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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수업이란다. 마포구인 집에서 단국대가 있는 경기도 수지까지 어림잡아 1시간 반 내지 2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적어도 새벽 6시 반에는 눈을 떠야 한다. 이런 낭패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잡는다지만 졸업한 지 8년 가까이 지난 내게 그건 아무래도 무리다. 미처 잠에서 깨지 못한 몸을 이끌고 서울역 환승센터에서 8100번 빨간 버스를 탔다. 40여분을 달렸을까. 버스는 친절하게 나를 학교 안에 모셔다주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오면 서관 건물이 보일 겁니다.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이 그곳에 있어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한 관계자가 보내준 문자를 확인하고 오른쪽을 바라보니 건물 하나가 보였다. 등교하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서관이 맞단다. 건물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입주 정보가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김동호, 윤제균, 곽경택, 김태용,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박기용, 김미희, 정서경 등. 충무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감독, 프
단순한 이론 수업?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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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설립된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이 두 번째 학기에 접어들었다. 김동호, 윤제균, 곽경택, 이명세, 김태용,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박기용, 김미희, 이춘연, 김선아, 강지영, 정서경, 우정권 등등. ‘창의력을 지닌 현장 실무전문인 양성’이 교육 목표인 만큼 설립 전부터 화려한 교수진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대학원 교학부장이자 스크린라이팅 관련 수업을 맡고 있는 우정권 교수는 “처음 대학원을 설립할 때 교수진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충무로 현장 경험이 최소한 10년 이상 되는 분 중 연출, 프로듀서, 시나리오 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원생 역시 디렉팅, 프로듀싱, 스크린라이팅 세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장 중심 교육을 표방하는 커리큘럼 역시 대학원생 구성에 맞춰 세 트랙으로 구분되어 있다. 다만 각 트랙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융합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김동호 원장은 “세 트랙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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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영화학교의 교장으로 벨라 타르를 다시 만났다. 건축의 바우하우스처럼, 혹은 앤디 워홀의 ‘공장’처럼 그는 교육과 운동을 결합하는 ‘필름팩토리’라는 영화학교를 사라예보에 설립했다. 바우하우스에 파울 클레, 칸딘스키 등의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있었다면 이 공장에는 구스 반 산트,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의 강력한 수호천사들이 있다. 그의 교육의 슬로건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혁명하라’다.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았다. 심사위원장으로서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나.
=감독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간단하다. 신인 감독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화 언어를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영화 언어를 창작하는지,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수적이고 용감하지 않은 영화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왜 젊은 감독들이 그런 영화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세상에 저항할 감독을 양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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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킹>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상대역, 혹은 <펄프 픽션>에서 팀 로스와 짝을 이룬 여자 건달. 어느 쪽이든 영화팬들에게 인상적인 그녀의 연기를 잊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표작으로만 오늘의 그녀를 규정하기에 이후 아만다 플러머의 행보와 보폭은 넓고도 길고, 빠르다. 최근작만 보더라도 불과 1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발표된 이와이 지의 <뱀파이어>에서 그녀는 치매 걸린 노파(!)였다. 커다란 풍선을 매달고 방 가운데 덩그러니 있던 그녀가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하나와 앨리스>에서 발레를 하던 앨리스의 예쁜 모습처럼 환상적이었다.
정이삭 감독의 <아비가일>에서 그녀는 <선녀와 나무꾼>의 인물이 된다. 선녀가 아니라 슬프게도 그녀의 역할은 ‘나무꾼’이다. 뉴욕에서 노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중년의 여성 아비가일. 그녀는 낯선 동양 청년을 만나 도움을 주고, 그 남자와 애정을 나눈다. 언제 그가 그녀가 숨겨
운명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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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은 2년 연속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부러진 화살> 이후 채 1년도 안 돼 완성한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9월,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가 20여일간 당한 고문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은 두시간 동안 관객을 고문실에 가둬둔다. 고문의 고통을 함께 체험하라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도,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모두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화가 바로 <남영동 1985>다. 정지영 감독에게 왜 <남영동 1985>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물었다.
-<부러진 화살>의 흥행이 <남영동 1985>를 만드는 데 힘이 됐겠다.
=종자돈이 됐다. <남영동 1985> 같은 영화엔 누가 선뜻 투자를 안 하니까.
-예전부터 고문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김근태 의원 얘기는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한
남영동 대공분실 안에 관객과 함께 갇히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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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텀 시대 개막!’ 영화의 전당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구다. 17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흘간의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자, 가장 궁금했던 비프힐은 어땠냐고? 올해는 비가 새지 않았다(아니 비가 오지 않았다). 새집 증후군으로 몸살을 앓았던 지난해와 달리, 1년여 동안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 영화의 전당은 온전히 영화를 위한 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상영관과 새로 개방된 더블콘을 중심으로 영화인과 관객이 바삐 움직였고, 영화로 대화할 수 있는 자유로운 만남의 공간도 늘었다. 야외 행사장과 비프힐에선 연일 화제작들의 감독과 배우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씨네21>이 부산에서 화제의 영화인을 만났다. 올 영화제에서 놓칠 수 없는 두 작품 <가족의 나라>의 양영희 감독의 인터뷰와 첫 공개로 궁금증을 모았던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의 신작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인터뷰도 여기 모두 수록된다. 더불어, 열흘 동안의
24시간 무비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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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 연재한 글을 묶어 책(<진중권의 이매진>, 2008)을 낸 적이 있다. 그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영화비평이 아니다. 담론의 놀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 영화학은 이미 확고한 학문의 분과가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은 비평의 과제가 영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 있다고 믿을 거다. 그리고 그곳에서 확립된 영화의 기준(“well made”)을 사용하여 해당 영화가 받아 마땅한 별의 개수를 산정하는 데에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도 중요할까?
비평의 세 가지 요건
<비평의 역사>를 쓴 알프레드 드레스드너에 따르면, 비평에는 크게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작품의 특성에 관한 기술(description)을 담아야 하고, 둘째, 작품의 미적 가치에 대한 평가(evalution)를 포함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셋째 요건, 즉 비평문 자체도 문학적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마디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저자, 비평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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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지는 게 두렵다던, 그러니까 어딘가에 끼이는 게 두렵다던 여자는 결과적으로 두 남자 사이에서 헤매게 된다. 하지만 그녀 잘못은 아니다. 그 남자(들)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그럴 때가 된 것이다(어쩌겠는가). 처음엔 호기심, 다음엔 열정과 욕망, 그러는 동안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관계는 저도 모르게, 바람과는 달리 혹은 바람대로 점점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기와 이타가 충돌하고, 설렘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그 순간의 복잡함이 <우리도 사랑일까>에는 있다. 여기에는 하나의 관계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것, 요컨대 익숙한 세계가 부서지고 새로 시작되는 낯선 세계, 그럼에도 다시 그것이 천천히 소멸해가는 과정에 대한 관찰이 담긴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레너드 코헨의 <Take This Waltz>가 흐르는 장면을 놓치지 않길. 영화의 가장 아름답고도 쓸쓸한 지점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뭐 사랑이라는 게 보통 그렇지 않은가. 뭔가에 익숙해지고,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달콤한 바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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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살, 싱글, 산부인과 의사인 민디 라히리(민디 캘링)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의사가 되자마자 마음에 꼭 드는 치과의사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것도 잠시, 치과의사는 북유럽 미녀와 결혼한다며 민디를 뻥 차버린다. 예의상 보낸 청첩장이었겠지만 민디는 결혼식에 참석했고, 구석 테이블에서 내내 술만 마시다 축배를 들겠다며 앞으로 나가서는 독설을 퍼붓고 퇴장한다.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그녀는 굴러다니는 자전거를 집어타고 남의 집 수영장으로 돌진하는데, 그 결과 자잘한 경범죄가 더해져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진다. 이제 바닥을 쳤으니 앞으로 내 인생은 달라질 거야,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다. 다음날 친구가 소개해준 괜찮은 남자와의 데이트는 급한 환자가 생기는 통에 제대로 시작도 못했으니 말이다. 드레스를 벗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민디는 중얼거린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클리셰를 보란 듯이 펼치며 시작하는 <더 민디 프로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로맨틱코미디의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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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매니저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오면 긴장된다. 왜? 매니저들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인터뷰 좀 잡아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본래 나의 몫이므로. 애프터할 생각 없는 도도한 소개팅남처럼, 스타의 매니저들은 운전 중이거나 회의 중이거나 아무튼 항상 이런저런 이유로 바쁘기 때문에 굳이 나 같은 기자에게 먼저 전화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만난 적 없는 연예인의 매니저에게 연락이 오는 것은 어쩐지 불길한 징조다. 예를 들어 기사에 대한 항의라거나, 항의… 라거나, 항의 같은 것?
자신을 “이승철씨 매니저입니다”라고 밝힌 2년 전 그날의 전화에도 나는 매우 졸았다. 당시 Mnet <슈퍼스타 K2>에서 한창 독설을 퍼붓고 있던 심사위원장 이승철을 열심히 놀리고 살짝 비꼬기까지 한 기사가 막 나간 직후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촌스럽고, 나쁜 표현으론 구려!”, “노래방에서 여자들 꼬일 때 많이 불러본 솜씨네요” 같은 촌철살인에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할 만큼 그의 코멘트를 길티
[최지은의 TVIEW] 관록과 돌발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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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46도, 혈액형 판독불가, 세상에 없어야 할 위험한 존재 '늑대소년'과 세상에 마음을 닫은 외로운 '소녀'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늑대소년'은 오는 10월 31일 개봉 예정이다.
[송중기]"‘박보영’은 이성보단 엄마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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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강원도에 다녀왔다. 일을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오게 되었는데, 토요일 오후인데다 여의도에서 세계 불꽃축제라는 걸 한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목적지는 홍대 부근,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피해야 할 테고, 아, 어떻게 돌아야 정체를 피할 수 있을까. 작전에 작전을 거듭했다. 그 숨막히는 작전의 와중에 라디오에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절규했다. ‘최신가요인가요’를 써야 할 사람이 지난주 제대로 된 최신가요를 한곡도 듣지 않아놓고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팝송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운전을 하던 친구는 나를 위해 채널을 찾아주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계절이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 이 노래를 선곡하다니, 배짱있는 피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면승부가 아닌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지겹고도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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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 도중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부유한 백인 남자 필립과 그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가난한 흑인 남자 드리스. 프랑스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남자의 우정에 대한 영화다. 계층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도대체 닮은 점이라고는 없는 이 두 남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호기심, 그리고 삶의 즐거움에 대한 열정이라는 공통분모를 서서히 발견해가며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영화의 줄거리와는 별도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공간과 장소들이다. 그야말로 파리, 그리고 프랑스가 갖고 있는 방대한 공간자원을 유감없이 동원한 영화라고나 할까. 필립은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는’ 그야말로 대부호로서 크고 넓고 화려한 대저택에서 산다. 심지어 드리스에게도 거대한 욕실이 따로 딸린 호화로운 방이 주어진다. 필립은 건장한 드리스를 수족 삼아 휠체어에 탄 채로 화랑, 오페라,
[architecture+] 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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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서울에 올라가서 우리 커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극장에서 <피에타> 보기였다. “전은 무슨 전. 그런 건 언제든 부쳐먹을 수 있어. 추석도 앞으로 한 삼십번쯤 더 남았고, 가족들한테 잘할 시간도 얼마든지 있고. 하지만 <피에타>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러니 어른들한테 욕먹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피에타>부터 보자.” 그리하여 추석을 하루 앞둔 9월29일 토요일 오전, 우리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피에타>를 봤다.
솔직히 놀랐다. 영화가 시작되고 늘 그렇듯 처음엔 김기덕 영화 특유의 불편함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가리기도 하고 몸을 비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해질 수 있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을 넘어 저마다의 인간이 실은 사랑이랄지 인정에 굶주린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처음으로 자기 죄와
[SO WHAT] 영화평론가의 해석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