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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던 기억이 있다. ‘파란해골 13호’와 일합을 겨루던 ‘태권동자 마루치’의 활약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도 재미가 있었지만, 이병주의 소설 <마술사>를 각색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허공을 향해 밧줄을 세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영상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힘.
이런 이야기의 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바로 찰스 디킨스다. 빚을 지고 채무자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 아버지 때문에 열두살 때 구두약 공장에서 10시간씩 일을 했던 디킨스는 자신이 살던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 혹은 <위대한 유산>이 시대를 배경으로 개인들의 사연에 치중한 소설이라면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프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한 디킨스의 시대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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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한병철의 <투명사회>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제목이 주는 인상만 비슷한 것이 아니고 문제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책을 혼자 힘으로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투명사회>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고, 대중인문서가 장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단속사회>가 늘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사생활이 종말을 고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두 학자의 통찰과 분석을 찬찬히 음미해볼만하다.
[도서] 사생활이 종말을 고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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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책 속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압도당하는 느낌을, <책섬>에서는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문장 속으로 기어들어갈 만큼 사람이 작아지는 그림. <책섬>은 그림-책이다. 김한민 작가가 ‘책’이라는 동반자에 바치는 헌사이다. 그림과 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작가 특유의 자유로움이 인상적이다.
[도서] ‘책’이라는 동반자에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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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최승호 시인의 <아메바>로 시작되어 얼마 전 49번째로 박태일의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까지 선보인 ‘문학동네 시인선’의 50호 기념 자선 시집 <영원한 귓속말>이 출간됐다. 49명의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집에서 한편의 시를 고르고 짧은 산문을 더해 한권이 완성되었으니 시집이면서 시집 그 이상. 산문이라 해도 바로 옆자리의 시와 각운이 맞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글모음이기도 하다.
[도서] 시집 그 이상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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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겨울, 저는 몇해 전부터 친구들을 차례로 잃고(그런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울적한 상태였습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그런 나이’에 접어들어서도 변함없이 왕성하게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의 정의>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글을 고쳐 써서 묶은 책이다. 일본에서는 그 이름만 들어도 통용되는 지식인일지라도 한국에서는 각주를 보고도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렵기 마련인데, 그런 주변인과의 일화가 꽤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읽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지만, 반전(反戰)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 머리에 기형을 갖고 태어났지만 음악적 재능을 꽃피운 아들 히카리와의 일화는 언제 어떤 책에서 읽어도 늘 마음 깊이 와닿는다. 상투적인 찬사지만 사실이 그렇다.
제주 4•3사건처럼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전(戰) 당시 일본군이 집단자결을 두 섬의 주민에게 강요한 이른바 ‘공사’(共死)가 있었다
[도서] 노작가가 미소로 내미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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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토하는 엠티는 굿바이, 우린 캠핑 스타일~
가평 햇살고요 캠핑장
자네, 엠티는 뭐니뭐니해도 대성리, 강촌 같은 곳이 최고라고 생각하나? 하지만 남들처럼 풍경은 눈에 들이지도 않고 술이나 퍼마시다 오기는 싫다고? 그렇다면 그곳으로 캠핑을 떠나보는 거네. 북적거리는 도시의 캠핑장이 내키지 않는 친구들도 넓고 한적하고 쾌적한 서울 근교의 이 캠핑장이 제격일 거야. (:{}) 휴식 같은 엠티, 땡기지 않나? 캠핑장 안에 북카페가 있어서 책 읽기는 물론이요, 프로젝트TV로 영화도 볼 수 있다네. 캠퍼들의 로망, 캠핑 트레일러까지 자리하고 있으니 낭만 그 자체인 엠티가 될걸세, 찡긋. (:{})
문의 http://sunnysidecam.com 010-7176-1955
지리산 달궁 오토캠핑장
봄 하면 꽃이요, 꽃 하면 남도요, 남도 하면 지리산이지. (:{}) 지리산으로 떠나는 꽃구경 엠티라니 정말 멋지지 않나? 그런데 너무 멀지 않느냐고? 그 정도는 감수해야 특별한 엠티의 추억을
[프링글스] 먹고 놀고 사랑하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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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자극 음식만화 열전
친구들, 나른한 봄에 식욕이 당긴다고? (:{}) 뭐든 먹고 싶은데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 보면 정말 도움이 되는 만화가 있다네. 조경규 작가가 다음에 연재하는 ‘리얼생활음식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이지. <오무라이스 잼잼>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작품을 수식하는 말에 ‘리얼’이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네. 만화 속 등장인물뿐 아니라 침샘을 자극하는 만화 속 음식들이 모두 실재하는 것이란 말이야. 핫케이크, 햄버거, 스팸, 일본 라멘 등 쉽게 구할 수 있고 간단히 요리할 수 있고 주변에서 흔히 파는 음식들을 소재로 하더군. (:{}) 예를 들어 단행본으로 엮여서 나온 <오무라이스 잼잼>의 4권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감자칩이 등장하네. 자네들도 잘 아는 바로 프링글스야. 조경규 작가는 프링글스를 먹는 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종종 자취생들의 재떨이로 이용되는) 프링글스 통의 탄생 비화 등을 알려주더군. 단행본 버전에는
[프링글스] 먹고 놀고 사랑하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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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친구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법
<킥 애스: 영웅의 탄생> 감독 매튜 본 / 출연 에런 존슨, 클로이 머레츠
‘Kick ass’는 죽여준다, 끝내준다란 뜻이지. (:{})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이야말로 죽여주는 액션 영화일세. 평범한 고등학생인 데이브는 세상에 영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하지. 그리고 싸움에 능한 빅 대디, 힛 걸과 팀을 이루어 악당 디아미코와 대적하게 된다네.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의 액션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보다도 사실적이고 스타일리시해. 특히 힛 걸이 펼치는 액션의 강도는 <킬 빌>을 연상시킬 정도지. 우연에 의해서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없이,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평범한 우리들을 괜히 설레게 한다네. (:{}) 판박이 같은 슈퍼히어로물에 지쳤다면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이 신선한 쾌감을 선사해줄 걸세.
<판타스틱 Mr.
[프링글스] 먹고 놀고 사랑하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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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를 보며 프로야구 개막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야구팬에게 야구가 가장 보고 싶어 미치겠는 기간이 언제인지 아나? (:{}) 스토브리그? 그건 너무 뻔한 답이지 않은가. 물론 스프링캠프 기간도 아니네. 야구경기를 볼 수 없는 몇달, 그 기나긴 겨울을 잘 참고도 가장 견디기 힘들 때는 시범경기가 끝나고 개막하기까지의 단 일주일!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쏟아지는 설레발 기사를 샅샅이 뒤져 읽고, “솔직히 올해는 ◯ ◯ 이 우승할 듯” 하며 같이 설레발도 떨어보고, 시즌 전 예상순위에서 응원팀 순위가 낮으면 괜히 전투력이 상승하여 배틀도 벌여보는데, 세상에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네? 그 심정 나도 잘 알지. (:{})
3월29일 프로야구 개막일까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그러다 찾은 게 모바일 야구게임 ‘컴투스프로야구 for 매니저’(이하 컴프매)라네. 컴프매는 선택, 맥주는 필수~. 그토록 오매불망 야구를 기다려왔건만 막상 시즌이 시작하면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싶을
[프링글스] 먹고 놀고 사랑하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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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300: 제국의 부활> 사는 게 전쟁이다
[정훈이 만화] <300: 제국의 부활> 사는 게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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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차이무를 이끄는 민복기(오른쪽) 대표가 영화를 만든다? 혼자도 아니고 <마지막 늑대> <강적>에 배우로 출연하며 알게 된 박진순(왼쪽) 감독과의 공동연출이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박진순 감독은 그 뒤 자신의 영화에 꾸준히 민복기 대표를 단역으로 캐스팅했고, 두 사람은 돈독한 인연을 쌓았다. 민복기 대표가 연출한 동명의 연극이 원작인 <씨, 베토벤>은 여고 동창인 세 친구의 수다만으로 이뤄졌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배우들을 관찰하기만 한다. 편집도 최대한 줄이고 사고나 실수까지 끌어안고서 극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의도하지 않은 의도들이 반가웠던” 영화인 <씨, 베토벤>은 사실 민복기 대표의 영화감독 도전기, 박진순 감독의 연출 데뷔 도전기다.
-공동연출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박진순_처음 준비한 영화가 잘 안 됐을 때 선배님의 연극 <씨, 베토벤>을 보러 갔는데 세 여자의 수다를 한참 듣고 오니 마음이 편하고
[flash on] 실수와 우연이 만나 활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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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가끔 사람들의 몸을 몰래 볼 때가 있다. 비현실적으로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볼 때도 있고, 엄청나게 거대한 사람이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걸 볼 때도 있고, 옷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깡마른 사람의 뒷모습을 볼 때도 있다.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나는 몸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왜 어떤 사람은 말랐고, 어떤 사람은 뚱뚱할까. 거대한 남자가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아침에 일어나 저울에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때로는 그런 상상을 소설로 옮기기도 한다. 아마도 내 상상은 많이 틀릴 것이다. 사실과 다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몸만 보고 한 인간의 내밀한 삶을 쉽게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몸이 삶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무척 좋아하는 단편소설 중에 레이먼드 카버의 <뚱보>라는 작품이 있다. 이야기는 짧고 간단하다. 식당
[김중혁의 바디무비] 시간의 구멍을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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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첫 호텔 영화는 아니다. <다즐링 주식회사> 의 프롤로그로 공개된 13분 길이의 소품 <호텔 슈발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코디네이션을 고집하는 앤더슨의 영화로서는 드물게 벌거벗은 감정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연을 가진 남녀(제이슨 슈워츠먼, 내털리 포트먼)가 한 호텔에서 계획되지 않은 재회를 한다. 그리고 미처 묻지 못한 것들을 묻는다.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이 호텔에서 잊기 힘든 대사를 남겼다. “난 절대 당신의 친구는 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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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좀 막 다뤄주세요.”
내가 만약 고(故) 다이애나 왕자비라면, 그녀 특유의 눈치 보듯 상대를 올려다보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영화 <다이애나>의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에게 청원했을 것 같다. 이 영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죽은 귀족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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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씩씩하고 다정다감한 꼬마영웅 경찰차 프로디(이선). 마을의 상징인 독수리 바위와 그곳에 사는 흰 꼬리 독수리는 프로디와 동물 친구들의 자랑거리다. “독수리가 없으면 독수리 공원도 없다”는 공주의 얘기를 듣고 프로디는 독수리 사수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동물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곧 엄마가 될 흰 꼬리 독수리마저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사이 알에서 깨어난 아기 독수리 스크러피(오인실)는 프로디를 엄마라 부르며 따르고, 프로디 역시 그런 스크러피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 프로디와 수달 도티(엄상현)는 어딘가 수상쩍은 모녀의 뒤를 밟다가 그들이 동물 박제로 거액의 돈을 벌려는 밀렵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체가 탄로난 이들은 체포되고 어미 독수리를 만난 스크러피는 마침내 하늘을 날게 된다.
프로디와 도티가 마을에 찾아온 악당과 맞선다는 기본 설정은 전편인 <꼬마영웅 경찰차 프로디>와 크게 다르지 않
아기 독수리를 지켜라 <꼬마영웅 경찰차 프로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