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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설의 주먹>을 봤습니다. 영화는 말 그대로 강우석표 영화였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한줄로 요약 가능한 캐릭터였고 배우들은 그걸 충실히 연기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복잡다단한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서 영화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요. 영화는 두 시간 넘게 남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과연 그들은 ‘전설의 주먹’이었을까요?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봅시다. 과연 덕규(황정민), 상훈(유준상), 재석(윤제문)은 주먹도 셌을까요? 격투기 해설자이자 프로레슬러 입장에서 고찰을 해볼까 합니다. 먼저 누가 센지를 알기 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일어나는 무력 충돌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짱’은 어떻게 결정되나
대개 학교에는 대가리, 짱, 통이라 불리는 주먹이 센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누가 싸움을 잘하는지 어떻게 정했을까요? 일반적으로 권투나 격투기 시합이라면 챔피언과 도전자가
누가 더 센 놈인지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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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 자리잡은 네 소년에게 별다른 지시는 필요없었다. 사소한 것들로 투덕거리다가도 슛이 들어가면 한 화면 안에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지난여름이 그들에게 일으킨 화학작용 덕택일 것이다. 다른 수많은 영화의 무술팀이 서울액션스쿨에 떴다 저무는 3개월 동안 그들은 서로 훅과 킥을 주고받으며 버텼고, 혹독했던 강우석 감독의 현장에서도 보란 듯이 함께 살아남았다. 그렇게 그들은 1987년 서울 일대를 주름잡았던 4인조 ‘전설’, 아니 ‘절친’이 되었다. 그 4인조란 임덕규 아역의 박정민, 이상훈 아역의 구원, 신재석 아역의 박두식, 손진호 아역의 이정혁이다. 이들이 회고하는 <전설의 주먹>의 그때 그 시절로 들어가보자.
씨네21_오디션 볼 때 지금 배역대로 지원했나.
박정민_내가 지원했던 역할은 없어졌다. 고민하다 재석과 덕규 중 덕규를 골랐다. <파수꾼> 때의 진중함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뭔가 진득하게 눌러내는 연기로. 지난 1년간 별 고민 없이 까부
전설,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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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주먹>의 드라마를 탄탄하게 해주는 구심점은 결국 액션이다. 철없던 고교 시절의 막싸움의 판타지와 성인이 된 전설의 싸움꾼들의 이종격투기의 긴박감을 모두 표현해야 했다. 시나리오책의 절반을 차지하던 액션장면을 현실화한 것은 정두홍(위 오른쪽) 무술감독과 그와 함께한 강영묵 무술감독의 몫이었다. 강영묵 감독이 촬영 전 액션스쿨에서부터 배우들을 단련시키고 합을 만들어냈다면, 정두홍 감독은 연출의 자리에서 이렇게 훈련된 배우들을 촬영이라는 실전에 적용시키고 화면에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액션 비중이 큰 만큼 더없이 욕심나는 작품이었겠다.
=정두홍_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존의 건달들이 나오는 작품은 더이상 안 하고 싶더라. 마침 다른 작품의 촬영과도 시기가 겹쳤었다. 그런데 한번은 술자리에서 한 배우가, 왜 배우들은 아프게 맞는데도 화면에선 그게 표현이 안되냐라는 말을 하더라. 그는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고통스럽더라. 그 말이 일종의 트라우마
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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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옆에서 찍어줘.” 3월27일 언론시사 이후, 거의 매일 술과 문자 메시지의 나날을 보냈다는 강우석 감독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입 주위에 두드러기가 났다며 애써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강우석이 돌아왔다’, ‘강우석의 힘을 느꼈다’는 문자가 가득 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멈출 줄 몰랐다.
-원작 웹툰 <전설의 주먹>을 어떻게 바꾸고자 했나.
=케이블TV의 ‘전설대전’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설정을 두고 장민석 작가와 얘기를 나누길, 전면적으로 바꾸고자 했다. 원작은 전반적으로 표현이나 전개가 좋은데 너무 무겁고, 그들이 너무 ‘루저’처럼 묘사된다. 관객이 즐길 만한 대중영화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덕규가 일하는 곳도 소박한 동네 국숫집으로 하고, 과거 돈 많던 내 짝꿍이 이제는 중년의 재벌이 되어 있다는 설정도 현실감있게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어디서나 접할 법한 평범한 가장들의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
-153분이
강우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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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의 영화는 현실의 시공간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종종 일차원적이다, 단순과격하다는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영화 자체로 그렇다기보다 그의 언어나 문법이 그야말로 ‘직접적’이기 때문에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시작부터 거추장한 수사를 달지 않는다. 그저 관망하는 것 같은 매끄러운 설정숏 하나 없이 경찰서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나이트클럽을 휘젓는 식이다. 그렇게 강우석의 영화는 ‘사건’과 ‘세태’를 다룰 때 투박하지만 절묘한 기승전결을 이룬다.
<전설의 주먹>은 그가 <이끼>(2010)와 <글러브>(2011) 등 그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음에도(예정대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전신인 <나는 조선의 왕이다>를 연출했다면 그 1년의 공백도 없었을) 그가 마치 굉장히 오랜만에 귀환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강우석이 돌아왔다!’는 문구가 굉장히 자연스레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뭘까. 말하자면
승부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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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이 돌아왔다. 더 나이 먹고 철든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실미도> 같은 링 위에 올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싸운다. <전설의 주먹>이 반가운 것은 그가 최근작 <이끼>와 <글러브>를 지나 다시 치열한 현실의 무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격투기나 액션 그 이상의 인간적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강우석 감독과 함께, 영화에 거의 ‘제2감독’ 수준으로 참여한 서울액션스쿨(공동제공으로 참여했다)의 정두홍 무술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전설의 주먹들의 학창 시절을 연기한 어린 배우들인 박정민, 구원, 박두식, 이정혁을 만났다(그들이 성장한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 스토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 프로레슬링 선수 겸 UFC 격투기 해설자이기도 한 김남훈 칼럼니스트의 글도 싣는다. 궁금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년의 전설의 주먹은 과연 진짜 전설의 주먹이었을까?
다시 한판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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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한 참가자들이 사연도 목적도 모두 다르지만 단 한 번,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벌이는 가슴 벅찬 도전을 그려낸 작품 '전국노래자랑'은 오는 5월 1일 개봉.
[이경규] "김인권 캐스팅 위해 최민식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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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일단 음악부터 기대된다. 거의 개인 컬렉션에서 선택되는 음악들은 그가 추천하는 일종의 ‘믹스 테이프’이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 사고뭉치, 오타쿠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특히 속 시원하고 아름다운 피범벅을 선보이는데(물론 나는 <재키 브라운>을 최고로 좋아하지만), 기존 타란티노 영화의 플롯이 반복되는데도 강렬하게 남는다. 역시, 음악 덕분이다.
저택 총격전에 등장하는 제임스 브라운의 <The Payback>과 투팍의 <Untouchable>을 짜맞춘 <Un chained>를 비롯해 <일 포스티노>의 음악으로 유명한 루이스 바칼로브의 원 주제곡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여러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의 사운드트랙들, ‘21세기의 로버트 존슨’이란 평을 받기도 한 브러더 디지의 <Too Old To Die Young> 같은 곡들 속에서 짐 크로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다시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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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출신 배우, 음주단속 적발”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불길한 기운이 뉴런을 타고 대뇌의 전두엽을 강타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tvN <푸른 거탑>의 최종훈 병장(a.k.a ‘말년’) 역을 맡고 있는 연기자 최종훈이 집 근처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보낸 뒤 500m가량을 운전해 주차를 하려다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최 병장이 영창에 가는 설정으로 잠시 하차하게 된다는 제작진의 발표에 오장육부로부터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휘몰아쳤다. 말년에 군기교육대도 아니고 영창이라니, 추억록 만들다 14박15일 영창 갔던 것도 모자라 또 영창이라니! 이런 제엔장! 이 나이에 군인 걱정을 하고 있다니 이게 바로 ‘곰신’의 마음… 아, 아닌가.
어쨌든 KBS <유머1번지> ‘동작 그만’ 이후 최고의 군대 코미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푸른 거탑>은 요즘 가장 눈에 띄는 만듦새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3소대라는, 작지만
[최지은의 TVIEW] 웃고 있어도 웃고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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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있는 서양미술사 책에 사용할 도판을 찾다가 우연히 이브 클랭(1928~62)의 사진 <허공으로 도약>(1960)에 눈길이 간다. 사진 속의 클랭은 고개를 위로 젖히고, 두팔을 크게 벌린 채 허공을 날고 있다. 그 아래의 한적한 길에는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그 길의 끝으로 설치된 펜스 너머로 지나가는 기차가 보인다. 만약 저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담은 사진이라면, 아마 클랭은 바닥에 떨어져 크게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을 정지시키는 사진의 능력에 힘입어, 그의 비행은 허공 속에서 영원성을 얻는다.
하늘에 사인을 하다
19살 때 클랭은 두 친구와 함께 남프랑스의 어느 해변에 누워 세상을 나눠 갖는다. 이때 한 친구는 대지를, 다른 친구는 언어를, 그리고 클랭은 하늘을 취했다. 클랭은 제 것이 된 하늘에 곧바로 사인을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로써 그는 이제까지 존재한 것 중에 가장 큰 작품을 제작한 셈이다. 만초니 정도가 거기에 필적할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허공으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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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고 있다. 이젠 정말 봄이 오려나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봄, 야심차게 ‘최신가요인가요’의 칼럼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다. 1년 전 칼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언급했던 노래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었는데, 이 노래를 그때 소개하지 말고 지금 소개했어야 했다. 최신가요인가요의 마지막 칼럼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노래가 또 어디 있겠나. 공교롭게도 따뜻한 봄을 맞아 <벚꽃 엔딩>이 다시 음원차트 순위에 진입했다는, 나로서도 참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1년, 참 빠르다. 마흔다섯번 최신가요를 소개했다. 적지 않은 수의 노래다. 겨우 1년 동안 연재한 칼럼을 비장하게 끝내려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마흔다섯곡의 목록을 보는 순간 1년이라는 세월이 느껴졌다. ‘노래’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간과 패키지로 기억되는구나, 싶었다. 칼럼을 시작하면서 ‘이 모든 최신가요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차곡차곡 귀에 쌓이고 그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다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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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긋지긋하게 미성숙한 열정의 시간이 이제 다 지나갔구나. 휴, 다행이다.” 최근 <연애의 온도>를 보고 나오며 나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말이다. 내 경우 삐걱대고 함몰하는 연애 때문에 20대는 물론 30대 중반까지도 정말 한참을 허우적거렸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 내가 했던 가장 못난 짓들이 떠올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김민희가 연기한 장영과 이민기가 연기한 이동희처럼 나도 미련과 상실감 때문에 고함지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스토커처럼 상대방의 휴대폰과 이메일을 열어 뒤를 캐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엉엉 울며 별의별 야만과 주접을 다 떨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겠다고 한밤중에 전화통을 붙들고 말씨름할 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치사하고 비겁해질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연애와 이별에 대한 온갖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영화 <클로저>
[SO WHAT] 사랑과 이별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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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바디스>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 출신으로 첫 장편 <디어 한나>(2011)로 연출력을 과시한 패디 콘시다인이 차기작 시나리오 <The Years of the Locust>의 탈고를 트위터로 알렸다. “이제 제작비 2천만달러만 있으면 된다”는 글귀에, 성취감과 근심이 뒤섞인 심호흡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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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장애를 만나 비로소 로맨스라는 ‘서사’가 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사랑의 걸림돌은 종족이다. 더구나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사랑을 가로막는 방해물인 동시에, 에드워드가 지닌 힘과 아름다움의 근원이기도 하다. 뭇사람이 보기에는 박해받아 마땅한 괴물이지만 내 눈에는 완벽한 왕자님이라. 소녀들에게 이보다 아련하고 치명적인 사랑은 없다. 뱀파이어 남친의 자리에 좀비를 데려다놓은 <웜바디스>는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다. 순백의 낯빛에 유난히 붉은 입술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너무 후져서 예술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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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가 고독한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 4월11일 개봉하는 조셉 코신스키의 신작 <오블리비언>에서 그는 황폐한 지구에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드론 조종사 잭 하퍼를 연기한다. 그가 수많은 전작에서 선보였던 ‘곤경에 처한 남자’들과 <오블리비언>의 잭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막 돌아온 톰 크루즈의 이야기를 전한다.
올해 여름이면 톰 크루즈도 51살이 된다(그의 생일은 7월3일이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던 이 꽃미남 스타 배우의 미간에도 어느새 가느다란 주름이 겹겹이 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화끈한 액션장면을 장착한 블록버스터영화의 주인공이다. 동갑내기 배우 브래드 피트가 레드카펫을 자주 밟을 수 있는 예술영화로 눈을 돌리고, 역시 비슷한 나이의 톱스타 조니 뎁이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만화적인 캐릭터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으며 중년의 위기를 돌파할 때, 톰 크루즈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진 얼굴로 20년 전에도 맡았을
[톰 크루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스턴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