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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울음.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의 감상평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단어다. 영화 속 울음의 원천이 4.3 사건의 비극성이라면, 웃음의 근원은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특히 매사에 실수를 연발하는 경준(이경준)과 그를 호되게 닦아세우는 용필이 삼촌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은 진지하게 꼈던 팔짱을 풀고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용필이 삼촌 역은 제주도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뮤지션 양정원이 맡았다.
“오멸 감독과는 2001년쯤에 내가 매년 해오던 <사랑의 콘서트> 현장에서 만났다. 당시에 오 감독이 제주도의 지역문화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문화단체를 하나 만들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하다가 친해져서 10년을 함께해왔다.” 앞으로 다른 영화에 출연할 계획을 묻자 “오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참여했다. 난 다시 음악할 거다”라며 털털하게 웃는다. 5월부터는 사라져가는 제주어로 4.3 사건에 대한 노래를
[이 사람] 오멸 감독과의 10년 우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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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2013년 아시아영화아카데미(Asian Film Academy, AFA) 교장으로 부임한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AFA는 세계 거장 감독들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 멘토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만들기를 배우는 영화교육 프로그램이다.
허우샤오시엔(2005년, 2008년), 임권택(2006년), 모흐센 마흐말바프(2007년), 구로사와 기요시(2009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2010년), 크지슈토프 자누시(2011년), 지아장커(2012년) 등 여러 거장 감독이 지금까지 AFA 교장을 차례로 맡았다. 한국 감독이 AFA 교장을 맡은 건 2006년 임권택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정윤 홍보팀장은 “매년 이창동 감독님께서 하신다, 하신다 하다가 일정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며 “올해는 감독님의 일정이 가능해서 흔쾌히 교장직을 수락하셨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 AFA를 이끌 연출 교수도 확정됐다. 장편다큐멘터리
[국내뉴스] 이창동, 교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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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고구려가 통일을 했더라면…” 중얼대곤 했는데, 요샌 “노무현 때 차라리 대연정을 했더라면…” 소리가 나온다. 물론 이불 쓰고 나 혼자서. 권력을 뭉텅 내주고 선거 제도만이라도 바꾸었다면 이렇게 거대 두당을 뺀 다른 정당들이 말라죽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어차피 통째로 두번이나 내줄 권력이었는데. 두당도 지금 죽 쑤기는 마찬가지니, 그야말로 부질없는 가정이구나. (그는 참으로 자기 한계를 모르고 뭐든 뛰어넘으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모했거나 용맹했거나.) 정부조직법 하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리더십의 위기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보다는 국회의원 하나하나가 정치인이 아닌 생활인이 되어버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줄줄이 식솔이 달린. 면면을 보면 참으로 밥벌이에(만) 질기다. 한때 ‘소장파’를 자처했던 이들은 어느덧 중진이라고 보신에나 골몰하고,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걸던 386들은 계파 싸움에 날밤 새운다는 그나마 옛날 옛적 소식을 끝으로… 후 이즈?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신기루를 좇은 자, 후 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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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9위는 누가?!
플레이볼! 3월30일 드디어 프로야구가 개막한다. 관중 800만 시대를 꿈꾸는 2013년 프로야구는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9번째 구단 NC 다이노스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창(원)더비는 놓쳐서는 안될 올해의 프로야구 관전 포인트다.
2. 조선의 봄
올봄 나들이는 봄내(春川)로 가자. 국립춘천박물관에서는 김홍도 등 조선 후기 화가들의 회화와 도석인물화를 모아 <명품순례: 봄을 찾아온 동자전>을 연다. 3월12일부터 4월14일까지 이어지는 기막힌 봄맞이 문화여행코스다.
3. 봄 타는 음악
봄맞이 음악으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여수 밤바다>를 듣고 있는 당신이라면, 다음의 노래들도 주목해보자. 김현철과 롤러코스터의 <봄이 와>, 루시드폴의 <오, 사랑>, 페퍼톤스의 <Bike>, 루싸이트 토끼의 &l
[must 10] 올해 9위는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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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인가, 1985년인가에 디스켓에다 저장해놓았던 게 분명한 내 작품 <푸코의 진자>의 첫 번째 버전을 절망적으로 찾다가 결국 실패한 일이 있어요. 타자기로 쳐놨더라면 그것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말이죠.” <책의 우주>(2011)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같은 책에서 대담자인 장 클로드 카리에르 역시 우리는 “5세기 전에 인쇄된 텍스트를 아직도 읽을 수 있지만” “몇년도 안된 카세트테이프나 시디롬은 더이상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다”면서 테크놀로지의 불완전성에 대해 성토한다.
3월20일, MBC, KBS, YTN 등 주요 방송사 전산망에 사이버 테러가 자행됐다. 북한의 소행인지, 추가 공격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큰 관심도 없다. 다만, ‘해킹 폭탄’을 맞은 뒤 전화로 기사를 불러야 했던 기자들의 짜증과 PC방에서 원고를 마감해야 했던 작가들의 탄식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에디토리얼] Delete & Reb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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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영향을 받아 탄생됐다. <킬 빌> 시리즈가 ‘쇼 브러더스’를 위시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아시아 액션영화 여행이었다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장고’를 경유하는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 여행이다. 영화의 제목 역시 이탈리아 배우 프랑코 네로가 ‘장고’로 등장한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1966)에서 왔다. 하지만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흑인 장고를 내세워 노예제도라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으로 깊숙이 들어가 헤집는다. 그렇게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정서를 덧씌운다. 타란티노식 ‘하이브리드’ 영화의 극치랄까.
왕년의 <장고>를 보며 한번도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심장을 겨누고 인생을 말하다>를 쓰기도 했던 스파게티 웨스턴 전문가 하워드 휴스는, <원스 어폰 어
장르와 계보의 무규칙 이종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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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이미 어둑어둑한 밤, 약속된 장소로 나가자 누군가 다가왔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나의 손을 잡고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택’(이 용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역정보’ 정도로 해두자)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십여분 거리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 만난 곳은 관덕정 부근의 중앙성당이었고 이동한 곳은 삼성혈 근처의 광양성당이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지하실 같은 공간이 이미 20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머뭇머뭇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자마자 곧 불이 꺼졌다. 그렇게 <레드 헌트>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공식(?)상영되었다. 공안당국은 <레드 헌트>를 이적표현물로 규정했고, 나에겐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있던 시절이었다. 상영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니 성당이나 대학 학생회가 아니면 상영할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4.3 항쟁 50주년을 맞아 전북
4.3 에서 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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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좀 촌스러운 데가 있다.” <지슬> 개봉 소식에 자파리 식구들이 꽤나 감격스러워하더라고 전하자 오멸 감독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다. 이 말엔 자파리 식구들이 세련되게 감정을 숨기는 법을 모르는 순수한 친구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3월2일 간드락 소극장에서 만난 최은미씨가 그런 의미에서 특히 촌스러웠다. 인터뷰 도중 최은미씨의 눈가엔 몇번이나 눈물이 차올랐다. 목소리도 우렁차고 말도 조리있게 잘해서 무대인사 때 대표로 마이크를 잡는 장정인씨는 그런 은미씨를 보고 “고장난 수도꼭지”라고 놀렸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지슬>을 관람하러 극장에 들어설 땐 “야단맞기 직전처럼 배가 간질간질하다”며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파리 식구들은 아직도 <지슬>만 보면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고 했다.
장정인, 성민철, 최은미, 강지윤, 조은. 이들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을 ‘자파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다. 제주말 자파리는 ‘쓸모없는 짓거리’ 정도로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 쓸모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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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상실과 피로 누적. <지슬>로 인해 오멸 감독이 얻은 것들이다. “최근엔 내게 <지슬>밖에 없는 것 같다. 사생활 없이 몇달을 살다보니 자아를 상실하게 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슬>이 공개된 뒤부터, 아니 <지슬>의 제작에 돌입한 순간부터 오멸 감독은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몇년째 계속돼온 “트렁크 인생” . <지슬>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멸 감독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던 자신의 숙소이자 자파리연구소 합숙소의 보증금을 뺐다. “큰돈도 아니었다. 말이 보증금이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였다. 이젠 트렁크 인생에 꽤 익숙해졌다.” 오멸 감독은 제주도에서도, 서울에서도 모텔을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지슬>이 제주도에서 개봉한 다음날인 3월2일 오멸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저녁으로 제주산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데 오멸 감독이 말했다. “이제야 좀 웃을 수 있게 됐다” 고. 여유가 생기자
“잘 찍으면 영웅 못 찍으면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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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가 3월1일 제주도에서 먼저 개봉했다. 그리고 개봉 2주가 채 안돼 1만 관객을 동원했다. 제주 사람 오멸 감독이 제주에서 제주의 역사를 이야기한 영화 <지슬>에 제주 주민들이 뜨겁게 화답한 결과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개 부문 상(넷팩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 무비꼴라쥬상)을 휩쓸었고,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황금수레바퀴상을 가져갔다는 소식은 <지슬>의 영화적 성취를 잘 말해준다. 3월21일, <지슬>이 전국 개봉한다. <지슬>을 먼저 본 관객에게도, 아직 보지 못한 관객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될 글들을 준비했다. 정한석 기자는 오멸 감독의 영화세계 안에서 <지슬>의 의미를 풀어냈고, 4.3부터 강정까지 제주의 역사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온 조
말하라 땅이여, 울어라 넋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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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평은 야속하다. 촌철살인의 한줄로 영화나 TV시리즈를 압축해 평하는 신공이야 지갑을 열어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유용한 시스템이겠지만,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영화의 폭이나 시즌을 지나며 짙어지는 드라마 속 캐릭터의 결을 한줄로 평하는 것은 열에 아홉은 부당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슈빌>을 두고 <컨트리 스트롱>이 <스매시>를 만나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내슈빌> 역시 최근 인기있는 트렌드들의 조합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한, 괜찮은 TV시리즈다.
<내슈빌>의 중심에는 두 여자가 있다. 정통 컨트리의 여왕으로 군림해온 레이나 제임스(코니 브리튼)와 버블껌 컨트리로 불리는 대중적인 장르의 신예 줄리엣 반즈(헤이든 파네티어)다. 한때는 인기의 절정에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음악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레이나는 자신의 추락하는 명성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던 중 줄리엣 반즈와 합동투어가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답은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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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돈의 화신>은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흔한 복수극으로 출발하는가 싶더니 이내 적대하는 인물간의 선악을 흐려놓고 감정이입 이상의 생각을 요구하며, 불안의 씨앗을 던져놓은 채 능청스럽게 딴 이야기로 돌려 혼을 빼놓는다. 정극과 코미디를 오가는 건 예사. 치정, 복수, 패러디, 법정, 수사, 추리, 스릴러, 세태풍자 등 다양한 소재의 거침없는 접붙이기에 거듭 놀라다보니 벌써 이야기의 전환점인 12회까지 왔다. ‘사극 빼고 다 하는구나’ 싶던 차에 주인공 이차돈 역의 강지환은 소복 차림에 사극 머리를 하고 외치더라. “나는 조선의 국모다!”
물론 그는 국모가 아니다. 여기저기 뒷돈을 받아 챙기다 들통난 전직 검사 이차돈이 변호사 개업 뒤 사설요양원에 강제입원된 박기순(박순천)의 100억원대 상속건을 수임하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계책을 짜낸 것. 드라마 <명성황후> 패러디야 수도 없이 봤고 강지환의 여장은 예고편에서 흘린 장면이라 크게 웃을 일도
[유선주의 TVIEW] 거참 꼼꼼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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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만나보면 대체로 특이한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마음 편하게 친구로 지내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꼭 나쁜 의미로 쓰는 말은 아니다. 혼자 작업하는 게 편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다른 평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감독과 너무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의 직업을 고려해 그게 편해서인데, 한편으로는 그들의 특이한 기질로 인해 불편해지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간혹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을 내놓는 감독들이 있다. 특정 부분이 누구의 손길인지, 누가 전체 분위기에 더 힘을 발휘했는지 궁금할 것 같지만, 그것보다 먼저 호기심이 가는 부분은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이다. 결과물에 스며든 관계의 마법보다 그런 게 더 궁금하다니, 한심한 걸까. 우습게도, 작품이 좋을수록 한심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 민병훈 감독과 잠셋 우스마노프의 데뷔작 <벌이 날다>가 그런 영화였다.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감독이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벌이 날다> 감독의 세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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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의 여성적 알터 에고(alter ego)는 1920∼21년 사이에 만 레이가 찍은 몇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로즈 셀라비’(Rose Se′lavy)일 것이다. 여기에 언어놀이가 숨어 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이름 속의 ‘R’을 불어 철자의 명칭인 ‘에르’로 읽을 경우, 그 이름은 “사랑, 그것이 곧 삶이다”(Eros, c’est la vie)라는 불어 문장과 발음이 같아진다. 1921년에 뒤샹은 아예 ‘에르’(R)를 첨가하여 그 이름을 ‘Rrose Se′lavy’로 표기하게 된다. 왜 이름에 ‘더블 R’을 사용하려 했을까?
여성-되기
훗날 그는 여자로 분장해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술회했다. “사실 나는 내 정체성을 바꾸려 했다. 그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유대식 이름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거나 마음이 끌리는 유대식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성을 바꿔보는 게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정체성이라는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