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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올해의 과대평가 한국영화
퇴행적 운명론과 신자유주의 이념 잔치
<써니>는 여성들이 추억을 통해 개인사를 복원하고, 우정의 연대를 확인하는 영화인 양 소개되었다. 그러나 <써니>가 말하는 건 퇴행적 운명론과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게다가 거대사와 미시사를 괴상하게 접합해 여성을 탈역사적 존재로 고정하고 거대사를 조롱한다.
<써니>는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 말한다. 그러나 ‘역사’란 단순한 사연이 아니라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 영화는 이들이 어떤 주체적 투쟁으로 개인의 역사를 발전시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춘화는 어떤 투쟁으로 자본가가 되었는지 역사가 괄호쳐져 있다. 나미가 중산층 아줌마가 된 것 또한 남편의 운발(“김서방이 이리 잘될 줄 알았니?”) 덕분이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결국 <써니>가 말하는 건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퇴행적 운명론이다. <써니>
올해의 과대·과소 평가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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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1. <북촌방향>
공간과 시간과 기억의 기묘한 체험
<북촌방향>이 올해의 영화 1위다. 압도적인 표차였다. 3분의 2에 가까운 필진이 <북촌방향>을 1위에 올리는 진기록이 세워졌고 그로써 2위에 오른 영화와의 격차도 유례없이 컸다.
문득 북촌에 불시착한 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 그의 불명료하며 정의하기 힘든 이 여행은 놀랄 만큼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안겨주었고 그에 상응하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근거는 여러 갈래다. 혹자는 “패턴에 대한 강박과 패턴화로부터 탈주하려는 해체의 에너지가 한몸을 이룬 기묘한 텍스트”(장병원)라고 구조적 가능성을 해명했다. “서울 강북에 애정을 혹은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창호)라고 말할 때에는 이 영화에 담긴 공간과 시간과 기억의 기묘한 접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과 기억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축적되는 축과 매번 원점으로 돌아가는 축, 둘의 엇갈림이 팽팽하고 아름
홍상수의 압도적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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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씨네21>의 한해 마무리는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을 선정하는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씨네21> 기자와 평론가 33명이 참여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베스트5를 각각 선정했고 2011년을 빛낸 한국영화계의 감독, 남녀 주연배우, 제작자, 촬영감독, 시나리오, 남녀 신인배우, 신인감독도 뽑았다. 예년에 비해 달라진 점도 있다. 올해는 한국과 외국영화 모두에 과대, 과소평가 부문을 신설했고 해당 작품의 비판 및 지지자들의 촌철살인 촌평을 실었다. 한편, 15명의 감독 및 프로듀서들에게 ‘올해 당신의 영화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목록도 함께 실었다. 2011년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을 여기 소개한다. <씨네21>이 보내드리는 정성스러운 송년 인사다.
2011 BEST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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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그림으로 유명한 파리의 ‘생라자르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여를 가면 프랑스의 항구 도시 ‘르 아브르’에 도착할 수 있다. 모네는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때문에 훗날 파리에서 화가로 생활하면서도 자주 그곳에 들러 그림을 그렸다. 이 위대한 화가가 남긴 바닷가 풍경의 대부분은 그래서, 영화 <르 아브르>의 배경과 같은 곳이다. 다양한 그림 속에서 그 거대한 항구는 파도에 반사된 공기가 내뿜는 황혼의 빛(Lights in the Dusk)을 담은 곳으로 간직돼 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최신작 <르 아브르>에서 기존의 연출방식인 ‘최소한의 동선과 미니멀한 몽타주, 간소화된 대사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최대한의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고수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마르셀’이다. 그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꽤 명성있는 보헤미안이었는데, 지금은 르 아브르에 정착해서 기차역이나 성당 등지에서 구두를 닦으며 지낸다. 딱히 수지가
[영화읽기] 노블레스를 전제한, 모든 사람을 향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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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빗 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2월7일
<래빗 홀>의 베카(니콜 키드먼)와 남편 하위(아론 에크하트)는 8개월 전 네살배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집에서 기르는 개를 따라 차도로 갑자기 뛰어든 꼬마를 10대 운전자가 미처 피하지 못했다. 멱살 잡고 원망할 가해자가 없으니 <래빗 홀>은 복수극이 될 수 없다. 남은 길은 하나, 지긋지긋한 내출혈의 기록이다. 엄마가 돼본 적 없는 내가 감히 아는 척할 수 없지만, 네살짜리 아이가 남길 수 있는 나쁜 기억이 무엇이 있으랴. 잠시 강림했던 날아간 천사로 영원히 남을 뿐.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핸드 드립 커피를 거르듯 <래빗 홀>의 비탄을 진하게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뜨린다. 관객이 죽은 아이의 성별과 사인을 알게 되는 것도 영화가 한참 흘러간 다음이다. 극중 부부도, 영화도 한방에 이루어지는 치유는 언감생심 바라지 않는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 둘은 재활을 계획한다. 딱 한뼘씩. 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나와의 작은(그러나 공개적인)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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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리 스트라우브와 고(故) 다니엘 위예(1936~2006)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종종 이들에게서 영화사상 희유의 미학적 순수주의자의 모습을 끌어내곤 하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는 좀 따져볼 일이지만, 뺄셈밖에는 알지 못하는 순수에의 열정(미니멀리즘)이 이들의 영화와 무관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위예 사후 최근 3년간 스트라우브가 독자적으로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지지자들을 당혹게 할 장치들- 그 자체로는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새로울 바 없지만 기왕의 스트라우브-위예적 형식에 이례적으로 삽입, 조율됨으로써 낯설고 새로운 효과를 얻게 된- 이 적잖이 눈에 띈다.
16mm나 35mm 필름이 아닌 비디오로 촬영된 두편의 스트라우브 영화(<조아생 가티>와 <코르네유-브레히트>)가 처음 발표된 2009년 당시만 해도 이것이 그의 ‘비디오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되리라고는 단정내리기 힘들었고 <조아생 가티>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필름의 연장선에서 비디오 작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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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과 패러독스’(1981)라는 료타르의 짧은 에세이를 읽었다. 거기서 그는 ‘포스트모던’을 하나의 시대(‘모더니즘 이후’)로 보는 대신에 그것을 하나의 정서, 혹은 정신의 상태로 규정한다. 지난 20년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포스트’ 담론의 홍수를 통해 우리는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잘 안다. 정서, 혹은 정신으로서 포스트모던이란 근대의 신앙, 이른바 근대의 ‘거대서사’(grand recit)를 더이상 믿지 않는 깊은 불신의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서사의 죽음
근대라는 시기에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인류의 해방’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이 오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근대라는 시대에 독일의 관념철학은 ‘정신의 실현’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정신적 수준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떤 면에서 활자매체로부터 멀어지는 이 시대에 사회의 교양수준은 차라리 책을 읽던 시대보다 후퇴한 느낌이다.
[진중권의 아이콘] 언어의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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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는 초반과 끝 장면이 맞물려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샬림이 이제 더이상 촬영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는 데서 시작한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샬림의 인력거꾼으로서의 삶의 연대기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 다음 초반부에 보여준 그 시점에 다다른다. 아내와 아이들이 병을 앓으면서 삼륜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이 줄어들자 샬림은 절망한다. 자신의 꿈이 사라지고 있노라고 울먹이던 그는 더이상 자기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카메라를 거부한다. 그 장면에서 갑자기 감독 이성규가 카메라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는 파국에 이른 촬영현장에서, 카메라 앞에서 샬림에게 영어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 시작한다. 거듭 사과하며 샬림을 껴안는다.
3세계를 바라보는 인습적인 시선 벗어나
연출자가 카메라 앞에 나서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연출자가 화자가 되는 일도 흔하고 종종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인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김영진의 인디라마] 노동의 당당함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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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은 <퇴마록>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도록 한 동력을 제공한 것은 강제규였다. 이제 강제규는 <마이웨이>를 통해 자신이 가능하게 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종식을 알리면서 ‘아시안 블록버스터’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일종의 소비의 판타지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많은 기술적 한계를 노출함에도 불구하고 ‘한국형’이라는 기표는 이러한 미비함을 은폐한 채 우리가 할리우드 못지않다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열악함이 자부심으로 변형되는 기이한 마술쇼의 정점을 보여준 것은 <디 워>였다. 이러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형이라는 기표에 표면적으로 부합할 수 있는 소재가 필요했고, 그것이 많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한국의 역사에서 소재를 빌려온 이유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몸집을 불려야 하는 블록버스터의 특성은 이제 한국형이라는 기표를 폐기하려 한다. 아시
[전영객잔] 경계 지워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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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시가이드: 수시 1차에서 30%, 수시 2차에서 30%의 학생을 선발하고 정시에서 40%를 선발한다. 정시에서는 영상예술계열과 방송예술계열에서 수능 10% + 학생부 10% + 서류 20%+면접 60%를 반영하며 이중 아나운서/리포터/보도진행학과와 방송연기학과는 서류 대신 실기 40% + 면접 40%를 반영한다.
“방송영상분야는 우리가 접수한다!”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이 야심차게 미디어 교육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은 “실천하는 예술교육과 준비된 방송예술 인재를 만드는 곳”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예술교육의 실천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은 이론교육에 앞서 작품을 직접 만들고 구상하는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은 듯하다. 2012년 들어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은 ‘방송계의 마피아’를 자처하며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혁신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영상예술계열의 정동진 학부장은 “교과서적이고 정석적인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방송계의 ‘마피아 군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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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가이드: 정시전형_방송연예과는 학생부 20% + 실기 80%, 방송영상미디어과는 학생부 50% + 수능 50%를 반영한다. 방송연예과 실기는 3분 이내의 자유연기와 지정된 주제의 즉흥연기를 본다.
1호선 월계역에서 내려 그다지 넓지 않은 길을 잠시 구불구불 걷다보면 고등학교와 인접한 인덕대학교가 나온다. 몇년 전 인덕대학교에 가본 기억이 있어 익숙한 걸음으로 캠퍼스에 들어섰다. 학교까지의 좁은 골목과 아담한 캠퍼스가 친숙하게 다가왔던 그때의 기억이 무색하게 2011년 인덕대학교의 교정은 시야가 확 트일 정도로 널찍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올해 완공된 학생 광장 연지스퀘어를 거니는 학생들의 표정도 연지스퀘어의 새파란 잔디만큼이나 밝아 보인다. 연면적 약 1만8676㎡ 규모의 연지스퀘어는 클린캠퍼스를 구축한다는 기치 아래 협소한 주차공간 문제를 해소하고, 학생들의 쾌적한 교육환경을 위해 지상 운동장과 지하 2층으로 조성됐다. 지상에는 인조잔디구장, 족구장, 농구장
[인덕대학교] 현장에서 돋보이는 인재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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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성근이 영화를 연출한다. 정치영화다. 제목은 ‘혁신과 통합’. 직접 출연도 할 계획이다. 새해 1월15일에 있을 민주통합당 대표를 뽑는 오디션에도 뛰어들었다. 이쯤하면 뭔 소린지 눈치챌 것이다. 지난해 9월, 문성근은 “배우 안 해도 좋다”면서 시민들이 중심이 된 ‘국민의 명령’ 운동을 시작했다.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재집권을 저지하려면 진보진영이 힘을 합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기존의 낡은 정치 구조 대신 시민의 역량을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정치인 문성근이라고 부르긴 어려웠다. 시민의 권리를 되찾아오겠다는, 열혈 시민의 정당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흘렀다. 대선이 꼭 1년 남은 12월19일, 문성근은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인사들로 구성된 시민통합당이 뭉친) 민주통합당 당 대표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 명령’의 대표로, ‘통합과 혁신’의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도 짬짬
[문성근] "통합보다 혁신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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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몬스터 섬의 비밀 3D>(이하 <프렌즈>)는 할리우드가 독식하고 있는 3D애니메이션 시장에 던진 일본 애니메이션의 도전장이다. 일본의 독자적인 기술로 완성한 <프렌즈>의 3D효과는 기존의 3D애니메이션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 일본의 동화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를 원작으로 하는 <프렌즈>는 형과 함께 어머니의 약값으로 쓸 버섯을 구하기 위해 몬스터 섬에 들어간 코타케가 몬스터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형은 가까스로 마을로 돌아가지만 코타케는 홀로 섬에 남아 몬스터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괴팍한 성격으로 다른 몬스터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니키가 코타케를 맡게 되면서 니키와 코타케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기존 애니메이션과의 경쟁을 의식한 듯 보이는 부제와 다르게 <프렌즈>는 사실 소심한 몬스터 니키와 대담한 꼬마 코타케의 따뜻한 우정을 그리는 애니메이션이다. 겉모습도 성격도 다르지만 버섯 하나를 나
일본 3D애니메이션의 훗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프렌즈: 몬스터 섬의 비밀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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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베렌 파브라)는 15살 때 경험한 첫 섹스를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발레리는 상대를 바꿔가며 첫 경험보다 더한 육체의 황홀을 고대한다. 발레리는 자신의 파트너들에게 새 연인이 생겨도 개의치 않는다. 사랑은 필요없고, 섹스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섹스에만 집착한다는 불평을 남기고 하나둘 곁을 떠나자, 발레리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거리에서 충동적인 섹스를 시도한다. 동시에 발레리는 자신이 섹스 중독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발레리는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 마리에(제랄딘 채플린)의 죽음 이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나 하이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를 만나 조금씩 위안을 얻는다. 하이메와 헤어지고 얼마 뒤, 발레리는 스스로 창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페인 출신 크리스티안 몰리나 감독이 연출한 <S 중독자의 고백>은 신음으로 가득한 비밀일기다. 7분 동안의 오프닝을 포함해 셀 수 없이 많은 섹스장면이 등장한다. 결혼을 하든가, 몸을 팔든가 똑같
신음으로 가득한 비밀일기 <S 중독자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