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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이 기각됐다
=9월4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기각 결정을 내림에 따라 예정대로 5일 33개관에서 정식 개봉한다.
-소격동 씨네코드 선재에서 제1회 ‘북촌영화산책’이 개최된다
=9월24일부터 3일간 11편이 상영된다. 북촌 투어, 정독도서관 야외상영, 깜짝 벼룩시장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만화원작프로모션 공식홈페이지를 오픈했다
=‘원작 쇼케이스’ 섹션을 통해 국내외의 2차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2013년 만화원작디렉토리 선정작 29편을 소개하고, 온라인 판권 문의도 진행한다.
[댓글뉴스]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이 기각됐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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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수박
임순례 감독의 신작 <제보자>에 박해일이 캐스팅됐다. <제보자>는 줄기세포 열풍을 몰고 왔다가 2006년 논문 조작 사건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황우석 박사에 대한 영화로 올 하반기 촬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인하우스필름
<도희야>가 9월8일 촬영을 시작한다. 막다른 인생에 내몰린 소녀 도희(김새론)와 그녀를 지켜주려는 파출소장 영남(배두나), 그리고 도희의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를 둘러싼 이야기다. 단편 <영향 아래 있는 남자>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정주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TPS컴퍼니
박흥식 감독의 <협녀: 칼의 기억>에 이준호, 이경영, 김태우, 배수빈이 합류했다. 9월 초 크랭크인 예정인 이 작품은 대사형 풍천(배수빈)을 죽인 동료 덕기(이병헌)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고려 최고의 여검객 설랑(전도연)의 이야기다. 이준호는 설랑의 딸 설희(김고은)에게 연정을 느끼는 무사로
[인사이드] 임순례 감독의 신작 <제보자>에 박해일이 캐스팅됐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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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일 오후 5시 한국언론진흥재단 국제회의장에서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는 10월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부산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7개 극장 35개 상영관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를 위해 70개국 301편의 작품이 엄선됐다. 그중 월드 프리미어 95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42편 등 총 137편의 작품이 관객과의 첫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개막작으로는 부탄의 고승이자 영화감독인 키엔체 노르부의 <바라: 축복>(Vara: A Blessing)이 선정됐다. 인도 남부지방 전통 춤인 ‘바라타나티암’을 매개로 남녀의 사랑과 역경, 자기희생을 표현한 작품으로 창의적으로 해석한 춤의 의미가 빼어난 영상미 안에 담겼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김동현 감독의 <만찬>은 2011 아시아영화펀드 인큐베이팅 지원작으로 가족의 불행을 집요하게 관찰한 영화다.
이번 영화제는 다양한 관객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거듭나기 위해 키즈, 실버 섹션을 보완하고
[국내뉴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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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영화가 정말 필요해서 영화를 만든다.” 홍상수 감독의 16번째 영화에 출연한 뒤 가세 료가 남긴 말이다(‘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913호 <씨네21> 씨네인터뷰). 클린트 이스트우드, 구스 반 산트, 미셸 공드리,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리고 홍상수와의 작업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가세 료는 이렇게 답했다. “그들의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의 어떤 겸허함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모두 영화를 만드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영화가 영화에 그친다 하더라도…(중략)…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구원받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로 돈을 벌고 싶은 감독도 있고, 영화로 상을 받고 싶은 감독도 있고, 영화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감독도 있지만, 그들은 그런 감독들과 분명 다르다고 했다. 가세 료의 그 말이 심중에 오래 남았다. 얼마 전에 작은 대화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개인적인 취향을 캐묻는 자
[에디토리얼] 우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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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클래스? 웃기고 있네.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데 마스터는 무슨 마스터야, 내가.” ‘최민식에게 듣는 영화 속 캐릭터 창조의 비밀’이라는 주제는 강연의 시작과 동시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원래의 계획은 배우로선 최초로 ‘8월의 영화마스터’로 선정된 최민식의 초기작 <해피엔드> <파이란> <올드보이>를 두고 그에게서 영화별로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었는지를 듣는 것이었다. 영화계의 오랜 콤비인 최민식과 사나이픽쳐스의 한재덕 대표는 강연이 시작되자마자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뻐꾸기를 마음껏 날려보자”며 한바탕 질펀한 이야기판을 벌였다. 그들이 날려놓은 “두서없는 뻐꾸기”를 주섬주섬 주워모아 정리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주최하고 <씨네21>,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KAFA+ 마스터클래스’는 8월28일 저녁, 한재덕 대표를 모더레이터로 앞세워 ‘최민식DAY’라는 이름으로 CGV압구정에서 진행됐다.
“배우는 감독의 하청업체다”
최민
진짜는 귀하다, 나를 귀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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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빠졌냐고 묻는다면 너무 유명해서라고 답하겠다. 아웃사이더를 논하는 데 있어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이는 오슨 웰스 아닐까. 영화 좀 본 사람치고 들어보지 않은 이 없다는 <시민 케인>을 만들었지만 정작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이도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란 농담처럼 실상은 연이은 흥행 실패로 진즉에 유럽으로 밀려난 비운의 감독이다. 다음으로는 반골이란 키워드만 쳐도 제일 첫줄에 나오는 로버트 알트먼을 꼽을 수 있겠다. 다섯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덕분에 결국 2006년 평생공로상에 만족해야 했다. 폭력의 피카소라 불리는 샘 페킨파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봉준호 감독도 사랑해 마지않는 감독이라 밝힌 바 있는 페킨파는 과격하고 삐딱한 만큼 열렬한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 밖에 여전히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저항하며 자신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짐 자무시 정도가 너무 유명해서 빼놓은 아웃사이더라 할 만하다.
리스트에 오를 자격은 충
“이 사람 왜 빠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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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이 없으면 대사가 안되는 영화 <점원들>(1994)이 나왔을 때 관객과 비평가는 그 욕설의 정서에 환호했다. <스타워즈>와 <죠스>를 보고 자란 아이들 중 오랜만에 재미있게 막 나가는 친구가 나왔다고들 했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만화책과 록음악과 영화에 청춘을 건 식료품 직원 케빈 스미스는 졸지에 기대주가 됐다. 영화의 무대를 작은 가게에서 쇼핑몰로 옮긴 <몰래츠>(1995)는 한술 더 떴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은 그의 친구들이 됐다. 발칙한 음담패설에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예민한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까지 겸비한 <체이싱 아미>(1997)와 <도그마>(1999)를 만들었을 때는 혹시 이 감독이 할리우드를 뒤집어엎진 않을까 예상하는 시각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이 앤 사일런트 밥>(2001)은 지겨웠고 <저지걸>(2004)은 실망스러웠고 요즘은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영화들이 다수다.
그
부끄러움 따윈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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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갈로의 최근 행보는 사실상 할리우드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연달아 일본과 이탈리아영화 등에 출연하고,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이센셜 킬링>(2010)도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가 연출한 유럽영화였다. 아무래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테트로>(2009)가 그나마 할리우드와 끈이 닿아 있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를 일약 미국 독립영화의 숨은 재능으로 끌어올렸던 작품이 연출 데뷔작 <버팔로 66>(1998)이었고 당시만 해도 라이온스 게이트가 제작과 배급에 참여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갈로는 차라리 할리우드가 끌어들여야 했지만 끝내 놓친 아까운 인물에 속하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연출작 <브라운 버니>(2003)가 환대받지 못한 탓도 컸을 것이다. 갈로는 공표한 대로 그의 세 번째 연출작 <물에 새긴 약속>(2010)을 아예 DVD로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건 멈추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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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변의 아이콘. 미키 루크를 볼 때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을 절감한다. 198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꽃미남이자 섹시스타였던 그가 늙고 지쳐 뭉개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기억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법 긴 무명 시절을 거쳐 <보디 히트>(1981)로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 딘의 뒤를 이을 차세대 반항아로 거듭났다. 이후 <나인 하프 위크>(1986), <엔젤 하트>(1987)로 정점을 찍지만 곧 무서운 속도로 추락을 시작한다. 공사장 잡부에서 모텔 청소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닥부터 올라온 그에게 성공의 달콤함은 마약과 다름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와 스캔들이 일어났지만 거리낌이 없었고 <레인맨> <하이랜더> <플래툰> 등의 작품마저 상대배우나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때의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걸 그대로 말하는 게 일종의
달콤한 성공의 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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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이다. 아름답다. 강하다. 단단하다. 한두 단어가 겹칠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단어를 한꺼번에 바칠 만한 사람은 드물다. 19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여왕 팸 그리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1949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군정비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열여덟살 때 미스 콜로라도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여감방>(1971), <빅 버드 케이지>(1972)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다 <코피>(1973), <폭시 브라운>(1974)을 통해 주류영화계마저 무시할 수 없는 섹시 심벌로 자리잡는다. 70년대 할리우드에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공략하기 위한 맞춤형 상업영화인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은 이를테면 폭력과 선정성으로 무장한 일종의 소모품에 가까웠다. 팸 그리어는 그런 자기 반복적인 대량상품 속에서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미를 발한다. 빤한 섹스와 폭력 이야기마저 그녀의 육체를 거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동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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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을 만들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이런 방법이 있다. 일단 할리우드의 친한 유명 배우 한명을 꼬여낸다. 그와 동석하여 칸영화제로 향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전세계의 거물급 투자자들이 몰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제작비를 구한다. 게다가 그 과정을 카메라로 전부 찍어놓는다면 돈도 구하고 영화도 한편 뚝딱 만들게 될지 모른다. 염치 불구한 이 뚝심의 프로젝트는 정말 성공한다. 제임스 토백은 알렉 볼드윈을 앞세워 2012년 칸에 간 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이라크 전쟁 버전으로 바꾼 <티그리스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기획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을 수없이 만나더니 마침내 긍정의 답을 얻어내고, 그 과정은 <사랑받고 내쳐진>이라는 다큐로 탄생하고, 2013년 칸에서 상영된다. 하지만 유의사항. 이것은 “내 인생의 95%는 돈을 얻으러 다니는 거였고 나머지 5%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가혹한 진실을 대면할 줄 아는 어느
돈을 얻기 위해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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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풍운아들이 가득했던 1970년대 할리우드. 그 시대 할리우드의 숨겨진 사건 사고와 활약상을 꼼꼼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총망라하여 많은 인용과 일화를 가능케 해주는 흥미로운 책 <헐리웃 문화혁명>은 그중에서도 할 애시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1970년에 감독 데뷔하여 정확히 10년간 뛰어난 영화들을 만들고 80년대에 조락한 그는, 1988년 59살의 이른 나이에 죽었는데 <헐리웃 문화혁명>은 그 두꺼운 책의 종결부를 그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데 바치고 있다. 마치 애시비의 퇴장을 말하는 것이 1970년대의 퇴장을 말하는 것인 양.
책 속에는 그에 관한 증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할은 ‘엿 먹어라 씨팔놈아. 나는 이렇게 할 작정이니까. 싫으면 네 귀에 박아둬’ 하는 식이었다”, “그는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싸웠지만 자신이 언제나 거부하는 편이어야 했다”, “할은 제도를 혐오했다. 한편으로는 이를 두려워했다”, “할은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70년대와 함께 사라진 불운한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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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는 명료함에 대항해 싸웠다. 그 모든 바보 같은 명확한 정답들에 대항하면서 말이다. 도식적인 삶, 매끈한 해결책들은 꺼져버려라. 삶이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상징적 감독 존 카사베츠는 그렇게 말했고 그 삶의 명료함에 대항해 싸우는 혼란스러움의 무기로 여배우이자 아내인 지나 롤랜즈를 택했다. 도식적인 삶, 매끈한 해결책들이 어쩌지 못하는 혼란함의 상태를 그녀보다 더 뛰어나게 연기한 여배우의 사례는 영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신경쇠약에 걸린 여배우(<오프닝 나이트>), 불안하고 위태로운 정신 상태에 놓인 아내(<영향 아래 있는 여자>) 등 카사베츠의 세계관은 롤랜즈의 연기로 실현됐다. 그리고 예술적 동반자인 카사베츠가 1989년에 사망하자 사실상 롤랜즈의 전성기도 영화적으로 막을 내렸다. 롤랜즈는 지금도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의 영화를 보존하려는 것 같다. 가령 카사베츠 영화 세계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낸
도식을 버리고 정답과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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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제4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말론 브랜도의 이름이 불렸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말론 브랜도 대신 시상대에 오른 묘령의 인디언 여인이 인디언의 인권에 관한 글을 낭독하려 했기 때문이다. 연설은 이내 제지되었고 심지어 대리인으로 나선 사친 리틀패더 공주는 진짜 인디언이 아니라 배우임이 밝혀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국인디언운동(AIH)의 정당성을 알리려 했던 그의 계획은 멋들어지게 성공했고 시상식은 할리우드 역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니. 아마도 집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을 말론 브랜도는 사색이 된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통쾌해하지 않았을까.
말론 브랜도는 자서전에서 “나는 권위에 도전해 성공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라고 밝힐 만큼 관습과 권위를 혐오했다. 그렇다고 반항을 위한 반항에 무작정 매달리는 철부지는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선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활용할 줄 아는 지능적인 반역자에 가깝다. 1960년
크게 한방 먹은 아카데미 시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