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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계절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계절은 음악의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고, 음악은 계절의 공기가 되어 향기를 더 잘 맡을 수 있도록 해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몰아치면 늘 듣던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 몇주 전,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소개했던 로지피피의 노래가 지금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계절은 바뀌었다. 이제 봄이다.
어떤 노래를 듣느냐에 따라 봄의 기운도 달라진다. 이지형의 <봄의 기적>에 스며 있는 아지랑이 같은 봄도 있고, 가슴 아리고 눈물 나는 <봄날은 간다>의 봄도 있고, 추적추적하고 끈적끈적한 <봄비>의 봄도 있고, 롤러코스터와 김현철이 함께한 <봄이 와>의 경쾌하고 나른한 봄도 있다. 수많은 봄 노래 중에서 이상하게 나는 <고향의 봄>만 들으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고향의 봄>은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날 데려가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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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동화의 수위를 염려하지만 아이들은 동화에서 장차 삶에 그들을 기다리는 공포와 그로테스크, 죽음을 다루는 예행연습을 한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의 시각효과 중 단연 사랑스러운 도자기소녀는 다리가 바스라진 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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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에서 방영한 <코드명 제로니모>를 시청하다 집중에 실패하고 채널을 돌린 적이 있다. 똑같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소재로 취한 <제로 다크 서티>는 취재에 기초한 르포르타주의 성격이 강한 영화라곤 하지만, <코드명 제로니모>와 대조적으로 고도의 영화적 쾌감을 주는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다. 주인공 마야(제시카 채스테인) 또한 실제 CIA 요원을 모델로 한 인물인 동시에 엄연히 영화적 캐릭터다. <제로 다크 서티>를 보며 인식한 한 가지는 마야의 성별이 ‘전혀’라고 할 만큼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인이지?”라는 직장 동료들의 언급이 일회적으로 지나가는 정도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인생은 짧고 러닝타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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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같은 남자. 깔끔하고 도회적인 이미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스타. 바로 천만 배우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거듭나고 있는 이병헌이다. 그는 외모부터 연기까지 언제나 딱 떨어지는 조각 같았다. 설혹 그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중에 다가오고 싶더라도 그 두터운 아우라는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에도 빛나는 스타일 것만 같은 배우. 그런 그가 변했다. 최근 방송을 통해 한 몇번의 진솔한 고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타 이병헌, 배우 이병헌, 그리고 인간 이병헌. 때론 겹치고 때론 각기 다른 그 사이에서 진짜 ‘이병헌’을 보았다.
스타는 일종의 장르와 같다. 별다른 수식어 없이 이름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며 얼굴만으로도 작품의 정서를 설명한다. 이병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가. 시원한 미소, 바른 몸짓, 조각 같은 몸매와 얼굴, 낮고 굵은 목소리. 거의 자유연상에 가까운 반응. 우리는 분명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재밌는
[이병헌] 두개의 심장을 가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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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겨울이었다. 아랫녘에서 올라오는 청매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고맙게도 ‘기필코’ 와주었다. 눈알만 한 잔 하나를 들고 꽃나무 아래로 찾아들어야 하는 새봄. 꽃나무 아래에서 잔술을 마시면서 이 봄에 나는 아마 구시렁거리겠지.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국가가 통제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구나. 영화 <26년>의 Mr. 전 대사가 떨어진 꽃잎들 위로 쿠당당,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그러니 나, 지금, 숨 쉬기 답답한 게 맞다. 직접 당해보지 않아도 한국의 70년대가 어땠는지 알고 있으므로. 바야흐로 무서운 시절의 도래를 직감하며 오늘은 가볍게 말해보련다. “슈가맨, 어서 와줘, 이 풍경은 지겨워. 눈에 가로등 빛을 받은 아이야, 더 나은 걸 찾아나갈 준비를 하려무나!”
긴 겨울을 견디면서 내가 본 영화 중 ‘진짜 봄’을 꿈꾸게 한 가장 아름다운 영화는 <서칭 포 슈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농성정원으로 갈 테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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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11시, 어머니들이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학교 보낸 뒤 겨우 숨을 돌리는 시간에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가 인터뷰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류승완 감독과 어느덧 세 아이의 부모로 살고 있는 그녀이지만, 28살의 그녀가 3살 연하의 감독지망생과 결혼했을 때 그녀의 40대에 광명이 비치리라 예상한 것은 옆집의 점쟁이뿐이었다. 그렇게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며 버텼던 그녀가 이제 ‘우리 그냥 영화하게 해주세요’라는 말조차 무색할 충무로의 중견 제작자가 되어 있다. <베를린>의 성공이 알려주듯 명실상부 내조의 여왕이자 외조의 여왕으로서 류승완 감독만의 색깔을 지켜온 그녀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에게도 새로운 도약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 그녀를 만나 그동안 그녀가 류승완 감독과 함께 ‘피도 눈물도 없이’ 달려온 20년을 훑어보았다.
-늦었지만 <베를린> 700만 관객 돌파를 축하한다.
=감사하다.
-500만명 넘을 때까지는 노심초사했
[강혜정] 믿음, 소망, 사랑 그중 제일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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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는 유명 오디오 브랜드가 많다. 뱅앤드올룹슨이 그렇고 달리(DALI)나 다인오디오(Dynaudio)도 있다. 지금 소개할 자브라도 덴마크 기업이다. 자브라는 그간 비즈니스용 블루투스 헤드셋 시장에서 상당히 인정받은 브랜드다. 그랬던 자브라가 최근 음악 전용 시장에 신제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자브라가 이번에 선보이는 건 무선 헤드폰인 레보 와이어리스와 유선 헤드폰 레보, 이어폰인 복스까지 3종이다. 알루미늄 프레임, 강철 힌지, 꼬임 및 단선 방지 케이블 등을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다. 또한 낙하, 휨, 접힘, 케이블 테스트 등 헤드폰치고는 과격한 테스트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한다. 블루투스 기업답게 기능성도 뛰어나다. 디자인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그래서 음질은? 개인적으로는 고급 헤드폰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도 좀 비싸다. 레보 와이어리스는 31만원, 레보는 27만원, 복스는 16만5천원이다. 1년간의 무상 수리 서비스가 제공된다.
[gadget] 음악은 자브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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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 작고 가벼워졌다. 휴대에 최적화된 크기. 210g의 무게.
2. ‘셀카’ 전용 180도 플립 LCD.
3. 인물 촬영에 능하다. 피부의 질감을 알아서 보정해주는 소프트 스킨 기능.
4.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소니의 NEX 시리즈는 처음 발매될 때만 해도 큰 기대를 모으지는 못했다. 소형 렌즈 교환식 카메라의 선두주자였던 올림푸스 PEN의 아류작 같았고 그렇다고 캐논과 니콘의 거대한 성채를 부수기에는 소니 카메라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포지션이 조금은 애매해 보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니가 잘한 것은 쉽게 지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꾸준하게 신제품을 발매했고, 그러다보니 입소문도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 결과, 지난 2012년 국내 미러리스 카메라 판매율 1위까지 차지한다. 그런 소니의 가장 최근작이 지금 소개할 NEX-3N이다.
모든 카메라가 그렇듯 소니의 NEX 시리즈 역시 전문가용과 실속형으로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실속형의 타깃은 20∼30대 여
[gadget] 언니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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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빈스타운은 지명 이상의 울림을 갖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이 마을에는 직선으로 뻗은 도시의 건물과 사물들 사이에 머무르는 인간의 풍경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살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세월>의 마이클 커닝햄은 이곳에 살며 예찬론 <아웃사이더 예찬>을 썼다. 유진 오닐, 노먼 메일러, 테네시 윌리엄스, 마크 로스코가 모두 이 마을의 거주자였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어서, 그리고 최소한의 삶에서 예술적 폭발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동료 예술가들이 있어서 칭송받는 땅이다. 시인 메리 올리버 역시 그 땅의 예찬론자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은 그 특유의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자연으로부터 길어올리는 삶과 예술의 공명과 리듬에 대한 사색이 단어들에 고여 있다.
역사를 만드는 격렬한 활동보다는 사색에 잠기고 작품도 구상할 수 있는 길고 쉬운 산책이, 흰 눈 덮인 험한 산봉우리보다는 완만한 초록의 산이 좋
[도서] 시인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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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지미 헨드릭스가 정말 괴물같이 느껴지는 건, 몇장인지 세기조차 어려운 그의 사후 편집 음반들이 하나같이 다 ‘훌륭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익스페리언스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는 밴드 오브 집시스의 멤버들과 함께한 트랙부터 다른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끝내주는 기타와 보컬이 있다. 정말이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떠난 지 40년 넘은 아티스트의 기록을 보완해 구성한 앨범이니 사실상 지미 헨드릭스의 ‘빠’에게 최적화된 기획이다. 하지만 빠가 아닌 입장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여지는 많다. 곡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제대로 출렁이는 쫀득쫀득한 기타, 여유있게 말하는 것처럼 쉽게 노래하는 근사한 목소리 덕분이다. 정말이지 듣고 있는 동안엔 하던 일을 죄다 멈추고 싶어진다.
최민우/ 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장 ★★★
마음 편히 칭찬하기
[MUSIC] 여전히, 끝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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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31일까지
장소: 국제갤러리 2관
문의: www.kukjegallery.com
한때 내로라하는 스타였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김 빠진 라면처럼 시들시들해지는 모습을 여럿 본다. 장 미셸 바스키아가 그림으로 남긴 ‘영웅적인 흑인 아이콘’들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을까. 흰 이빨을 드러낸 까만 피부의 악동이나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는 청년의 모습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바스키아 개인전에는 미국 팝 아트의 부흥 속에서 ‘검은 피카소’라 불린 한 악동 작가의 제스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작가는 27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8년간 열성적으로 그려낸 작업에서 그는 여전히 젊고 도전적이다.
바스키아는 7살 때 어머니에게 <그레이의 해부학>을 선물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한번도 받지 않았지만 작가는 그가 보았던 숱한 거리의 이미지, 친구들, 당대 스타들을 낙서처럼 그리며 벽화를 만들었다. 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스타덤에 오른 바스키아는 자전적
[전시] 낙서가 예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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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28일까지
장소: 일민미술관
문의: ilminart.org
전시장 1층에 있는 사진들을 보고 오프닝날 관람자 몇이 내뱉은 탄성. 아, 너무 예쁘다. 사진가 이득영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전시에 선보인 그의 신작은 색감도 구도도 사진 상태도 확연히 ‘예쁘다’는 형용사가 어울려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단풍 든 나무와 호수, 구획된 공간은 최상의 ‘조경’ 상태를 보여준다. 절정에 이른 단풍과 극도로 꾸며진 인공풍경의 조합이다. ‘에버랜드’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어쩌면 불가능한 장소다. 에버랜드와 ‘사파리’, ‘자유이용권’은 포털 사이트 연관검색어다. 지난해 10월30일, 이득영 작가가 헬기를 타고 고공에서 찍은 공원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기묘하고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미지로 다가온다. 작가는 ‘파라다이스’의 시각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에 접근했다고 말하는데, 사진을 보다보면 ‘공원’을 둘러싼 각개각투의 욕망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공원의 소유자와 방문자가 이 지상낙
[전시] 에버랜드, 네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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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이라면 몰라도, 톨스토이라니. 영국의 로맨틱코미디 명가 워킹타이틀이 러시아의 걸작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키라 나이틀리가 안나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푹 꺼진 눈매에, 남자아이같이 호탕하게 웃던, <오만과 편견>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깡마른 그 배우가 안나 카레니나를 맡았다고? 다음은 모두의 우려와 달리, 자신만의 안나를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키라 나이틀리의 이야기다.
모험이다. 키라 나이틀리가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한다는 건.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정부(情婦)다. 수도사 같은 남편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자, 젊고 치기어린 군인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도 내버리는 매정한 여자다. 영국의 스타 여배우로서 키라 나이틀리가 선점하고 있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21세기의 엘리자베스 베넷(<오만과 편견>), 스포츠 브래지어를 하고 축구장을 누비는 활기 넘치는 스트라이커(
[키라 나이틀리] 날 사랑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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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설인> 뫼비우스의 띠
[올드독의 영화노트] <설인>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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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사랑의 밀어 따위는 없다. 머리끄덩이 잡기는 예삿일. “너 같은 미친X는 정말 처음”이라는 발사에 “이런 개 같은 XX가”라는 폭격으로 받아치는 식이다. 연애 초기의 설렘과 흥분이 가라앉은 오래된 커플에겐, 식어버린 온도에 딱 맞는 ‘생활형 연애’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연애의 온도>는 3년째 비밀연애를 해온 직장동료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의 결별 스토리다. ‘헤어져’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마이클 더글러스, 캐서린 터너가 죽자고 부부싸움을 하던 <장미의 전쟁>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메가톤급 치졸한 공방전이다. 선물했던 노트북은 부서져서 되돌아오고, 호의로 줬던 돈은 모두 빚으로 셈해지는 살풍경의 현장에서 사랑은 지긋지긋한 현실이 된다.
사랑에 빠지는 건 3초의 찰나로도 가능하다지만, 그 사랑에서 벗어나는 데는 그 몇백 곱절의 노력이 필요한 게 연애다. <연애의 온도>는 지극히 사실적인 상황과 구어체
야단법석 결별 스토리 <연애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