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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푸셨겠어요.” <26년>의 개봉을 앞둔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에게 말을 건네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원을 풀었다기보다 다행스러운 거죠. 영화를 못 만들게 한 자들이 존재했잖아요. 그건 살아가면서 내가 유일하게 저항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거예요. 내가 전두환의 추징금을 걷는 법을 나서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영화인으로서, 영화를 못 만들게 하는 놈들이 있다면 그건 못 참죠. 거기에 꺾이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결국엔 그 역할을 해냈으니 다행인 겁니다.”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26년>이 드디어 개봉한다. 영화 <26년>은 1980년 5월 광주에 비극을 초래한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 다섯 인물의 복수극이다. 2008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던 영화는 그러나 “느껴지지만 보이지는 않는 바람과도 같은 존재”에 의해 제작이 무산된다. 이후로도 최용배 대표는 <26년>을
하나 하나의 힘이 소환한 광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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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그렸지? 지난 2011년 완결된 다음 웹툰 <인터뷰>를 보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루드비코’란 이름을 검색한 독자가 틀림없이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국적인 그림체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매혹적인 이야기. <인터뷰>는 한국의 웹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독보적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감독 데이비드 린치를 꼭 빼닮은 소설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출세작 <주홍색 스카프>를 내놓은 뒤 슬럼프에 빠져 있다.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해온 작가는 그의 미발표작 <헝가리 사진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단 한명의 기자와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동안 솔직한 평가에 목말라 있던 소설가는, 인터뷰는 집어치우고 신작 얘기나 하자며 기자를 붙들어매고 세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들의 대화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 작품을 제대로 완성해내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스탠리 큐브릭에게 영향을 받은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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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죽었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떴는데, 모르는 남자가 자신이 ‘신’이라며 이런 말을 건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네이버 목요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인생의 항해를 마치고 죽음의 문앞에 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의 인생이 같지 않듯,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울부짖고, 어떤 사람은 비로소 평화로워지고, 어떤 사람은 살아생전의 죗값을 치른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기억을 잃고 죽음의 문으로 걸어들어가기 전, 삶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다. 이 ‘인생 정리’를 관장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게 <죽음에 관하여>의 기본 설정이다. 그렇다면 사후세계를 다룬 수많은 만화들과 다를 게 뭐냐고? 몇화만 읽어봐도 알게 될 거다. 이 웹툰의 매력은 몇번이고 내용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마지막 컷의 강력한 일격에 있다는 점을. 예측 가능한 수순으로 흘러가는가 싶던 망자와 신의 대화는, 망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보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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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끔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을 때, 지름신이 강림할 때, 학교나 직장에서 욱할 때 등등. 그런데 그런 순간들에 묘한 쾌감이 있다. 평소에는 꾹 참고 있다가 한번씩 폭주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또 허전해지기도 하는 바로 그 느낌.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마다 찾아오는 ‘스튜디오 놓정’의 웹툰 <놓지마! 정신줄!>은 그 ‘삘’에 집중해 지난 3년간 달려왔다.
300회가 넘도록 그들이 네이버 웹툰 랭킹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 있을 것이다. 입시 스트레스와 왕성한 식욕에 시달리는 여고생 막내 정주리(정줄이), 비상한 두뇌를 가졌지만 아직 군대를 안 간 대학생 맏아들 정신, 명예퇴직을 앞둔 대기업의 만년 과장 아빠 정 과장, 세 사람 챙기느라 항상 ‘멘붕’ 직전인 엄마. “세대별로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이 가족의 막장 일상은 <심슨 가족&g
빵 터지면 사라지는 그건, 정신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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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cm의 커다란 키. 홍승표 작가가 큰 키만 한 박스를 들고 뛰어온다. “집 나온 지 얼마 안돼서. (웃음)”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이고삼’(<고삼이 집나갔다>) 체험이라도 하는 걸까. 부천만화영상진흥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피스텔, 현재 그가 가족과 떨어져 주말을 빼곤 꼬박 거주하는 공간이다. “처리할 일이 많아져서 작업실을 따로 얻어서 나왔다. 지금도 집기를 사가지고 오는 참이다.” 네이버 일요웹툰 <고삼이 집나갔다>와 모바일웹 <닭통령계양반>에 노래 가사 작업도 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일주일에 7일을 꼬박 일했다. 다른 작가들이 도박빚이라도 있냐고 놀리더라. 작업실 와서 바짝 일하니 하루라도 여유가 생겼다.”
홍승표 작가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그의 영역이 확고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르물과 일상툰이 대부분인 웹툰계에서 그는 현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드라마화한다. ‘미티’라는 필명을 널리 알린 <남기한
청소년 여러분, 부모님과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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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혼자 있는다/그동안 이집은 내가 왕이다/나는 윗집을 향해 크게 짖을 수도 있고/쓰레기통을 뒤질 수도 있지만/하지 않는다/어릴 때는 한 것 같기도 한데/지금은 하지 않는다/이젠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얼마 안 남아서/아주 소중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6화, ‘열다섯살이에요’ 중에서
사무실에서 이 웹툰을 정주행하다가 아차 싶었다. 집에서 볼걸.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혹여나 옆자리 선배가 눈치챌까 조용히 훌쩍이며 스크롤을 내려야 했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의 주인공은 작가의 반려동물인 열다섯살 푸들 낭낙이와 두달 된 아기 고양이 순대다(연재가 2년간 계속되며 낭낙이는 열일곱, 순대는 두살이 됐다). 초 작가는 그들의 눈빛으로부터, 보드라운 털의 온기로부터 읽어냈던 마음의 소리를 일상적인 에피소드에 담아 풀어냈다. 댓글에 ‘ㅠㅠ’의 행진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은 낭낙이
낭낙이의 생이 다할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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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분량.’ 고영훈 작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미안하지만, <트레이스>를 보면 이런 과격한 언사를 수정할 생각이 안 든다. 지금까지 총 200회가 넘는 분량. 2007년부터 다음 만화속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5년째인 2012년 <트레이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플 때 빼고는 항상 <트레이스>를 그렸다.”
지금은 1.5버전을 통과한 잠깐의 휴지기. 2기는 내년 초에 들어갈 예정이다. “평생을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다. 안 끝났으면 좋겠다.” 마블코믹을 즐겨봤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히어로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분량만큼이나 <트레이스>는 다양한 이야기로 그 긴 시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아왔다. 후천적 트레이스가 된 소년 강권의 이야기로 시작된 <트레이스>는 어느덧 트레이스의 운명으로 가족을 잃은 평범한 가장 윤성의 비극을 다룬 ‘거지’, 트레이스의 운명으로 사랑을 놓친 비극적 연애담 ‘장미’
한국형 히어로물의 끊임없는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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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숲>에는 살인자들이 산다. 모두 연쇄 살인범이다. 모두 사이코패스고 미친놈들이다.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살인의 덫을 놓기도 하고, 아이들을 납치해 잔인한 고문을 하다가 죽이기도 하고,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살인을 하기도 하며 아무나 보면 일단 죽이고 보는 살인범도 있다. 과연 이들 가운데 최강의 ‘똘아이’는 누구인가. 누가 가장 무서운 사이코패스인가. <인간의 숲>을 수차례 정주행하게 만드는 한편, 새로운 이야기가 올라오는 매주 월요일마다 ‘<인간의 숲> 00화’를 검색어 상위에 올려놓는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이 질문에 있다. 그들의 아귀다툼은 당연히 섬뜩하지만 때로는 뜬금없고, 종종 웃기기까지 한다. 애독자들이 내놓는 답은 결국 하나로 모아질 것이다. 작가가 제일 무서운 놈이다!
<인간의 숲>을 연재 중인 황준호는 이미 <악연> <공부하기 좋은 날> 등의 작품을 통해 웹툰계의 스타로 떠오른 작가다. 데뷔
이번 주에는 어떤 살인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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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인터뷰를 잘 안 하는데….” 그가 인터뷰에 선뜻 응한 건 지금, ‘영화에 매인 몸’이라서다. 요즘 훈(본명 최종훈) 작가의 프로필엔 김수현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자라는 소개가 포함된다. 촬영장이 작업실인 부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요즘은 촬영장 방문도 자주 한다. “영화사에 약속한 게 있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하겠다고. 물론 영화사에서도 원작자에 대한 예우가 확실하다.” 촬영 중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뿐 아니라, 전작 <향연상자> <해치지 않아>도 이미 영화화 판권이 팔린 작품들이다. 추이를 보니 강풀작가라도 꺾을 기세다. “배급까지 확정된 건 <은밀하게 위대하게>밖에 없다. 사실 나 말고도 웹툰 작가들이 영화사와 계약을 많이 한다. 그런데 열개 계약하면 한 작품 될까 말까 한 실정이다. 적은 계약금만 주고 작품을 묶어놓고 그냥 버리는 거다. 만들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끝까지 봐야만 알 수 있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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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과 인쇄만화의 경계를 논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보는 웹툰과 종이를 넘겨보는 인쇄만화의 형식을 두고, 만화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느라 바빴다. 웹툰 작가의 처우는 턱없이 낮았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과도기를 지나 웹툰은 빠르게 그 자체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간 웹툰 작가들은 본연의 가치를 찾았고, 더불어 ‘비교적’ 나쁘지 않은 고료를 확보했다. 인기를 모은 웹툰이 인쇄만화가 되고, 또 영화 원작이 되는 순서가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다. 웹툰 진영은 이제 신진 ‘만화가’의 양성, 커뮤니티 형성을 주도하며 안정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바야흐로 웹툰 전성 시대다. 지난해 6인의 웹툰 작가에 이어, 올해는 8인의 웹툰 작가를 만났다. 지금 당신이 가장 먼저 챙겨봐야 할 목록에 기초한 선정이다.
언제 어디서나, 웹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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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이 한창인 11월 중순, 남산 자락에 자리한 동국대학교 교정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계절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의 발걸음에도 여유가 실려 있다. 도심에서 자연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서울 시내 여느 대학들이 갖지 못한 동국대만의 자랑이다. 이곳이 수많은 한국 영화인, 연극인들의 모교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국대 연극학부와 영화영상학과는 2006년까지는 한몸이었다가 현재는 예술대학 연극학부와 영상미디어대학 영화영상학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2013학년부터는 다시 같은 예술대학에 소속될 예정이다. 이름은 달라도 한지붕 아래에서 재능있는 영화인, 연극인 양성에 힘쓰고 있는 연극학부와 영화영상학과를 찾았다.
졸업 전까지 무려 10편 이상의 작품에 참여
학술관 지하 2층에 자리한 무용실에서는 신영섭 학부장의 지도 아래 ‘뮤지컬제작실기’ 발표 작품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준비 중인 학생
[동국대학교] 50년 역사와 전통에서 탄생한 수많은 영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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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살 때 서울에서 여자애가 전학 왔다. 자갈 깔린 마당을 코스모스로 두른 2층 양옥집에 살던 걔는 ‘도시 여자’답게 촌뜨기들과 말도 섞지 않았다. 기억하는 건 검은 자가용을 타고 학교에 오고 집에 가던 실루엣뿐.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가 정부 일 하는 무서운 군인이래, 집안에서 정한 약혼자가 있대. 코찔찔이 나는 코스모스나 뜯으며 정체불명의 여자애가 궁금했다. 하긴 무슨 상관이람. 어른이 된 그녀는 어디서 소고기나 사 묵고 있겠지.
<서칭 포 슈가맨>은 소문에 대한 이야기다. 남아공을 뒤흔든 정체불명의 뮤지션을 추적하는 여정이 탐정영화처럼 펼쳐진다. 결론은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이다. 그의 앨범은 실패했지만 성공했다. 그는 죽었지만 살았다. 이 모순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한편 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팝 산업의 유년기’에나 가능했을 것이기도 하다. 유튜브와 대자본이 음악 산업을 좌우하는 21세기에는 아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지금은 기대할 수 없는 판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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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넷에 가지 않아도, 82쿡에 가지 않아도 슬금슬금 들려온다. 결혼한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시월드’ 입성 스토리가. 예비 시어머니가 초대면에 뚱뚱하다며 지적하자 (그런 집안에 절대 시집가지 말라며 파르르 떠는 나를 무시하고) 독하게 다이어트를 해 평생 가장 예쁜 모습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친구나, 똑똑한 딸에게 기대가 컸던 부모님 반대에도 수년을 버텨 연애결혼에 성공한 친구나, 끝없는 주말 맞선 출석에 지친 끝에 비교적 무난하고 안정된 상대와 중매결혼을 한 친구나 입을 모아 하는 충고를 요약하면 딱 한마디. “결혼은 현실이야.” 그리고 덧붙이길, “너 진짜 걱정된다. 정신 차려”.
그러나 먼 옛날 과년(瓜年)의 기준이었던 나이 열여섯… 의 곱절 이상 나이를 먹었음에도 긴장감이나 현실감각이라곤 없이 살아온, 로맨스포비아인 동시에 지독한 로맨티스트라는 딜레마를 가진 내가 진짜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것은 요즘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보면서다. 제목 그대
[최지은의 TVIEW] 결혼 선행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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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사를 뒤져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회화의 은유로 사용되어왔다. 가령 플라톤은 회화를 ‘거울’에 비유했고, 로마의 저자 플리니우스는 회화를 ‘그림자’와 연관시켰다. 어느 여인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벽에 세워놓고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린 것이 회화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회화를 ‘창문’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마도 원근법 때문이리라. 르네상스 회화의 과제는 사물의 외관을 넘어 아예 3차원 공간의 환영을 창조하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회화를 창문으로 여긴 것이리라.
창조자, 제작자, 모방자
먼저 가장 오래된 ‘거울’의 비유로 돌아가보자. 플라톤의 어느 대화편(<국가> 10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인 글라우콘에게 놀라운 창조자에 대해 언급한다. “이 재주꾼은 모든 가구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흙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만들며, 모든 동물도, 즉 다른 것들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도 만들어내며, 이것들에 더해 땅과 하늘 그리고 신들, 그리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세계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