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가을, 아내와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멈추고 식당으로 향하다가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영화 PD와 마주쳤다. 그동안 잘 지냈냐, 어디 가는 길이냐, 같은 대화가 오갔다. PD와 헤어져 차로 돌아오니 아내가 물었다.
“누구야?”
“응, 영화 PD. 새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는데 고사 지내러 부산 간대. 촬영도 거기서 시작할 건가봐.”
“주연이 누구래?”
“유오성이고 조연은 장동건이래. 저기 버스 보이지? 저거 타고 가나봐.”
“근데 유오성이 누구야?”
“나도 잘 몰라.”
“감독은?”
“들었는데 까먹었어. 처음 듣는 이름이야. 곽 뭐라던데.”
당시로서는 도저히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패키지였다. 유일한 스타는 장동건인데 그때까지 흥행시킨 영화가 없었다.
“제목은?”
“제목도 좀 무성의해. ‘친구’래. 제목이 ‘친구’가 뭐냐? 관심 가질 필요 없어. 망할 것 같아.”
그러나 영화는 내 예상을 보기
[영하의 날씨] 뭐할라꼬 부산에 사는교?
-
좋은 단편영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단편만이 시도할 수 있는 창의력일 수도 있고 파격적인 실험정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편영화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 말하자면 파급력을 그 첫 번째 조건으로 꼽고 싶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결국엔 관객을 통해 완성되며 그것이 단편영화라면 관객과의 소통은 더욱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시작된 애니임팩트(Animpact Animation Festival)는 국내 단편영화제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객점유율을 자랑하는 옹골찬 영화제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 애니임팩트는 이제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놓쳐선 안 될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영화제란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진 좋은 작품들과 관객이 만나는 장이다. 하지만 많은 영화제들이 신작과 신인 발굴에 힘을 쏟고 있는 사이에 정작 검증된 좋은 작품은 대중과 만날 기회를 찾지 못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놓여 있다. 애니임팩트는 이 지점에서 단순하게 접근했다. 안시(프랑스),
[현지보고] 상하이에 애니 꽃이 피었습니다
-
<라붐> 감독 클로드 피노토 / 출연 소피 마르소, 클로드 브라소, 브리짓 포시, 데니즈 그레이
<써니> 감독 강형철 / 출연 유호정, 심은경, 강소라, 고수희, 김민영, 홍진희, 박진주, 이연경, 남보라, 김보미, 민효린
“14살인데 왜 안 되죠?” <라붐>의 빅은 파티에 못 가게 하는 부모를 향해 거세게 항변한다. 막 이성에 눈뜨고, 부모의 도움 없이도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나이. 14살의 소녀에게 14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야말로 삶의 완성을 이루는 나이다. 빅의 입장에서 보자면 파티 참석도, 밤 늦은 데이트도 모두 부모가 이해해줘야 할 이유 있는 요구지만, 부모의 입장에선 부질없고 하릴없는 ‘반항’일 뿐이다. <라붐>에서 빅이 겪는 부모와의 갈등은 소녀의 성장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다. 엄밀히 말해 빅이 짝사랑하는 소년 ‘매튜’는 빅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무릎을 치게
[digital cable VOD]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
베니스영화제의 경쟁부문 작품이 칸영화제의 그것에 비해 주목을 덜 받은 지는 이미 제법 됐다. 칸이 유럽 작가감독들의 작품들을 선호했다면, 베니스는 상대적으로 동방, 곧 동구와 아시아 지역 작가들의 작품들을 주목했는데, 지금은 이런 구분도 무의미한 것 같다. 작가들에게 단연 인기 있는 영화제는 칸이 됐다.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키아로스타미 등 베니스를 통해 이름을 알린 작가들도 이젠 칸과 더 친밀한 행보를 보인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베니스의 경쟁작 리스트들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였다. 숫자에 본질적인 의미야 있겠냐만, 그래도 영화제 개최 ‘70주년’을 맞이했다면 뭔가 다른 기대를 하기 마련인데, 올해의 경쟁부문 초대작들도 예년 수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올해 최고의 인기작은 비경쟁부문에 초대된 개막작 <그래비티>였다. 그런 반면 시네필들의 시선을 끈 것은 ‘베니스 클래식’으로 분류된 섹션, 곧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복원
[영화제] 영광의 길, 파졸리니에서 로시까지
-
-
욕구불만 상태의 뇌신경 연구원 루카스(마리우스 잠폴스키스)는 뇌를 연결해 타인의 기억정보를 빼내는 실험을 시작한다. 코마에 빠진 여인 오로라(훌가 주탈리트)의 무의식과 접속한 루카스는 이성의 진공 상태 속에서 오로라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눈 뒤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급기야 루카스는 오로라를 깨우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에 이른다.
자극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그 조합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균형 있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화면은 서늘하나 감정과 사운드는 폭발적이다. 특히 종종 신을 꽉 채우는 전자기타 사운드는 보는 이를 흥분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무의식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은 채도가 낮은 비디오 아트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텅 빈 회색의 공간들, 기하학적인 구조물들, 뇌의 한 부분을 은유하는 듯한 그래픽들이 그러하다. 일례로 루카스와 오로라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음식들은 그저 그림이거나 가짜처럼 보인다. 전시장 같은 그 공간에서 둘은 잔뜩 굶주렸다는 듯 음식을 먹지만 어쩐지 허기를
이성의 진공 상태 <사라진 기억>
-
<그 강아지 그 고양이>는 국내 최초의 아이폰 장편영화다. 자신이 키우던 반려 고양이 ‘나비’를 주인공으로, 단편 <도둑고양이들>을 아이폰으로 촬영해 지난 2011년 ‘제1회 Olleh스마트폰영화제’에서 1등상인 플래티넘스마트상을 받은 민병우 감독은 실제로 나비를 키우던 중 유기견 ‘재롱이’를 키우는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 사연을 영화화했다. 애니메이터 우주(신명근)는 우연히 공원에서 버려진 고양이 ‘보은’을 데려다 키우게 된다(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에서 따온 이름이다). 한편, 이제 막 실연의 고통을 겪은 웹툰 작가 보은(손민지)은 음식을 잘못 먹어 쓰러진 개 ‘우주’를 데려다 키우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와 개를 각자 기르게 됐고, 그들은 우연히 각각 상대방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된 것. 그런 두 사람이 우연히 동물병원에서 마주친 날, 세상에 그런 인연이 없다며 우주가 먼저 적극적인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그가
애완동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 <그 강아지 그 고양이>
-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멀쩡한 계단을 놔두고 위험천만한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미사 시간에 신부님 말씀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성당 천장을 몇번 만에 오를 수 있을지에만 몰두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바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전설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다.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은 메스너의 눈부신 성취 대신 이면의 아픔, 그중에서도 히말라야에서 친동생을 잃은 실화에 집중한다.
1970년 독일, 일명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루팔 암벽 등반과 낭가 파르밧 정복을 위해 원정대가 꾸려진다. 벌써 일곱 번째 정상 정복에 도전하는 대장 칼 박사(칼 마르코비치)는 어떻게든 꿈을 이루고 싶어 초조하다. 1등 정복자라는 타이틀을 선점하려는 대원들간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이들 사이에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등반에서 만족을 찾는 라인홀트(플로리안 슈테터)와 동생 건터(안드레아스 토비아스)가 합류한다
전설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
-
당신이 살고 있는 땅밑에 천연가스가 묻혀 있고 이 땅을 파게 해주는 대신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그 결과 땅이 심각하게 오염된다면 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거대 에너지 기업의 직원인 스티브(맷 데이먼)의 주요 업무는 천연가스가 매장된 마을을 찾아다니며 땅을 팔라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탁월한 실적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는 스티브는 새로운 마을로 향한다. 하지만 그 앞에 환경단체 소속의 더스틴(존 크래신스키)이 등장해 개발로 황폐해진 자신의 농장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시작한다. 예상 못한 ‘장애물’ 앞에 곤란을 겪던 스티브는 결국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구스 반 산트가 제작과 연출을 맡고 맷 데이먼과 존 크래신스키가 각본을 맡아 더욱 주목을 끈 <프라미스드 랜드>는 환경 파괴에 대한 아주 익숙한 문제를 다룬다. 즉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그로 인한 환경 파괴는 나쁜 것이
자원 개발과 환경 보호 <프라미스드 랜드>
-
전쟁 중 민간인을 학살한 죄로 법정에 선 소가 카즈야 대령은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으로 도시의 교통을 전부 마비시킨다. 거의 2천만대에 가까운 차량의 통제권을 손에 넣은 그는 도시의 안전을 인질로 삼은 채 단 한 가지를 요구한다. 바로 국가 기밀을 보관하고 있는 ‘판도라’를 열게 해달라는 것.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구사나기 소령이 나서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을 막아선 바트와 충돌을 일으킨다. 여기에 수수께끼의 특수작전부대 소속인 비비까지 등장해 소령을 혼란에 빠트리고, 이제 구사나기는 적과 아군도 구분 못하는 상황에서 도시를 구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기세 가즈치카 감독과 함께 공각기동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시리즈는 전편에서 구사나기의 캐릭터를 다시 디자인하고 구사나기와 바트를 적으로 설정하는 등 과감한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번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보더 : 2 고스트 위스퍼스>는 이미 만들어놓은 것 이상
공각기동대의 익숙한 세계관 <공각기동대 어라이즈 보더: 2 고스트 위스퍼스>
-
<캠퍼스 S 커플>은 성인사이트 ‘소라넷’에서 200만 넘는 히트 수를 기록한 인터넷 소설 <슬프도록 아름다운>(필명 끄적)을 영화화했다. 복학생 찬승(최필립)은 선배와 함께 나이트클럽으로 향한다. 클럽 룸에서 부킹을 하던 찬승 일행은 웨이터에게 끌려온 아영(문보령)과 마주치고, 거만한 선배를 재수 없게 생각한 아영은 찬승과 원 나이트 스탠드를 갖는다. 이후 찬승은 방과 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자신의 이상형인 청순한 민조(박란)를 만난다. 그리고 우산을 빌려주며 자연스레 친해진 무용과 학생 민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한편,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배 유진(서효명)은 찬승을 짝사랑한다. 그렇게 찬승은 세명의 여인과 동시에 아슬아슬한 데이트를 이어간다.
이야기 구조는 영락없이 <아메리칸 파이>(1999)와 <색즉시공>(2002)의 재탕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안 하고 춤만 추는 것으로 유명한 섹시녀 아영은, 모
세 여자와의 아슬아슬 데이트 <캠퍼스 S 커플>
-
영화 <풍경>은 장률 감독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이 꾼, 실상은 보이지 않을 꿈의 정경을 소재로 했다. 먼 나라의 아내가 찾아와 함께 그 아름답다는 제주도라는 곳에 가본다. 불법노동자를 추방하려는 법무부라는 추상이 등장하는 악몽도 있다.
카메라는 외국인 노동자가 말하는 꿈의 이미지를 그들의 일상 가까이서 집요하게 찾아내 오래 응시한다. 오로지 홀로 겪는 체험일 꿈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감각은 감독의 방식으로 프레임화된다. 공항과 공장, 시장과 논밭, 지하철 역과 골목길 등 남루한 삶의 공간에 설핏 꿈에 보았던 이미지들이 중첩된다. 베어링과 돼지내장, 염색원단과 상추밭, 쌓인 목재와 코끼리 등 꿈의 이미지로 우리를 이끄는 일상적 인유의 컷들은 너무도 세속적이어서 오히려 신비한 계시 같다. 그들은 꿈을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한국에서 그들이 경험한 체험의 진실성을 느끼게 된다. 그럴수록 기계적이고 메마른 공간들에 깊이가 패고 정서가 스민다.
보이지 않는 꿈의 정경 <풍경>
-
2004년 10월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 평범한 대한민국 주부 송정연(전도연)은 마약소지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다. 정연은 후배의 부탁으로 프랑스 원석을 밀반입하는 중이었다. 돈이 급한 정연은 불법인 줄 알고도 가방을 운반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행 가방에 든 것이 마약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마약범은 외부와 연락을 할 수도 없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뒤늦게 체포된 사실을 듣게 된다. 정연의 남편 종배(고수)는 아내를 돕고 싶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절망한다. 종배는 외교부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호소해보지만 행정당국은 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답만 들려준다. 결국 정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대서양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로 이송된다. 강압적인 교도관들과 거친 재소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정연의 하루하루는 악몽이다. 무엇보다 정연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
그들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 <집으로 가는 길>
-
<플랜맨>
제작 영화사 일취월장 / 감독 성시흡 / 출연 정재영, 한지민 / 제공,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 2014년 1월9일
“전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알람을 맞춥니다. 그게 이상한가요? 성실한 거지.” 계획대로만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한정석(정재영).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100일 동안 고백을 계획해왔던 정석은 그의 주도면밀한 모습이 싫다는 짝사랑 그녀의 거절에 무너진다. 난생처음 무계획적인 삶을 살아보려는 정석에게 짝사랑하던 여자의 후배, 소정(한지민)이 다가온다. 직장생활 ‘8년7개월26일’ 만에 정석을 지각하게 만든 이 여자는 자꾸만 그의 삶을 어지럽게 만든다. 규칙이 인생의 전부인 남자와, 계획 따위 안중에도 없는 자유분방한 여자의 만남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아는 여자> <나의 결혼원정기> 이후 오랜만에 로맨스 장르로 복귀한 정재영과 망가지는 모습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한지민의 조합이 궁금
[Coming Soon] 규칙이 전부인 남자와 자유분방한 여자의 만남 <플랜맨>
-
-김이창 감독의 <수련>이 서울독립영화제2013 대상을 수상했다
=<이름들>이 최우수작품상을, <레드 툼>이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독립스타상은 <셔틀콕>의 배우 이주승에게, 열혈스탭상은 <한공주>의 홍재식 촬영감독에게 돌아갔다.
-<숨바꼭질>의 김미희 대표가 2013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으로 뽑혔다
=연기부문에선 <연애의 온도>의 배우 김민희가 수상했고, 연출/시나리오부문상은 <연애의 온도>를 연출한 노덕 감독이 차지했다.
-마지막 필름현상소인 서울필름현상소가 내년 초 문을 닫는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필름영화를 상영하던 씨네큐브가 지난 12월4일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함에 따라 서울필름현상소도 폐업을 결정했다.
[댓글뉴스] 김이창 감독의 <수련>이 서울독립영화제2013 대상을 수상했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