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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토끼’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진 조셉 고든 레빗. 그의 연기 인생도 벌써 반오십이다. 1988년 TV에서 출발한 꼬마는 어느덧 남자로 자라 2012년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몇해 전부터 매년 꼬박꼬박 4, 5편씩 찍으며 범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오더니 급기야 올해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루퍼> <프리미엄 러쉬> <링컨>으로 박스오피스를 점령할 태세다. 하지만 그의 가치는 단순히 숫자로 표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의 연기의 지층을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시간여행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루퍼>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저장된 그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2044년의 캔자스, 미래의 갱단에 고용된 킬러 조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타임머신에 태워 보내진 목표물을 살해하고 은괴를 챙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브루스 윌리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2074년의 자신에게 총구를 겨눠야 할
할리우드 新고전주의 배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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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4일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시작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일간의 여정을 끝으로 10월13일 막을 내렸다. 수많은 영화와 영화인 그리고 관객이 함께 만들어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기간이 하루 더 늘어난 만큼 즐거움도 배가 됐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시작된 남포동의 부활을 알리듯 수많은 스타들이 남포동을 찾아 지난 추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한편 전용관 시대의 품격을 보여주듯 영화의 전당도 지난해에 비해 더욱 깔끔해진 모습을 선보였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곳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로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었다.
10일간의 영화제는 아름다운 해운대 바닷가를 풍경으로 한 한편의 영화와 다름없었다. 주인공은 영화제를 빛냈던 스타들과 관객 모두일 것이다. 영화 그리고 축제를 즐겼던 우리 모두의 순간을 화보에 고스란히 담았다.
조선의 왕? 이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왕!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야외 무대인사를 한 배우 이병헌.
부산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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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본 솜씨라니 믿기지 않았다. 특유의 중저음은 좌중을 차분하게 이끌었으며 중국어, 영어, 한국어 3개 국어를 오가는 능수능란함은 4천여석을 가득 메운 개막식 참가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올해 영화제 개막식 ‘명사회자’ 탕웨이는 기자의 칭찬에 겸손해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큰 행사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첫 경험이라고. 사회자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무대에 오르니 편안해지더라. 아마도 진행 경험이 전무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함께 진행한 안성기의 배려와 경험이 부족한 자신에게 진행을 맡겨준 부산국제영화제의 용기에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는 시상식 같은 자리에 상 받으러 올라가면 긴장을 많이 한다. 안성기 선배가 많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마음을 열고 한국 관객을 비롯한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탕웨이는 영화제 개막식 사회뿐 아니라 올해 처
멜로영화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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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북한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엔터테인먼트만을 위해 기획된” 작품이다. 곡예사를 꿈꾸는 탄광촌 소녀의 이야기 속에는 스포츠영화의 열정과 로맨틱코미디의 웃음, 그리고 곡예의 경이로움이 한데 엮여 있다. 하지만 북한의 김광훈 감독과 공동연출로 이 영화에 참여한 니콜라스 보너와 안자 델르망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3년 동안 시나리오를 고쳐야 했다. 북한의 제작사들은 대부분 훈련을 받지 않은 여자가 어떻게 곡예사가 될 수 있는지 등을 지적했다. 우리는 단지 동화를 만들려고 한 것뿐인데 말이다.”(안자 델르망)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는 지난 9월24일,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최고 감독상을 받았다. 당시 북한 관객은 “여자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 열광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북한영화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특징을 담고 있는 부분이 더 많다. 극중 영미의 꿈은 그녀와 함께 일하는 노동
유럽영화 아닌 북한영화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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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영화의 여왕은 어머니가 되어 돌아왔다. 더 이상 국가 혹은 특정 감독의 뮤즈로 그녀를 묶어두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르소나로 이름을 알린 빅토리아 아브릴은 테오나 스트루가르 미테브스카 감독의 <눈물을 거부한 여인>에서 완연한 어머니가 되어 돌아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비센티 아렌다 영화 속 육감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한참 전부터 이미 스페인 영화의 어머니였다. “40살 이후의 여성에 대해서는 여성감독이라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40살 전까지는 주로 남자 감독들과 작업을 했지만 그 이후로는 꾸준히 여성감독들과 함께 해왔다”는 이 관록 있는 여배우는 그저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영화에 녹이고 있었다. 동시에 “하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제외”라는 말을 덧붙이며 얼굴을 붉히는 영원한 소녀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들고 찾아온 영화가 스
여왕에서 어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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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룩 앳 미> <레인>을 연출한 아녜스 자우이는 이번에 감독이 아닌 배우의 자격으로 부산을 찾았다. 부모의 사랑을 지나치게 듬뿍 받고 있는 아홉살 소녀 라셸과 그녀의 말괄량이 친구 발레리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묘사하는 코미디영화 <민들레>에서 그녀는 라셸의 엄마 콜래트를 연기한다. 프랑스 여성 감독들의 모임에서 만난 카린 타르디외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내왔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흔쾌히 출연했다. 감독으로서도, 배우로서도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언제나 “시나리오”다. “시나리오에서 내 역할만 좋아선 안 된다. 시나리오가 전체적으로 좋아야 한다.”
<민들레>의 히스테리컬한 중년 여성 콜래트가 되기 위해 아녜스 자우이는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처음엔 화려함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 포기하고 나니까 또 다른 자유를 얻게 되더라. 그 자유 안에서 행복했다.” 아녜스 자우이는 “25살 때부터 여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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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엄마. 오빠. 아라타(왼쪽)와 안도 사쿠라가 <가족의 나라>에서 자주 쓰는 한국어다. 아마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가족을 지칭할 때만큼은 한국어를 쓸 것이다. 일본인인 두 배우에게도 이 단어들은 <가족의 나라> 속 성호와 그의 동생 리에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단서였을지 모른다. 리에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는 “양영희 감독이 연출한 <디어 평양>을 시나리오보다 먼저 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국가 간의 관계보다 이 가족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아라타 역시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았다고 한다. “양영희의 삶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족이 살아왔던 증거들을 나도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다.”(아라타)
양영희 감독은 “오빠와 헤어졌던 시절, 자신의 생각과 표정을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다시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들이 연기에 담은 진심의 힘이 촬영 기간 내내 감독의 심장을 건드렸다는
아직도 떠나지 못한 어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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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스탭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가세 료다. 허름하고 편안하게 차려입은 상의 한쪽 주머니에는 담배와 안경을 구겨넣었고, 만나서는 첫인사 대신 “어제 인터뷰를 오늘로 미뤄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부터 얼른 전한다. 격식없이 편안하게 살되 예의있게 사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당대 일본의 스타 배우 중 한 명이면서도 그는 재는 게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일본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그의 결정은 단 하나였다. 오디션부터 보자!
“어떤 이야기인지 어떤 역할인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평소 존경하던 감독님의 영화였기 때문에 일단 가서 오디션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옛날 영화배우로 데뷔할 때도 가세 료는 용감했다. 존경하는 영화배우 아사노 타다노부의 소속사를 무작정 찾아가 일년이나 아사노 타다노부의 비공식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까지 배우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이다. 가세 료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그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조금은 단순하
언제나 신인처럼 원하는 영화에 뛰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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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34초라고?” <콜드 워>가 급속 매진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곽부성이 놀라자, 양가휘가 “그래도 <위험한 관계>가 더 빨리 팔리지 않았냐”며 제동을 건다. 홍콩 4대천왕 곽부성과 <연인>의 그 양가휘가 나누는 일상의 언어를 엿들으니, 그들이 지금 여기 부산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사실 두 배우 모두 출연작 편수와 스타덤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자주 찾지 않아 아쉬움이 컸던 터다. 양가휘는 이번이 처음, 곽부성은 <아버지와 아들>로 잠깐 부산을 찾은 이후 6년만의 부산행이다. 개막작인데다 마침 홍콩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처음이라 두 배우에게도 이번 방문은 의미가 남다르다. 양가휘가 “시나리오가 중요하다. 그간 좋은 시나리오가 많지 않았고, 홍콩영화가 부산에 오는 것도 드물었다. <콜드 워>가 다시 홍콩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해주는 기회가 될 것 같다”며 작품에 대해 운을 띄우자, 곽부성도 “<콜드 워>는 액션을
홍콩영화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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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사업의 일환으로 1970년대 북한에 가서 돌아오지 못한 9만 4천명의 재일동포. 그 중 세 명이 양영희 감독의 오빠였다.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체제와 이데올로기로 인해 선택권을 박탈당한 감독 자신,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였다. <가족의 나라>는 그녀가 차마 다큐멘터리에 넣지 못하고 꼭꼭 눌러놓았던 남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극영화다. 기교나 수식 없이 들려주는 그녀의 아픈 속엣말은,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감정의 파고를 일으켰다.
-<굿바이, 평양> 때 극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었는데, 극영화는 어떻게 현실화된 건가.
=가와무라씨(제작자)가 정말 크레이지한 사람이다. (웃음) 내 다큐멘터리를 잘 봤다며 한번 만나자고 하더라. 양영희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를 만들어야 된다며, 이야기가 있냐고 하셨다. 사실 그냥 한번 해본 소리려니 했는데, 3일 후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벌써 프로덕션 스케줄을 다 짜
“환청, 환각에 시달리며 각본 썼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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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구로사와 기요시, 원작 미나토 카나에. 일본의 WOWOW 위성 방송이 제작한 드라마 <속죄>는 두 명의 이름 덕분에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다섯 명의 여자아이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한 명의 소녀를 죽인다. 소녀의 엄마는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머지 네 명의 소녀에게 “납득할 만한 속죄”를 하라고 주문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에게는 4년만의 컴백작이다. 그리고 첫 TV드라마다. 하지만 구로사와 기요시만의 음침하고 서늘한 기운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쿄 소나타> 이후 4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놀았던 건 아니다. 여러 작품들을 기획했지만, 영화로 만들려고 할 때마다 잘 되지 않았다. 제작이 힘들어지면서 많이 좌절했던 시기였다. 이러다 영화를 만드는 감각도 없어질 것 같더라. 빨리 현장에 가고 싶었는데, 그런 와중에 WOWOW 프로듀서로부터 <속죄>의 연출 제안을 받은 거다. TV드라마든, 또 어떤 것이든
“여자들이 주인공이라고 억지로 여자를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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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바흐만 고바디를 쿠르드족 영화의 대변인으로 인식한다. 적절한 이해다. <취한 말들의 시간>, <고향의 노래>, <거북이도 난다>, <반달> 등 그는 매번 이란 내에 살고 있는 쿠르드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어왔다. 쿠르드인의 삶과 예술 혹은 그 삶과 예술에 끼어든 억압과 피폐함에 관하여 다룬다. 그 영화들이 대개 뛰어나다. 그런데 그의 신작 <코뿔소의 계절>은 고바디가 이란을 벗어나 터키에서 만든 영화다. 이란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란의 이슬람혁명 당시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30여년의 옥살이를 한 뒤 감옥에서 풀려난 쿠르드족 출신의 시인 사데 그 카망가르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시인이었다가 죄수가 된 사람, 사연 많은 이야기를 바흐만 고바디는 뛰어난 이미지로 그려낸다.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부터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이란 내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인가.
=물론
이 영화는 나의 삶의 원동력,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한 치료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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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와 로망포르노 혹은 블랙코미디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소노 시온이 현실의 문제에 전에 없이 한 발 내딛은 영화 <두더지>를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 영화의 앞과 뒤에 3.11 대지진 피해 현장의 풍경을 넣었을 때만 해도 그가 이 문제를 얼마나 본격적으로 다룰 것인지에 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소노 시온은 마침내 <희망의 나라>를 만들었고 피해지역과 안전지역 그 경계 위에 사는 사람들 혹은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그려냈다. 그는 지금 이 이상한 현실에서 결코 눈을 떼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당신은 <씨네2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 됐건 그걸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진 재해는 달랐다. 그건 나와도 관련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점을 표현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시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라고.
=그렇다. 매주 금요일에 수상관저를 찾아 원폭
영화 속 비일상이 지금 일본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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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위원장, 아니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김동호 원장을 만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였다. 후학을 양성하랴, 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으로서 영화제 일정을 소화하랴, 그는 여전히 바빴다. 그래서 영화제 동안 부산에서 인터뷰하기로 한 계획은 무산됐다. 영화제가 반환점을 돈 10월9일 저녁 그와 가까스로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대학원과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매우 바쁘실 것 같습니다.
=학교 수업과 영화제 기간이 겹쳤습니다. 바쁘네요.
-이명세, 곽경택, 윤제균, 김태용, 이춘연,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등 교수진이 화려합니다.
=처음 원장직을 맡았을 때 경쟁력있는 현장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그간 한국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잖아요. 물론 여러 상을 받긴 했습니다만. 많은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박찬욱, 김지운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한국영화의 대외
학생들의 장편이 해외 수상이나 일반 극장에 배급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