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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계인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는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은 애잔하면서도 덤덤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다. 이 작품은 2013년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대상과 관객상, 아니마문디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작품상,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관객상과 유니세프상을 비롯해 세계 80여 영화제에 초청, 23개의 상을 휩쓸며 잔잔하지만 강력한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의 출발은 자전적 그래픽 노블 <피부색깔=꿀색> 3부작(한국에는 2013년 통권으로 발간되었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벨기에에서 자라난 한국계 입양아 ‘융’의 성장애니메이션, 영화에 직접 출연한 감독의 현재를 반영한 실사 영상, 여기에 뉴스릴 화면과 홈비디오 영상, 스틸사진까지 혼재된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다. 1965년 한국에서 태어난 감독 융 헤넨은 1971년 벨기에로 입양되어 성장했다. 브뤼셀의 생-뤽 아틀리에, 보자르 아카데미를 거쳐 라 캉브르 예술학교에서 그림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그
벨기에의 ‘융’이 한국의 ‘정식’에게 보내는 담담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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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늘었다.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늘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잠시잠깐 바둑을 두다보니괜스레 바둑 실력만 늘었다. <송환2>라는 큰 숙제와 한창 씨름 중인 김동원 감독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과 반복되는 고민들. 하지만 한시도 마음 놓고 쉬진 못한다. 그럴 수 없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는 굳건한 마음. 그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송환> 개봉 10주년 축하드린다.
=지난해였는데? (웃음) 정식 개봉은 2004년에 했지만 첫 발표는 2003년에 했다. 지난해에 서울독립영화제나 서울아트시네마 등 몇 군데서 조촐하게 기념하는 행사도 가졌고 재상영도 했었다.
-다시 본 사람, 처음 본 사람 등등 다양했을 텐데 분위기는 어땠나.
=특별한 기대는 없었는데 자원봉사했던 대학 1, 2학년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해주니 이게 지금도 먹히는 이야기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다. 조창손 선생을 보고 울기도 하고 김선명 선생이 유독
그래도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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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김태일 감독
수신인 아직 만나지 못한 오월에게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선택한 것이 ‘민중의 세계사’였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기록에서 누락되기 일쑤인,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도서관 구석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이 제 생각을 더욱 굳게 해주었지요. 고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 <한티재 하늘>. 19세기 말부터 20세기를 살았던 이 땅의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책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가 권력의 역사이고, 힘의 역사였음을 뼈저리게 일러준 책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월, 당신의 얼굴이 그때 떠올랐습니다. 80년 5월, 광주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물자는 끊겼고, 통신은 두절됐으며, 언론 또한 당신의 말을 외면했습니다. 아니, 왜곡했습니다. 광주는 세상으로부터
광주의 이름 없는 당신에게 막걸리 한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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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황윤 감독
수신인 박그림 환경운동가
설악녹색연합 대표. 설악산 산양 연구가. 설악산 환경지킴이. 1992년 설악산 언저리에 집을 지은 이후 모노레일 설치 반대, 설악산 세계자연유산 등록 추진, 대청봉 케이블카 설치 반대 등 꾸준히 환경보호 운동을 해왔다.
박그림 선생님께.
2001년 1월, 선생님과 함께 설악산에서 보냈던 그 겨울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물원 철창에 갇힌 호랑이들의 삶에 관한 영화 <작별>을 만들던 당시, 저는 ‘동물원 밖 세상’ 그러니까, ‘야생’이 너무나도 궁금했고,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습니다. 야생에 관해서라면 일자무식이었기에, 야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어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입만 열면 너구리 발자국이랑 개 발자국은 어떻게 다른지를 토론하는 ‘야생동물소모임’이었지요.
그 모임에서 설악산으로 6박7일간 장기탐사를 갔을 때 선생님이 이끌어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대피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야생으로의 안내자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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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경순 감독
수신인 한경은 사진작가
계원예술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에 재학 중인 신진 사진작가. 2008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2012년 브레다국제사진페스티벌, 2013년 <로드쇼: 대한민국-백령도> 등 다양한 그룹전을 통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경은아.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다. 그 게으른 나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조차 없었다면 아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둥거리는 삶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르지. 더구나 다큐멘터리영화란 얼마나 많은 품이 필요한지 일단 제작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근데 왜 또 찍고 또 찍고 그러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그것은 바로 미지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너는 <쇼킹 패밀리>를 준비하면서 만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참 특별한 인연이었어. 출연자로 만나 <쇼킹 패밀리>와 <레드마리아> 두편의 영화
약한 척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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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주현숙 감독
수신인 이주노동자 비두씨께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 2002년 4월28일부터 77일간 ‘집회결사자유 쟁취, 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 투쟁에 참여했다. 2004년 ‘전국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연행되어 강제추방당했다
비두씨,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의 의미를 바로 그 순간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리 준비해도 세상 사는 일은 매 순간 새로운 일이라서 예상을 빗나가게 마련이라 저처럼 순발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한참 뒤에야 어떤 순간의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하고 어떤 순간은 기억에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죠. 그래도, 아니 그래서 비두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몇 순간이 있어요.
처음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마석 가구공단에 드나들던 때였어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항상 너그럽고 부드럽던 비두씨가 저를 빤히 쳐다보면서 “현숙씨는 그것만 보여요?”라고 했을
존재해도 됩니다, 말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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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권효 감독
수신인 제주도 강정마을 강동균 전 마을회장님께
2011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독립영화 감독들이 제주도 강정마을로 내려갔을 때 강동균 회장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을 잔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한바탕 어울리던 그날 회장님은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걸쭉하게 트로트 한 자락을 뽑으셨습니다. 왁자지껄하고 구수하고 멋들어진 잔치. 강정마을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저는 강정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으려 했기에 회장님과는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군기지와 관련된 곳이면 어디서나 회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강정마을은 기지건설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갈등이 극에 달해 주민들간의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마을의 회장으로서, 당신 역시 한명의 주민으로서 무척이나 힘든 시기였을 텐데 항상 웃으며 저희들과 활동가들을 대해주셨습니다. 강정에는 많은 평화 활동가들과 예술인들
구럼비 바위의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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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태준식 감독
수신인 유기수 민주노총 사무총장
1989년 벽산사무노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97년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 2007년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을 지냈다. 2006년 하중근 열사투쟁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2013년 7월 민주노총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유기수 실장님. 몇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1999년 1월. 너무나도 추워 고통스러웠던 아침. 계동 현대사옥 앞. 온 천지가 얼음과 눈밭이었던 시멘트 바닥 위에 갑자기 벌러덩 누워 절규하기 시작하셨지요. 그 절규는 결국 현대 본사 앞마당을 장악하는 힘이 되었고 그나마 노제는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싸움이 끝나고 해단식을 하던 날, 늙은 노동자들이 감사패랍시고 작은 상장과 선물을 준비해 실장님께 건넨 뒤, 결국 아기같이 우셨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저도 울었습니다. 젊은 시절 신념의 깊이가 유난히 얕았던 제가 천지개벽할 사회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았던 건 순전히 현대중기 노동자들과 실장님 덕이었습니다. 몇해가 지나
어찌 매번 다시 맞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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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문정현 감독
수신인 ‘평화바람’의 문정현 신부, 오두희 다큐멘터리 감독
문정현 신부님, 뜬금없는 제 편지에 다소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신부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것도 같습니다. 2002년 즈음 김동원 감독 특별전 뒤풀이에서 처음으로 신부님을 뵀었지요. “문정현입니다” 하는 제 인사에 같은 이름 때문인지 깜짝 놀라셨지요. 이후로도 인사를 드릴 때마다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신부님이 저에게 처음으로 해주셨던 말씀이 “예술하지 마!”였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들은 빨리 기록되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게 신부님의 생각이셨습니다.
신부님을 주인공으로 2010년에 제가 제작한 <용산>이라는 영화에서도 이 정권과 권력의 부조리함을 현장의 언어로 웅변해주셨고, 함께하는 삶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로부터, 군산/용산 미군기지들로, 매향리, 새만금, 부안에서 대추리로, 다시 용산 남일당으
깡패신부(?)와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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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왠지 사람 냄새가 나는 달입니다. 이끌어주신 선생님, 길러주신 부모님,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자식들,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한가득 차올라 어떻게든 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화창한 5월의 햇볕은 그렇게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꼭 가까이 있는 사람만 생각나는 건 아닙니다. 일상에 지쳐 잊고 지냈지만 늘 가슴 한켠 품고 지낸 사람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격려가 되는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럴 때면 5월의 따스한 햇볕에 취한 척 평소엔 건네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서로 위로할 일도 많고 기운도 내고 싶은 요즘,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가슴에 품은 ‘그 사람’은 누군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7인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쑥스러움을 이겨낼 약간의 용기를 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김동원 감독에게도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여기, 그들이 차마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씨네21>이 대신 전달해드립니다.
오월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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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표적> 저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헌즈 다이어리] <표적> 저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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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역린>
2013 <조선미녀삼총사>
2012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1 <혈투>
2010 <방자전>
2009 <작은 연못>
2008 <신기전>
2006 <음란서생> <길>
2005 <형사 Duelist> <혈의 누>
2004 <아홉살 인생>
2002 <YMCA야구단>
1999 <정>
정경희 의상감독의 별명은 ‘한복 아줌마’다. “사극을 많이 했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 (웃음)” <혈의 누>와 <형사 Duelist>, <음란서생>과 <신기전>, <방자전>과 <역린>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별명이다. 배우들에게 그녀의 의상을 입혀본 스탭들은 독특한 색감과 질감이 정경희표 사극 의상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당장 4월30일에
[STAFF 37.5] 퓨전이라고?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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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은 프랑스영화 <포인트 블랭크>(2010)를 각색 및 리메이크한 액션영화다. 감독은 ‘창감독’이 맡았다. 본명은 윤홍승, 하지만 그는 창감독이라 불리기를 원한다. “감독이 되면 나만의 고유명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어떤 이름을 지을까 옥편을 뒤적이다가 ‘창’자가 눈에 들어오더라. 만들 창, 미쳐 날뛸 창 등등 그 몇 가지 뜻들이 내가 하는 일의 정신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짓게 됐다. 나에게는 소중한 이름이다. 책임감도 생기고.” <표적>은 <고死: 피의 중간고사>(2008) 이후 창감독이 만든 두 번째 영화다. 칸 비경쟁부문 미드나이트 프로그램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창감독은 “<표적>이 나의 데뷔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에 값하는 첫 번째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뜻인 셈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뮤직비디오쪽 일을 했다고 들었다.
=원래는 영화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 <싸이렌
[창감독] “인간적인, 더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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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시골 청년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충남 아산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정이리이리 작가(본명은 이정일)는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KTX를 타고 서울에 왔다. 그는 미디어다음에 조선시대 궁궐의 일곱 세자와 주변인물을 그린 <세자전>을 연재중이다. 데뷔작은 자신의 집주변 식물, 동물 등을 소재로 한 <잡초이야기>였다. 데뷔 이후 애인이 없는 솔로들의 애환을 담은 만화 <오! 솔로>로 인기를 얻었다. 조금은 느릿한 그의 말투가 정겨웠다.
-웹진에서 한 인터뷰를 봤다. 그때는 기자들이 시골로 내려가서 인터뷰를 했더라.
=맞다. 그런데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었다. 학사장교(ROTC)로 제대했는데 중대원이었던 친구가 문화 관련쪽 일을 한다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더라.
-정이리이리 작가에 대해 정말 잘 알려면 시골에 가야 맞는 것 같다.
=만약 아산에 내려왔으면 목가적인 분위기로, 웹툰 작가라는 느
[trans x cross] 재미와 감자를 캐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