뺏긴 이혼녀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채 원주(정유미)의 펜션에 머물고 있는 그녀들은 매번 비슷한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원주에게 우산을 빌리고, 등대를 찾아 해변으로 나가고, 날이 맑으나 궂으나 수영 중인 안전요원(유준상)을 만나 불통이지만 경쾌한 대화를 나눈다. 그 세 가지 조화를 열고 닫는 것은 원주다. 보증을 잘못 선 엄마와 모항에 피신 와 있던 그녀는 “무료하고 불안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 안에서 모항이라는 공간과 많지 않은 사람들과 크지 않은 사건들을 통과해 안느는 이제껏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떠나게 된다.
설긴 줄거리로 <다른나라에서>를 소개하자니 허망하다. 때로는 꿈이 영화를 포함하
가보지 않은 곳 <다른나라에서>
-
“보고 싶은 엄마에게”로 시작하는 영민의 내레이션이 깔리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혼자 물에 밥 말아먹는 엄마 화정(장시원)의 모습이 비친다. 설을 맞아 화정의 자식들이 모두 친정집에 모인다. 제일 먼저 도착한 건 셋째아들 영민의 부인과 두명의 손자. 이어 화정의 세딸들이 남편과 자식을 대동하고 속속 집에 도착한다. 정성스레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윷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그러나 집안의 장남 영민의 부재는 이들에게 갈등과 오해와 상처를 남긴다.
<엄마에게>는 극영화지만, 종종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가족간의 미묘한 위계, 설날 풍경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그렇다. 차례를 지내며 장손주에게 술 따르는 법을 재차 확인시키는 할아버지, 고스톱 판을 벌이며 점 100이냐, 점 200이냐 결정하는 남자들, 부엌에서 자식들 싸줄 음식을 챙기는 엄마, 세뱃돈이 오가는 모습 등이 놀랍도록 꼼꼼하게 지점들을 굳이 꿋꿋이 묘사하는 이유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에게>
-
언젠가 팀 버튼이 동화를 차용해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백설공주>가 아닐까 내심 생각해왔다.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처럼 붉은 입술,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지닌 백설공주는 팀 버튼이 사랑해 마지않는 창백한 미녀이고, 기묘한 일곱 난쟁이가 살고 있는 숲은 팀 버튼 세계의 원천인 고딕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공간이라 여겨졌다.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루퍼트 샌더스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그림 형제 동화의 어둡고 잔혹한 에너지를 만끽하고 싶었던 관객의 기대감을 얼마간 충족시키는 작품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백설공주>를 계승한 수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덧씌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선택한 장르는 ‘역사 판타지’다. 왕비(샤를리즈 테론)가 허름한 마차에 일부러 갇혀 있다가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음 왕국의 습격을 명하는 장면은 트로이 전투를 연상케 하고,
그림 형제 동화의 잔혹한 에너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
의욕은 넘치나 경험 부족으로 요령이 없고,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신참 요원. 신태라 감독의 전작 <7급 공무원>(2008)의 주인공 재준(강지환) 말이다. <7급 공무원>의 웃음포인트 중 하나는 재준이 국가정보원 요원과 어울리지 않는 실수를 연발할 때였다. <차형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하나는 이번에도 주인공 차철수(강지환) 형사 캐릭터에 기댄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캐릭터와 이야기만 다를 뿐 <7급 공무원>의 이야기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형사> 역시 영화의 초반부에는 캐릭터로 웃음을 유발하다가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를 형성한 뒤, 영화의 마지막에 임무를 완수하고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더러워도 이렇게 더러울 수가 없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까 싶은 D라인 몸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도전! 슈퍼모델’ <차형사>
-
“이 동영상은 끝까지 봐야 한다.” ‘미확인 동영상’이 재생되면 뜨는 문구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건 동영상의 내용이 아니다. 동영상을 끝까지 보라는 말에는 곧 동영상이 끝나는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세희(박보영)는 동생 정미(강별)와 단둘이 산다. 부모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세희는 고3 수험생 정미가 공부는 하지 않고 인터넷에 동영상 올리는 일에만 열중하는 게 영 마뜩지 않다. 한편 세희의 남자친구 준혁(주원)은 사이버수사대에서 일한다. 사소한 문제로 세희와 사이가 멀어진 준혁은 세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동생 정미를 만난다. 정미는 언니와의 관계 회복에 협조하는 대신 일종의 ‘거래’를 제안하고, 준혁은 폐쇄된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다운받아 정미에게 넘긴다. 준혁이 건넨 동영상에는 한 소녀가 인형을 통해 저주를 거는 강령술 장면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영상은 재생될 때마다 새로운 영상으로 변한다. 정미는 동영상을 열어본 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점점 미
마녀사냥에 대한 경고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기념비적인 대사를 던지던 순간, 몇몇 관객은 철없는 질문이라는 듯 코웃음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사랑은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처럼 쉬이 변한다. 수많은 멜로영화들이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변해가는 사랑을 탐구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그 뒤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디즈니의 고전 만화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블루 발렌타인> 역시 봄날이 가는 이야기다. 신디(미셸 윌리엄스)와 딘(라이언 고슬링)은 부부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지만 불꽃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다. 관계의 종말을 직감한 딘은 억지로 신디를 데리고 교외의 모텔로 간다. 마치 1970년대 텔레비전용 SF시리즈의 싸구려 세트처럼 생긴 모텔 방의 이름은 ‘미래’다.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란 그토록 보잘것이 없다.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은 봄날이 가는 과정 사이
봄날이 가는 이야기 <블루 발렌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