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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관한 아주 악랄한 사건은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벌어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경험은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 투표장에서 겪었다. 선거일 3일 전에 사퇴한 심상정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버젓이 들어 있었던 건 후보자의 갑작스런 사퇴로 인쇄물을 변경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고 싶다. 그런데 투표소 입구 저 귀퉁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A4 정도 되는 작은 종이 한장으로 심상정의 사퇴 공지문이 붙어 있었던 것도, 잘 보이는 곳에 공지문을 붙이기 어려웠고 큰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그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무효표는 예년에 비해 3.6배인 18만표가 나왔다고 한다.
영화 <스윙보트>에서는 반대의 풍경이 벌어진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 과정 중 기계의 오작동이 일어나고 재투표를 해야 할 투표자가 발생한다. 뉴멕시코주에 사는 거의 반건달에 가까운 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즈음 선거결과는 박빙으로 치닫
당선, 그 이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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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몇분 동안 두 사람은 격렬하게 다투었다. 여자는 얼굴이 벌게진 채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팔을 휘저으며 남자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남자는 한손을 여자의 어깨에 올리고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몸짓은 여자를 더욱 화나게 할 뿐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드잡이를 그만두고 각자의 비행기로 돌아갔다.”(존 하일먼?마크 핼퍼린, <게임 체인지>, 245쪽) 연애소설의 한 대목이라고 해도 속을 것 같다. 2007년 12월,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공항의 활주로 위에서 낯뜨거운 사랑(?) 싸움을 연출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힐러리 로뎀 클린턴이었다. 당시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출사표를 던진 양쪽 진영은 레이스 시작 전부터 한치의 물러섬 없이 으르렁거렸다. 힐러리에게 오바마는 풋내기였고, 오바마에게 힐러리는 늙다리였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네거티브 공습이 연일 계속됐으며, 급기야 위에서 말한 전대미문의 해프닝
정치는 전쟁이자 롤러코스터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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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키워드는 단연, 대선이다. 한쪽에선 바꿔야 산다고 하고, 또 한쪽에선 바뀌면 죽는다고 한다. ‘정치는 트렌드’라는 말까지 사방에서 수시로 튀어나온다. 3월22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한 4?11 총선은 누가 봐도 연말 대선의 전초전이다. 여야 모두 백척간두에 섰다. 봄에 밀려나면, 앞으로는 쭉 겨울이다. 언제 봄이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다. 어쩌면 여의도 꽃은 더 빨리 필지도 모르겠다. 벼랑 끝에 선 정치인들의 비명에 놀라서 말이다. 절호의 기회를 잡았거나 비명횡사했거나 집에서 도망쳐나가 딴살림을 차렸거나 상관없다. 여의도는 지금, 절박함으로 가득하다. 여론 향배에 따라 정치인들의 심박수도 요동치고 있다. 여의도가 뛴다고 충무로까지 덜컹거리진 않는다. 하지만 2012년은 다르다. 여의도의 소란에 충무로도 조금씩 들썩인다. 조지 클루니의 4번째 연출작이자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킹메이커>(4월19일 개봉)도 서둘러 개봉한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여의도에 바람이 분다. 권력이 가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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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용주 감독으로부터 <건축학개론>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불신지옥> 이후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던 그는 동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내 의견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절박했다. “이 영화를 해야 다음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건 그가 큰 산에 봉착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첫 작품으로 평단의 관심을 얻었지만 당시 그는 고작 관객 25만명을 동원한 신인감독이었고, 해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상업적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당시 내가 어줍잖은 시선으로 우려했던 지점은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건축학개론>은 그가 거의 10년을 매달린 프로젝트였고, 주변의 만류엔 이미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수정고 파일만 몇 백개가 존재하는 <건축학개론>은 그에게 결코 놓을 수 없는 첫사랑이었다. 그는 내 의견을 새겨듣겠다고 했지만 몇달간 시나리오 작업 끝에 완성된 최종고
[이용주] “스무살의 나에 대한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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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렌스의 상대역인 조시 허처슨과 리암 헴스워스는 입을 모아 “제니퍼는 이상하다”며 킬킬거렸다.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 괴상한 한마디를 던져 상대방을 공황상태로 만들고는 자기는 아무렇지 않게 연기만 잘한다는 거다. “제니퍼는 머리에서 마음, 그리고 입 사이에 아무런 필터가 없는 것 같다”는 제보도 추가로 이어졌다. 이를 전해 들은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남자아이들이 뭘 알겠나. 제니퍼는 너무 예쁜 여자아이고, 그들은 아직 머리로 생각한 걸 입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너무 예쁜 여자아이인지, 이상한 여자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난 제니퍼 로렌스는 인터뷰 내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머리, 마음, 입 사이에 아무런 필터가 없다”는 두 남자의 제보는 사실로 확인됐다.
-캣니스 캐릭터와 본인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고 느꼈나.
=음, 물론이다. 특히 캣니스가 캐피톨에 가서 “이 하이힐을 신
“이 역할과 함께 내 삶도 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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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왜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비교되는지 모르겠다. 둘 다 인기가 있다는 거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게리 로스 감독은 <헝거게임>과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비교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2012년 3월3일, 아직 편집을 다 마치지 못해 인터뷰가 끝나는 즉시 돌아가야 한다는 감독은 불안한 기색도, 기대하는 기색도 없었다. 할 일을 다 했으니,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에게 영화를 어떻게 보았냐는 흔한 질문도 하지 않고, 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를 소신있게 답하고는 총총히 자리를 떠난 게리 로스 감독과의 짧은 대화를 전한다.
-원작의 어떤 점이 당신의 관심을 끌었나.
=<헝거게임>은 여러 가지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이야기다. 1차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문화와 엔터테인먼트를 향유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소설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수잔(콜린스)은 로마 시대에 원형경기
“아이들에게 휴머니티를 묻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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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이라면 평범한 수준의 애니메이션 혹은 중박을 기대하는 액션 스릴러를 개봉하며, 곧 시작될 블록버스터 시즌을 위해 숨고르기 중이었을 3월 넷쨋주 극장가를 두고 할리우드는 지금,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이하 <헝거게임>) 때문이다.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모킹재이>로 이어진 수잔 콜린스의 3부작 소설 중 첫편을 영화화한 <헝거게임>은, 2009년 라이온스게이트에서 4부작 프랜차이즈로의 제작을 발표했을 때부터 쏟아진 관심과 열기를 2012년 영화의 개봉까지 고스란히 끌고 온 화제작이다. 원작이 23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라는 점도 기대의 주범이었지만, 그보다 독자의 대부분이 젊은 여성층이며 소설에서 여주인공을 사모하는 두 남자가 있다는 점 때문에 <헝거게임>은 처음부터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빈번하게 비교됐고 그러한 비교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
기대하라 <해리포터>의 왕좌를 탈환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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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진열대 위에 놓인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다시 되돌린다. 그의 시선이 가닿는 곳마다 오싹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학교 정문 앞에 하나 남은 ‘문화’문방구로 달려왔다.
주말 내내 그는 자신이 짜놓은 계획에 따라 낮잠에 취해 있던 아빠를 상대로 공작을 펼쳤고, 마침내 오늘 아침 식탁 앞에서 용돈을 받아냈다. 엄마는 송곳 같은 눈초리로 아빠를 쏘아보며 “아이 버릇 나빠진다”고 말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였다. 어제 저녁, 아빠는 소년에게 항복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소년의 치밀한 전략 앞에서 엄마의 잔소리는 그저 승전보를 알리는 전령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 기나긴 수업 시간을 인내하며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번주 교실에서 그가 앉은 자리는 다행히도 창가쪽이었다. 수업 시간 틈틈이 선생님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운동장을 향해 눈길을 돌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거대한 팽이가 그곳에서 모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거침없이 돌아가고
[design+] 팬텀 오리온과 리버시브 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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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뭇 여성들의 마음을 홀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이 대사는, 사실 배우 한가인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말죽거리 잔혹사> 속 사춘기 남학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버스 속 친구를 외면하게 만드는 ‘박카스걸’ 그녀는 잊으려 하여도 절대 잊지 못할, 환상의 여인이었다. 그 환상을 증폭시켜 보여준 <해를 품은 달>의 허연우를 떠나보내고, 30대의 씁쓸함을 간직한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그녀, 서연으로 한가인이 돌아왔다. 자신이 그리 여성스럽지도, 곱게만 자라오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한가인은 이제 배우로서 아름다움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고자, 입증해 보이고자 한다.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지난주 종영했다. 이제 수·목요일에 <해품달> 못 본다고 서운해하는 시청자가 많다.
=지난주에 막방이었나? (놀라며) 말도 안돼! 끝
[한가인] ‘달’을 닮은 환상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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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은 더욱 좋아짐”이라는 노익장의 사전적 의미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노’(老)라는 말을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첫곡 <We Take Care Of Our Own>부터 뜨겁고 치열한 ‘청년’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지난 앨범 ≪The Promise≫에 이어, 과거 ‘로큰롤의 미래’라 불렸던 그는 그 예언대로 로큰롤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민희 /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이건 뭐 20대 스케줄과 다를 게 없다. 2000년대 들어서만 여섯장의 앨범을 발표했을 만큼 정력적인 캐릭터. 지난 다섯장이 후련하고 화통한 보스 음악의 전형이어서 믿음을 줬다면 새로 만나는 앨범은 재생과 동시에 거듭 전환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로큰롤, 컨트리, 아이리시 스타일, 가끔씩 추가되는 프로그래밍 사운드까지 다채롭고 풍요로운 전개의 연속. 여전히 뛰어난 작품이면서 갑자기 재미있는 작품이다. 무려 열일곱 번째 앨범인데
[hottracks] 노병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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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3월31일~4월1일(<금난새와 함께하는 스프링 콘서트>), 4월6~8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장소: 가든파이브 아트홀
문의: 02-2157-8780
서울 동남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특별히 반가울 만한 소식 하나. 가족 중심의 복합공연장 가든파이브 아트홀에서 오는 3월31일, 올해의 첫 공연을 시작한다. 올해에는 아동극을 한층 강화하고 서울의 대형 극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공연들을 엄선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천정부지로 치솟은 티켓 가격으로 인해 보고 싶은 공연을 놓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든파이브 아트홀의 공연 리스트에 귀기울여 주목하면 좋겠다.
2012년을 여는 첫 공연은 <금난새와 함께하는 스프링 콘서트>. 마에스트로 금난새와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챔버가 함께하는 해설이 있는 클래식 콘서트다. 비발디의 <사계>,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비롯해 레스피기, 브리튼의
[아트인서울] 봄바람과 함께 공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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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30일까지
장소: 10 꼬르소 꼬모 서울
문의: 02-3018-1010
체르노빌에서 베르사유에 이르기까지, 그는 건축물과 공간이 아닌 그 안에 스며든 영혼에 초점을 맞춘다. 올해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연 건축 사진의 거장 로버트 폴리도리가 그렇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이 사진작가는 주로 버려진 공간과 역사적인 건축물을 사진에 담는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에 밴 시간의 흔적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그의 <Versailles> 연작을 들 수 있다. 지속적인 복원 작업을 하고 있는 베르사유를 1985년부터 찍기 시작한 로버트 폴리도리는 조금씩 원형의 모습을 찾아가는 베르사유를 통해 건축물에 깃든 역사적 순간을 포착해낸다. 28년이란 세월 동안 로버트 폴리도리에 의해 사진으로 기록된 베르사유는 단순한 상징물이 아닌 역사와 긴밀히 소통하는 건축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2009년 그는 이같은 작업을 3권의 사진집으로 출간해 미술을 비롯해 건축계에서도 호평을
[전시] 사진으로 되살린 사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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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국어판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로사회>의 첫 문장은 이렇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항생제의 발명으로 바이러스적이었던 한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면 21세기의 시작은 신경증적이었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한병철은 이런 질병이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것임을 지적한다. 타자성은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한다. 낯선 것은 이국적인 것으로 변질되며, 여행하는 관광객의 향유 대상이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피로사회>를 읽을 때 가능한 한 많은 단어들의 뜻을 저자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짜증이라는 단어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천재 백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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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정치다. FTA 문제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노무현 FTA는 좋은 FTA이고, 이명박 FTA는 나쁜 FTA’라는 주장을 펴는 일은 어불성설일뿐더러 위험하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갈 위험을 경고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보수진영 못지않은 ‘웃기(지도 않)는 짓’ 580종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4월11일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진보진영의 정치인들과 진보를 자처하는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가치판단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매일의 뉴스를 봐야 하는 상황만으로 충분히 골치아픈데,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먹고살 궁리가 더해진다. 이번 총선과 나아가 대선이 유권자의 ‘먹고사니즘’이 이념과 계급을 뛰어넘은 환상의 응집력을 보였던 지난 대선의 판박이가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니, 근본적
[도서] 먹고사니즘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