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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는 아름다운 영화다. 비록 1920년대 파리의 흥청망청 예술적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21세기 미국인의 동경이 제국주의자의 향수와 맞물린다고 해도, 어쨌든 아름답고 감명 깊은 영화다. 오래된 푸조 자동차, 젊고 매력적인 여자들의 플래퍼 스타일, 화려하면서도 모던한 아르데코풍 옷을 입은 남녀들이 밤새 와인에 취하는 파티가 21세기 할리우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시나리오작가의 우울과 몽상을 안내한다.
이때 영화에 수차례 등장하는 콜 포터의 음악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음악과 가사가 분리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곡을 만들었고, 문학적 감수성과 운율이 충만한 가사로 현대 뮤지컬의 토대를 만들었다. 방황하는 작가 길이 과거와 조우할 때, 그리고 현실의 가브리엘과 만날 때 흐르는 <Let’s Do It(Let’s Fall In Love)>은 ‘바로 지금 사랑하라’는 낭만적인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뭔가를 통해 시대를 바꾸는 작가적 사명을 자극한다. &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낭만적인 선율로 깔아놓은 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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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시청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만듦새의 코미디 <루이>(Louie)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돌아온 싱글이며, 이혼 뒤 양육권을 공유하는 덕분에 2주마다 두딸을 돌보게 된 서툰 아빠 루이의 일상을 소재로 한 TV시리즈다. 생소할 수 있는 만듦새, 라고 운을 뗀 이유는 에피소드를 열고 닫는 루이의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지는 문화적, 언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나치게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탓에 사건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에피소드의 구성이나 에피소드와 에피소드가 이어지지 않는 분절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이>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무의미하다. 지나간 시즌을 본 적이 없어도 당장 TV에서 방영 중인 <루이>의 에피소드를 보기 시작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게다가 <루이>를 단 1분만 보고 있어도, 이 남자가 지루하고 반복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추적자>의 백홍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전천후 DIY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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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꽤 많은 드라마를 본다. 물론 일이 아니더라도 자진해서 챙겨볼 만큼 재미있는 작품은 방영 중 드라마의 3분의 1도 되지 않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드라마는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다. 그런데 2010년 방송된 SBS <산부인과>는 그 흔치 않은 경우 중 하나였다. 태아와 산모의 생명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특수 상황에서 의사들의 고뇌가 담긴 에피소드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정말로 마음에 들었던 건 주인공 서혜영(장서희)과 엄마(양희경)의 관계였다. 드라마 속 수많은 의사들이 가족을 병원에서 잃은 트라우마나 천재 의사였던 부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숙명처럼 안고 등장하는 것과 달리 그저 똑똑하긴 한데 나이 찬 딸을 시집보내지 못해 골머리를 썩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한없이 무뚝뚝한 딸의 관계가 건조하고 평범해서 좋았다. <산부인과>의 최희라 작가를 만나고 싶었던 건 그 묘한 모던함 때문이었다. 2년간의 취재와 고민 끝에 데뷔작 <산부인과>
[최지은의 TVIEW] 두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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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개미굴은 다이달로스의 미궁 못지않게 정교하며, 비버의 댐은 인간이 지은 교량 못지않게 복잡하다. 반복되는 육각형의 벌집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구조물 못지않게 튼튼하다. 동물의 건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새의 둥지가 아닐까? ‘둥지’라고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새의 종류만큼 다양하여, 그것들만 따로 모아놓아도 그 어떤 전시회보다 풍성한 컬렉션을 자랑할 것이다.
정초주의 vs 구성주의
철학의 은유로 가장 선호되는 이미지가 바로 ‘건축’이다. 건축에서와 마찬가지로 철학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작업은 역시 사유의 토대를 놓는 일이다. 이렇게 인간의 지식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토대 위에 올려놓으려 하는 욕망은 특히 근대 이후에 뚜렷해지는데, 이런 경향을 철학에서는 ‘정초주의’(foundationism)라 부른다. 이 시기에 나온 철학서들의 제목에 ‘기초’(foundation)라는 낱말이 사용되는 것도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둥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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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E1님들께서 새 노래를 발표하셨으므로 이 자리를 님들에게 바쳐야 마땅하겠으나 아직은 <I Love You> 한곡밖에 발표하지 않은 상태고, <씨네21>의 다른 지면에서 앨범을 다룰 게 분명하므로 일단은 경거망동을 삼가고 조용히 전곡 발표의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I Love You>는 서울 마을 갈 때 몇번 들었는데 마냥 좋더라. 새로운 노래들은 주로 버스에서 감상하는 편이다. 예전에 시디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닐 때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비닐을 뜯고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난생처음 듣는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서서 와도 즐거웠다. 음악은 버스에서 들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새로 산 시디를 파일로 바꾼 다음 버스에서 아이팟으로 듣는 경우가 많다.
버스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일산에서 서울 가는 (아니, 서울에서 일산 오는 건가? 아무튼) 광역버스에는 두대의 텔레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앗 뜨거워(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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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한팀이 된 한국과 중국의 프로 도둑 10인이 펼치는 범죄 액션 드라마 '도둑들'은 오는 7월 25일 개봉 예정.
[영상인터뷰]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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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주 특별한 3x3의 루빅스 큐브가 하나 있다. 무슨 보험회사인가에서 판촉물로 준 것인데, 거기에 이를 발명한 에르노 루빅 박사의 친필 사인이 있다. 몇년 전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루빅스 큐브를 들고 가서 사인을 받았다. 그는 헝가리인으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다.
나도 내 큐브를 만들었다. 한때 동일 형상의 물체가 공간을 연속적으로 채울 수 있으려면 어떤 형태적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빠져든 적이 있다. 결국 그 일반적 해를 찾는 데 성공해서 몇개의 변종들을 만들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진의 큐브’(Doojin’s Cubes)라고 불린다.
건축가들은 당연히 공간을 탐구한다. 다만 대부분 순수한 공간보다는 공간이 담아야 하는 기능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드물게 공간의 성질 그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구형의 공간에서는 어디에 서 있건 자신이 그 공간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로마의
[architecture+] 공간은 그 자체로 탐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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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 문재인 후보가 나왔다. 하얀색 ‘목 폴라’ 티셔츠 두장을 내게 보여주며 자기가 그걸 얼마나 즐겨 입고 또 애착을 느끼는지 말한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땀을 흘리며 “아, 네” 하고는 더이상 말문을 잇지 못한다. 그리곤 꿈결에도 내 의식은 이런 변명을 한다. “에이, 이게 다 ‘나 딴따라’ 때문이야. 괜히 나가서….”
예전에 <한겨레21>에 ‘전여옥을 위한 패션 제안’을 쓴 이래로(작정하고 조롱조로 쓴 글인데 그게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줬던 모양)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과 패션’이라는 테마로 원고 청탁이나 방송 출연, 심지어 강연 요청을 받곤 한다. 인과응보인 셈이다. 대부분 거절했지만 얼마 전 <나는 꼼수다>팀이 만든 <나는 딴따라다>의 게스트 출연 요청만큼은 사양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이해관계 없이도 멀리서나마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사이고, 또 웬만해서는 그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우정이랄까, 인간관계
[SO WHAT] 그 남자의 ‘목 폴라’가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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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헤이와이어>를 보며 어린 시절 본 액션영화들이 마구 섞이며 업그레이드되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주인공이 매력적이고 액션이 인상적이어서 상투적인 스토리 전개도 다 용서가 된 채로 몇몇 이미지들이 마음에 남아 가슴이 슬쩍 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영화들 말이다. 절대적으로 이는 여주인공 말로리 케인을 연기한 지나 카라노의 신체 연기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능란한 연출 덕분이다. 미국 영화평론가 피터 트래비스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앨프리드 히치콕이 만든 팸 그리어 영화’라는, 일급의 서스펜스 기교로 B영화를 만들고자 한 소더버그의 창작목표를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그것이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을 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소 길게 말하고 싶은 이유이다.
날것 그대로의 액션
<헤이와이어>의 첫 장면, 말로리 케인은 한적한 시골 레스토랑에서 차를 따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밤을 새워 피곤하다고 투덜대는 건장한 청년이 그녀
[신 전영객잔] 순수 액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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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만불 전달을 명한 후 자신을 죽이고 돈을 빼돌리려는 상무의 음모를 알게 된 대기업부장이 대반격에 나서며 펼쳐지는 코믹 추격극 '5백만불의 사나이'는 오는 7월 19일 개봉 예정.
[조성하] "박진영의 연기 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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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와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각각 ‘기원의 서사’와 ‘종말의 서사’로 명명하고 두 영화를 함께 읽어보겠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잉태되는 성스러운 순간에 참여할 수 없고, 죽은 뒤의 세상에 미리 입회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주는 불안을 견뎌내기 위해 이야기라는 것을 만들어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탄생’과 ‘죽음’은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어쩔 수 없는 두 뿌리다. 그것이 인류와 우주의 층위로 확대되면 바로 ‘기원’과 ‘종말’의 서사가 구축될 것이다. 이를 감히 ‘서사의 서사’라 칭해도 될까. 당대의 거장들이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서 나는 긴장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나서는 애초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프로메테우스>는 ‘기원의 서사’라는 명칭에 힘있게 부응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저스틴, 이것은 당신을 위한 종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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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의 인력 수요가 증가하자 많은 일본인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1920년, 전체 하와이 인구 중 43%가 일본인일 정도로 일본인을 포함한 이민자 수가 급증하였고, 이에 하와이는 새로운 이민법을 도입해 추가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게 ‘일본인 하와이 이민사’를 꺼내든 까닭은 레오 요시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가 (영화에서 거의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말랑말랑한 ‘힐링 무비’가 아니라 사실은 하와이에 고립된 일본인 이민자들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달 무지개를 보기 위해 여자친구와 하와이 호노카아 마을에 온 레오(오카다 마사키)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이곳으로 이사 온다. 그 마을엔 레오에게 밥 지어주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비 아줌마(바이쇼 지에코), 여배우들을 동경하는 할아버지 코이치(2011년 세상을 떠난 기미 고이시), 극장에서 빵을
그들의 달 무지개 <하와이언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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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로비스트 한 상무(조성하)는 부하직원 영인(박진영)에게 로비자금 전달을 명한다. 자신이 운전하는 차 트렁크에 500만달러가 든 줄도 모른 채 검은돈을 운반하던 영인은 도중에 괴한에게 습격당한다. 정신을 차린 영인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유서를 발견하고, 형처럼 따르던 한 상무가 자신을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인은 500만달러를 미끼로 한 상무를 유인해 기업의 비리를 세상에 고발하려 한다. 한편, 날라리 여고생 미리(민효린)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들고 나갈 악기를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시도한다. 샤워 중인 깡패 필수(오정세)의 소지품을 모두 털어 도망간 미리는 본의 아니게 다이아몬드 도둑이 되어 필수 일당에게 쫓긴다.
두개의 추격전은 결국 영인과 미리가 같은 배를 타면서 하나로 모인다. 여기에 조폭 조 사장(조희봉) 일당과 경찰이 따라붙으면서 추격전의 규모는 커진다. 그런데 이 추격전에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긴장감이다. 추격전의 쾌감이 영화적으로 전
검은돈과 다이아몬드 <5백만불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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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풋풋한 처녀와의 뜨거운 밤을 나에게 선사하고 싶소.”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엘사비오(에밀리오 에체바리아)는 친애하는 ‘뚜쟁이’ 로사 카바르카스(제랄딘 채플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이런 딱한 양반.” 청을 들은 그녀는 그에게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늙음을 연민하는 두 늙은이들 앞에 단추공장에서 일하는 가여운 소녀(파올라 메디나)가 나타나고, 그렇게 후텁지근한 밤하늘 아래 노인과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이후 노인과 소녀가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현재 속으로 노인이 쓰는 일요칼럼과 그의 과거의 잔영이 얽혀들면서, 영화는 한 노인의 절절한 연애소설이자 동시에 담담한 회상록이 되어간다.
감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일흔일곱살에 발표한 원작 소설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그 결과, 또 한편의 ‘소설 읽어주는 영화’가 완성됐다. 문제는 그 ‘충실함’이 종종 불필요한 독백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정적인 분위기만으로 충분할 순간에, 영화는 노인의 입을 빌려 소설에 나오는
‘소설 읽어주는 영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