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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십년 전의 일이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우리의 기억에서 까마득히 잊혀진다. 여성국극이 바로 그런 예이다. 1950년대 황금기를 누렸던 여성국극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 여성국극 배우들과 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자가 맡아서 공연하는 창극으로, 동서양의 고전에서 창작극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고 있었다. 여성국극 전성기에는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들은 현재 팬덤 문화에 뒤지지 않을 만큼 열성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남장 배우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우렁찬 목소리, 당당한 걸음걸이, 숙련된 액션 연기에 반한 여성들이 극장 앞에 진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
여성국극 배우들은 자유롭고 신명나는 삶을 추구했던 인물들이다. 학교, 집, 결혼 등 평범한 선택을 뿌리치고 무대를 택한 이들은 공연을 통해 한판 신나게 노는 것이 좋고 여성
여성국극의 명맥 <왕자가 된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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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여행 중인 딸 헤일리(알리슨 필)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부랴부랴 딸을 찾아 로마에 온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우디 앨런)는 우연찮게 딸의 약혼자 미켈란젤로의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실력에 반해 그에게 오페라 오디션을 제안하지만, 장의사로 평생을 살아온 그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한편 미국의 유명한 건축학자 존(알렉 볼드윈)도 로마로 여행을 왔다가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 온 잭(제시 아이젠버그)을 만나게 된다. 잭은 여자친구의 친구인 (이름까지 섹시한) 모니카(엘렌 페이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존은 그런 잭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건네지만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감상에 젖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로마에 여행 온 미국인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 로마로 신혼여행을 온 밀리는 남편 안토니오의 친척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용실을 찾아 로마 시내로 나갔다가 길을 잃는다. 한편, 호텔에서 밀리를 기다리던 안토니오는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의
이루지 못한 꿈 <로마 위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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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오하이오, 건설현장 매니저인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35살의 성실한 가장이다. 그는 며칠째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 폭풍우가 몰려오고 엔진오일 같은 갈색 비가 내리는가 하면 애완견이 갑자기 팔을 물어뜯고, 좀비 같은 사람들이 자신과 어린 딸 한나(토바 스튜어트)를 해치려 들기도 한다. 급기야 환영과 환청까지 시작되면서, 평온했던 커티스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진다. 이 모든 징후는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곧 인류를 쓸어버릴 거대한 폭풍우가 오리라는 것이다. 커티스는 무리하게 대출까지 받으면서 방공호를 만들고, 아내 사만다(제시카 채스테인)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당혹감을 느낀다.
커티스의 불안은 멸망의 전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찾아왔던 정신분열증이 이제 자신에게 시작된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 두 가지 불안, 즉 닥쳐올 재난과 광기라는 불안은 서로 모순된 것이기도 하다. 그에게 정신질환이 발병한 것이라면 불길한 전조들은 과대망상에 불과할
멸망의 전조 <테이크 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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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승리했지만 핵을 사용한 대가로 지구는 죽음의 별이 되었다. 살아남은 인류는 타이탄으로 이주를 결정하고, 2077년 폐허가 된 지구상에 살아 있는 사람은 마지막 정찰병 잭 하퍼(톰 크루즈)와 그의 파트너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전부다. 두 사람의 임무는 지구에 남아 있는 외계인 잔당들로부터 발전탑을 지키고 있는 전투로봇 드론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것. 2주 뒤면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기로 되어 있는 잭 하퍼의 눈앞에 어느 날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추락한다. 잭은 그곳에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여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를 만나고, 이후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디스토피아적인 설정, 기억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의 뼈대, 사실적이면서도 세련된 미래의 각종 아이템과 배경 같은 세부적인 부분까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몇개의 대표적인 패턴을 중심으로 서로 영향을 받으며 세계관을 확장, 변형해나가는 SF 장르의
지구 멸망과 인류 구원 <오블리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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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족>
제작 (주)인벤트 스톤 / 감독 송해성 / 원작 천명관 / 출연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진지희 / 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5월9일
“밥 먹자.” 엄마의 저 평범한 한마디가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각방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식구들도 식탁에 모이면 다투기 십상이거늘 출가한 지 한참 지난 자식들이 다시 한지붕 아래 모인 ‘고령화가족’은 어련할까. 일흔에도 자식들 뒤치다꺼리 중인 노모(윤여정)의 치마폭으로, 데뷔부터 쓴맛만 본 불혹의 영화감독 인모(박해일)와 두번의 이혼과 세번의 결혼식을 앞둔 막내 미연(공효진)이 도로 기어든다. 주먹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맏형 한모(윤제문)도 빈대 붙은 지 오래다. 마지막으로 개념 섭취를 덜한 미연의 중학생 딸 민경(진지희)도 있다. 이들이 모여 앉은 ‘5인용 식탁’ 위에서 모두의 적나라한 진실이 펼쳐진다. 천명관의 동명 소설 원작을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버무려낸 막장 코미디다.
[Coming Soon] ‘5인용 식탁’ 위에서 <고령화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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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영화를 열 수 있는 열쇳말 중 하나는 ‘부조리’(absurdity)일 것이다. 신선한 개념은 아니다. 1940년대의 철학자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프레임-개념으로 이를 세공했고, 이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1950년대의 몇몇 연극인들이 당혹스러운 공연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마틴 에슬린의 기념비적 저서 <부조리극>(The Theatre of the Absurd, 1961)이 경과를 정리하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조리한’(absurd)이라는 형용사는 특정한 서사 혹은 비(非)서사의 일면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기 시작했다. 박찬욱의 영화들은 이 오래된 개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보여준다는 말과 세계를 부조리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말은 거의 같은 말이다. 그는 남과 북,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가해자와 피해자, 정상과 광기, 성과 속 등을 앞에 놓고, 거기서 부조리를 발견하거나 창조해냈다. 박찬욱의 영화를 이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호르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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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몰두하려 들지 않는다. 발터 베냐민의 언급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른손이 아니라 결정적 펀치를 날릴 왼손, 케케묵은 공론을 날려버릴 즉흥적인 강력한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인 장난감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필요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적 장난감, 캐주얼을 입은 영화의 세대교체, 남녀노소 누구나 영화감독이 되는 꿈의 영화제를 표방한 ‘제3회 olleh국제스마트폰영화제’가 열린다. 올해 무려 730편의 출품작이 모여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거대한 유행을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본선 진출작을 감상할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www.ollehfilmfestival.com). 일반상영은 4월18, 19일 양일간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되며, 개막식(4월17일)과 폐막식(4월20일)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은 전부 무료로 볼 수 있다.
개막작은 봉만대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도화지>다. 달리도와 마
[영화제] 손바닥에서 시작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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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르는 어리석은 남자다. 제아무리 출세가 좋다 한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니키아를 버리고 라자왕의 딸 감자티에게 가다니. 니키아의 아름다운 춤을 보고 브라만은 신까지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가. 못난 남자! 발레 <라 바야데르>를 보는 내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선택한 솔로르를 원망했다. ‘인도의 무희’라는 제목대로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비극이다. 본 공연을 하루 앞둔 4월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 바야데르>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블록버스터 발레’라는 소문대로 이 작품은 120여명의 무용수와 200여벌의 의상이 투입되어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프레스콜이 끝난 뒤 니키아 역을 맡은,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수석무용수 김리회씨를 만났다(<라 바야데르>는 4월1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3막 군무에 잠깐 무용수로 출연한 것 말고 계속 객석에서 프레스콜을 지켜봤다.
=객석에서 동료들을
[trans x cross] 동양적인 움직임과 감정을 맛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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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 게인> Pain & Gain
감독 마이클 베이 / 출연 마크 월버그, 드웨인 존슨
<트랜스포머>에 매달리느라 한동안 쇳덩이만 주물렀던 마이클 베이 감독이 속이 꽉 찬 근육맨들과 함께 돌아온다. 가난이 지긋지긋한 보디빌더 다니엘 루고(마크 월버그)는 갓 출소한 강력범 폴 도일(드웨인 존슨)과 헬스장에 다니는 부자 사업가를 납치해서 돈을 왕창 뜯어낼 계획을 세운다. 실제 헬스광으로 소문난 두 배우의 ‘근육 연기’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WHAT'S UP] <페인 & 게인> Pain &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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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감독, 대니 보일의 신작 <트랜스>가 부활절 휴일을 앞둔 지난 3월29일 영국에서 개봉했다. <트랜스>에 대한 영국 평단의 기대는 영국 영화계를 오랜만에 뜨겁게 달궜다. <트랜스>개봉에 맞춰 <BBC>는 ‘대니 보일 특집’을 따로 편성해 그의 영화인생을 조망하며 <트랜스>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겼으며, 쿠존 시네마, 뷰 등 런던을 대표하는 주요 영화관들은 영화가 개봉하기 하루 이틀 전에 ‘대니 보일과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갖는 특별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2001년 만들어진 동명의 TV영화가 원작인 <트랜스>는 젊고 유능한 미술품 경매사인 사이먼(제임스 맥어보이)이 미술품 전문 절도단 프랭크(뱅상 카셀)의 강탈 계획에 우연히 가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사이먼은 프랭크를 도와 고야의 그림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벌어진 어떤 일 때문에 기억을 잃고 그림을 숨겨둔 장소마저
[런던] 무의식과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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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지.아이.조2> 한반도에 전쟁이?
[정훈이 만화] <지.아이.조2> 한반도에 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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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런닝맨>(2012) 제작부장, <청담보살>(2009) 제작부장
<가벼운 잠>(2008) 제작부장, <조용한 세상>(2006) 제작부
<구세주>(2006) 제작부
“요리는 재료 준비가 절반입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서의 흥미로운 장면 하나. 도전자들이 미션을 받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심사위원의 이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장내는 순식간에 정리된다.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밑 재료 준비를 깔끔하게 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 영화 현장도 마찬가지다. 장소 섭외부터 현장 통제, 하다못해 스탭들의 식당 예약까지, 현장 준비를 도맡아 진행하는 제작부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영화가 진행될 순 없다. “한마디로 촬영 현장의 밑그림을 정리해주는 거죠. 현장의 살림꾼이랄까요.” <런닝맨>의 이병욱 제작부장은 제작부 일을 그렇
[STAFF 37.5] 욕먹고 으쌰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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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재라는 배우를 아십니까?
2003년 <생산적 활동>(오점균)을 시작으로 <여름, 위를 걷다>(김이다), <동백꽃-떠다니는 섬>(소준문) 등 수십편의 독립 장/단편영화와 상업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독립영화 감독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배우 이응재가 지난 3월15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항상 따스한 미소와 온화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착하게 살았던 그이기에,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수십명의 영화계 친구들이 뇌사상태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던 그를 응원하기 위해 중환자실 앞을 1주일 동안 밤낮으로 지켰지만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향년 38살로 떠났지만 그가 남긴 따스하고 착한 기운은 그와 함께했던 모든 영화 스탭들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고스란히 남을 겁니다.
이응재는 지난해부터 ‘S.O.L. Film’이라는 배우 모임을 만들고, 배우 스스로 연기와 연출을 직접 해보는 의미있는
[추모] 당신을 잊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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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시리즈 X DAY>
감독 하시모토 하지메 / 출연 가와하라 가즈히사, 다나카 게이
2002년 첫 방영 이후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온 일본의 인기 형사드라마 <파트너> 시리즈의 스핀오프 극장판. 경시청 수사1과의 베테랑 이타미 겐이치와 젊은 사이버범죄 수사관 이와쓰키 아키라 콤비가 새로운 주인공이다.
[해외 박스오피스] 일본 2013.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