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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프린스 앤 프린세스>(1999)와 마찬가지로, 오슬로의 다섯 번째 장편 <밤의 이야기>는 중국의 그림자 연극에 영향을 받은 ‘실루엣애니메이션’ 형태를 띤다. 컷아웃과 스톱모션 기법이 적용됐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정교해졌다. 3명의 애니메이터가 의견을 교환하면서 6편의 동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의 패턴도 같다. 소년과 소녀가 캐릭터를 정하면, 노인이 아이들을 커튼 너머의 극장으로 보내준다. 티베트에서부터 캐리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민담들이 수집되고 여기에는 현실의 인물뿐 아니라 전설 속의 존재들도 다수 등장한다. 많은 클리셰가 사용되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영화를 보다보면 음악과 그림, 인물의 말투가 주는 리듬감, 배경에 새겨진 이국적 그래픽에 홀려 어느덧 상영시간이 지났음을 아쉬워하게 된다.
미셸 오슬로는 메르헨의 재해석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이다. 이번에도 익숙한 소재들을 다루지만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끝까지 극에 몰입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 <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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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보다 ‘모지리’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순수영혼 네드(폴 러드)는 경찰에게 마약을 판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다. 이후 감옥에서 나와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고, 사랑하는 개 ‘윌리 넬슨’마저 빼앗기고 만다. 갈 곳 없는 네드는 세 자매를 찾아간다. 첫째 누나 리즈(에밀로 모티머)는 가사노동에다 무관심한 남편 때문에 삶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고, 둘째 누나 미란다(엘리자베스 뱅크스)는 혈기왕성한 기자지만 딱히 되는 일이 없으며, 막내 여동생 나탈리(주이 디샤넬)는 레즈비언이며 늘 웃는 얼굴의 박애주의자다. 그렇게 네드는 어느 순간 자매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일단 배우들의 면면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피비(리사 쿠드로)의 약혼남으로 익숙하고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사고친 후에>(2006) 등 주드 애파토우 사단 영화의 조연으로 간간이 모습을 비췄던, 하지만
뻔하지 않은 가족이야기 <아워 이디엇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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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다 도모아키는 은퇴 직후 시한부 선고를 받은 60대 후반 남자다. 위암 말기로,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까지 퍼진 상태라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순리. 죽음을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로 받아들인 도모아키는 세례명 받기,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여당이 아닌 야당에 투표하기, 장례식 예행연습하기 등 이제껏 외면했던 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실행에 옮긴다.
<엔딩 노트>는 거창한 버킷 리스트가 아니다. 눈물로 쓴 병상일지는 더구나 아니다. 정작 죽음을 기다리는 당사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부정하거나 불공평한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몇년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불어넣을 때, 도모아키는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한다. 비탄 끝에 도모아키가 어쩔 수 없이 체념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더 잘 살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죽을 수 있을까를 도모아키는 이미 깨달은 상태다. “거칠게 살아온” 죗값을
죽음이 삶을 위무할 때 <엔딩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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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세월의 먼지에도 빛이 바라지 않는다. <메모리즈>가 재패니메이션의 정수이자 일본 애니메이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작이란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재패니메이션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 독특하고 경이로운 상상력의 조합은 1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큰 놀라움과 생경함을 전한다. 3편의 옴니버스로 이루어진 <메모리즈>는 사이버펑크의 거장 오토모 가쓰히로의 지휘 아래 모리모토 고지가 스페이스 호러 오페라 <그녀의 추억>의 감독을, 오카무라 덴사이가 블랙코미디 <최취병기>를, 그리고 오토모 가쓰히로가 고풍스런 판타지 <대포도시>를 맡았다. 작화부터 장르, 분위기까지 판이하게 다른 세편의 작품은 <메모리즈>라는 틀 안에서 기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공개 당시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SF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각기 호러, 코미디 등 다른 장르
재패니메이션의 영광 <메모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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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의 성우 나동주(박하선)는 구제불능의 음치다. 애니메이션 더빙 도중 노래 실력 때문에 구박을 받던 그녀는 급기야 녹음실을 박차고 나온다. 졸지에 백수가 된 그녀 앞에 10년 동안 짝사랑해온 고교 동창 민수(최진혁)가 다시 나타나고, 얼결에 다른 동창생의 결혼식 축가를 맡게 된 동주는 이참에 민수의 애창곡을 마스터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Dr. 목 음치클리닉’, 그곳에는 타고난 음치마저 노래경연 스타로 탈바꿈시키는 명강사 신홍(윤상현)이 있다. 동주는 추레한 외모에 불쾌한 냄새마저 풍기는 신홍이 영 마뜩잖다.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거리던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강도 높은 속성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음치클리닉>은 <청담보살> <위험한 상견례>를 만들었던 김진영 감독의 새 작품이다. 친근한 소재를 코믹한 에피소드로 풀어내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 역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웃음기
음치의 짝사랑 <음치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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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말한다. 80년 5월의 광주. 억울하게 죽은 수천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살해를 지시한 사람은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26년>이 염원하는 관객은 바로 그때의 기억을 듣고 들었던 지루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때의 광주를 이야기한 영화, 드라마, 소설들 가운데 실제적인 ‘복수’를 거론한 작품은 없었다. 강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26년>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에 대한 위로가 아닌, 점점 커져가는 분노의 폭발에 관한 영화다. 실제의 그 사람이 아직도 건재한 현실에서 그를 향한 복수극은 지루할 수 없을 것이다.
<26년>은 파스텔 톤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훗날 복수에 가담할 인물들의 비극적인 사연을 소개한다. 미진(한혜진)의 엄마는 딸의 이름을 짓다 창문을
‘그 사람’을 향한 복수극 <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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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감독 김지훈 / 출연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 개봉예정 12월
화재 재난영화라 어쩔 수 없이 언급하고 싶은 바이블이 있다. <타워링>(1974). 30년 가까이 됐지만 재난 속 다양한 인물군상만큼은 언제 봐도 펄떡거린다. <타워> 역시 다양한 인물이 108층 초고층 빌딩에서 발생한 화재와 맞서는 재난영화다. 소방대장 영기(설경구)는 자신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불과 맞서고, 푸드몰 매니저 윤희(손예진)는 화재로 인한 아비규환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시설물 관리팀장 대호(김상경)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불사하며 화재 진압을 이끈다. 그러니까 <타워>의 관건은 세 사람에게 달렸다. 물론 108층이라는 하늘에서 탄생한 괴물 같은 화재 역시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될 듯하다. <7광구>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의 신작.
[Coming Soon] 108층 빌딩에서 화재와 맞서다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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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에서 11월29일부터 12월5일까지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이 열린다. 페스티벌은 세개의 섹션으로 구분되는데, 세계적 거장감독의 작품 5편이 첫 번째 섹션에 선정되었다. 미하엘 하네케, 켄 로치, 크리스티안 문주, 토마스 빈터베르그,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주인공이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무려 13년 만에 장편영화로 돌아왔다. 두 번째 섹션은 주목받는 5명의 신예감독을 소개하는 5편의 영화로 꾸며진다. 아직 국내에서는 덜 친숙한 이름이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감독들이다. 그런 만큼 노장감독과는 다른 패기와 감각으로 무장된 작품들이 선보인다. 마지막 섹션은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6편이 소개된다. 키라 나이틀리, 주드 로, 헬렌 헌트, 매즈 미켈슨, 루이즈 브루고앙, 엘로이즈 로렌스 등 비교적 익숙한 이름도 있고 아직 낯선 이름도 있지만 머지않아 시네필 리스트에 각인될 배우들이다. 자세한 상영시간표는 143쪽 게시판 참조.
<아무르>
감독 미하엘 하네
[영화제] 시네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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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축제의 장이 열렸다. 좋은 것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한꺼번에 즐기고 싶은 건 인지상정, 2006년부터 그 막을 연 애니충격전은 세계 최고의 월례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애니메이션의 동향과 변화, 그리고 수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중 연말에 개최되는 최강애니전은 이름 그대로 올해 개봉한 최고의 애니메이션들을 모아 최고 중의 최고, 애니메이션 왕중왕을 가리는 애니메이션들의 진정한 진검승부다. 세계 4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인 안시(프랑스), 히로시마(일본),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는 물론 시카프(한국), 아니마문디(브라질), 홀란드(네덜란드), 슈투트가르트(독일), 애니페스트(체코), 멜버른(호주)의 세계 10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최신 수상작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최고의 잔칫상이 펼쳐진다. 이 한번의 기회로 올해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와 서울시 중소기업 및
[영화제] 상하이 애니메이션 3인방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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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치클리닉>의 동주처럼 저도 모태음치입니다. 영화를 보면 양동이를 쓰고 노래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연습을 하면 저도 꿀성대가 될 수 있을까요?
A. 송년회를 비롯해 노래 솜씨를 뽐내야 할 일이 많아지는 요즘, 모태음치라면 피하고 싶은 자리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겠네요. 굳이 <음치클리닉>이 아니더라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노래 연습을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노래를 부르는 훈련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이런 연습을 거듭하면 정말 꿀성대를 가질 수 있는지 세븐영 노래교실에 여쭤봤습니다. 수많은 음치들에게 빛과 소금이 된 김정훈 강사님은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노래 부르는 훈련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그런 훈련은 자신의 음이 얼마나 엉망인지 혹은 정확한지 확인할 수 있는 훈련법 중 하나”라며 “정말 음치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박자, 음정, 발성 모두를 교정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키우는
[cinepedia] <음치클리닉>의 동주처럼 저도 모태음치입니다. 영화를 보면 양동이를 쓰고 노래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연습을 하면 저도 꿀성대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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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 관객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래 TV나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였어요. 그러다 한 TV 뮤직쇼에 출연한 적 있는데, 그걸 본 PD가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해서 TV드라마를 시작했죠. 그러다 나중에 영화에도 출연하게 됐고요.
-가수로도 워낙 유명한데, 클럽 가수였다는 식으로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군요. 당신이 부른 <명성>이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 허스키한 목소리는 정말 최고예요. 나중에 장국영이 다시 부르기도 했고요.
=감사합니다. <명성>은 저도 정말 좋아하고, 장국영이 부른 버전도 물론 좋아하죠. 저보다 목소리가 더 고운 친구라. ^^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서 얘기하기가 그렇네요. 아무튼 올해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오랜만에 <명성>을 불러 기분이 좋았어요.
-<심플 라이프>가 올해 금상장에서 감독상(허안화)은 물론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유덕화)까지 휩쓸었죠. 당신이
[주성철의 가상인터뷰] 내가 아끼는 후배 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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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회를 맞은 로마국제영화제가 11월9일부터 17일까지 로마 아우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올해 영화제는 기존의 영화제 팬뿐만 아니라 외신 매체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는데, 그건 바로 올해부터 로마영화제를 이끌어갈 신임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르코 뮐러는 지난 8년간 강력한 리더십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총지휘하며 영화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런 그가 베니스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며 로마영화제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 오랜 프로그래머 생활을 거치며 축적된 뮐러의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베니스의 오랜 경쟁자인 로마영화제의 라인업에 어떻게 반영될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전세계 매체의 시선이 로마영화제에 쏠린 것은 당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로그램의 큰 기틀을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바꾸기란 역부족이었다. 지역 일간지를 비롯해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외신 매체들은 올해 영화
[로마] 베니스에서 온 마르코 뮐러의 로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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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브레이킹 던 part2> 가슴이 뻥뚫린 느낌
[정훈이 만화] <브레이킹 던 part2> 가슴이 뻥뚫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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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라이프>는 홍콩의 유명 영화제작자 로저 리와 그를 평생 아들처럼 돌본 한 가정부의 실제 이야기를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홍콩과 중국 본토를 아우르는 대스타 유덕화는 평소의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보트 피플>을 필두로 허안화의 영화를 통해 배우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 유덕화로서는 꿈만 같은 여행이었을 것이다. 장르영화의 스타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에게 서면으로 <심플 라이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보트 피플>(1982), <극도추종>(1991) 등 아주 젊었을 적부터 허안화 감독과 함께했다. 당신에게 허안화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허안화 감독은 내게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감독이다. <심플 라이프>에는 일상적인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감독님은 특히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굉장히 많이 표현했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넘치지 않게, 조용히
[클로즈 업] 당신을 울게도 미소 짓게도 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