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드 뵈티커는 투우사다. 청년 시절인 1930년대에 멕시코에 갔다가 투우에 흠뻑 빠졌다. 원래 그는 운동에 만능이었고, 대학 때만 해도 미식축구 선수로 평생을 살 포부를 가졌다. 그 희망은 부상 때문에 포기했는데, 다리 부상을 크게 입은 뒤, 멕시코에 휴양차 여행을 갔다가 투우를 보고 반해버렸다. 뵈티커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나 위험하고, 너무나 중세적”이었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그는 당장 투우를 배웠다. 소개를 받아 당대 최고의 멕시코 투우사였던 카를로스 아루사로부터 직접 배웠다. 1939년 프로 투우사로 멕시코시티에서 데뷔했는데, 첫 시합에서 가슴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경험으로 뵈티커는 투우 관련 영화로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루벤 마물리언의 <혈과 사>(1941)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영화계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타이론 파워에게 투우하는 법을 가르쳤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는 컨설턴트로 연출부에 들어갔는데, 어느새 식사 준비는 물론 엑스트라들 관리
성난 소를 향한 카우보이의 권총
-
존 가필드의 불꽃같은 삶에는 천성을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의 운명이 새겨져 있다. 그는 194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가운데 한명이었고, 특히 필름 누아르의 아이콘이었는데, 경력의 절정에서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1952년, 39살 때였다. 사인은 심장질환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공식적인 발표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스트레스 때문에 죽었을 것이란 소문을 더 믿었다. 바로 1년 전, 존 가필드는 미국 의회의 비(非)미활동조사위원회(HUAC)에 소환돼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그 뒤 1년간 할리우드에서의 활동 중지는 물론 수사기관의 끊임없는 미행까지 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개인의 삶이 완벽하게 파괴된 것이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인 존 가필드는 1930년대 뉴욕의 ‘그룹 시어터’(Group Theater) 출신이다. 여기는 러시아 출신 연극인들이 많았던 곳으로, 메소드(Method) 연기의 본산이었고, 또 진보적 예술인들의 거점이었다. 엘리아 카잔
배신을 용납하지 않는 우정
-
대시엘 해밋은 폐병 환자였다. 1차대전에 참전하자마자 폐병에 걸려 전쟁 때는 병원에만 있었고, 이후로도 병은 죽을 때까지 완쾌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입에 물고 살았다. 더 나아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커피를 마실 때마다 브랜디를 섞는 등 한순간도 손에서 술을 놓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폐병 환자에 알코올 중독자인 대시엘 해밋은 30대 때부터 사실상 죽음과 동거하는 공포 속에 살았다. 이때 쓴 소설들이 전부 범죄물이고, 이른바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보석들이다. 하드보일드의 3대 작가로 지금도 제임스 케인, 레이먼드 챈들러, 그리고 대시엘 해밋이 꼽힌다.
그런데 해밋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작가로 명성을 날릴 때인 40대에 공산주의에 투신한다. 서구 선진국 가운데 공산주의가 거의 싹도 틔워보지 못한 나라가 미국인데, 그렇다면 해밋의 불행한 말로가 약간은 짐작될 것이다. 해밋은 속된 말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시대의 부조리와 맞서는 ‘위험한 삶’을
폐병 걸린 공산주의자의 흡연
-
뜬금없다, 지금 왜 아웃사이더인가.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그냥 가상의 아웃사이더 연대기가 문득 떠올랐고 가장 공고한 중심을 갖춘 할리우드를 소재로 택했다. 너무 잘 알려져 유명한 이들과 이제는 주류로 가버려 아웃사이더라 부르기 어려운 이들을 제외한 다음, 할리우드 역사상 베스트 아웃사이더 11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한마음은 아닌 것 같다. 제각각의 다른 사정과 태도들이 여기 있다. 그게 바로 그들을 할리우드의 아웃사이더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아놓고 보니 우리가 원했던 게 이것이 아니었나 싶긴 하다. 현재의 중심과 안주에 거리를 두고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간 11개의 자유.
대시엘 해밋 1894년 5월27일~1961년 1월10일 <말타의 매>(1941)
존 가필드 1913년 3월4일~1952년 5월21일 <악의 힘>(1948)
버드 뵈티커 1916년 7월29일~2001년 11월29일 <라이드 론섬>(1959)
말론 브랜
반골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헌즈 다이어리] <엘리시움> 다음 화두는?
[헌즈 다이어리] <엘리시움> 다음 화두는?
-
나는 제도적인 결혼 혹은 결혼식에 전혀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지만, 최근 들어 두 커플의 결혼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김조광수, 김승환씨 결혼과 이효리, 이상순씨 결혼이 그것. 한 커플은 미니멈하게 (조촐한 그들만의 공간에서), 한 커플은 맥시멈하게 (가능한 한 많은 하객이 참석할 수 있도록 공개된 야외에서) 결혼을 한다. 단출한 결혼식을 택한 이효리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멋있어지는 연예인. 결혼도 참 그녀답게 한다. 지켜보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 흐뭇하다. 광장의 결혼을 택한 김조광수 감독 커플을 보는 마음은 기쁘면서도 한편 짠하다. 그들이 광장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이므로.
무슨 결혼식을 그리 요란하게 하느냐고 흘겨보는 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면 된다.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물론 안 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이 당연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해서 결혼하겠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광장의 결혼식
-
“방금 되게 세게 찌릿했는데!” “아니요.” “되게 세게 그죠?” “아니요!” 처음 본 남자의 서류에 손가락을 뻗다가 탁 쳐내는 손과 접촉한 느낌을 눈치없이 떠드는 여자.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의 태공실(공효진)과 주중원(소지섭)의 첫 만남은 이렇게 민망했다. 많은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눈치없음은 순수함의 발현인 양 일종의 덕목처럼 사용되어왔다. 남자의 세속적인 조건은 뒤늦게 깨달아야 하고, 작은 조직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왕따나 희생양이 되어 그가 그녀를 위로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공실은 첫 만남부터 서류를 엿보며 “여기(대형 복합쇼핑몰 ‘킹덤’) 사장님이신가봐요?”라고 대번에 찌른다. 그녀가 청소용역으로 취직한 쇼핑몰 사람들도 어딘가 이상한 공실을 핍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머리채를 잡아끌어내는 과격한 쪽은 주중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접촉을 시도하고, 나사 빠진 사람처럼 ‘이힛’ 하고 웃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징징대는 여자. 냄새나는 머리로 “
[유선주의 TVIEW] 로코의 변주 어디까지 갈까
-
“누구 성냥 가진 사람 있나요?”
20살짜리 배우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성숙한 로렌 바콜이 입에 담배를 물고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소유와 무소유>(1944)에서다. 데뷔작이고, 상대역은 필름 누아르에선 당대 최고였던 험프리 보가트였다. 그런데 빛을 쏘는 듯한 눈빛에, 남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담뱃불을 요구하는 당돌한 바콜의 모습은 웬만한 중견 배우의 포스, 그 이상이었다.
험프리 보가트와 담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온갖 인상을 쓰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의 아이콘이 됐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그 모습을 흉내냈을까. 제임스 딘도 보가트를 흉내낸 것 아닐까. ‘보가트처럼 대마초 피우지 마’(<Don’t Bogart That Joint>)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다(<이지라이더>의 삽입곡 중 하나). 보가트와 담배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으면, 이 노래에서는 스타의 이름이 동사가 됐다
[한창호의 오! 마돈나] 남자를 피우다
-
할아버지의 실제 부인인 천순덕(77) 할머니는 이북 원주 출신으로, 피난길을 나서며 3일만 지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뒤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할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전부터 입버릇처럼 “영화제가 나를 인간 만들었다”고 말해온 조재현 감독의 마음속에는 결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일부러 슬레이트를 치지 않았기에 할아버지는 ‘느닷없는’ 독백을 쏟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연히 연기경험이 없었지만 주연으로 섭외된 이후부터 촬영을 위해 4일간 면도를 하지 않을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조재현 감독의 말에 따르면 “트레일러 속 리어카야말로 세상의 모든 다큐멘터리 소재들이 다 담긴 할아버지만의 작은 우주”다. 한/중 청소년들이 독도를 방문한 기사가 실린 신문, 그리고 낡은 우유곽(일부러 남양유업 우유곽을 바닥에 박박 갈아 실었다) 등 감독이 직접 배치한 세상의 풍경이기도 하다.
“두번 만에 끝낸 거
[씨네스코프] 없는 게 없는 할아버지의 리어카
-
김정 감독이 타슈켄트 식당의 직원인 김갈리나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김갈리나씨는 촬영현장의 러시아어 통역과 김알렉스씨의 인터뷰까지 도맡아준 중요 인력이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하기 전, “카메라에 예쁜 모습으로 나와야 한다”며 화장을 새로 하고 의상도 갈아입는 성의를 보여줬다.
“감독님이 나보다 더 어려요? 그럼 내가 언니네!” 처음엔 김정 감독과의 인터뷰를 쑥스러워하던 김허스베타씨는 서로의 나이를 알고 난 뒤 눈에 띄게 적극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를 자랑하는 김허스베타씨의 큰아들. 함께 사진에 담긴 김허스베타씨의 미모도 만만치 않다.
다큐멘터리 <거류>와 극영화 <경>에 이어 김정 감독은 <열린 도시> 프로젝트에서도 이주와 공간의 테마를 이야기한다. “이주 공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처참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이주민들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그려내고 싶다.”
안산 땟골마을 한복판에 낯선 언어로 쓰인 간
[씨네스코프] 고려인들의 장밋빛 인생
-
우리 아파트 단지 안 분수대 근처는 바람이 잘 모이는 곳이라 꼬마들의 좋은 놀이터다. 너른 잔디밭이 있고 한가운데 넙데데한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제법 운치있다. 어느 날 잔디밭 둘레에 쇠 펜스가 쳐졌다. 애들이 잔디밭을 넘나들고 나무에도 올라탄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관리사무소에 요구했다고 한다. 안전 때문이 아니라, 비싼 나무가 망가진다는 이유였다.
이석기 의원실 등에 대한 국정원 주도의 압수수색 혐의는 내란음모 등이라는데, 내용을 보다 보니 잔디밭을 막아버린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형법에서 정하는 ‘내란’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이다. 공유지에 대한 거주민들의 ‘주권 행사를 배제’하고, 안건으로 올렸다는 안내 하나 없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공론을 모을 ‘기능을 소멸’시켰으며, 잔디밭에 나와 고함을 지르거나 관리사무소장을 들들 볶는 식으로 정상적인 아파트 관리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분수대 근처의 ‘질서를 파괴’했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내란음모, 무섭지 않아
-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처음 봤을 때 봉준호만은 앞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로덕션 규모와 프로덕션 시스템의 가위에 눌려 봉준호가 자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악전고투한 흔적을, 주관적이지만,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커티스가 윌포드를 만나는 대단원의 장면에서 윌포드를 연기하는 에드 해리스는 내가 본 어떤 영화에서보다 압도적 기운이 약했다. 스테이크를 굽는 옆모습으로 에드 해리스/윌포드가 화면에 등장해 커티스와 긴 대화를 나눌 때 그의 동작과 말투는 화면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봉준호 영화에선 간단한 설정 화면에서도 늘 화면 내의 조형적 긴장이 탱탱하고 배우들의 기세가 그 긴장을 버텨내는 주요 동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이상했다. <설국열차>를 두 번째 보고 나서 이 작품이 여전히 흥미로운 봉준호의 영화적 진경이지 않을까 유보적인 입장이 되었다. 다소 이완된 형태지만 봉준호의 영화적 결기는 화면 속에서 지탱되고 있었
[신 전영객잔] 품었던 생각을 끊어버리다
-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라는 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선희>의 문수(이선균)를 보며 불현듯 <옥희의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다. 파리의 북한 유학생으로 분했던 <밤과낮>부터 영화과 대학원생으로 출연하는 <우리 선희>까지, 홍상수 감독의 다섯 영화에 출연한 이선균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따로 떼어 붙여놓고 보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들 영화에서 이선균은 대개 지식인이었으며 어떤 여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비슷한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 김태우, 김상경 등의 배우들과는 또 다르다. <옥희의 영화> 속 한 장면. 구애를 퍼붓는 진구(이선균)에게 옥희(정유미)는 “난 네가 착해서 좋아. 믿을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이선균이 진구를 연기하기 때문에 비로소 진심처럼 들린다. 젖먹
[이선균] 때때로 진심 때때로 의심
-
가볍게 던진 질문에 한참을 고민한다.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가 싶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좀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에서 선희로 분한 정유미는 선희처럼 모두의 눈길을 잡아끌고, 선희처럼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선희처럼 알 수 없다. 그녀를 설명하려는 말은 차고 넘치지만 그 어떤 것도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 몇번의 대화가 오가고 미로를 헤맨 끝에 겨우 실타래 한쪽 끝이 잡힌다. ‘모르겠다’는 대답이야말로 최선을 다한 진심의 형태다.
<우리 선희>에는 선희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나온다. 선희는 어떤 아이니.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지만 똑똑하고 똘기도 있는 용감한 친구. 마무리는 항상 착하고 예쁘다로 끝나는 두루뭉술한 답변. 이 모든 표현들은 정확히 선희를 묘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선희를 완벽하게 오해하도록 만든다. 단어의
[정유미] 정유미라는 질문 오늘이라는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