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훈 감독, 천성일 작가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은 올여름 한국영화들의 ‘역대급’ 대결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코미디로 승부를 걸었다. <해적>은 위화도 회군을 둘러싼 조선 개국 초기의 혼란스런 분위기를 배경으로, 나라의 국새가 한동안 없었던 역사적 사실로 파헤쳐 들어간 코믹 팩션 사극이다. 앞서 도망친 노비를 쫓는 조선시대 노비 사냥꾼의 이야기를 그린 TV드라마 <추노>(2010)로 이름을 알린 천성일 작가였기에, 그가 조선 개국 초기로 눈길을 돌린 것은 꽤 흥미롭다. 더구나 <7급 공무원>(2009) 등 코미디에 관한 한 타율 높은 창작력을 과시한 그였기에 ‘사극’과 ‘코미디’라는 그 특유의 솜씨 좋은 장르의 만남은 <해적>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그가 말하길, 가진 것 없는 ‘싸구려 작가’로 시작하여 주목할 만한 흥행 작가의 자리에 오른 뒤 이제 영화사 하리마오 픽쳐스의 대표를 거쳐 한국전쟁을
[천성일] 영화와의 끈질긴 인연을 믿는다
-
겉뜻 최상급의 칭찬
속뜻 일급칭찬
주석 드라마 <밀회>는 ‘천상천하 유아인독존’이나 ‘물광’ 같은 유행어를 낳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유행어는 ‘특급칭찬’일 것이다. 개인 오디션을 보러 온 선재(유아인)와 나란히 앉아서 피아노 연주를 마친 혜원(김희애), 선재에게 다가가 볼을 꼬집으며 말한다. “이거, 특급칭찬이야.” 이 말 때문에 수많은 애인들, 후배들, 제자들 볼이 수난을 당했지. 볼 꼬집기는 본래 체벌에 속하는데 어째서 최상급 칭찬으로 변했을까?
많은 이들이 평했듯이 둘의 연주 장면은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에로틱하다. 연주에 몰두한 선재와 달리 혜원의 눈은 자주 악보와 건반을 벗어나 선재를 향한다. 선재의 연주 실력에 놀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눈빛은 아련하다. 너는 연주에 몰두해 있구나. 나는 네게 몰두해 있어. 그래서 너를 잡을 수가 없구나. 지금의 너는 선율과 하나이고 너는 음악이니까. 연주가 끝난 뒤에야 그녀는 그를 꼬집는다. 꼬집는 건 비틀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특급칭찬
-
줄리 크리스티는 1960년대 소위 ‘영국의 점령’(British Invasion) 시대의 아이콘이다. 팝 음악, 패션, 문학, 생활 스타일 등 영국의 문화가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로 퍼져나갈 때의 이야기다. 비틀스로 대표되는 로큰롤, 트위기 같은 모델이 입고 나온 모던한 의상, 그리고 존 오스본 같은 작가가 주도하던 ‘성난 젊은 세대’(Angry Young Men)의 문학이 전후의 세대 교체를 선언하며 청년들의 환대를 받을 때다. 정치적 위상은 약화됐지만 영국은 문화 영역에선 여전히 ‘제국주의’의 지위를 향유했다. 줄리 크리스티는 이때 등장한 ‘영국 뉴웨이브’(British New Wave) 영화의 신데렐라였다. 그녀의 등장에선 청춘의 상징인 자유와 독립, 그리고 ‘속도의 삶’이 느껴졌다.
<닥터 지바고>의 스타에 대한 저평가
줄리 크리스티는 존 슐레진저 감독에 의해 발굴됐다. 그는 토니 리처드슨, 카렐 라이스 등과 더불어 영국 뉴웨이브를 이끈 주인공이다. 이 감독들이
[한창호의 오! 마돈나] 영국 뉴웨이브의 신데렐라에서 ‘배우’로
-
<킬 더 메신저> Kill the Messenger
감독 마이클 쿠에스타 / 출연 제이미 레너,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마이클 신, 로버트 패트릭
기자인 게리 웹(제이미 레너)은 미국 내 코카인 밀반입에 CIA와 니카라과 반군 세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이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그는 정부와 보수 언론으로부터 맹비난을 받고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저널리스트 게리 웹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0월10일 북미 개봉.
[WHAT'S UP] <킬 더 메신저> Kill the Messenger
-
-
[정훈이 만화] <명량> 명량해전 현장으로!
[정훈이 만화] <명량> 명량해전 현장으로!
-
알랭 드 보통의 최근 저작의 연장선에서 <뉴스의 시대>를 읽으면, 그가 세상에 대한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고자 그에 필요한 세부를 다루는 연구를 하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 <불안>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행복의 건축>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있다. 뉴스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는 과거 자신이 책 한권을 들여 설명한 삶의 단면을 다시 쪼개 흩어놓았다. 하여튼 이번에는 뉴스다. 뉴스에 대해서라면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모두 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인용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아스포델, 저 초록꽃>이라는 시는, 시를 일상적으로 접하지 못하는 우리가 처한 곤경을 알려준다. “시에서 뉴스를 얻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날마다 비참하게 죽는다/ 시가 발견한 것을/ 깨닫지 못하여.” <뉴스의 시대>는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어지러운 세상을 똑바로 보려면
-
천명관이 7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소설집. ‘고귀하게’ 태어났지만 처연하게 객사해 중음을 떠도는 ‘죽은 자’의 이야기(<사자(死者)의 서(書)>)로 시작해 죽음의 고비를 넘긴 할아버지의 자애로운 미소(<우이동의 봄>)로 ‘인생의 준엄한 깨달음’을 전하기까지, 천명관의 소설은 고통받고 방황하는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을 오가며 전한다.
[도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일본의 고대부터 근대적 백과사전이 등장한 1900년대 초까지를 통사적으로 살펴보는 사전의 역사. 컴퓨터 데이터베이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지의 축적과 편집, 전승을 가장 체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법이었던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특이한 뒷이야기가 있는 사전편찬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풀어낸 책이다. 저물어가는 한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느낄 수 있다.
[도서] 일본 사전의 역사
-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줄을 길게 서 기다리지 않고도 많은 명화를 만날 수 있다. ‘손안의 미술관’ 세 번째 책인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은 휴대하기 편한 크기와 무게로 내셔널 갤러리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런던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
[도서] 런던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에게
-
“오늘날 세계 영화에서 ‘작가주의’(auteurism)처럼 혼란스럽고 문제적인 용어도 없는 듯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스페인 영화: 작가주의 전통과 국가 정체성의 재현>은 스페인 영화사에서 손꼽을 만한 12명의 작가를 선정, 작가주의 영화들이 스페인의 예술문화 전통과 만나는 지점을 고찰하는 책이다. ‘작가주의 전통과 국가 정체성의 재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책의 근간을 이루는 두개의 기둥은 작가주의와 내셔널시네마다. 그런데 저자는 대뜸 작가주의에 대한 효용론부터 지적하고 들어간다. 오늘날 작가는 상업성과 반대되는 경향으로 인식되던 고전적인 개념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영화마다 자신의 인장을 선명히 드러내며 소신껏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작가라 부를 수 있겠지만 최근엔 그 미학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일종의 마케팅 용어로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적용의 범주가 모호한 탓에 작가주의에 대한 무용론마저 제기되는 이 시점에 스페인의 작가주의 영화를 들고 나
[도서] 작가는 죽었는가?
-
<유아 넥스트>는 미국 공포 영화계의 재능 넘치는 신인으로 주목받는 애덤 윈가드의 작품이다. 한 가족의 파티장이 동물가면을 쓴 괴한들의 침입으로 피의 현장이 된다. 그러자 연약해 보이기만 하던 여주인공은 괴한들을 상대하는 여전사로 돌변한다. 공포와 유머를 능숙하게 섞어낼 줄 아는 이 신인 감독의 출현을 두고 미국의 평단은 존 카펜터, 웨스 크레이븐, 샘 레이미 등 걸출한 선배 감독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환호한 바 있는데, 애덤 윈가드 역시 많은 선배 감독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자기 영화의 계보를 자랑스러워했다.
-<유아 넥스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영화인가.
=전작 <어 호러블 웨이 투 다이>의 편집 작업을 할 때였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을 보게 됐다. 그 순간 소름 끼치면서도 재미있는 그 영화의 설정과 미스터리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가 떠올랐다. 그즈음 프랑스 공포영화 <인사이드>
[flash on] <할로윈>의 오마주로 동물 가면을!
-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봐요?” 김수환 추기경은 질문했다. <그 사람 추기경>은 그 질문에 헌정하는 전성우 PD의 답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걱정,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느끼는 사람 추기경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전성우 PD는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 평화방송 TV프로듀서로 입사해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003), <바티칸을 가다1, 2>(2006), <길을 찾아 길을 나서다>(2008),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그 3일의 기록, 다시 보는 콘클라베>(2013) 외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큐멘터리에 채 담지 못한 말들을 조금 보탰다.
-추기경의 영상을 지속적으로 촬영해온 걸로 알고 있다. 끝내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다.
=추기경님의 이미지가 내가 가까이에서 본 모습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한 추기경님은 나와 하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추
[flash on]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손가락은 손가락대로
-
몇년 전에 어떤 철학자가 책을 내면서 편집자 이름을 표지에 올렸다. 오옷, 드디어 음지의 편집자들에게도 양지의 빛이 드는 것인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선생님, 대박 나세요! … 했을 리가. 우리는 그냥 시큰둥했다. 그 사람은 “편집자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인문사회 출판 시장의 부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지만, 그보다는 그냥 월급을 높이는 것이 출판(시장은 아니고)의 부흥에 도움이 된다. 나도 원고료 두배로 주면 두배로 열심히 쓴다고, 널 놓치고 싶지 않아.
근데 진짜로 진짜는 그게 아니었다. 그때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은이의 심부름 또는 출판사 대표의 지시를 이행하는 데 그치는 다른 편집자와 달리 000씨는 편집자 정신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했다. 편집자 한명을 높이느라 만명을 낮췄군. 우리는 비웃었다. 출판사 대표가 지시하는 대로 책을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겠다. 얘, 삼월아, 철학 에세이 표지에 꽃 그림 한번 실어드려라, 옆엔 과일도 놓고.
하지만
[김정원의 피카추] 책을 사랑한 죄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모험의 성패는 뒷전이고, 얼렁뚱땅 은하계의 수호자가 된 5인조와 어울려 실없이 죽이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영화다. 결전에 나서는 주인공들의 출정 장면은, 히어로다운 명분과 영화가 가진 재미의 실체를 조율하는 제임스 건 감독의 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웅출두’의 전형적 구도대로 멤버들이 하나씩 프레임에 보무도 당당히 입장하는 가운데, 가모라(조 살다나)는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로켓(브래들리 쿠퍼)은 사타구니에서 바지를 잡아 뺀다. 슬로모션으로.
7/18
존 어빙의 소설 <가아프가 본 세상>에 나오는 간호사 제니는 병동에서 근무하는 동안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사실 두살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겠는가? (중략)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요구가 많아지지만 늙은이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동경가족>을 보다가 제니의 견해를 불쑥 떠올렸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원작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