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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직도 나를 편집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난다. 대개는 지금의 나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거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씨네21>에서 일했던 걸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쩐지 친근감이 들기 때문이다. 전에 한번도 만난 적 없는데도 알고 지냈던 사이 같은 느낌. 그건 <씨네21>을 누군가는 읽고 기억해준다는 반가움이기도 하다.
<씨네21>을 떠난 지도 4년이 넘었다. 사람이 하는 일에 뭐든 후회가 따르지만 편집장을 그만두면서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다. 하나는 기자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는 반성이고 다른 하나는 후배들에게 더 많이 칭찬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야구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리더는 결코 부하들을 불쌍하게 여기면 안되고 그들의 한계를 규정해선 안된다는 말 때문이다. <씨네21>을 만들면서 이건 영화 주간지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 지레 겁을 먹었던
독자가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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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그의 표정들이 있다. 튀밥과 산나물을 한 봉지씩 양손에 번쩍 들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정말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튀밥과 산나물과 그걸 들고 저토록 흐뭇해하는 영화지 편집장이라니, 그 조합이 신기했다. 그건 선한 학생들로 가득한 어느 농업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받아온 귀한 강의료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물론 그의 가장 침통했던 표정도 기억난다. 갑작스럽게 퇴직 의사를 밝힌 뒤, 편집장으로서 마지막 호를 만들던 그 밤에 그런 표정을 보았다.
편집장 재직 시절에 그가 써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던 ‘편집장이 독자에게’라는 에디토리얼에 앞선 두 일화가 다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에디토리얼(410호, 2003년 7월8∼15일)의 제목은 ‘선택’이다. 그러고 보면 튀밥도 산나물도 퇴직도 결과는 다르지만 전부 그의 선택의 다양한 결과다. 그리고 그의 에디토리얼은 상당수 일상의 경험과 영화적 경험을 경유하여 이 선택이라는 문제를 묻고 또 묻고
묻고 또 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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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종종 이런 꿈을 꾸었다. 광고팀장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알린다. “이번주 광고가 3분의 1로 떨어졌어요!” 이 악몽은 편집장을 그만두고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편집장일 때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그만두었을 때는 내가 더이상 편집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피 말리는 일이다. 더구나 비평지와 연예지와 산업지의 성격이 혼합된 전대미문의 영화 주간지가 시장에서 오래 버텨낸다는 것은, 지금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매체를 창간했고 2년도 안돼 <씨네21>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조선희 초대 편집장의 공적은 아무리 치켜세워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종이매체의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시장에서 분투해온 후배 편집장들의 고뇌도 그에 못지않게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매체를 만드는 일과 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최상의 국물을 내는 객관적 공
끝까지 살아 질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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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잘) 쓸 수가 있지?” 안정숙 편집장은 정말 좋다고 생각되는 글을 만날 때면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 선배로 기억된다. 어떤 기사든 일단 그 기사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기다리고 읽는가 하면, 만족스러운 글에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간혹 편집장의 데스크에서 그 즐거운 탄성이 들려올 때면, 어떤 날카로운 지적이나 조언을 듣는 것 이상의 자극을 받곤 했다. <한겨레> 문화부를 포함해 15년 이상 기자생활을 해온 베테랑 선배의 감탄사를 듣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마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틈틈이 건네는 깨알 같은 칭찬으로 기자들을 춤추게 하는 편집장이었다.
깨알 같은 건 칭찬만이 아니었으니 방심은 금물. 조금이라도 궁금하거나 동의가 되지 않는 대목을 발견할 때면, 의문점이 풀릴 때까지 질문이 이어지곤 했으니 말이다. 지난 5년 동안의 습관으로 당연시하고 넘어가기 쉬운 것도 다시 묻고 되짚어보는 것. 돌이켜보면 기자들을 독려하는 칭찬과
저예산영화의 든든한 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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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봄, 창간편집장 조선희가 떠난 자리에 내가 왔을 때, <씨네21>은 이미 생명력 넘치는 유기체로 한국영화와 독자들 속에 예민해서 더욱 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양적, 질적으로 급팽창하던 한국영화의 힘과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새로운 세대의 영화열은 <씨네21> 생장의 필요조건이었다.
영화‘시장’이 확대되면 독자 역시 증가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잡지들이 연이어 새로 등장했다. 한데 2000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초 사이에 등장한 잡지들은 왜 월간지가 아니라 주간지였을까. 나는 <씨네21>에 머물던 이태 동안 세 종류의 영상 주간지 창간호를 읽었다. 혼자 서 있던 지경 안에 경쟁자가 들어서는 데 우리가 초연했다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긴장하니까 좋은 점도 있었다. 우리는 광각 또는 깊은 초점, 때로는 길고, 때로는 경쾌한 호흡, 앵글 등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탐냈다. 크게 보아 영화를 중심에 두되 곳곳에 사회와 문화를 향
이곳에서 세상과 호흡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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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동시에 태어난 <키노>와 <씨네21>은 서로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엄마 친구 딸’이었다. 숱한 편집회의의 결론을 되살려 “우리는 주간지이기에 갈 길이 다르다”고 소심하게 말해봤자 사람들은 건성으로 끄덕일 뿐이었다. 당연했다. 영화 주간지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었으니까. 이른바 ‘다른 길’이 뭔지 <씨네21> 초대 편집장이 독자에게 설명할 방도는 매주 한권씩 쌓이는 <씨네21>뿐이었다. 어차피 맨땅에 헤딩할 바에야 백지가 낫다는 판단이었을까? 조선희 편집장은 대담하게도 연예잡지 경력이 전무한 평론가, 신문기자, 1년차 프리랜서로 창간팀을 구성했다. (내 기억에) 그녀가 시야에서 놓치지 않은 푯대는 “저널리즘의 규율과 시선으로 영화에 접근한다”는 원칙이었다. 여기엔 영화를 가십거리로 다루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와 더불어 가판에서 신문을 사보는 보편적 독자와 눈을 맞춘다는 위치 설정이 포함된다. 1년에 극장 한번 가
진지하거나 섹시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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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을 한번 하면 5년은 해야지. 나는 그런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일했는데 내 후임자 중에 나만큼 질긴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창간 준비기간까지 하면 내가 <씨네21>과 함께한 시간은 무려 5년하고도 5개월이다!!
내가 편집장이었던 5년 동안 에디토리얼은 무기명 칼럼이었다. 나는 주로 기자들의 원고가 다 들어오고 데스크 작업이 한산해지는 마감날 저녁에 에디토리얼을 썼다. 그런데 한주 걸러 한주씩은 정말이지 할 말이 하나도 없어 막막한 마음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끄응~ 하고 용을 쓰면 몇 마디 말을 짜낼 수 있었지만 다음주는 또 어떡하나. 그래서 나는 도저히 에디토리얼을 쓸 수 없을 때 취재팀장이나 다른 누구에게 대신 쓰게 하려고 포맷에 캐리커처는 물론 편집장 이름조차 박아두지 않았다. 운 좋게도 5년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 다음으로 편집장을 한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는 담대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씨네21>을 떠
기본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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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도 어느덧 열여덟살이 됐습니다. 함께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뭇 매체들 없이 홀로 받는 생일상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네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시대, 영화를 사유하는 놀이터는 점점 그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개편을 준비하던 우리도 문득 멈춰 서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영화 천만 관객 시대, 영화주간지 <씨네21>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요? 이 질문을 미리 던져봤을 이들에게 답을 구했습니다. <씨네21>의 데스크를 맡아 매주 영화계 사안과, 원고와, 기자들과, 마감과 사투를 벌였던 다섯 전 편집장들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씨네21>의 미래에 대한, <씨네21>의 과거로부터의 에디토리얼입니다.
씨네리 편집장 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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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광장’에 진입하려면 우선 고속도로를 타고 톨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 법. 야근 중에 그가 내미는 초밥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일과 사랑을 성취하려면 우선 취직을 해야 한다. 이때 채용면접장은 여주인공이 유학파 본부장님 또는 실장님과 두 번째 조우하는 장소가 되고, 해프닝으로 쌓은 인연은 면접의 하이패스가 되어주는 셈. 이것이 처지를 보완하는 인맥과 연줄이란 것은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마지막 회에서 밝혀진다. 다시 취업전선에 나선 한세경(문근영)이 의류회사 면접에서 아르테미스 회장의 비공식 스타일리스트였다는 것을 어필하자 면접관들은 그녀가 한때 패션업계 거물의 피앙세였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점수를 고친다. ‘조금 전까지 난 D였을 거다. 그리고 이젠 A로 매겨지겠지. 헤어지고 나서야 난 정말 그 사람을 이용하게 되었다.’
트렌디 드라마에서 근사한 전문직으로 자아 실현하던 주인공들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사태를 꿈으로 버티는 백수시대를 지나, 취업경쟁
[유선주의 TVIEW] 현실이 어두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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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스탠윅은 ‘나쁜 여자’다.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1944)에서 보인 독한 여성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다. 돈을 위해 남편과 애인을 이중으로 배신하는 금발의 요부로 나와 남자들의 순진한 환상을 무참하게 깼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남편이 집을 비웠을 때, 젊은 안주인과의 스릴있는 모험이라는 남성의 백일몽은 결과적으로 목숨을 요구하는 메두사의 공포였다. 스탠윅이 연기한 필리스라는 여성은 방금 전 샤워한 젖은 금발에, 몸에 끼는 치마를 입고, 발찌 낀 다리를 까닥거리며 처음 본 세일즈맨을 유혹하는 태도로, 필름 누아르 시대의 못된 요부의 전형으로 각인됐다.
‘나쁜 여자’를 누가 발명했나
‘못된 여성’ 스탠윅의 이미지는 프랭크 카프라의 발명품이다. 사운드 시대의 도래를 맞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배우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스탠윅은 브로드웨이의 댄스걸 경력밖에 없었지만 발성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선배 배우들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스탠윅의 허스키한
[한창호의 오! 마돈나] 욕망하라 대낮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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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요즘 태일과 자주 영화를 보게 된다. 평일 낮에 극장을 어슬렁거릴 수 있는 한심한 친구가 드물기 때문이다. 태일은 아직도 인디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동갑내기다. 당연히 음악으로 먹고살기는 불가능해 틈틈이 인맥을 동원해 작은 행사- 예를 들면 지방 도시의 소규모 축제 무대- 같은 것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역시 넉넉한 벌이가 되진 못한다. 하여 늘 돈에 쪼들리나 어찌된 일인지 나에게 빈대 붙을 때만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다. 다른 곳에선 그 잘난 자존심 때문에 다 된 일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를 알게 된 지 이십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그 말투에 익숙해지질 않는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고, 하고픈 말은 무조건 내뱉고 본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워낙 많아서 말싸움을 하려 해도 쉬이 상대가 되질 않는다. 결국 둘이 얘기하다 보면 나는 주로 듣는 편이 되고 만다. 혹은 목소리 좀 낮추라며, 남들이 듣겠다며 주위를 둘러보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거나.
[이적표현물] 섹스엔 포르노, 인생엔 영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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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창간한 해. 아무것도 모르고 취재하러 간 칸영화제에서 정신을 추스르려 책방에 들어갔다가, 칸에 관한 로저 에버트의 에세이 <한낮의 태양 아래서 2주일>(Two Weeks in the Midday Sun)을 집었다. 저자 사인회라도 했는지 친필서명도 있다. 에버트는 이 책의 삽화도 직접 그렸는데,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 유행했던 조명 들어오는 펜을 향한 울화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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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결혼기념일에 공교롭게도 <안나 카레니나> 시사를 놓치고 <호프 스프링즈> 시사에 출석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해볼까 했으나, 역시 억지스러워서 그만두기로 한다. 세 자녀를 다 키워 독립시킨 결혼 30년차 케이(메릴 스트립)는 결혼의 낭만을 회복하고자 시도하지만 남편 아놀드(토미 리 존스)의 반응은 한마디로 “이 여편네가 뭘 새삼스럽게!”다. 케이는 온화하지만 결코 물렁한 여자가 아니다. 극히 비협조적인 남편을 한사코 카운슬링 여행에 끌고 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태엽 감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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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창간 18주년 축하 영상’ 유준상 황정민 윤제문
‘씨네21 창간 18주년 축하 영상’ 유준상 황정민 윤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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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재석과 달리 되게 평범했다. 조용하고. 나중에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고민의 결론이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한대 맞았다고 남의 학교 복도에 쳐들어가 자신을 때린 사람 나오라고 외치질 않나, 그마저도 성이 안 찼는지 소풍 가는 데까지 쫓아가 맞은 거 되갚으려고 하질 않나. ‘남서울고 독종 미친개’라는 별명답게 <전설의 주먹>의 재석(박두식. 윤제문의 아역)은 앞뒤 안 가리는 친구이자 빚지고는 못 사는 친구다. 대개 이런 부류의 친구들 중에 의리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친구가 많다. 덕규(박정민. 황정민의 아역)와 상훈(구원. 유준상의 아역)이 으르릉거릴 때마다 재석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적룡이 싸우는 거 봤냐”며 화해를 종용하는데, 단순무식한 그 모습이 전혀 얄밉지가 않다.
윤제문은 원작인 동명 웹툰을 읽자마자 자신이 재석을 연기하게 될 거라 직감했다. “강우석 감독님이 출
[윤제문] 못 말리는 막무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