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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동료에게서 ‘스드메’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 어딘가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졌다. 야자수 아래 피리로 뱀을 부리는 남자가 있고 베일을 쓴 여인이 은쟁반에 남자의 목을… 아차, 이건 살로메. 알고 보니 ‘스드메’는 스튜디오 촬영과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를 이르는 말이었다. 남자는 있으나 결혼은 아직 하지 않은 서른 중반. 혼인은 ‘인륜지대사’라는 어른들 말씀도 어디 법력 높은 스님 이름인가보다 하고 흘려듣고 나 좋을 대로 살다가 마흔 무렵엔 친구들 모아놓고 먹고 마시는 조촐한 파티로 결혼식을 대신하는 것을 꿈꾼다. 퍽이나 진보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십년 전쯤 당시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건강진단서를 떼어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부모도 모르던 효심과 모욕감이 폭발하더라. 남자가 좋으면 부모는 관계없을 줄 알았던 자신에 대한 평가는 그때 갱신했다. ‘가풍에 따른 상식의 기준선이 충돌하는 결혼은 죽어도 못하겠구나’ 감당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유선주의 TIVEW] 집에서 얼마나 해주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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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서자 두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생각나 옆 테이블에 앉아 힐끔힐끔 곁눈질을 했다. 아이처럼 맑은 얼굴의 할머니는 맞은편 사람이 시누이라고 했다. 시누이가 혼자 사는 할머니를 방문한 거라고 추측했는데 착각이었다. 두 할머니가 식당에서 식사를 나눌 동안, 할아버지가 집을 본다고 했다. 이제 집에 있는 걸 더 편하게 여긴다는 할아버지가 재미있다는 듯이 두 할머니는 연신 웃었다. 17살에 결혼한 할머니는 89살, 집에 있는 할아버지는 92살이란다. 72년 세월을 해로했다는 말에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한번씩 감탄사가 오갔다. 72년. 무엇이 두 사람의 인연을 긴 시간 내내 묶어준 것일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으나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비결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와 햇수로 열 손가락이 넘는 연을 이어본 적이 없다. 가족은 내게 불가사의한 존재다. 가족의 일원이면서도 내가 또 다른 가지를 치는 건 망설인 끝에 포기하며 살았다.
주목해야 할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주목해야 할 아방가르드 시네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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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덕분에 처음으로 ‘퀴어’영화를 보았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야 그전에도 몇편 보긴 했다. 그 영화들은 가령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처럼 동성애의 정체성과 사회의 보수성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다룬 것들이었다. 하지만 <라잇 온 미>는 그 무거움에서 벗어나, 두 남자 사이의 사랑을 담담한 필체로 펼쳐나간다. 이 영화에서 두 연인의 성 정체성은 적어도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동성애 예술
하지만 동성애 예술이 굳이 동성애를 ‘주제’로 담아야 하나? 굳이 동성애를 주제로 다루지 않은 동성애 예술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바라보는 동성애자의 시각이 담긴 예술이라고 할까? 참고로 ‘게이 미학’(gay aesthetics)이라는 말이 있다. 옥스퍼드 사전을 인용하자. “게이 미학의 역사는 동성애적 주제의 역사가 아니라, 어떻게 남성 동성애가 특정한 예술 생산 및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게이 미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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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킴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다.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를 불렀던 예선전 때부터 그를 점찍었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인기가 반갑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끌 만한 폭발적인 가창력은 없지만, 목소리가 좋아서 어떤 노래든 잘 소화해내는 것 같다. 결승전을 앞둔(이라고 쓰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3강만 확정된 상태다. 당연히 결승으로 가겠지!) 지금까지의 베스트는 <서울의 달>이었다. <서울의 달>이 이렇게 달착지근한 노래였던가, 새삼 감탄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달>을 부른 또 한명의 가수가 있다.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군입대를 앞둔 ‘마이티 마우스’의 ‘상추’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해야 한다는 본분을 망각하고 오로지 김건모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서울의 달>을 부른 ‘데프콘’이다. 서울에서의 힘든 시절 얘기를 한참 하다가 <서울의 달>을 부르는데 음정은 어찌나 오락가락이고, 돼지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로이킴, 데프콘 혹은 김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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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보호막 없이 세계와 맞대면해야 했던 아이들의 눈에는 묘한 빛이 서려 있게 마련이다. 맹수들이 날뛰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너무 일찍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들여다본 자들. 의자에 묶인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종족임을 확신했다.
솔직히 말해 체력 검정과 사격 시험, 정신 감정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요원을 내게 보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었다. 이런 쓰레기로 내 음모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러나 마카오 도박장에서 그가 세버린과 나누는 대화를 감청하다가, 그런 의심이 섣부른 것임을 깨달았다. “공포에 대해 얼마나 알죠?”라는 세버린의 물음에 그는 간단히 답했다. “모조리.”
그 뒤 며칠 동안 나는 한껏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가 하루빨리 나를 찾아와주길 고대했다. 그리고 그를 실물로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에게 반했다. 단단한 어깨선과 흉곽 근육 덕분에 핸드메이드 슈트는 피부인 양 그의 온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잘 조
[design+] 저 구닥다리 폭파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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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사항: 반드시 영화 <도주왕>을 보신 다음에 이 글을 읽으시기를 청합니다. VOD와 DVD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제1부 아르망은 무엇이 되는가
알랭 기로디의 <도주왕>은 시치미 뚝 잡아떼고 웃기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초반부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배치되어 있다. 한적한 어느 날 밤 영화의 주인공 아르망은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노신사를 주의 깊게 뒤따라가는 중이다. 그런데 하필 아르망은 그때 한 무리의 십대 불한당 녀석들이 같은 또래의 소녀 한명을 끌고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는 걸 보고 만다. 그는 갈라지는 길 위에 서서 잠깐 동안 망설인다. 어쩌나, 모른 척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하나 아니면 저 소녀를 구해주어야 하나. 아르망은 발길을 돌려 위기에 빠진 저 소녀를 구하기로 한다. 소녀를 강간하려는 십대 녀석들을 향해 딱 버티고 선 아르망의 체격은 건장하다 못해 위협적일 정도로 뚱뚱한 덩치이니 비리비리한 저 녀석들 몇명쯤 겁주거나 패주는 건 일도
[신 전영객잔] 아르망의 기이한 모험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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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기대해왔다. 그가 성우로서 활약해주기를. 오늘에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종혁의 목소리엔 언제나 묘하게 로맨틱한 기운이 있었다고.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해서인지 이종혁의 발성은 무척 안정적이고 그 울림엔 독특하고 무거운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최근 이종혁은 말 그대로 ‘포텐’이 터졌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맞춘 듯 어울렸던 쾌남 이정록을 연기한 덕분이다. 그전엔 아무리 이종혁이 코믹하거나 부드러운 역할을 맡았어도 어쩐지 그의 얼굴에서 늘 약간의 차가움을 느꼈었다고 기억한다. <말죽거리 잔혹사>나 <추노>에서 익히 보았던 그 어두운 얼굴을 말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에 와서 이종혁은 비로소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찾은 듯했다. 한동안은 드라마에서 그를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이종혁의 다음 작품들은 장르가 모두 제각각이다. 목소리 출연을 한 드림웍스의 3D애니메이션 <가디언즈>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
[이종혁] Mr.유쾌/상쾌/통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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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이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가 처음이라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유해진은 <가디언즈>로 애니메이션 더빙 작업을 처음 경험했다. 느닷없이 착각이 작동했다면 십중팔구 <전우치>(2009)의 초랭이 때문일 것이다. “내레이션을 해본 적은 있다. 몇년 전에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 공룡의 땅>에서 ‘나는 티라노 사우루스다∼’(웃음), 그 정도가 전부다.” 목소리 연기는 그야말로 ‘생초짜’라고 뒤로 물러서지만, 알고 보니 배우 유해진이 아니라 성우 유해진이 될 뻔한 전력도 있다. 캐묻다 보니 서울예술대학 재학 시절 한 방송사의 성우 시험에 응시한 기억도 털어놓는다. “친구들이 본다고 해서 따라갔다. 성우 하면 목소리가 낭랑하고 청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잖나. 내 목소리는 탁하니까 아예 기대도 안 했는데 합격은 못했어도 운 좋게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
그렇다고 해도 <가디언즈>의 부활절 토끼 버니를 흔쾌히 받아들인 건 목소리 연기 자
[유해진] Mr. 판타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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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하!” 피팅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는 품새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검은 오라를 풍기는 악령 피치의 이종혁과 촐랑 끼가 있는 부활절 토끼 버니 역의 유해진은 사진촬영 때만은 자못 점잖은 모습인 반면, 류승룡은 자신이 맡은 산타클로스 놀스를 스튜디오까지 끌고 온 듯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가디언즈>의 놀스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준다는 수호신치고는 비주얼부터 좀 희한하다. 시꺼먼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운 똥배도 막강하고, 양팔에는 착한 아이들과 못된 아이들을 무려 문신으로 새겨놨다. 하지만 그 투박한 외피 안에 아주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들어있다. 그 정체를 놀스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마트로시카 인형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해 보인다. “내 겉모습은 이래, 그치? 몸집은 크고 우악스럽잖아. 하지만 자, 열어봐. 속마음은 아주 유쾌하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냐. 신비로운 구석도 있고 또
[류승룡] Mr.페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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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뭉쳤다. 전설에 대한 전설이라 할 만한 <가디언즈>는 산타클로스 놀스, 부활절 토끼 버니, 이빨 요정 투스, 꿈의 요정 샌드맨, 서리 요정 잭 프로스트, 다섯 수호신이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내기 위해 악몽의 화신 피치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그중 놀스, 버니, 피치에 목소리를 빌려준 류승룡, 유해진, 이종혁을 만났다.
표지 촬영 당일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을 보는데, 목소리 캐스팅 전에 이미지 캐스팅이라도 거쳤나 싶었다. 사전정보 없이 누가 어느 캐릭터를 맡았는지 점칠 수 있을 만큼 높은 싱크로율이었다. 거기에 인터뷰를 더하니 그들의 필모그래피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더 많이 발견된다. 자기 목소리에 꼭 맞는 그림을 입은 그들 덕분에 <가디언즈> 한국어 더빙판은 보는 즐거움만큼 듣는 즐거움도 크다. 그 여운을 담아 여기 그들의 3인3색 더빙 체험기를 전한다.
[가디언즈] 세 남자의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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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데이 루이스, 게리 올드먼, 러셀 크로, 윌 스미스, 대니얼 크레이그, 콜린 파렐, 콜린 퍼스, 양조위…. 이들 배우의 리스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한번 이상 퀴어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서 길고 붉은 혓바닥을 내밀던 대니얼 데이 루이스, 공중화장실 천장의 전등들을 죄다 부수고 남자들을 유혹하는 <귀를 기울여>의 게리 올드먼, <싱글맨>까지 해서 4편의 게이영화를 찍은 콜린 퍼스, <세상 끝의 집>에서 성기 노출을 했지만 개봉 당시 그 장면이 삭제되자 항의했던 콜린 파렐 등 이 리스트와 그들이 빛낸 보석 같은 장면들은 천일야화처럼 지루하게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전시 자체가 어눌하다. 이미 한국에서도 퀴어영화에 출연하면 그 용기가 상찬되고 연기력에 대해서도 더 높게 쳐주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심지어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으로까지 이야기되니까. 그런 까닭에 퀴어영화 제작진도 이 점을 캐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한국 배우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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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는 통칭 영화에 쓰이는 용어다. 하지만 게임에서 처음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던 작품이 바로 <헤일로> 시리즈다. 예전에 없던 스케일과 작품성으로 누적 판매량만 4600만장에 달하는 <헤일로> 시리즈의 최신판 <헤일로4>가 공개됐다. 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평은 항상 그랬듯 상당히 우호적이다. 그건 그들이 단순히 ‘<헤일로> 빠’여서가 아니라 충성도 높은 전작의 팬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잘 만든 게임이란 뜻이다. 이번 작품은 특히 CG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영화적 느낌이 한층 두드러진다. 게다가 적은 여전히 많고, 게임 속 세계도 머리가 아플 만큼 넓고 크다. 충분히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귀로도 들어보길 권한다. <헤일로4>의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한 건 매시브 어택의 닐 데이비즈. 이미 <헤일로> 시리즈의 열혈팬이라 말한 바 있던 그가 참여한 사운드는 <헤일로>의 음험
[gadget] 블록버스터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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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크기 116×118.3×68.2mm(W×H×D)
무게 307g(배터리, 스트랩, 필름팩 제외)
특징
1. ‘소녀 돋네.’ 총 5종의 파스텔톤 컬러.
2. 밝고 화사하게, 더 예뻐 보이는 즉석사진. 하이 키(high-key) 모드 기능.
3. 촬영 상황에 맞게 빛의 양을 자동으로 판단하는 LED 노출계 장착.
흔히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부르는(폴라로이드사는 이미 2000년대 초반 폐업했지만) 즉석카메라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제품은 후지 인스탁스다. 지난 2009년 국내에서 기계만 100만대, 전용 필름 판매량도 9천만장을 넘었다는 공식 발표도 있었는데, 세계시장에서의 판매량은 아마 엄청날 것이다. 캐논과 니콘 등 막강한 경쟁사들로 인해 디지털카메라에서는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지만 즉석카메라 시장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후지는 필름산업의 오랜 노하우를 가졌다. 때문에 촬영과 인화가 동시에 필요한 즉석카메라 시장에서는 후지를 따를 기업이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인스탁스
[gadget] 두근두근 소녀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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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아저씨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익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코디네이터였던 분이 도와주고 있단다. 박선숙 언니가 섭외했다는데, 솜씨 좋으시다. 하지만 자꾸 선생님과 관상 비교가 되니 어쩜 좋아. 문재인 아저씨는 다른 건 몰라도 다크서클 잡아주는 기능성 화장품이 절실해 보인다. 캠프에서는 조직 동원, 말 흘리기 등 상대방 기분 잡치게 하는 일에 앞서 후보 미모부터 관리해 주셨으면. 단일화가 삐걱대면서 문 아저씨 다크서클이 거의 턱까지 내려올 기세다. 두 진영이 가치와 정책을 합친다는 단일화이니만큼 다른 거 말고 TV토론부터 맹렬히 했으면 좋겠다. 자꾸 모양 빠지는 말들이 나오는 게 참 보기 안 좋다. 왜 자꾸 한분은 마누라 같고 다른 한분은 영감탱이 같을까(맞다. 우리가 상투적으로 쓰는 그 의미).
때가 때이니만큼 부부금실이 산업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왜냐. 이렇게 찬바람 불고 밤이 긴 나날, 최악의 상사는 가정불화하는 상사이기 때문이다.
[김소희의 오마이이슈] 재활용된 김 사장, 관운의 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