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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살 시절의 <선데이서울> 인터뷰에서부터 예순다섯살인 지금의 <씨네21> 인터뷰까지, 윤여정의 말들을 모았다. 윤여정의 말들은 4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다. 어쩌면 그녀는 <화녀>부터 <돈의 맛>까지 오는 동안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TV는 죽 연결이 되어서 한번 슈팅하면 그 감정이 계속해서 사는데 영화는 컷마다 끊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드라마의 감정에 단절이 생기게 돼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더욱 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더 곤란한 것 같아요. 연기의 비결은 누구나 그렇듯 바로 극중의 인물이 된 듯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한번 슈팅에 들어갔다 하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소화할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을 소화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1970년 <화녀>를 찍기 직전 <선데이서울>과 인터뷰 중-
“화려한 재복귀. 이런 떠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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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에 대한 글입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인터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생존자로 떠받드는 글이 아닙니다. 아니요. 윤여정을 우리 시대의 아이콘으로 정착시키려는 음모를 품은 글도 아닙니다. 네. 이 글은 윤여정에 대한 글입니다. 네. 이 글은 윤여정에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게 맞습니다.
“미친년 나왔네.” 외할머니는 TV에 나오는 몇몇 여자들을 미친년이라고 불렀다. 기준은 한 가지였다. 그 여자가 이혼을 했느냐 아니냐.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을 한 여자들은 미친년이거나 팔자 사나운 년이었다. 특히 외할머니가 미친년이라고 부르던 궁극의 대상은 윤복희였다. 윤복희가 오랜만에 TV에 나와 특별공연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저 미친년 좀 봐라”라는 외침과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복희는 당대에 드문 이혼녀에 무릎이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남한 전역에 살포한 죄인이었다. 나도 어쩔 도리 없이 TV에 윤복희가 나오면 “
나는 지금 그녀와 열애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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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심사위원 기자회견이란 실은 빤한 문답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올해 칸 경쟁의 심사위원장은 난니 모레티가 아닌가. 확고한 의견과 재치있는 말솜씨의 소유자 난니 모레티가 올해 심사의 향방을 말한다.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작품을 이번 영화제에서 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였나.
=사실 그런 말은 영화제 이전에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 하여간에 좋은 점은 우리 심사위원 모두가 특별한 편견 없이 매우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란 점이다. 심사위원 모두가 나처럼 놀라움을 주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실은 종종 수백번은 봤던 것 같은 작품들을 보게 되면서도 말이다.
-심사위원장의 역할은 어떻게 수행할 생각인가.
=불행인 건 심사를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하게 될 것 같다는 거다. 일종의 학교 담임선생 같은 것이 나의 역할이다. 우리 심사위원들에게 중요한 건 동일한 정도의 집중력과 존중을 유지하며 모든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 건 심사위원장의 권력에는
우릴 놀라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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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개막, 저기도 개막이다. 프랑스는 지금 사방이 개막으로 바쁘다. 올랑드 시대가 막 개막했고, 5월16일 칸국제영화제가 그 뒤를 바짝 이어 65회 개막을 가졌다. 대선 직후의 흥분 속, 프랑스인의 제1 관심사는 역시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 초기 향방이다. 도미닉 스트로스 칸의 추문이 영화의 거리, 크루아제를 뒤덮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올랑드의 푸근한 미소가 서비스로 마련되어 있다. 올해 칸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가 섹스심벌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사뭇 다른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것도 부러 쌍을 맞춘 듯한 선택처럼 보일 정도다. 관건은 영화제가 올랑드 시대의 개막에 필적할 카드를 내밀 수 있냐는 거다.
칸에 모인 전세계 기자들의 관심을 일거에 집중시킨 건 결국 개막작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의 몫이었다. 칸 메인 상영관 드비시 극장. 웨스 앤더슨은 전세계 기자들로 구성된 관객을 보란 듯이 1965년의 뉴잉글랜드 근교 작은 섬마을로 안내한다. 빌
21세기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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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형사'는 자나 깨나 범인 검거에 매달리는 차형사(강지환)가 사건 해결을 위해 패션모델로 위장하여 런웨이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 코미디로 오는 5월 31일 개봉 예정이다.
[영상인터뷰] 차형사 ‘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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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는 2009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에 나토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덴마크 병사들의 8개월을 촬영해 편집한 기록영화다. <디스커버리 채널> 다큐멘터리로 오인되기 십상인 영화 제목은 덴마크 군인들이 탈레반과 대치해 주둔하는 전진 작전기지 이름에서 나왔는데, 최첨단무기와 장비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적군 소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유사 감금 상태에 처해 있는 나토군의 상황은 궁지에 몰리면 갑피 속에 웅크려드는 동물 아르마딜로의 생태와 비슷하기도 하다.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감독의 <아르마딜로> 는 이중의 의미에서 전방(前方)의 영화다. 그리 고 이 두 가지 전위성은 두개의 불안을 낳는다.
우선 페데르센 감독과 라스 스크리 촬영기사가 이끄는 팀은 반년간 목숨을 내걸고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머물며 영화를 찍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페데르센은 당초 30분 길이 방송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아르마딜로&g
[신전영객잔] 매끄러운 표면 뒤 다큐멘터리의 근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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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에 <TOP밴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여전히 음악에다 점수와 등수를 매기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새로운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TOP밴드>에는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들었던, (그래서 따라 부르라면 따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팝발라드, 1980~90년대 가요, 알앤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세상에나!)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부르고 통과하는 밴드가 있는가 하면 ‘신중현과 엽전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인디언 인형처럼> 같은 노래를 새로운 버전으로 부르는 밴드도 있다. 공중파에서 그런 노래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겁다(지난주에는 ‘포브라더스’가 나의 ‘페이보릿 밴드’ 킨크스의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시즌1에 비해 참가자들의 수준이 훨씬 높아진 덕분에 인디밴드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를 발견하는 순간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장미여관’의 <봉숙이> 같은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무까끼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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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타이타닉> 속 명장면 ‘갑판 위에서 양팔 벌리고 있기’를 흉내내기 위하여 첫째로는 타이타닉만큼 근사한 대형 여객선이, 둘째로는 뒤에서 조용히 허리를 잡아 수 있는 잘생기고 사려깊은 연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그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코르셋이 아닐까 싶다. 그 장면이 로즈(케이트 윈슬럿)가 처음으로 모든 정신적 족쇄를 잊고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어서 몇배는 더 감동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코르셋이 배와 허리의 군살을 완벽하게 눌러주지 않았다면 로즈는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자신의 허리와 배를 ‘집중적으로’ 잡는 순간에 약간의 주저함이나 쑥스러운 기색없이 양팔을 벌린 채 대서양의 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 우습고도 슬픈 얘기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녀를 억압하는 상징으로 등장한 코르셋일망정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데 심심찮은 도움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인간과 인
[fashion+]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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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매드맨>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었다. 돈 드레이퍼(존 햄)라는 남자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 혹은 1950년대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를 따라 즐비했던 광고회사 중역들의 이야기인 <매드맨>은 미드에 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글로 쓰고 싶어 기회를 노렸지만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지금껏 손대지 못했던 드라마다. 시간여행이라도 하듯 1950년대로 돌아간 이 드라마는, 거스를 수 없던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끝없이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삶을 그려낸다. 미국인들에게는 ‘황금기’이자 노스탤지어의 대상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도 중요했지만 시청자와 평단은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 돈 드레이퍼의 매력에 저항할 새도 없이 빠져들었다. <매드맨>의 인기와 완성도는 2008년부터 4년 연속 에미 시상식 드라마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그를 닮은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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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점령한 슈퍼히어로들을 보면서 <크로니클>을 떠올렸다. 코믹스가 아닌 <스캐너스>나 <아키라>와 비슷한 방식으로 초능력을 다룬 이 영화는 21세기 소년들의 성장담을 독특한 질감으로 보여준다. 정말 마음에 드는 클라이맥스의 도심 난장판은 ‘<핸콕>의 프리퀄 같다’는 농담을 하게 만들지만 혹자의 말대로 전반적으로 <파수꾼>에 더 가깝다.
인상적인 건 음악과 소리다. 삽입곡들은 오직 배경음악으로 간간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 인물의 계급과 취향 차이를 설명하는 단서로 작동한다. 파티에선 크리스털 캐슬의 <Baptism>이 흐르지만 앤드류의 집에선 데이비드 보위의 <Ziggy Stardust>가 흐르는 식이다. 깨알 같이 등장하는 이 음악들은 어쨌든 인디 록 취향도 충분히 만족시킨다. 롱컷, 캡슐, 엠83, 클래스 액트리스, 블론드 액시드 컬트, 배드 베인스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인디 음악가들의 일렉트로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음악보다 사운드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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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에 화장을 하고 남색질을 뽐내고 다니는 소년들에게 ‘몸에 꼭 달라붙은 짧은 상의’를 입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옷은 조그만 천으로 앞뒤로 배꼽과 허리까지만 덮었기 때문에 생살을 거의 다 남색자들에게 드러낼 정도다. 그들은 천조각은 아끼고 살은 소모하고 있구나!”
이 연설의 주인공은 15세기 피렌체의 연설가 베르나르디노. 동성애의 악취로 피렌체가 고통받고 있다는 주장으로 거대한 군중을 이끌고 다니면서 시의회의 후원 아래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전설적 인물이었다. 그의 설교 덕에 적지 않은 동성애자들이 부대에 담긴 채 바다에 던져져 익사했다.
하지만 베르나르디노는 600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그의 후예들이 청소년들을 향해 살을 소모하지 말라고 협박하리라 예상했을까? 당시 교회와 시 당국이 밤이 되면 동성애 타락의 위험이 있다며 학교 수업을 일몰 전에 끝내는 법을 제정했던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학생들에게 순결 사탕을 나눠주고 ‘학생인권조례’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누가 한국을 근대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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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장을 봐야 한다. 동시대 예술가 중 가장 좋아하는 커플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할인마트를 피하자 마음먹은 터라(난 대기업을 해체해야 이 지구가 살고 사람들의 삶이 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동네 마트에 간다. 그래도 다 있다. 간혹 없는 게 있다 해도 ‘꿩 대신 닭’식으로 선택하면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심지어 더 싸고 싱싱한 품목도 있다. 게다가 카운터에는 내 얼굴만 보고도 고객번호와 이름을 알아맞히는 아가씨가 앉아 있고, 고기 코너에는 잡채용 고기를 싸주며 “누구 생일인가보죠?” 하고 방긋 웃는 청년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 코너에선 금실 좋아 보이는 부부가 1만원짜리 광어회를 알뜰하게 떠주고 초장까지 챙겨준다. 그 광어회 1마리에 오징어 1마리, 보쌈용 삼겹살 1근, 가지 3개, 대형 정종 1병을 사니 4만5천원이 나온다. 자, 기대하시라. 이제부터 이걸로 한
[SO WHAT] 내 손으로 준비한 최초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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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정한 ‘그루브’라는 것을 느껴본 적은 홍대 클럽에서도 록페스티벌에서도 아닌 중학생 시절 경주 수학여행에서였다. 학급별 장기자랑 때, 전교에서 좀 논다 하는 아이들 넷이 나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춤을 췄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경주 어느 여관의 지하 강당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신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천사를 찾아 샤바 샵사바 천사를 찾아 샤바 샵사바”에 맞춰 미친 듯이 엉덩이를 두드리는 수백명의 중2들이라니, 밖에서 보았다면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룰라, 그리고 이상민 인생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이후 <3! 4!>를 비롯한 히트곡이 있었지만 <천상유애> 표절에 이은 이상민의 자살 시도 소동, 이혼, 스캔들, 사업 실패, 불법 도박 등 보는 사람이 지칠 정도의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태어난 뒤 2년 동안 이름이 없이 ‘애기’라 불렸다”는 고
[최지은의 TVIEW] 98%의 허세에 2%의 비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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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의 어느 갤러리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듣자 하니 벌써 우리나라에 세 번째로 다녀간단다. 거울, 만화경, 스펙트럼, 투명한 판들, 그리고 프로젝션 몇개. 그의 프로젝트가 가진 거대한 스케일을 생각하건대 조그만 갤러리에 걸린 소품 몇개로 그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작품세계의 본질을 슬쩍 엿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빛’과 ‘공간’의 현상학적 체험.
공간실험
올라퍼 엘리아슨 1967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아이슬란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덴마크 왕립예술원에 재학하던 중에 학교의 여행지원으로 뉴욕으로 건너가 그곳의 한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일했다. 1993년 독일의 쾰른으로 건너가 1년간 머문 뒤 다시 베를린으로 옮겨 그곳에 차린 스튜디오를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베를린 미술대학(UdK)의 교수로, 대학 산하에 ‘공간실험연구소’(IfREX)를 창설하여 활발한 실험과 창작을 하고 있다.
1996년 엘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빛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