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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이미지의 스타 배우,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고독한 사나이, 오스카가 사랑한 감독, 진정한 보수주의자. 그를 향한 수식어는 무수하게 쌓여 있지만 한두 마디로 온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살아 있음에도 이미 역사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사나이,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가히 결기라 부를 만한 그 뚝심을 중심에 두고 세월의 나이테를 두를 때마다 굳건해지는 나무. 동시에 화려하고 풍성한 가지를 자랑하며 주변에 휴식 같은 그늘을 드리우는 존재감. 그 거대함은 도저히 한두편의 글로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전이 필요하다.
마크 엘리엇이 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런 점에서 독보적이다. 영화사(史) 학자인 저자는 자신의 특기를 십분 살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역사를 총체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조망한다. 대개의 전기가 대상에 매료되어 찬사와 경탄을 늘어놓는 것에 몰두하는 데 반해 이 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지나온 거의 모든 궤적을 훑으며
[도서] 그는 역사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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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23일까지
장소: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문의: 02-3279-2252
배삼식 작, 손진책 연출의 <3월의 눈>은 우리 연극사의 산증인인 두 원로배우 백성희, 장민호를 위한 작품이었다. 두 배우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 공연작이기도 했던 이 작품의 초연 당시 백성희, 장민호 두 원로배우는 80대의 몸을 이끌고 가만히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고 연극이 되는 연륜의 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이 작품의 주인공 ‘장오’를 연기 인생의 마지막 역할로 남긴 채 장민호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추모식에서 고인을 기리기 위해 백성희장민호극장에 모인 많은 연극인들은 장민호 배우의 유작이 된 <3월의 눈>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그 담담하고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하면서 애틋한 기억을 나누었다.
올 3월, 국립극단은 고(故) 장민호 배우를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3월의 눈>을 다시 한번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올
[공연] 눈앞에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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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31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문의: 1588-0688
1966년 시민회관 무대에서 공연된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초연은 전속 오케스트라와 무용단, 합창단, 배우 등 100여명이 출연하고, 4일간 무려 1만6천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직 뮤지컬이란 장르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던 당시 공연계 상황을 돌이켜볼 때 이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우리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의미있는 시도였다. 그로부터 47년 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살짜기 옵서예>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재개관작으로 다시 찾아왔다. 원작의 흥겨움, 화려함은 그대로 가져오되 새로운 배우와 무대, 다양한 기술로 관극의 재미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잘 반영된 무대다.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 고전 <배비장전>을 바탕으로 하되 양반의 위선을 꼬집
[공연] 가짜 사랑은 던져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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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플리 같은 명인들의 이름이 같이 놓여 있긴 하지만 잘게 쪼갠 비트들 사이로 톰 요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이 프로젝트가 톰 요크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솔로 앨범인 ≪The Eraser≫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지만 사운드로나 멜로디로나 그보다 진일보했다. 무엇보다, 나에겐 라디오헤드의 후기작들보단 훨씬 듣는 재미가 있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비트의 오묘한 세계에 점점 더 몰입하고 있는 톰 요크. 그의 작업방식은 기발한 실험의 미학이 될 수도 있고 지루한 자기만족이 될 수도 있는데,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도입부만 들어서는 도대체 뭐가 나올지 짐작할 수가 없기에 매번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언제나 소득을 안겨주는 긴장이다. 정점은 마지막 곡 <Amok>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오프닝을 기다린 끝에 결국 만나게 되는 그의 목소리는
[MUSIC] 역시, 톰 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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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지슬> 인물들에게 바싹 다가서다
[올드독의 영화노트] <지슬> 인물들에게 바싹 다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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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이 지독한 영화를 본 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한줌의 덴마크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이 나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쓴 철학자 키르케고르와 <바베트의 만찬>을 쓴 소설가 이자크 디네센(본명은 카렌 블릭센)의 나라다. 17세기 이래 이 지역에 경건주의(pietism)라 불리는 종파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 루터 정통파의 교조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발해 소규모 공동체의 형태로 금욕주의를 고수하고 실천윤리에 헌신하는 것이 그 종파의 지향이라는 것 등은 최근에 새로 알게 됐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가브리엘 악셀, 1987)을 보면 이 종파가 어떤 무늬의 공동체를 만드는지 얼핏이나마 엿볼 수 있다.) <더 헌트>의 배경이 되는 곳을 저 옛날식 경건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토박이들로 이루어진 이 소규모 마을 공동체는 현대 대도시의 집단적 삶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가족적 유대감과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필사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고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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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호스트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생글생글 웃으며 반기는 꽃미남들의 경쾌한 인사를 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마는 단 한명, 하루히만은 예외다. 후지오카 하루히(가와구치 하루나)는 호화스러운 오란고교에서 유일한 서민 학생이다. 조용히 공부할 곳을 찾던 하루히는 실수로 호스트부의 값비싼 화병을 깨고, 화병 값을 변상하는 대신 여자임을 감추는 조건으로 호스트부에 입부한다. 한편 학교 축제인 오란제에서 우승해 중앙홀 사용권을 얻고 싶은 호스트부는 경기 연습에 매진한다. 그즈음 단기 유학생으로 미셸(시노다 마리코)이 전학을 오는데, 미셸의 등장으로 호스트부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8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하토리 비스코의 인기 원작 만화 <오란고교 호스트부>가 TV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 게임, 드라마에 이어 극장판으로도 제작됐다. 작품의 분위기나 출연진은 드라마와 대부분 같다. 대신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원작 만화의 에피소드를 주된 이야기로
거부할 수 없는 꽃미남들 <오란고교 호스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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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초호화 출연진이다. <블레이드 러너> 등에서 쌓아올린 명성을 내던지고 싸구려 영화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명배우 룻거 하우어. <저수지의 개들> 이후 체중 증가와 비례하는 속도로 ‘미국 B급 액션의 큰형님’에 등극한 마이클 매드슨. 한때 지상 최강의 영장류라 불리며 이종격투기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거기에 열정과 의리의 대한민국 원조 상남자 김보성까지.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은 ‘장난 아닌’ 캐스팅만으로도 B급 액션영화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작품이다.
거대 제약회사 사장 헌트(룻거 하우어)는 불로장생의 신약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인간의 자살충동을 자극하는 바이러스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는 무자비한 용병 릭(마이클 매드슨)을 사주하여 이 사실을 은폐하고 기일에 맞춰 신약 출시를 강행한다. 이를 눈치챈 한국 국정원 요원 장현우(김보성)와 러시아 특수부대팀들은 헌트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제
‘B급의 맛’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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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세 번째 오스카를 손에 쥐었다. 미합중국이 표방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전쟁을 불사하며 쟁취해낸 링컨(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숭고함과 인간적 향기를 완벽하게 형상화해낸 그에게 아카데미가 경의를 표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정헌법 제13조를 의회에 통과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링컨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그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종전과 흑인 해방 중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딜레마에 처하고 정의 실현을 위한 전쟁에 참전하려는 아들을 따귀를 때려가며 제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특히 대통령이자 한 가족의 가장이었던 링컨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으로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을 잃은 아내의 슬픔에 공감할 여유조차 없었던 링컨. 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옛말을 증명하듯 엄청난 균형감각으로 가정과 국가를 모두 평온하게
대통령이자 한 가족의 가장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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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하현관)은 동래역에서 철도건널목 지킴이 일을 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수동. 매일 반복되는 일터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작고 쓸쓸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래역에 노숙자 미스 진(진선미)과 꼬맹이(박나경), 그리고 또 다른 노숙자 동진(최웅)이 찾아온다. 미스 진은 넉살 좋게 무료 급식을 엄청나게 퍼가기도 하고 역내의 TV를 자기 집의 TV처럼 채널을 돌려 보기도 하고 역내에서 꼬맹이랑 체조까지 한다. 미스 진의 입담과 행동으로 굳어 있던 수동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그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마음도 열고 서로의 일을 걱정하고 베풀기 시작한다.
영화는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노숙자가 된 이유를 묻거나 그들을 노숙자로 만든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힘겹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함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렇다고 감정을 과잉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그들의 삶
잠시 머물다 떠나다 <미스진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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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박사이자 디트로이트의 형사인 알렉스 크로스(타일러 페리)는 유능한 팀장이자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다. 부인은 셋째 아이를 임신했으며, FBI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은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집안에서 4명이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알렉스는 현장에서 다음 살인을 예고하는 그림 한장을 발견한다. 살해당한 사람은 한 기업의 간부. 알렉스는 살인범(매튜 폭스)의 최종 목표가 대부호이자 그 기업의 회장인 메르시에(장 르노)임을 직감하고 친구이자 동료인 케인(에드워드 번스)과 함께 살인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부상을 입은 살인범이 알렉스의 부인까지 살해한다. 분노가 극에 달한 알렉스는 케인과 함께 살인범을 잡기 위해 법의 테두리까지 넘어선다.
영화는 제임스 패터슨의 베스트셀러인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 중 16번째 작품인 <나, 알렉스 크로스>(I, Alex Cross)를 영화화했다.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는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키스 더 걸
심리학 박사와 살인범의 대결 <알렉스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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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동화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세월에 빛바래지 않고, 끊임없이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의외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결말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동화가 가진 힘이다. 할리우드가 동화에 매혹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기실 많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 최근 할리우드에서 연달아 제작되는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는 그 빈칸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자리한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도 마찬가지다.
도로시가 아직 오즈에 도착하기 훨씬 전의 이야기.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실상은 하찮은 마술사에 불과한 오즈(제임스 프랭코)는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바람둥이다.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마법의 땅 오즈에 도착한 그는 황금에 눈이 멀어 자신이 이 땅을 구원할 예언자라고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 그 와중에도 나쁜 마녀의 음모는 차근차근 진행된다. 그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기 전의 이야기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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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자연스런 삶의 과정이라기보다 전 인생을 건 실존적 결단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산더미고 지출비용은 급증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재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지속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포기로 인해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지만 이것이 무엇을 위한 풍요인가라는 회의가 밀려오기도 한다.
<설인>은 아이들과 가족을 둘러싸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내포한 스릴러물이다. 아내 뱃속의 아이가 달갑지 않은 연수(김태훈)는 실직한 뒤 강원도 산속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그는 대학 시절 친구와 함께했던 여행의 기억과 절박한 상황에서 내밀었던 친구의 손을 뿌리쳤던 자신의 과거와 조우한다. 친구는 실종되었고 그 친구와 묵었던 방에는 친구의 딸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 안나(지우)가 묵고 있다. 같은 층에 투숙한 두명의 젊은 친구 박(아용주)과 조(김종엽)는
맨살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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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냄새,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유시앙(황유시앙)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그러하다. 계단 수를 외우고 문과 문 사이가 몇 걸음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시각이라는 중요한 감각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들을 확장시켰기에 유시앙이 세상을 감지하는 폭과 깊이는 좁거나 얕지 않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유시앙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타고 유명세를 얻은 유시앙이 음악대학에 입학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아들과 동행한 엄마는 유시앙에게 기숙사의 실내 구조부터 강의실로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일러준다.
또 다른 주인공 치에(상드린 피나)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음료수 가게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치에는 춤을 추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대학에 들어가자 다른 여자에게 한눈파는 남자친구 때문에 우울하고 괴로운 나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터치 오브 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