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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28일까지
장소: 플라토(옛 로댕갤러리)
문의: 02-2014-6552
사랑은 넘쳐도 부족해도 곤란하다. 작업을 볼 때 예술가의 생애에 아예 무감한 것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독이 된다. 하지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96)는 예외로 하고 싶다. 누군가는 보통 사람과 다른 행성에 있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래서 그의 사랑과 죽음이 통속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된다면, 바로 이 작가가 아닐까 싶다. 쿠바 출신의 유색인종이자 동성애자로 살다 39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작가는 그보다 5년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동성연인 로스 레이콕을 향한 사랑과 애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애인이 세상을 떠난 1991년에 시작된 몇편의 작업에서도 느껴지듯 삶과 예술이 그에게는 한쌍의 조각배와 같았다. 미묘한 떨림을 가진 채 둥둥 물위를 계속 항해하며 만들어가는 두개의 포물선처럼.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회고전인 <Double>은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의 대상
[전시] 사랑과 애도의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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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왜 그렇게 잘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지난해에 몇번 받았었다. 흔히 말하는 미스터리/스릴러 성수기인 여름이 아닌 2월에 출간되었고,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듣보’(듣지도 보지도 못한)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삼아 “제목 때문에?”라고 대답했고, 나중에는 “입소문 때문에?”라고 했는데,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유 불명. 책이 재밌긴 한데 한국에서 출간되는 다른 뛰어나고 유명한 미스터리/스릴러보다 유난히 반향이 뜨거웠던 이유를 짚어내기란, 나아가 그 성공을 재현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아서다. 베스트셀러는 신이 만든다는 농담도 있잖나. 정말 그렇게 많이 ‘읽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동네 책대여점에서 이 책을 찾아봤는데, 돈모으기와 다이어트책도 이루지 못한 파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책 전체가 너덜거리며 부드럽게 닳아 파지묶음 수준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튼 그 놀라운 성공 덕에 보덴슈타인 수사반장과 피아 형사 콤비의 타우누스 시리즈 다른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친구 같은 캐릭터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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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집 근처 멀티플렉스 4DX관에서 3D로 다시 개봉한 <타이타닉>을 봤다. 제법 실감나는 관람이었다.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럿)가 타이태닉호 갑판 위에서 대화를 나눌 때 극장 어딘가로부터 바다 내음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고, 타이태닉호가 빙하에 부딪힐 때 좌석은 진동의자로 변모했다. 로즈가 천장에서 새는 바닷물을 맞아가며 배의 지하에 갇힌 잭을 구하러 갈 때 좌석 아래로부터 물이 튀어나왔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나의 감각이 서사에 맞춰 반응할 때마다 이야기에 더 몰입되기보다는 자꾸 딴생각이 났다. 물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과연 영화를 보는 행위인가 싶었다. 어두운 상영관에서 영사기로부터 투사된 빛이 거대한 스크린에 닿았을 때 생겨나는 환영이 고전적인 의미의 영화라면, 4DX로 체험한 <타이타닉>은 영화인 것도, 영화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영화와 함께 호흡했던 좌석의 특수장비는 ‘리얼’했지만 (앙드
[도서] 영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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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고난 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뜻밖에도 루쉰의 것이었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되는 것”이라는 문장이 간절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인가.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로부터 3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다큐가 제작되고 책도 나왔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두 개의 문>에 이르렀다. 기존 다큐들의 정서적 뜨거움을 간직한 채 매우 지적이며 섬세하게 진화한 이 영화는 21세기 대한민국 도심 한가운데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의 배후에 대해 침착하게 따져 묻는다. 영화는 이분법을 넘어서 질문한다. 진압당하던 철거민과 진압하던 특공대원은 모두 ‘그것’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건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지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용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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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힐>에서 휴 그랜트의 엉뚱한 룸메이트 스파이크라고 설명하면 제일 빠르겠다. 리스 이판은 TV와 영화를 넘나드는 코믹한 연기가 주를 이루지만, <한니발 라이징>에서의 냉혹한 범죄자 같은 면모도 시도하는 다채로운 얼굴의 배우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그가 연기한 코너스 박사는 스파이더맨 리부트의 핵심인물이다. 피터 파커의 아버지와 연결된 비밀의 중심에 서 있는 내면적 연기와 동시에 악당 리자드로서 액션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야 했다. 인터뷰 내내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이크의 모습보다 코너스 박사의 진지함을 더 보여줬지만, 몸동작까지 아끼지 않으며 어릴 적 스파이더맨의 추억을 말할 땐 영락없이 스파이크가 연상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악당 역할이야말로 블록버스터 엔터테인먼트의 핵이다.
=판타스틱했다. 훨씬 돈을 많이 주지 않나! (웃음) 정말 큰 영광이며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했다.
-주로 저예산 작업에 참여해왔는데 이번 작업은 스케일이 크다.
[리스 이판] “내 안의 야수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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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을 말해줘.” 소녀가 소년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첫사랑이 시작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그웬 스테이시는 슈퍼히어로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캐릭터일 것이다. 마크 웹 감독의 전작 <500일의 썸머>와 달리, 세계를 구하느라 바쁜 남자친구 때문에 상처받는 쪽은 언제나 그웬이다. 하지만 그녀를 연기한 에마 스톤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였다. 이 영화를 통해 만난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와 실제로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일까. 그웬의 수줍은 미소를 여전히 머금고 있던 에마 스톤을 만났다.
-한국 팬들에겐 <이지 A> <헬프>에서 보여준 당신의 빨간 머리가 친숙하다. 오랜만에 블론드로 염색한 소감이 어떤가.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웃음) 난 원래 금발이었으니까. 빨간 머리도 좋아하긴 하지만, 배우로서 이미지 변신을 위해 머리 염색은 꼭 필요한 것이므로 한 색깔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어메이
[에마 스톤] “앤드루는 훌륭한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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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트다. 모든 걸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마크 웹 버전에 대해서 분명한 건 지금껏 본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가장 서정적인 액션블록버스터란 점이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평가다. 피터 파커의 고교 시절을 중심으로, 그의 부모의 비밀, 그리고 첫사랑 그웬 스테이시와의 관계가 새롭게 부각된다. 좁은 마천루 사이를 횡단하는 스파이더맨의 몸놀림은 보다 유연해졌고, 마치 관객이 거미줄에 매달린 듯 고안된 시점숏은 시리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안겨준다. 감성과 액션 사이, 직접 만난 그는 좀더 장난기 많고 유머러스한 면모였다. 자신의 트위터에 한글로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멘션을 올리더니,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아이폰을 꺼내 기자를 찍는다. 좀더 여유있고 쾌활해진 하이틴 피터 파커가 탄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던 그와의 만남이다.
-이름이 벌써 운명적으로 얽혀 있었다 싶다. 마크 웹(Webb)에서 철자 하나만 빼면 거미줄(Web)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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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웹] “스파이더맨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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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의 흥행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벤져스의 창립 멤버이자 마블의 대표적인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은 도대체 어딜 갔느냐는 거였다. 이 물음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인 마블과 영화제작사 소니의 판권 관계를 차치하고라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개봉하는 6월28일엔 이런 농담도 가능할 거다. 스파이더맨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원을 추적하고, 첫사랑 여고생과 연애도 하고, 뉴욕시를 지키느라 바빴다고.
<500일의 썸머>의 마크 웹이 연출을 맡아 리부트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어느 날 갑자기 전지전능한 거미의 능력을 부여받게 된 청소년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의 모험담이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피터는 어린 시절 자신을 삼촌에게 맡기고 행방불명된 부모님의 사연을 추적한다. 아버지의 옛 친구인 코너스 박사(리스 이판)의 연구실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하던 피터는 수상한 거미에 물리고, 거미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정면돌파, 스파이더맨의 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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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블루 발렌타인> 빠져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올드독의 영화노트] <블루 발렌타인> 빠져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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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 장편소설을 축약한 것이 아니듯 단편영화도 장편영화의 편집본이 아니다. 단편에는 단편만의 미학과 가능성이 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자랑하며 신인감독의 등용문이 되어온 미쟝센단편영화제가 6월28일부터 7월4일까지 CGV용산에서 11번째 축제를 시작한다. 현역 감독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 의미있는 영화제는 이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단편영화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최대인 총 926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그중 60편의 본선 경쟁작이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한편 빛나지 않는 작품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섹션별로 특별히 장르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 15편을 먼저 살짝 소개한다. 이 짧은 안내문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두눈으로 꼭 확인해보시길 권한다.
비정성시 부문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Hopebus, A Love Story
감독 박성미 / 2012년 / HD / 컬러 / 8분26초
85호 크레인에는 두 사람의 죽음에
[영화제] 장르가 좋아, 그 상상력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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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가장 뻔한 클리셰를 제목으로 쓰는 사람들의 의도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이런 뻔한 것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걸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서재의 시체>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뻔해 보이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로 <캐빈 인 더 우즈>가 여기에 속한다.
제목만 봐도 <캐빈 인 더 우즈>는 슬래셔영화의 가장 고루한 공식으로 시작한다. 다섯명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숲속 오두막으로 간다. 가는 길에 그들은 음습한 경고를 하는 주유소 노인을 만나지만 그를 무시한다. 도착한 날부터 학살이 시작되는데, 최초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은 당연히…. 하지만 영화는 초반부터 이들의 뻔한 이야기 뒤에 무언가 다른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예고편에도 나오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오두막과 평범해 보이는 좀비 살인귀들 뒤에는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정
R등급 장르 축제 <캐빈 인 더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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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인상적인 연인이다. 둘은 서로를 묶고 있는 운명의 끈을 놓지 못한 채 격정적인 사랑과 맹렬한 파국의 순간을 함께한다. 자신을 학대한 인물에게 처절한 응징을 하고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히스클리프의 어두운 집념과 구둣발로 남자의 얼굴을 짓밟고 죽어가면서도 연인의 삶을 놓아주지 않는 캐서린의 불같은 열정은 한패가 되어 보는 이의 심장을 뒤흔든다. 비극적 사랑 이야기인 <폭풍의 언덕>은 서른살에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언덕 위해 세워진 저택(워더링 하이츠)에서 벌이지는 격정의 서사는 영화화된 것만 8번으로 알려져 있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는 고아 히스클리프(제임스 호손)를 집으로 데려와 자식처럼 키운다.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처음부터 자신을 싫어하는 힌들리(리 쇼), 첫눈에 호감을 표시하는 캐서린(카야 스코델라리오)과 형제로 지내면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간으
팜므파탈 그녀의 비극적 사랑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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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대신 쾌락을 느끼다 죽게 하는 독약이 있다. 광둥오페라 <옥의 사형집행인>은 이 독약을 발명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월극이라고도 불리는 광둥오페라는 경극과 오페라를 결합한 무대극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로 결정했다면 감독은 이야기의 어떤 점에 가장 이끌렸을까. <옥의 사형집행인>을 원작으로 한 <레드나잇>을 보면 감독은 망상에 빠진 채 살인에 심취한 여성 캐릭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캐리(오가려)는 자신이 전생에 ‘옥의 사형집행인’이라 믿는 여자 살인마다. 비닐로 입을 막은 뒤 칼로 배를 찌르는 등 수많은 여성들을 밀실로 유혹해 제법 잔인하게 죽인 그다. 어느 날 그는 독약이 담긴 골동품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는다. 그 골동품은 프랑스 여자 캐서린(프레데릭 벨)이 자신의 애인을 죽인 뒤 훔친 것이다. 캐서린은 골동품을 비싼 값에 팔아 달아나려고 하고, 캐리는 대리인인 산드린(캐롤 브라나)을 통해 골동품을 챙긴
독약이 담긴 골동품 <레드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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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하라다 도모요)의 첫사랑은 초등학생 때 동네 도서관에서 읽은 그림책 <달과 마니>의 주인공 마니였다. 마니는 태양 때문에 마르고 쇠약해진 달을 위로하며 “네가 빛을 받아서 또다시 누군가를 비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해주는 속깊은 소년이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마니를 찾다 지친 리에는 마니는 없다고 결론내린다. 그런 그녀에게 미즈시마(오이즈미 요)가 손을 내밀고, 홋카이도 쓰키우라에 정착한 두 사람은 ‘카페 마니’를 연다. 미즈시마는 빵을 굽고 리에는 커피를 내리는 카페 마니 2층에는 여행객을 위한 아늑한 침대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 아침마다 들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커피 한잔을 마시는 마을 회관 역할을 한다. 넓은 호숫가에 자리한 카페 마니는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외진 곳이라 낯선 손님은 거의 없다. <해피 해피 브레드>는 카페를 거쳐가는 낯설고 특별한 손님들이 들려주는 세 가지 사연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손님 가오리는
유별나지않아 특별한 인생의 답 <해피 해피 브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