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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많아도 너무 많다. 왕이 하는 일도 많다. 백성을 긍휼하고, 대신들의 간언에 시달리는 것에 더해 사랑도 한다. 지난해 방영된 <뿌리 깊은 나무>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만난 왕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르면 뜻밖의 기회로 왕을 대신하게 된 남자까지 만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왕은 언제나 많았고, 조선이든 고구려든 신라든 국적도 다양했지만 대선을 앞둔 올해 들어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많아졌다는 건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게다가 그들은 연산군처럼 광기에 젖은 인물도 아니고, 숙종이나 정종처럼 여인들이 벌이는 암투의 한복판에 놓인 왕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왕을 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에게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계기삼아 지난 1년 동안 관객이 만났던 왕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을 통해 관객의 열망을 흡수하는 대중문화의 태도를 엿보려
2012년, 우린 어떤 해를 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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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매체에 속한다. 그와 나눈 인터뷰도 여러 차례다. 따라서 영화에 관한 김기덕 감독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짐작게 해주는 인터뷰 요약 발췌 모음을 준비했다. 여전히 중요해 보이는, 혹은 지금 보니 의미가 새로워 보이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맥락과 분량을 위해 일부 편집을 거쳤으나 문답이 오고간 상황은 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두 영화에 대해 나는 제작자라기보다는 후원자에 더 가깝다. 난 항상 감독이고 싶지, 제작자이고 싶진 않다. 평가를 하자면 <아름답다>는 참 괜찮은 소재인데, 완성된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청되고 감독에겐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영화는 영화다>는 꽤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이는데, 사실 시나리오는 훨씬 경쾌했다. 그걸 장훈 감독이 조금 무겁게 누른 것이다. 다들 거꾸로 알고 있지만. <영화는 영화다> 제작비는
“말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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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이 <씨네21>의 카메라 앞에서 사라진 지 어느덧 만 4년이 되어간다. 정확하게 2008년 9월24일 오후 3시경,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위 요리학교의 카운터 앞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김 감독이 웃으면서 “<씨네21>에서 갖고 있는 내 사진들로 전시회를 해도 되겠네요. 그죠?”라고 얘기했고, 나는 “우리 언제 한번 정말 전시회 할까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번듯한 곳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그의 사진들로 멋지게 꾸미는 전시회는 아니지만, 여기 그와의 추억이 깃든 사진들을 모아보았다. 전쟁터처럼 숨가쁘게 돌아가는 영화 촬영장 한켠에서 점심을 햄버거로 때우며 콘티북을 들여다보던 그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약간 미안해하며 내게 햄버거는 먹었냐고 다정히 물어봐주던 그의 살가운 인사말도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다시 김기덕 감독이 우리를 그의 치열한 영화 현장으로 다정하게 초대해주기를 소망한다.
촬영현장의 김기덕 감독을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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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악어> 때부터 김기덕 감독을 주목한 이는 드물었다.
<씨네21> 전 편집장이었던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실장은 그 드문 경우 중 하나였다. <악어> 이후 김기덕 감독을 꾸준히 응원하고 지지해왔던 그의 감회 또한 남다를 터. 그에게서 김기덕 감독과의 첫 만남부터 최근의 만남까지,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다.
H.O.T 팬과 윤제에겐 <응답하라 1997>이지만 한국영화 역사가에겐 <응답하라 1996>이 맞는 숫자일 것이다. 1996년은 한국영화사의 특별한 한 장을 장식할 만한 해다. 그해 5월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했고 11월 김기덕의 <악어>가 선을 보였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그해, 우리는 동시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두 작가와 처음 만났다. 당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평단의 기립박수를 받은 반면 <악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야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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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베니스를 떠나 있던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돌아와 올해부터 영화제의 새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바로 당시 무명이었던 김기덕 감독의 <섬>(2000)을 베니스로 초청했던 장본인이다. 올해 <피에타>의 베니스 입성은 그렇게 시작부터 뭔가 분위기가 좋았다. 이내 <피에타>는 영화제 상영 직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9월3일 언론을 상대로 한 시사회장에서 기립박수 10분이 터져나왔다는 뉴스도 날아들었다. 실제로 베니스영화제 언론 시사회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도 “다른 일정 때문에 영화제 중간에 떠나게 되어 시상식까지 보진 못했지만 <피에타>에 대한 반응은 영화 상영 직후부터 아주 뜨거웠다”고 전해준다. 이탈리아 현지 평론가들이 참여하여 별점을 매기는 영화제 공식 데일리 <베네치아 뉴스>에서도 <피에타>는 별점 다섯개 만점에 네개 반을 얻으며 선전했다. 마침내 폐막
넌더리나게 폭력적인, 하지만 예기치 않게 감동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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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은 원래 곧장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 아니었다.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이 결정됐고 이를 축하하는 국내 기자회견이 마련되면서 급히 발길을 돌리게 됐다. 참석자는 김기덕, 조민수, 이정진. 물론 많은 취재진이 모였다. 9월11일 베니스 수상 기념 기자 회견장, 주인공들은 수상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사회자_수상 소감을 부탁한다.
=김기덕_좋은 일이다. 내가 받은 상이지만 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한국의 좋은 영화들이 꾸준히 국제무대에 소개되고 그 결과가 누적되어서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온 것이다. 결국은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민수_바로 이 자리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이 찾아준 것 같아 감사하다. 현지에서 내가 느꼈던 걸 여기서 다 전달 못해 아쉽다. 감독님, 그리고 한국영화, 대단했다.
이정진_사실은 낯선 광경이다, 이런 환영이.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 대표로 받은 것 같아 기쁘고 이 자
“이제 0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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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한국영화 최초로 3대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베니스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이다. <씨네21>은 수상을 계기로 <피에타>와 김기덕 감독에 관련한 이모저모를 엮었다. 급히 귀국하여 가진 감독, 배우들의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정리했다. 베니스 현지의 뜨거웠던 반응도 전한다. 그간에 김기덕 감독이 <씨네21>과 나눴던 역대 인터뷰 중 특기할 만한 내용들도 발췌 요약하여 정리했다.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데뷔작 <악어>부터 이미 작가 김기덕을 알아보고 강력하게 지지해온 남동철 <씨네21> 전 편집장은 ‘내가 본 김기덕’에 관한 애정 어린 글을 보내왔다. 그동안 우리가 찍은 김기덕 감독의 생생한 사진들도 화보로 넣었다.
김기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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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내러티브, 여러 관점에서 <맨 인 블랙> 1편의 엔딩만큼 충격적인 영화적 순간도 드물 것이다(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90년대를 대표하는 어떤 영화들처럼 숱하게 회자되던 엔딩이었지만 5년 만에 제작된 2편은 그 재기발랄하고 심오하기까지 했던 철학적 위트가 휘발된 시시한 블록버스터였다. 3편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는데, 정작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뜻밖의 순간에 큭큭 웃음이 터졌다. 음악 덕분이었다.
2편의 음악이 서툴게 쓴 비유같이 좀 유치했다면 이번엔 시대가 시대니만큼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요컨대 과거로 간 ‘제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던 <Love Is Strange>가 알고 보니 엔딩에 흐르는 핏불의 <Back In Time>을 샘플링한 곡이라든가. 특히 캐딜락을 모는 ‘제이’와 오토바이를 탄 ‘짐승 보리스’가 교차될 때엔 롤링 스톤스의 <2000 Light Years From Hom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뜻밖의 순간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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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길에서 주운 긴 막대기를 홰홰 휘두르다보면 어쩐지 팔도 길어진 것 같고 내 능력도 그만큼 커진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았다. 그렇게 종일 가지고 놀던 막대기는 집에 갈 때가 되면 ‘오늘 놀이는 여기서 끝’이라는 의미로 반 동강을 내거나 괜히 여기저기 후려치다 던져버리는데 어느 날인가는 각목 조각을 학교 철봉에 휘둘렀나보다. 어둑한 하늘에 쩡 하는 소리가 울리며 손에 저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조금 전까지 내 몸과 의지의 연장인 양 휘둘러대던 막대기와 철봉의 물성이,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큰소리의 울림으로 인해 빈 운동장의 공간감이 확 끼쳐오는 기분.
코흘리개 시절의 기억을 불러낸 이유는 SBS 드라마 <신의>의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원나라에서 고려로 향하던 공민왕(류덕환) 일행을 호위하던 무사 최영(이민호)은 기철(유오성) 수하의 습격을 받은 노국공주(박세영)를 살릴 ‘화타의 제자’를 찾아오라는 명을 받는다. ‘하늘문’을 통해 2012년 봉은사로 타임슬립한
[유선주의 TVIEW] 아우, 어쩜 뭐 하나 쉬운 게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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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서울아트시네마의 김보년씨가 “자막 작업용으로 <오루에 쪽으로>의 DVD를 빌려달라”고 했다. 시네바캉스영화제 상영작이라고 했다. 몇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첫째, 자크 로지에의 영화를 드디어 필름으로 보게 돼 기뻤다. 둘째, 그런데 왜 더 유명한 <아듀 필리핀>이 아니고 <오루에 쪽으로>일까? 엉큼한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속이 궁금했다. 셋째, 어김없이 찾아온 휴가의 계절이 난 슬펐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올해도 휴가 없이 지난 여름을 마쳤다. 프리랜서로 지낸 지난 몇년 동안 휴가를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당연한 것인 양 즐겼던 해외여행은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따로 휴가가 없는 난폭한 생활에 적응하게 됐다.
<오루에 쪽으로>는 해변의 빌라로 늦은 휴가를 떠난 세 여자의 이야기다. 직장 동료가 의도적으로 찾아오고, 또 다른 남자가 끼어드는 것 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소소한 순간들에 대한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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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영화의 포스터는 제목에 충실하게 고전적 피에타의 도상을 반복한다.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99)의 시각적 인용이리라.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라, ‘피에타’라는 제재가 영화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피에타’라는 기독교 도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피에타의 역사
우리에게는 ‘피에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 미술에서 이 제재는 원래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의 전통이었다. 독일에서는 이런 조각상을 ‘베스퍼빌트’(Vesperbild)라 불렀다. ‘vesper’가 라틴어로 저녁이라는 뜻이니, 아마도 수도원에서 일몰 기도를 드리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조각상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 앞에서 기도를 할 목적으로 제작한 조각상을 독일에서는 ‘묵도상’(Andachtsbild)이라 부른다.
이 제재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피에타라는 도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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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발달할수록 극한의 상황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은 오히려 늘어난다. 뱃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경우다. 배는 비교적 넓은 거주 공간, 그리고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석유시추탑, 극지의 연구시설, 지구 여기저기의 각종 관측시설, 이런 상황들의 리스트는 길고도 다양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공간은 그중에서도 우주선, 그리고 잠수함이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티는지 상상이 안된다. 우주개발사를 들여다보면 실제로 이런 문제들이 심각하게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최초의 우주인을 선정할 때 우주선 내부의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이유로 두 다리가 없는 사람들을 고려한 적도 있었다(무중력 상태에서는 다리가 필요없다). 우주복 개발과정에서는 이것이 옷이라기보다 작은 집 같은 것이어서 많은 우주인들이 폐쇄공포증을 갖게 되었다. 결국 이에 대한 훈련이 별도로 필요했다.
잠수함은 어떨까. 일단 완벽한 밀폐는 기본이다. 게다가 우주선에도 있는 창
[architecture+] 밀폐된 공간이 주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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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 위의, 커다란, 불안바람이 선선해지자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자연의 변화와 내 몸의 생체리듬이 정확히 연동되어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매년 가을이면 찾아오는 지랄 같은 병이라 유난하다 할 것도 없지만 매번 절망은 사무치고 상심한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 특히 이번의 경우는 각별하다. 내 양어깨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그 괴물이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다.
괴물은 말이 없다. 스스로를 절대 설명하는 법이 없다. 다만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바라볼 뿐이다. 괴물을 돌아볼 수도 없다. 내 어깨 위에 발톱을 꽂고 석상처럼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것을 괴물이 똑같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초조하다. 괴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끔씩 쿨럭인다. 발톱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나는 안다. 그가 그럴 때마다 나를 조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벗어날 수 없
[SO WHAT] 당신의 어깨 위엔 어떤 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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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다운로더 캠페인'은 불법다운로드를 막자는 차원을 넘어, 올바른 다운로드로 매너있고 당당하게 영화와 문화 콘텐츠를 즐기자는 합법 다운로드 권장 캠페인이다.
[영상인터뷰] 박중훈 류승룡 조정석 신세경 ‘굿 다운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