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혜옹주>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펴냄
<덕혜옹주>
감독 허진호 / 출연 미정 / 개봉 2013년 하반기
드라마는 비극의 그늘에서 꽃핀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비극의 냄새가 난다. 망국의 공주. 이야기꾼이라면 군침이 돌 만한 소재이건만 신기하게도 그녀를 다룬 이야기는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를 다룬 소설과 영화가 숱하게 쏟아져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귄비영 작가의 장편소설 <덕혜옹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덕혜옹주는 생소한 이름에 불과했다. 이 비운의 옹주는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60만권이나 팔리며 이토록 대중의 사랑을 받을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유난히 아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채 꽃피우기도 전에 망국의 한을 안고 스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깊은 슬픔을 끌어안으라
-
<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펴냄
<심여사는 킬러>
감독 박진표 / 출연 미정 / 개봉 2013년 예정
별별 킬러 다 봤다고 생각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진 <첩혈쌍웅>의 킬러부터, 사람 죽이러 가서 탱고 바람난 킬러(<어쌔신 탱고>)도 있었고, 아주 멀쩡한 아가씨가 킬러인 반전(<달콤, 살벌한 연인>)도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킬러는 없다고 여겼다. 속단이었다. <심여사는 킬러>의 킬러는, 다름 아닌 올해 쉰한살의 ‘아줌마’ 심은옥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즉사했고, 건사해야 할 자식은 둘이나 된다. 게다가 고용된 정육점에서는 막 해고됐다. 중졸에 정육점 경영이 경력의 전부. 들이밀 곳 없는 이력서를 들고 심여사가 찾아간 곳은 칙칙하기 그지없는 흥신소다. 킬러 심여사의 파란만장 경험은 여기서부터다.
<심여사는 킬러>는 완전무결 생활형 킬러 이야기다. 평범한 주부에게 사람 죽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줌마 킬러의 사생활
-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펴냄
<소수의견>
감독 김성재 / 출연 미정 / 개봉 2013년 하반기
2009년 1월의 참극이 한국영화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두 개의 문>처럼 그날의 진실을 역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통증> <특별수사본부> 등 그날의 현장을 통해 한국이라는 무대를 드러낸 영화도 있었다. 사건의 성격은 다르지만, <부러진 화살> 속 법정에서도 관객은 그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맨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굳이 시간과 장소를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날을 생각했다. 세 가지의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두려움, 법이 나를 지켜주기는커녕 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는 공권력의 무자비함에 대한 두려움. 현재 하리마오픽쳐스가 영화화를 준비 중인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은 이 가운데 ‘법’을 향해 집요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대한민국의 법에 묻습니다
-
성공한 원작이 스크린의 성공을 100% 보장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제작자들은 훌륭한 원작이 스크린에 불러올 1%의 힘을 믿는다. 아직 기획 개발 중이거나 곧 개봉을 앞둔 작품을 모두 검토해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를 꼽았다. 국내 작품으로는 허진호 감독이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를, 박진표 감독이 강지영 작가의 <심여사는 킬러>를, 이한 감독이 이시다 이라 작가의 <6teen>을, 이정호 감독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을 연출한다는 소식이다. 한국, 할리우드, 일본을 통틀어 이렇게 모은 작품이 17편이나 된다. 영화로 만나기 전 일단 원작부터 짚고 가자. 책소개와 함께 우리가 바라는, 영화화에 있어서 주의할 점도 첨언한다.
죽이는 이야기가 여기 있네?
-
-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가 우연히 은둔고수의 눈에 띄어 성공한다는 얘긴 오래된 신화다. 이때 재능있는 자는 스스로 그 주인공이, 안목을 확신하는 자는 은둔고수가 되고 싶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신화’가 그렇듯 여기엔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다. 그 공백에는 신뢰로 쌓인 업계 인맥이 있고, 그들이 얽힌 산업이 있으며, 또한 공생관계의 미디어가 존재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다 있어도 뭐, 될까 말까 한 일이고. 하지만 어쨌든, 일단 재밌지 않은가.
유명 프로듀서이자 최근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음악감독이었던 티 본 버넷이 참여한 드라마 <내슈빌>은 바로 그 신화에 대한 얘기다. 은퇴한 전설의 프로듀서가 작은 클럽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노래하는 듀엣을 발견한다. 그는 마침 안팎으로 도전받는 컨트리 슈퍼스타에게 전화를 걸어 그 노래를 들려준다. 이 첫회의 엔딩은 <내슈빌>이 팝 산업 내부의 갈등(허울뿐인 스타, 싸가지 없는 신예, 변두리 클럽의 원석, 대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응답하라 컨트리뮤직
-
<CBS>의 범죄수사물 <멘탈리스트>와 <HBO>의 시대극 <로마> 사이에는 두 드라마를 만든 브루노 헬러의 이름을 제외하면 공통점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시리즈 드라마라는 이름 그대로 시간 순서를 따라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보여주었던 시대극 <로마>와 매번 다른 사건을 다루는 범죄수사물인 <멘탈리스트>는, 케이블과 네트워크, 시대극과 현대극, 연속극과 레퍼토리 드라마 등 일부러 정반대 요소만을 골라서 배치한 듯 모든 항목에서 반대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드라마의 규모가 방대했던 만큼 어마어마한 제작비로 인한 부담감으로 시즌2에서 제작을 접어야 했던 <로마>. <로마>로 이름을 알린 브루노 헬러가 차기작으로 <멘탈리스트>를 떠올린 계기는 실제로 의도된 역방향성에 있었다. 헬러는 가장 먼저 <로마>와 전혀 다른 TV시리즈를 만들고 싶었다. 로마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극과 극을 다룰 줄 아는
-
나이 들면서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 중 하나가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는 시간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있으면 “쟤네 유치하다”고, 로맨틱코미디에 빠져 있으면 “작가가 회사생활 한번 안 해본 게 틀림없다”고, 사극이면 “역사적으로 말이 안된다”며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양 깨알같이 쓴소리를 하시는 통에 도무지 흥이 깨져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끔 별 말씀 없는 날에도 주인공들이 뭔가 어설픈 대사를 읊거나 개연성 없는 상황이 벌어질 낌새가 보이면 안절부절못하기를 수차례, 결국 리모컨을 내려놓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 사이트에 로그인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도 한참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까다로운 아버지의 커트라인을 넘어 1주일에 딱 한번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볼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이었다. 평소 강호동에 대해 ‘정신 사납다’며 탐탁지 않
[최지은의 TVIEW] 이제 감 좀 잡았구나!
-
“스페인의 어느 미술사학자가 현대예술이 의도적인 고문의 형식으로 사용된 최초의 예를 발견했다. 1938년 칸딘스키와 클레, 브뉘엘과 달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일련의 비밀 감방과 고문실이 바르셀로나에 지어졌다. 이는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알퐁스 로랑치치의 작품으로, 그는 일종의 ‘사이코테크닉’(psychotechnic) 고문의 발명자였다. 그가 이른바 ‘색채 감옥’(colored cells)을 창조한 것은 프랑코 세력과의 투쟁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2006)에 나오는 얘기다.
아방가르드의 고문실과 근대화의 고문실
문제의 감방은 기하학적 추상과 초현실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아 색채의 심리적 속성에 관한 아방가르드 이론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침대는 누워서 자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20도가량 기울어진 채로 설치되었고, 6피트×3피트의 바닥에는 수감자가 앞뒤로 걸어다니지 못하도록 벽돌이나 그 밖의 기하학적 블록이 뿌려졌다. 수감자들에게 남겨진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어떤 천연덕스러움
-
얼마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분이 이메일로 좋아하는 뮤지션을 추천해주었는데,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노래가 됐다. ‘최신가요인가요’를 재미있게 읽고 있으며 (깨알 자랑!) 이 지면에서 알게 된 그룹 ‘논’의 노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그분이 소개해준 뮤지션은 ‘솔루션스’였다. 왜 이름이 솔루션스일까, ‘이 복잡한 세상, 우리들의 음악이 해결책!’이라는 자만심의 발로라면 ‘멋지다’라고 생각했는데 싱어송라이터 ‘박솔’과 ‘나루’가 함께 팀을 이루는 바람에 생긴 이름이었다. 이런 센스쟁이들! (음, 한국식 이름으로는 ‘나박’김치를 추천합니다!)
솔루션스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있고, 노래마다 색깔도 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무덤덤해서 좋다. 대단히 매력적인 음악을 하고 있는데도 생색내지 않아서 좋고 (반대로 생색내지 않아서 매력이 배가되는 것일 수도 있고) 두 사람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유앤미블루’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날 만큼 사운드와 목소리의 조화가 매력적이어서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우연에게서 받은 선물처럼
-
군대에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서울역에서 인력거나 끌며 살아가던 내가 본토인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겠는가? 나는 애당초 ‘나라 잃은 설움’ 같은 거랑 거리가 먼 놈이다. 나라만 되찾으면, 반상의 차별이, 귀천의 구별이 없어지나? 나 같은 놈이 바닥에서 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내가 그날 마라톤 대회 시상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건, 나랑 친한 준식이가 실격으로 1등을 놓친 게 너무 분해 꼭지가 돌아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그게 전부였다.
걱정했던 것보다 훈련소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인력거 끄는 일에 비해 총 들고 훈련 받는 일이 덜 고된 데다, 끼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특히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군복이었다. 매일 일조 기상 뒤 연병장에 나서기 위해 군복을 착용한 뒤 종아리에 각반을 묶을 때면, 태어나서 내 몸뚱이가 이만큼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허구한 날 땀내에 찌들고 꾀죄죄한 헝겊 쪼
[design+] 지축을 흔드는 괴물들
-
2년 전 이맘때 만난 어떤 남자 이야기. 그는 내 자동차 안에 있던 CD들을 뒤적거리다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잔뜩 흥분해서 마구 떠들었다. “뭐야? 이건 패티 스미스잖아.” (‘잘난 척하지 않는 예술가로서 존경하는 여성 록 뮤지션은 오직 그녀뿐’이라는 내 대답에) “와, 처음 봐. 남자든 여자든 패티 스미스를 아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좋아한다는 사람도 네가 처음이야. 남녀 통틀어.” 그러면서 감탄했다는 듯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솔직히 웃긴다. 그 이름 하나 알고 노래 몇곡 아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저렇게 방방 뜰까? 물론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생각해보면 이해도 된다. 나중에 듣자 하니 그는 내가 패티 스미스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모든 여자와 나를 분리시키며 이상화하는 동시에 자신과 동일화하는, (스탕달이 <연애론>에서 말한) 일종의 ‘결정화 과정’을 거쳤던 모양이다. 덕분에 패티
[SO WHAT] 그냥 애들이야, 정말로
-
영화감독 김기덕은 한국영화 평단에서 무시당해왔으나 그의 영화 <피에타>로 결국 승리했다.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직후 대다수 한국 매체가 그와 같은 논지의 기사를 실었다. 이것이 비록 비평의 영역이 아니며 이미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일이라 해도 짚고 넘어가야 할 하나의 전제는 될 것이다. 몇 가지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이 의견들은 반박이 가능하다. 그가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전문 영화 저널과 주요한 저널리스트들이 그를 특별히 주목하기 시작한 일은 이미 오래되었고 한해의 중요한 영화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김기덕의 영화는 자주 선정되거나 적어도 후보에 올랐다. 더군다나 그는 동세대 한국 감독 중 온전히 감독 개인 한 사람의 영화 세계에 관한 비평 연구서를 헌정받은 드문 예에 속한다(<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 정성일 엮음, 행복한 책읽기 펴냄). 그러니 그가 받았다는 한국 영화 평단에서의 냉대란 어디서 받은 것이며 <피
[신 전영객잔] 흥미롭지만 퇴행적인 게임
-
영화배우 박시후라니. 낯설었다. 지난해 겨울 <내가 살인범이다> 영풍문고 시퀀스 촬영현장에서 박시후를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오해하지 말자. 그가 스크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 생각은 절대 아니니까. 박시후 하면 드라마 <역전의 여왕>(2011)이나 <공주의 남자>(2011) 등 텔레비전 화면 속 그가 익숙한 게 사실이다. 그 역시 자신의 첫 영화 출연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나보다. 스튜디오의 벽에 붙은 여러 배우들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사진기자가 찍은 테스트 컷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등 난생처음 경험한 표지 진행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홍보 활동도 시작됐고. 거리에 영화 광고도 많이 하더라. 관객 반응도 궁금하고. 첫 영화라 그런지 무척 설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남자.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박시후가 연기한 이두석은 이상한 연쇄살인범이다. 공소시효가 지난 뒤 자신의 살인 행각을 담은
[박시후] 아직 잘 모르는 사내
-
정재영이 걸어왔다. 뒤축을 접어 신은 “슬리퍼 같은 운동화”는 곧 끈 떨어진 운동화가 될 판이었다. 신발 속엔 아디다스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흰 양말, 거기에 또 밤새 범인이라도 쫓다 온 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 “아, 해장해야 하는데.” 배우 정재영의 소박함과 털털함이 영화 속 캐릭터와 접선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내가 살인범이다>의 최형구 형사가 걸어 들어온 줄 착각했다.
최형구는 “연쇄살인범을 잡아야 하는데 잡지 못한 형사”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보면 최형구는 <살인의 추억> 속 형사들과 비슷하다.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최형구는 머리가 좋은 형사다. 경찰대학 출신에 엘리트 형사다. 그런데 연쇄살인사건에 자신의 연인이 연루되고 끝내 살인범을 잡지 못하면서 승진도 못하고 계속 그 사건에 매몰돼 있다.”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에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두석(박시후)이 등장한다. 자신의 범행기록을 담은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정재영] 여전히 기막힌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