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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변호인> 우리의 시간
[헌즈 다이어리] <변호인> 우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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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1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미 개봉(한국은 2014년 1월1일)을 앞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레드카펫 시사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디어 인터뷰가 진행됐다. 슈퍼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로서는 높은 제작비(약 9천만달러)와 프로모션의 규모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거는 이십세기 폭스 스튜디오의 기대치를 가늠케 했다. 그러나 이날 시드니 엔터테인먼트 센터에 모인 무수한 관계자들의 긴장을 전부 더한다 해도 영화의 감독과 주연을 겸한 벤 스틸러의 어깨에 얹힌 중압감의 무게엔 1%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에서 기상천외한 헤어젤을 발명한 이후, 전세계 관객의 뇌리에 벤 스틸러는 미국 코미디의 얼굴로 등록됐다. <미트 페어런츠>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성공은 이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벤 스틸러를 출연작 총수입으로 보면 톰 크루
몽상과 집착의 멋진 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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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태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 최근 <잉투기>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등의 영화가 만들어져 화제가 된 것이 그 원인일 것이나 나로서는 한두번 받아본 ‘호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담론의 측면에서 봐도 <속물과 잉여>와 <잉여사회>가 최근에 책으로 묶여 나왔으니 ‘잉여’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춘 말이며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필자들에게 분석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일 거다.
그러나 이 ‘유행’은 제법 오래되었다. <속물과 잉여>에 수록된 글들은 여러 필자들이 몇년에 걸쳐 여기저기서 발표한 것들이 묶인 것이고 최태섭씨의 단행본인 <잉여사회>의 논의 또한 그 정도 시간 동안 숙성된 것이다. 당장에 내가 청탁받은 글에서 ‘잉여’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적어도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당시에는 FANA라는 가수의 <잉여인간>이란 노
자조와 냉소 사이, 잃어버린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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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노모는 아직도 날 ‘백수’라고 부른다. 마땅한 직업 없이 한량처럼 사는 게 걱정스러운지 이따금 “요즘은 뭐하고 사냐?”라고 넌지시 떠보시곤 한다. 칠십 노모의 눈에 영화감독이란 뭐하고 사는지 늘 궁금한 인생 낭비의 딴따라인가 보다.
하긴 나도 내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로 달력과 시계를 멀리하고 산다. 어쩌다 출근길 지하철을 탈 때마다 그 물씬한 낯섦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그 흔한 노동사회의 ‘평균인간’의 전형에서 한참이나 탈피된 삶을 살아가니까 말이다. 남들 잘 때 일어나 앉아 하릴없이 우주와 지구를 걱정하고, 남들 일할 때 허리가 아플 때까지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세월을 쏠고 있는 처지니까.
적지 않은 영화판 인간들이 나처럼 방바닥에 찰싹 눌어붙은 채 만유인력의 법칙을 스스로 증명하며 살아간다는 게 한줌 위안이랄까. 이번에 함께 작업한 촬영감독의 중학생 조카는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꿈은 삼촌처럼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딴짓으로 빚는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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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이(Pai)의 한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치앙마이에 있다가 빠이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세 시간이나 달려왔는데 막상 빠이에 오니 대체 뭘 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빠이에서 보통 뭘 보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별로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이곳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오는 곳인 것 같다고 대답하자 그의 표정은 더 복잡해졌지만 사실이 그랬다. 빠이는 특별히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랄까.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목적은 그냥 ‘잉여’ 그 자체였다. 거리에서는 ‘빠이는 시큰둥한 곳’이란 문장이 적힌 티셔츠를 팔고 있었다. ‘빠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도 자주 보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개처럼 늘어져 있다가 기타를 치거나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부치곤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는 곳이라니, 마침내 허탈해진 그는 오후에 떠
저울의자 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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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오후의 벤치는 한산하다. 바람이 제법 매섭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햇빛이 비쳐 눈이 부시다. 하얀빛이 물결 위에서 반짝이며 춤을 춘다. 시인 L씨라면, 텅 빈 벤치 하나를 즐거이 차지한 채 이 즉흥적인 춤을 분명 두어 시간은 넋놓고 바라봤을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려 빛의 춤이 일시적으로 멎어도 감상은 여전히 지속된다. 이번엔 구름과 해의 숨바꼭질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풍경의 명암을 시시각각 바꾸는 이 숨바꼭질은 하늘과 땅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큰 스케일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드넓은 풍경 전체의 분위기가 끊임없이 바뀐다. 인상파 화가라면 이 변화무쌍한 빛의 유희에 황홀해하며 그 과정을 붓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시인 L씨에게는 이 위대한 놀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그저 바삐 제 갈 길만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멍청해 보인다.
직장의 룰, 잉여생활의 적
열정적인 잉여생활을 위해 드러머 K씨는 최근에 학교 강의를 중단했다. 직장은 단연코 정규 잉여생활 최대의 적이다. 직장의
밤이 되면 그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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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질구레한 생활상을 주 소재로 삼아 웃음을 양산하는 생활툰 작가에게 ‘잉여’란 꽤 친숙한 어휘로 느껴지겠지만, 막상 잉여됨을 주 소재로 삼는 작가들의 실생활은 의외로 빠듯하다. 간단해 보이는 그림체를 사용하지만 아이디어를 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때가 많으며, 형편없는 아이디어로 분량을 채우다 보면 댓글란에 올라올 각양각색의 비난성 댓글에 시달리는 망상에 빠진다. 이렇게 빠듯하고 규칙적이고 건전한 마감생활을 지키다 보면, 어김없이 게으르고 나태하며 한없이 남아돌던 시간들을 동경하게 된다. 아마도 잉여의 의미는 직업과 직군, 개인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나의 경우 잉여질이란 그간 즐겨왔던 무수한 콘텐츠들, 그리고 ‘덕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를테면 옛날 영화 보기. 최근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데뷔작, <두들버그>와 <미행>을 봤다. 어쩌면 놀란은 초기에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비전과 스타일을 확립해놨는지도 모른다. 앨프리드 히치콕
쓸데없어 쓸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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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를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를 꼽자면 주저없이 ‘잉여’를 고르겠다. 주변부에서 쑥덕거리던 잡담에 불과했던 잉여들의 이야기는 먼지처럼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어느새 온 방 안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단순히 캐릭터의 소재로 차용하던 것을 지나 이제는 제목 전면에 ‘잉여’를 내세우며 호기롭게 잉여로움을 외치는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청춘들은 나이가 들어도 변변한 벌이도 없이 엄마 집에 빌붙어 살면서(<고령화 가족>), 때로는 현피(현실에서 직접 싸움을 벌이는 것)에 몰두했다가(<잉투기>), 어느 순간 인터넷 성인만화 사이트를 그리겠다고 호들갑을 떨더니(<네버다이 버터플라이>), 갑자기 돈 한푼 없이 유럽 여행을 간다고 나서기도 한다(<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주위의 걱정어린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정작 본인들은 천하태평, 유유자
우린 안 될 거야, 아니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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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잉여로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이제야 전면에 나온 것이 외려 더 신기할 정도다. 올해 한국영화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잉여’는 실상 익숙하고 보편적인 문화코드다. 처음에는 낙오자쯤으로 인식되던 잉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더니 이제는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혹자는 잉여들의 시각에서 색다른 창조력을 발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웃음의 도구로 활용한다. 좋든 싫든 당신도 언제든 잉여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는 잉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오늘도 그들의 잉여로움을 보며 웃고 즐기고 있지만 여전히 잉여의 정체가 궁금한 당신, 지금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로 당신을 위해, 여기 2013년 잉여인간 생태보고서를 마련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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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좋은 친구들>(촬영 준비 중)
<변호인>(2013)
<설국열차>(2013)
<도둑들>(2012)
<쌍화점>(200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타짜>(2006)
<말죽거리 잔혹사>(2004)
<킬리만자로>(2000)
눈썰미 좋은 관객은 금세 알아볼 것이다. 2:8로 쩍 갈라진 가르마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그 순간을, 그 의미를 말이다. 혹시라도 놓쳤다면, <변호인>의 송우석이 속물근성의 세무변호사에서 양심을 지닌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대목에서의 송강호 얼굴을 되새겨보라.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그건 배우 송강호가 가진 연기력과 파워가 이뤄낸 거다. 내가 한 건 별로 없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송우석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 김서영씨는 자신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녀의 손사래와 달리 <변호인&g
[STAFF 37.5] 내가 먼저 배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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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장률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다섯 번째 극장편인 <두만강>과 <풍경> 사이, 그에게는 변화가 있었다. 평론가 정성일과의 지난 인터뷰(<씨네21> 933호 “안개 속의 풍경”)에서 그가 말했듯,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거주지를 서울로 옮긴 것이다. 그의 지난 영화들을 돌아볼 때, 장률에게 장소의 이동, 변화는 거의 모든 것의 변화다. 그것은 삶의 조건과 태도뿐만 아니라, 영화의 형식과 리듬의 필연적인 변화를 예견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산다는 것. 사건의 공간이 아닌 일상의 공간. 그 차이가 <풍경>에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풍경>은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다큐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장률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첫 영화가 될 터였다.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종종 예상치 못한 당혹감과 마주해야 했다.
[신 전영객잔] 장률의 마음이 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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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가족을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감옥 아닐까.” 그렇게 방은진 감독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을 본다. 평범한 주부 정연(전도연)이 대서양 감옥에서 악몽 같은 2년을 보내고, 한국의 남편 종배(고수) 또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하나뿐인 딸과 함께 빚을 갚고 생계를 해결하며 역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다. <오로라공주>(2005)로 데뷔해 <용의자X>(2012)를 거쳐 세 번째 장편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그는 ‘배우 출신’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만큼 굵직한 감독의 행보를 보여왔다. 방은진 감독이 이미 존재하는 실화로부터 더 캐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느덧 감독으로서 10년의 시간을 지나온 그녀를 만났다.
-<집으로 가는 길>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혹시 한국을 떠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나.
=아니다. 어떤 순간에도 ‘이야기’가 먼저였다
[방은진] 진짜 바다를 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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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만화가열전 『삼십 살』앙꼬 만화의 '웃픈 우리 삼십 살' 이벤트에 참가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른 살'에 대한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 중 3분을 선정하여 앙꼬 만화가가 직접 만화로 그려 주셨습니다.
'웃픈 우리 삼십 살'의 첫 번째 사연을 공개합니다.
<삼십 살>앙꼬 만화의 '웃픈 우리 삼십 살' 이벤트 사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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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치는 당신>은 희한한 책이다. 흑백 동물도감 같기도 하고, 동물에 관한 시집이나 에세이집 같기도 하며, 내 멋대로 동물사전 같기도 하다. 심지어는 때때로 자못 의미심장하게 인간 세상을 기록한 도록으로 분신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런 책이 참을 수 없이 신박하여 책을 쓴 권혁웅 시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얼마 전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는 시집도 낸 참이다. 순댓국집과 부대찌개집과 감자탕집과 김밥천국집을 어슬렁거리며 시 한 사발에 웃음과 눈물을 같이 말아내는 그의 솜씨는 또 얼마나 정겨운지. “첫 시집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쓴 서정시들로 채우고 나니 뭔 시가 다 울기만 하나, 웃는 시도 있어야지, 하는 깨달음이 오더라”고 말하는 그는 그렇게 동물과 인간 세계를 모두 한 풍경으로 끌어안는다. 그와 함께 두 세계 사이에 놓인 돌다리를 두들겨보았다.
-책이 참 예쁩니다. 동물 책에 애착을 갖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원래 교회돌이 캐릭터
[trans x cross] 태초에 입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