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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스트 앤 본>의 결말 부분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후각 자극보다 시각 자극에 10배 이상 예민하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는 물어볼 수 있지만, 냄새의 정체를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저게 뭐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어볼 수 있지만 “이 미묘한 냄새의 정체가 뭐야?”라고 묻기 힘들다. “무슨 냄새 말하는 거야? 말로 설명해봐”라고 되묻기라도 하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하나. ‘여기 이 냄새 말이야, 사하라사막의 흙냄새를 닮은 듯하고, 아마존 밀림의 나무 아래에서 나는 풀 냄새 같기도 한, 바로 이 냄새 말이야’ 같은 헛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어쩐지 사기꾼의 말투 같다). 시각을 언어화하는 건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후각을 언어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미세한 형용사가 필요하다. 언어화한다고 해도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인간은 시각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속이기도 쉽다. 프랑스 보르도대학교에서 와인 양조학과 학생에게 시각과 후
[김중혁의 바디무비] 예술은 진통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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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일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있다. 인생에서 단 한번도 승리를 맛 본 적이 없는 서른여섯살의 패배자. 멜론 같은 머리통, 축축한 빵 같은 거대한 살덩어리, 괴상한 선반처럼 툭 튀어나온 흉측하고 거대한 턱이 이 남자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어린 나이부터 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틈만 나면 손으로 턱을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태도도 야망도 능력도, 사실상 모든 것이 실패. 아버지로부터 ‘볼품없는 녀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눅들어 있던 그는 자동판매기용 사탕 배달원, 편의점 철야 판매원을 거쳐 삼류 신문사 기자가 된다.
쿼일의 실패에 사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어찌된 일인지 페틀 베어라는 ‘가냘프고 촉촉하고 뜨거운 여자’를 만나 바로 결혼에 골인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한달뿐, 페틀은 끊임없이 다른 남자들을 만난다. 대놓고 외도를 일삼던 그녀는 결국 쿼일과의 사이에 낳은 두딸을 7천달러에 팔아먹고 다른 남자와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죽는다. 이제 우리의 주인공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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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산업이 불황에 휩싸이면서 ‘톱100’의 힘은 더 막강해졌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 하나>는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를 다루며, 클래식 걸작 34곡을 소개하고 추천음반 100여장을 꼽는다. 클래식을 오래 가까이해온 사람에게는 리스트나 글 내용이나 새로울 건 없을지 모르지만, 입문자들에게는 더없이 사려 깊은 선물이 될 만하다. 음악에 대해 쓴 편지, 혹은 음악에 바치는 러브레터.
[도서] 음악에 바치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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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의 책으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와 궤를 같이한다. 자본주의가 사실은 종교라는 통찰을, 성경의 형식을 빌려 풍자했다. 시대에 앞선 통찰에 감탄하게 될 뿐 아니라, 자본의 종교적 속성이 강화되고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현대사회의 필독서가 아닐까. 옮긴이 서문에서부터 번뜩이는 풍자에 주목하시라.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아나키즘의 강렬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도서] 아나키즘의 강렬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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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필수교양이 된 시대. 이런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영화 지식을 갖추는 게 필요한 법. 영화를 따라 국경을 넘고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다니듯 쓰인 책답게 재미있게 읽힌다. 영화의 과거사에 대해서 꼼꼼하게 알려줄 때는 섬세함이, 21세기 영화판 트렌드를 짚어줄 때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장르나 시대를 불문한, 영화에 대한 궁극적인 ‘아는 척 매뉴얼’. 주성철 기자가 쓴 홍콩영화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번 책을 통해 더 넓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 영화에 대한 ‘아는 척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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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을 쓴 우치다 다쓰루와 사회비평가 오카다 도시오의 대담집. 두 사람이 대안이 될 만한 ‘공동체’를 구상하고 실현에 옮긴 사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은 책이지만(직원들이 돈을 ‘내고’ 다니는 회사를 설립한다는 발상이 등장한다), 20대는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른가를 분석하는 초반부가 특히 읽을 만하다. 오카다는 현대 일본인을 정어리에 비유한다. “정어리는 작은 물고기라서 보통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헤엄치죠. 어디에도 중심이 없지만 잘 살아가요. 지금 일본인이 이렇지 않은가요? 정어리처럼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든 잘 굴러가는 덕분에 질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발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흩어져버립니다. 그런 시대에 주류 미디어가 조금씩 존재감을 잃어갑니다. 정어리 무리를 컨트롤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구심점을 만들어 컨트롤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다. 그 누구도 막다른 골목에 놓이지 않도록, 교육은 학생을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하고, 가족이나 성공에 대한 신
[도서] 약자들의 생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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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으로 단숨에 전세계 평단을 사로잡은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신작 <에너미>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가 원작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듯, 영화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의 잠재의식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똑같이 생긴, 그러나 어딘가 많이 다른 역사학 교수 아담과 배우 앤서니가 도플갱어로 만나는 미스터리 심리극이다. “내 작품 중 가장 사적인 영화”라고 감독 스스로가 말할 정도로 <에너미>는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그의 궁금증이 만들어낸 ‘에너미’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원작 소설의 어떤 점에 강하게 이끌렸나.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의 나약함과 문명의 취약성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가는 작가다. 나는 그의 환상적인 유머 감각과 뛰어난 지성에 감탄한다.
[flash on] “신경증에 걸린 첩보영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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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메신저>(이하 <고메>)는 그간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됐다. 내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열정과 이를 열렬히 응원해준 팬덤의 힘으로 완성된 이 독특한 프로젝트는 국내 시장에서는 드물게 OVA(Original Video Animation) 용으로 먼저 제작되어 팬들과 직접 만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척박한 환경에 비춰볼 때 실로 과감한 시도였고 비록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2010년 1화가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고메’ 팬들을 양산했던 <고메>가 무려 4년 만에 2화를 들고 다시 팬들에게 돌아왔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에서 나아가 이제 일반 관객에게도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극장판으로 찾아온 <고메>. 이 색다르고 고집스런 프로젝트 뒤에는 스튜디오 애니멀이라는 뚝심 있는 제작사가 있다. 총 6화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언제
[flash on] 대책 없는 ‘으리’보다 이유 있는 ‘신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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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필림보관소”란 이름으로 시작한 한국영상자료원이 창립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그리고 매년 이맘때쯤 항상 관객을 설레게 했던 고전과 복원을 테마로 한 정기 기획전이 어느 때보다 특별한 상영작들과 함께 찾아온다. 총 8개 섹션, 50편이 넘는 영화들로 알차게 꾸린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섹션은 ‘극장전(劇場傳), 어둠 속에 빛이 비출 때’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섹션에서는 ‘극장’과 ‘영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을 상영한다. 극장을 배경으로 한 총 17편의 영화에 대한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들 중에서도 비교적 낯선 작품들에 먼저 관심이 간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의 주목할 만한 감독 리산드로 알론소의 <판타스마>(2006)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극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몇명의 사람들이 작은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이고 대사보다는 일상적인 소음이 더 도드라지는 이 60분짜리 영화는 극장이란 공간
[영화제] 극장에서 극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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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16회를 맞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역사와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고 차이와 감성의 영역을 개척하는 총 30개국 99편의 초청작이 상영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신촌 메가박스에서 5월29일부터 6월5일까지 진행된다.
개막작 <그녀들을 위하여>(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 내전에서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고발한 <그르바비차>(2006)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던 야즈밀라 즈바니치의 성찰적 로드무비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학살이 자행되던 곳은 이제 이국적인 풍경을 전시하는 관광지가 되어 외국인들을 불러들인다. 호주의 연극배우 킴은 동유럽의 유적과 풍광을 관조하며 주민들의 선량한 환대 속에서 보스니아를 여행하지만 이상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이 관광객의 시선으로 경유하던 곳이 보스니아 내전 당시 강간이 자행됐던 호텔과 학살이 자행됐던 유적지였음을 이후 알게 되고 깊은
[영화제]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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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그따위 사람들이 다 있어요? 2년 동안 일했는데 한푼도 안 줬다고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발끈했다. 그녀는 시선을 내렸다. 그러지 마요. 잘못한 거 없어요. 이제 막 서른이 된 그 작가는 아마 눈물을 참고 있었을 것이다. 얘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옛날에 휙 지나가버린 가벼운 일이라며 담담했었다. 그 작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한푼도 못 받은 건 아니고요….
그 작가는 3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2년 동안 300만원을 번 사연은, 사실 흔하디흔한 드라마였다. 작가는 공모전 본선에 몇번 오른 경력을 인정받아 지인에게 프로듀서를 소개받았다. 그 프로듀서는 나중에 잘되면 계약을 해주겠다며 자기의 아이템을 써달라 부탁했다. 드디어 장편 상업영화로 첫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에 작가는 그와 손을 잡았다. 1년 동안 초고를 쓰고 몇번의 각색을 거친 끝에 어렵게 한 제작사에 함께 몸담게 되었다. 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 회사는 ‘진행비는 주겠으나 계약은
[천성일의 은밀한 트리트먼트] 책임이라는 이면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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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인 질(케이틀린 폴리)과 아담(이안 덩컨)은 연인 사이다. 아담은 질의 작품을 알릴 목적으로 그녀의 일상을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계획이다. 질의 전시회 장소를 찾던 둘은 폐쇄된 한 병원에 몰래 들어간다. 그 병원은 미혼모들의 낙태를 전문적으로 시술하던 병원이었고 질은 그 공간에 매혹된다. 둘은 공간을 둘러보다가 수술 침대에서 관계를 맺게 되고 질은 갑자기 많은 양의 코피를 흘린다. 두려움을 느낀 둘은 병원 밖으로 나오고 친구인 엘리(다이애나 가르시아)와 바비(크리스 코이)가 둘을 도우러 온다. 하지만 바비와 엘리는 호기심이 발동하고 넷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아담이 촬영한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객은 아담이 보는 것만 볼 수 있다. 다른 인물들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렇듯 관객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고 제한된 정보는 관객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주관적인 시
성적 욕망에 집착하는 인간 욕망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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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여인을 살해한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외동딸을 둔 재벌 임태(손홍뢰)는 인기 절정의 연예인과 연애하며 화제를 일으킨다. 그런데 이들에게 아무도 예상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외동딸이 아빠의 애인을 살해한 것이다.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의 재판을 위해 최고의 검사인 동도(곽부성)와 최고의 변호사 주리(위난)가 모이고 재판이 벌어진다. 그리고 의외의 진범이 밝혀지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영화는 갑자기 시간을 뒤로 돌려 같은 사건을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재구성하고, 그때마다 진범의 정체는 매번 다르게 드러난다.
중국의 신예감독 비행이 연출한 법정 스릴러 <침묵의 목격자>는 한편의 영화에서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영화 자체는 우리가 법정 스릴러에 기대하는 것들을 평범한 화법으로 보여준다. 그다지 새로운 모습은 찾기 힘들며 몇몇 장면에서는 뚜렷한 단점이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치밀하지 않은 트릭으로 반전을 만드는 것이나 과도하게 음악
손홍뢰의 탄탄한 연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침묵의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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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케일리(카렌 길런)와 팀(브렌튼 스웨이츠) 남매는 충격적인 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그 일로 팀은 소년원에 수감됐다. 세월이 흘러 동생이 출감하기를 기다린 누나는, 과거 그 사건이 부모가 새집에 이사오며 들여놓았던 거울로 인한 것이라 믿는다. 케일리는 그 거울의 역대 주인들을 추적하고, 4세기에 걸쳐 무려 45명이 죽었을 정도로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들의 부모 또한 거울의 조종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남매는 거울 앞에 캠코더를 고정시켜놓고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녹화해 그 정체를 밝혀내려 한다.
“너 정말 기억 못하는구나?”라는 누나의 확신에 찬 지적은 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관객의 호기심이기도 하다. 영화는 줄곧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11년 전 거울을 들여놓은 다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늙어빠진 년’이라고 욕을 해서 어머니가 따져 물으면 아버지는 전혀 그런 말을
음산하게 옥죄어오는 미스터리영화 <오큘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