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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아메리칸 허슬>은 크리스천 베일의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에서 시작한다. 이는 베일이 이 영화에서 얼마나 망가졌는지 보라는 감독의 노골적인 메시지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건장한 슈퍼히어로의 몸을 보여준 그가 갑자기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육중한 몸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베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저게 진짜 배가 맞나, 관객이 아직도 의심하고 있을 때 베일은 태연하게 자신의 대머리에 부분 가발을 얹고, 남은 머리카락을 풀로 정성스럽게 고정한다. 그는 지금 매우 심각하지만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다. 그 상황 자체도 웃기지만 크리스천 베일이 이런 모습으로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이 몰입을 방해할 정도의 파격인 것이다(이는 크리스천 베일이 데이비드 O. 러셀과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던 <파이터>에서 66kg의 몸으로 휘청거리며 등장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꼽을 만한 이 장면에서 크리스천 베
[크리스천 베일] 어려운 길을 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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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롤랜즈는 ‘작가 배우’이다. 작가 배우란 ‘작가 감독’을 의식해서 존 카사베츠가 고안한 개념이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혹은 예술적 입장이 뚜렷한 감독이 있듯, 그런 배우도 있다는 것이다. 예술적 영예가 감독에게만 너무 치우친 경향에 대해 시대의 반항아로서 카사베츠가 비틀기를 한 셈인데, 본심은 배우에게도 예술가의 월계관을 씌워주려는 데 있었다. 여기에는 아마 연극배우였던 자신의 경력도 이유가 됐을 터다. 그는 허구의 매끈한 연기보다 현실 속에 살아 있는 인물이 ‘되는’ 연기자들을 작가라고 봤다. 그렇지만 메소드 연기자와도 좀 달랐다. 그는 배우에게 메소드에 즉흥까지 요구했다. ‘작가 배우’라는 카사베츠의 주관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 배우가 바로 그의 아내이자 평생의 동료였던 지나 롤랜즈이다.
배우들의 배우
롤랜즈를 ‘배우들의 배우’로 각인시킨 작품이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이다. 카사베츠의 영화는 대개가 자기 삶에 포로가 된 인
[한창호의 오! 마돈나] 배우가 ‘작가’라는 말을 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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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Interstellar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앤 해서웨이, 매튜 매커너헤이, 제시카 채스테인, 마이클 케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새로 눈을 돌린 곳은 우주다. 웜홀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우주의 경계까지 나아가 항성간의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유수 감독들이 탐냈던 시나리오다. 공동 각본으로 조너선 놀란이 참여했고 음악은 한스 짐머가 맡는다. 11월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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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겨울왕국> 내리고~ 내리고~
[정훈이 만화] <겨울왕국> 내리고~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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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시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한창일 때는 1.5와 2.0 사이를 왔다갔다했고, 중간에 잠깐 1.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었지만 군대에서 오랫동안 경계 근무를 하다보니 시력이 다시 좋아졌다. 시력이 다시 좋아질 수 있다고 얘기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직접 경험했다. 먼 곳에 있는 녹색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컴퓨터나 책을 멀리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눈이 좋아질 수 있다. 최근 내 시력은 1.0과 1.2 사이쯤 어딘가에 있다.
눈이 좋던 어린 시절부터 안경 쓴 사람을 무척 부러워하곤 했는데(어릴 땐 별게 다 부러운 법이다) 요즘엔 나도 안경을 쓰고 있다. 시력은 좋지만 난시 때문에 눈이 빨리 피곤해져서 안경을 써야 눈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안경 쓴 사람을 부러워하던 어린이답게 안경점에 가서 시력 검사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자, 턱을 고정시키고 화면을 보세요. (네, 했어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아니 실제 그림인 집이 보이시죠? (네,
[김중혁의 바디무비] 왼쪽으로 달리는 게 안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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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정중앙을 차지하는 꽃꽂이처럼, 영화에도 종종 센터피스 구실을 하는 장면이 있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의 오스카(마이클 B. 조던)는 집행유예 중인 청년이다. 너무 늦기 전에 좋은 아빠와 파트너, 아들이 되고 싶어 안달하지만, 남아 있는 나쁜 습관과 사회의 선입견 탓에 진전은 더디다. 영화가 담은 그의 힘든 하루 중 오스카는 길 잃은 온순한 개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가해자는 자취를 감추고 결백한 피만 아스팔트를 적신다. 죽은 개에게 감정을 이입한 오스카가 가족사진을 응시하는 동안, 지금까지 중립적 기록자의 자세를 유지하던 영화는 잠시 숨을 죽이고 속도를 늦춤으로써 무언의 해석을 개입시킨다. 감독이 보는 인물의 DNA가 축약된 시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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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을 떠나 독립한 10여년 전 겨울, 나는 좁은 원룸에 입주할 책을 엄선하느라 책장 앞에서 고심을 거듭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 10권 중에서는 <주석병정>이 수록된 7권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눈, 눈물,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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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태어나서 문화혁명을 겪고 프랑스로 건너가 작가 생활을 하는 다이 시지에의 이 자전적 소설은 우리를 실제로 있었으면서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세계로 데려간다. 모두가 알 듯이 1968년 말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이자 혁명의 기수인 마오쩌둥 주석은 나라를 일대 변혁하는 운동을 벌인다. 모든 대학이 휴교하고, 중/고등학교를 마친 ‘젊은 지식인들’은 농민들로부터 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농촌으로 추방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10대 소년이 바로 이런 상황에 놓였다. 의사 아버지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민의 적’으로 분류된 이들이 재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3퍼밀’(1000분의 3). 말하자면 끝내주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남폿불을 밝히는 산골에서 인생을 마칠 것이 거의 확실한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부르주아적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몰래 숨겨온 바이올린을 처음 본 촌장이 도시의 장난감이라며 불태워버리려고 하자, 모차르트의 소나타가 ‘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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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사를 다룬 문헌사학의 고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가 아랍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지고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등장한 인쇄된 책은 당시 서구 사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이었다. 수많은 필경사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필사본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던 그 이전 시기에 책은 권력자들과 귀족들, 일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귀족 중심이던 유럽 사회에 책이 사상의 전파 역할을 해온 과정을 살핀다.
[도서]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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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노예 12년>이 여러 번역본으로 출간되고 있다. 납치, 인신매매를 통해 12년간 노예로 살며 미국 남부의 농장을 전전했던 솔로몬 노섭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다. 1852년 출간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더불어 노예제를 공론화하는 데 기여한 작품이다. 영화가 이미지로 말하는 많은 것들을, 경험한 이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진귀한 기회다. 문장이나 구성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담담하고 묵직한 경험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도서] 영화의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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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공감보다는 비아냥에 사용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거의 모두 정치색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는 그런 한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비평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도 2부 ‘숨은 정치’ 부분이 흥미롭다. 종교와 자본의 정치세력화에 집중하는 이 대목들은 이념논쟁 이후의 한국 사회를 생각하게 돕는다.
[도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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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개봉을 앞두고 열 가지도 넘는 소설 번역본이 시장에 쏟아져나왔다. 판본별 비교를 해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8종의 책과 원서를 놓고 크게 세 챕터를 비교했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체 자체의 독특함은 둘째치고라도,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수없이 쓰지만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면 어쩐지 지겨워 보이는 “(s)he said”의 처리 문제, 관계대명사로 끝없이 이어지는 구문을 어느 지점에서 분리하는가의 문제,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에는 이제 쓰이지 않는 표현 “old sport”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느냐가 있었고, 영어로 쓰인 모든 소설들을 옮길 때 마주하는 존댓말과 반말의 딜레마도 있다. 번역에 있어 완벽은 없고 문제는 끊이지 않는 법이다.
프린스턴대학에서 프랑스어와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벨로스의 <내 귀에 바벨 피시>는
[도서] 번역과 반역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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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츠 맨’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나치에 의해 도난당한 각국의 예술품과 문화재를 되찾아 본국에 돌려주기 위해 결성된 미군의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조지 클루니가 제작, 감독, 각본, 주연까지 1인4역을 맡은 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은 전쟁의 포화 속으로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던 7명의 ‘모뉴먼츠 맨’에 대한 이야기다. 전성기가 지난 박물관 관장, 건축가, 큐레이터, 예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들의 사명은, 전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뜬구름 잡기일 뿐이다. “예술품을 지키는 일이 사람의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모뉴먼츠 맨’을 시작할 때 불거졌던 질문은 어디서나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이 가능하지만, 그 답을 말하는 것은 영화에서도 쉽지 않다.
지난 1월16일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케이트 블란쳇,
[현지보고] 위대한 유산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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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의 한 대형출판사에서 ‘대도해’라는 이름의 국어사전을 편찬하기로 한다. 기인적이면서도 은둔자의 기질을 가진 영업부서 직원 마지메 미쓰야(마쓰다 류헤이)가 사전편찬부에 스카우트되는데, 현재 사전편찬부에는 ‘은퇴를 앞둔 숙련된 편집자와 나이 지긋한 언어학자, 외향적이지만 기획에 능숙한 마사시(오다기리 조)’ 등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그중 한명의 아내가 병에 걸려 사무실을 떠나면서 미쓰야가 이곳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하지만 사전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방대하고 까다롭다. 대도해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단어의 바다를 이어서, 사람들간의 격차를 없애고자 기획된 사전이다. 그러니 그 망망대해를 잇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힘껏 고군분투하던 미쓰야는 어느 날 하숙집 주인의 손녀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를 발견하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듯 힘겨워하는 그를 향해 상사인 마츠모토(가토 고)가 ‘사랑’이란 단어의 정의를 직접 채워넣으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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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바다를 잇는 일 <행복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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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머물면서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 ‘우리별 일호’가 멀리 지구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구에 도착한 위성은 마법사 멀린(이돈용)의 도움으로 소녀로 변신하고, ‘일호’ (정유미)란 이름을 갖게 된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위성의 성능은 여전히 작동한다. 일호는 하늘을 날아오르기도 하고, 몸의 일부를 발사시킬 때도 있다. 한편 가수지망생 경천(유아인)은 남몰래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애인이 생기자 좌절한다. 결국 마음이 공허해진 경천은 얼룩소의 모습으로 변하고, 도시의 불안이 만들어낸 괴물 ‘소각자’에 쫓기게 된다. 그런 경천을 일호가 도우면서 이야기가 발전한다. 마법에 걸린 사람들을 태워 없애는 악의 무리에 대항해 그들은 힘을 모은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논할 때 이제 장형윤 감독의 이름을 빠뜨려선 안 될 것 같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5년간의 긴 제작기간에 답례하듯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에피소드가 얽힌, 군더더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한국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