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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나치 발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열린 제64회 칸영화제는 <멜랑콜리아>의 커스틴 던스트를 여우주연상의 수상자로 지목했다. 그녀가 연기한 ‘저스틴’은 우울증에 걸렸지만 유능한 능력을 지닌 광고계의 카피라이터이다. 한 시간에 걸친 1부에서의 성대한 결혼연회 챕터에서 그녀는 극도의 우울감을 경험하며 파혼을 선택하게 된다. 이어지는 2부에서 저스틴은 요양차 언니네 저택에 머무는데,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멜랑콜리아 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예고한다. ‘우울’이라고 명명된 이 거대한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 미래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대다수 과학자들의 긍정적 전망과 달리 저스틴의 부정적 예측은 언니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예식에 쓰였던 콩의 개수를 그녀가 정확하게 맞히면서 감춰진 예언 능력이 입증된 것이다.
저스틴의 캐릭터는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와 꽤 흡사해 보인다. 아폴론의 구
감춰진 그녀의 예언능력 <멜랑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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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앳된 얼굴들 사이에 뾰족한 연필심처럼 혼자 툭 튀어나온 키 큰 노인이 있다. 최고령 초등학생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키마니 낭아 마루게(올리버 리톤도)다.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케냐의 키쿠유족은 영국군에 대항해 무장독립단체 ‘마우마우’를 결성한다. 케냐 독립을 위해 싸운 마우마우의 전사였던 마루게는 영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수용소를 전전하며 힘든 세월을 견뎌왔다. 2003년 케냐 정부에선 케냐의 모든 국민이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법안을 발표하고, 라디오에서 이 뉴스를 들은 마루게는 글을 배워 꼭 자기 눈으로 읽어야만 하는 편지가 있다며 마을의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교장 제인(나오미 해리스)은 초등학교는 어린이만 오는 곳이라며 마루게를 돌려보내지만 마루게는 교복을 마련해 입고 다시 학교를 찾아온다. 마루게의 향학열을 인정한 제인은 마루게의 입학을 허가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박탈한다며 마루게와 제인을 배척한다.
‘교육’의 참의미를 일깨워주다 <퍼스트 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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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연인에게 키스를 거절당한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은 읽어야 하는 것투성이야/ 사람의 마음 읽기에 비해/ 책 읽기 따위는 누워서 떡먹기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사랑에 빠진 남자> 중 한 구절이다. 실로 그러하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부부간의 불화는 대개 여기서 출발한다. ‘너 없으면 못 살아’로 시작했다가 ‘너 때문에 못 살아’로 끝나는 결혼 생활의 원인은 소통의 부재에 있다. 로맨틱코미디 또한 여기서 출발한다. 사소한 오해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그것이야말로 로맨틱코미디의 핵심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이처럼 탄탄하게 기본을 다진 로맨틱코미디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두현(이선균)은 일본에서 요리 유학 중인 정인(임수정)을 만나 한눈에 반해 결혼까지 성공한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데다 요리도 잘하는 정인과의 꿀 같은 연애도 잠시, 결혼 7년차인 두현에게 하루하루는 지옥이다. 잠시도 불평불만과 독설을 멈
‘너 때문에 못 살아’ <내 아내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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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미란다 줄라이)와 제이슨(해미시 링클레이터), 구불거리는 머리모양도, 엉뚱한 감수성도 똑 닮은 두 사람은 동거 중인 4년차 커플이다. 이들은 한달 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고양이 꾹꾹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고양이를 책임지다보면 이내 마흔살이 되고 말 거라는 두 사람,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계산법인지 마흔살은 쉰살과 다름없고, 그 이후의 삶은 잔돈이나 마찬가지라며 허탈해한다. 그리고 남은 한달간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제이슨은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는 환경지킴이, 그러니까 나무를 파는 방문판매원이 되고, 직장 동료의 유튜브 조회수가 부러웠던 소피는 하루에 하나씩 서른개의 댄스 동영상을 올리기로 마음먹는다.
어정쩡한 신념에서 시작된 모험은 곧 지지부진해지고, 패배감과 자기 연민에도 지쳐갈 무렵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남은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불현듯 목덜미가 서늘해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봄날의 공기를 유영하는 듯 <미래는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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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4년이라는 시간도, 국방부도, 이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꽤 오랜 공백 뒤에 발표한 (메이저) 다섯 번째 앨범에는 여전히 여리고 여전히 우울하고 여전히 감성적인 넬의 음악이 자리하고 있다. 보도자료에서 강조하고 있는 현악을 비롯한 클래식한 악기들도 그런 넬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이들의 컴백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평가는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지 한참 됐다. 그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그들의 음악에는 기복이 없다. 여전히 히트곡에 집착하지 않고 앨범의 전반적인 흐름에만 집중한다. 전처럼 촘촘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흐느적거리는 보컬을 띄운다. 밝고 명쾌한 노래가 대세가 된 와중에도, 그들의 침울하고 무거운 노래에는 변함없이 수요가 있고 호응이 따른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끈질긴 일관성.
최민우/ 음악웹진 ‘웨이
[MUSIC] 여전히 우울하고 여전히 감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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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6월10일까지
장소: 학고재 갤러리 신관
문의: http://hakgojae.com
전시장에는 ‘색’(色)이 없다. 대신 흑백사진들 위로 색깔없는 피와 얼룩진 시간이 흐른다. 까까머리의 영정사진 속 인물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여전히 서늘하고 두렵다. 사진가 노순택의 개인전 <망각기계>는 우리를 32년 전의 5월로 이끈다. 대추리 마을에서 용산참사 현장과 제주 강정 구럼비까지 날카로운 갈등의 현장을 지켜온 노순택은 이번 전시에서 묵직하게 ‘오월의 광주’를 꺼냈다. 수없이 많은 영정사진들과 망월동의 옛 묘지, 도청과 상무대가 있던 광주의 장소들은 기억과 망각 사이에 있다가 셔터 소리와 함께 여기로 불려나온다. 노순택이 6년 가까이 찍어온 5·18 관련 사진들은 잊어버리기엔 너무 가깝지만, 내 것이라 하기엔 멀리 있는 그날의 굴곡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지하 1, 2층과 지상 1층을 채운 수십점의 사진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틀을 넘어 가장 비현실적이고 가장 거짓말
[전시] 5월의 광주, 그날의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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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자체가 도시로 화(化)했다고(도시가 르네상스로 화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일컬어지는 피렌체에 가면서 목표를 딱 두 가지 세웠었다. 미켈란젤로와 프레스코화. 미켈란젤로로 따지면 결국 바티칸에 가서야 “다 보았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만 프레스코화는 역시 피렌체였다. 지금은 산 마르코 미술관이 된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집회실과 승방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방이 아니라 무대, 그림이 아니라 태초에 있었던 말. 산 마르코 미술관 2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돌계단을 오르자 계단 위 벽에 프라 안젤리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태고지>가 드러났다. 도판으로 숱하게 봤는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실물이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면 그 주제부터가 불가사의 아닌가.
‘수태고지’는 기독교 회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제 중 하나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만이 존재하던 시절에 화가는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 대중에 전달하는 역할이었고, 당연히 스토리텔링의 시각화를 위한 다양한 상징이 등장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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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23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문의: 02-720-0667
세상에는 의자가 참 많다. 지하철에도 의자, 카페에도 의자, 사무실에도 의자. 의자에 앉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이토록 많은 의자 중에서 이름을 가진 의자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덴마크 태생의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 1912∼89)은 펠리컨 날개를 닮은 <펠리컨 의자>(Pelican Chair, 사진)를 만들었다. 과자 빼빼로의 갈색 부분을 확대해놓은 통통한 의자 다리 위에 하늘색 계열의 천이 양옆으로 나온다. 꼭 펠리컨의 형태를 빼닮았다기보다 날개를 펼친 어떤 새의 품 같다. 핀 율의 가구는 장인의 손길로 꼼꼼하게 바느질한 ‘디테일’이 핵심인데, 초창기 가구 공방 제작자들도 왜 이렇게 유별나게 꼼꼼해야 하나 핀 율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겨워했다고 한다.
건축가 출신에 독학으로 가구 디자인에 뛰어든 핀 율은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 두고 쓸 가구를 만들었다. 그래서 기존 방법론
[전시] 우유 빛깔 가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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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 가지 점에서 놀라운데, 하나는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는 점(400페이지가 넘는다)이고 다음으로는 표지의 ‘K·POP’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크게 인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최근의 아이돌 그룹만 다루지 않는다.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1990년대가 비중있게 다뤄질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People Who Make K-POP’이란 영문 제목이 힌트를 준다. <K·POP 세계를 홀리다>는 21세기의 한국 팝을 말하기 위해 과감하게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다음 천천히 내려오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니 당연히 두꺼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께에 비해 각 항목들이 빡빡한 건 아니다. 연대기로 나뉜 각 장은 당대에 활동하던 음악가들과 대표 앨범을 다루는데, 그 내용은 금방 읽을 수 있을 만큼 압축적이다. 저자 김학선의 말대로 이 책은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인지 등장하는 음악가들의 면면이 다양하다는 장
[도서] 한국 대중음악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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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어벤져스> 반칙같은데?!
[올드독의 영화노트] <어벤져스> 반칙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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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
제작 연분홍치마 / 감독 김일란, 홍지유 / 촬영 김일란, 홍지유, 이혁상 / 배급 시네마 달 / 개봉 6월21일
2009년 1월20일, 용산에서 여섯명이 죽었다. 5명은 철거민이었고, 1명은 경찰특공대였다. 이들의 죽음은 예기치 못한 단순 사고였는가. 아니면 의도적인 살해였는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항소(抗訴)이며, 동시에 재심(再審)이다. <두 개의 문>은 현장의 증거를 고의적으로 훼손하고 인멸한 뒤 철거민들의 불법 폭력시위가 엄청난 참사를 불러왔다는 뻔한 평결을 내놓고 입을 닫은 법정과 국가를 향해 논리적 도발을 시도한다. 그들은 스스로 죽었는가, 누군가 그들을 죽였는가. 법정극의 구도를 끌어온 <두 개의 문>은 3년 전 용산의 절규와 비명을 외면했던 우리에게 뒤늦게 날아든, 이제라도 역사의 배심원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간곡한 초대장이다.
[Coming soon] 그들의 간곡한 초대장 <두 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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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영화 3편 보기, 일주일에 책 세권 읽기, 이것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원칙이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열혈 필자이자 영화감독인 트뤼포를 수식하기 위해 우선 골라야 할 두 단어는 ‘시네필’과 ‘누벨바그’이다.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고, 등급을 매기고,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수집하는 시네필의 전형적 행동 양식을 누구보다 먼저 실천하고 영화를 통해 영화를 배우고 익혀 글을 쓰고 스스로 영화를 만든 인물이 트뤼포다.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 영화를 만드는 것, 그는 자신이 주장했던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을 순서대로 따랐다. 1950~60년대 프랑스영화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출신 감독들이 만든 일련의 영화들로 새로운 활기를 띠는데, 거기에 붙여진 이름이 ‘누벨바그’였다. 트뤼포 감독의 자전적 영화 <400번의 구타>(1959)는 누벨바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 영화는 시작 전 자막으로 “앙드레 바쟁을 기억하며 그
[영화제]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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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68혁명의 전조는 영화계에서 먼저 일어났다. 50년 전 ‘오버하우젠 선언’이 ‘뉴 저먼 시네마’의 물꼬를 텄던 것이다. 1962년 독일 오버하우젠단편영화제는 새로운 영화적 세대의 데뷔 무대였다. 26명의 영화인이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했고, 전후 향토영화가 주류를 이루던 독일 영화계에 반기를 들며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이 젊은이들이 팔순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 세대는 세계대전 당시엔 너무 어렸고, 청년기에 접어들어서는 서독과 동독 분단과 재건의 시대를 맞아 군대의 의무를 면한 행복한 세대다. 그런 시대를 발판으로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지원해줄 진흥 시스템을 새로이 재구성해냈다. 오버하우젠 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알렉산더 클루게와 서면 인터뷰를 나눴다. 올해 80살을 맞은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로,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또 독일 지성계를 대표하는 원로로서 지치지 않고 새 작품을 내놓고 있다. 2008년부터 클루게는 현대사를
[베를린] “모든 영화의 진짜 근본은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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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님. 오늘은 거울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대요?
=분해. 분해. 너무 분해. 아침에 거울을 열어서 물어봤는데 아직도 끝없이 다른 년들의 얼굴이 다운로드되고 있어.
-다운로드라뇨?
=어머, 이 사람아. 이 거울이 무슨 마법의 거울인 줄 알았어? 이거 사실 컴퓨터야. 구글을 열어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가요?”라고 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년들의 얼굴을 검색할 수 있다능.
-아, 그렇군요. SF 문학의 거장인 아서 클라크는 “모든 기술이 극도로 발전되면 마술과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도 있지요.
=그거 명언이로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대체 저 거대한 쇳덩어리가 어떻게 하늘을 날고 있나…. 공기역학이 어쩌고 저쩌고 설명해줘도 도무지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되잖아? 그런 거지 뭐.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꼭 장거리 비행을 하는 도중에 그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러다보면 내 발이 수천 피트 상공에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서워지면서 승무원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젊은 것들을 다 잡아 가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