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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트뤼포를 비롯해 프랑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했던 다섯명의 영화비평가는 이후 차례로 영화감독이 되었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영화언어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었다.
1976년 발간된 제임스 모나코의 <뉴 웨이브>는 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변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영화적 경향, 프랑스어로는 누벨바그, 영어로는 뉴웨이브라고 불리는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다섯명의 감독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뉴 웨이브>는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장 뤽 고다르를 감독별로 분석한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모나코는 그들이 비평가 시절 공통적으로
영화를 통한 내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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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 미개사회에 대해 민속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학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려보자. 민속학의 대상이며 희생자였던 아프리카인, 오세아니아인, 아메리칸 인디언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건방지거나 수집가가 되지 마시오.”
‘스타예배’ 챕터에서 따온 에드가 모랭의 이 익살스러운 외침은 <스타>라는 책이 어떤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모랭에게 ‘스타’란 영화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통한 자본주의의 인공적인 발명품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자생한 신화이기도 하다. 그는 마치 서구 인류학자들이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의 원시종교를 관찰하듯 시치미를 뚝 떼고 스타 숭배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처음에는 왕년의 영화평론가답게 영화와 스타 시스템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서로를 먹여살리게 되었는지 기술하던 모랭은 곧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관객에게 ‘강렬한 동일시로서의 투사’를 끌어내고 이것이 어떻게 현대의 신화
할리우드의 신화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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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은 최근 가장 활발하게 영화 관련 서적을 내고 있는 출판사 중 한곳이다. 미시시피대학출판부의 거장 감독과의 인터뷰 시리즈는 물론 영화분야 베스트셀러였던 <박찬욱의 오마주> 역시 마음산책의 기획 아래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개봉영화만 3편 정도 본다는 정은숙 대표는 시인답게 영화와 책, 그리고 자신의 관계를 ‘숙명’이란 단어로 정리했다.
-책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
=편집자도 사람인지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 안에서 책을 기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출판사를 열 때 3권의 책을 기획했는데 그중 하나가 김영하 작가의 <굴비낚시>라는 영화 산문집이었다. 지금도 영화 관련 책들은 에세이, 소설 등과 함께 마음산책의 든든한 기둥이다.
-미시시피대학출판부에서 낸 거장 감독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꾸준히 내고 있는데.
=처음부터 모든 감독의 시리즈를 다 내려고 기획한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짐 자무시 감독을 너무 좋아해
“그 책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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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감독이란 불가시의 존재이다. 나로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독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준 고마운 책 중 하나가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이다. 이 책은 또한 좌절과 불평등의 인식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에 순전히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고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트뤼포의 놀라운 기억력과 보는 능력에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트뤼포가 거의 외우다시피 보았던 영화들에서 사소한 질문을 할 경우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은 한명의 영화광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를 만나 영화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비평가의 초기 시절이 아니라 1966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물론, 인터뷰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 시절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본심은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정작 미국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 것과 히치콕과의 정밀한 인터뷰
트뤼포의 사심으로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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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퀴어 시네마(new queer cinema)가 황금기에 이를 즈음이었다. 루비 리치라는 영화평론가는 새롭게 등장한 성소수자 영화들의 흐름을 뉴 퀴어 시네마라고 명명하였다. 데릭 저먼, 그렉 아라키, 토드 헤인즈, 톰 칼린, 그리고 아이작 줄리언 같은 감독들이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감독들은 스크린 위에 성소수자들을 긍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연쇄살인범 게이를 기꺼이 찬양하였고, 성소수자 사회 내부의 갈등과 차이에 대하여 대담하게 말을 건네며, 문화의 역사에서 억압되었던 이단적 취미를 자신이 기꺼이 상속할 전통으로 내세웠다. 모두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뉴 퀴어 시네마를 에워싼 소문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로빈 우드를 만났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가 번역된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시 지금은 반쯤 뇌리에 잊힌 영국의 리처드 다이어와 함께 영화의 역사를 성의
읽기의 수고를 생각하며, 로빈 우드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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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감의 문체로 씌어진 <헐리웃 문화혁명: 어떻게 섹스-마약-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는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뉴아메리칸 시네마를 유행시킨 당시 새로운 영화 세대가 어떻게 할리우드의 낡은 문법을 혁신시킨 뒤 좌절했는지에 관한 방대한 기록이다. 미국 영화 월간지 <프리미어> 기자 출신인 피터 비스킨드는 유머와 빈정거리는 어투와 진지한 비평적 논평을 결합해 예술적 야심이 탐욕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리낌 없이 기술하고 있다.
데니스 호퍼가 마약에 취해 만든 <이지 라이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할리우드는 젊은 히피 감성을 지닌 감독들이 새로운 돈줄이 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좋은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월요일 아침에 흥행 성적을 가지고 서로 굵기를 다투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스튜디오 수뇌부는 “오로지 누가 삼삼한 영화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사람들의 화제에 오른 영화를 가지고 있는가”만을 문제 삼았다.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이 마틴 스코시즈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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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절판이라고? 영화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거쳤음직한 ‘바이블’과도 같은 책들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로빈 우드의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피터 비스킨드의 <헐리웃 문화혁명: 어떻게 섹스-마약-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 토머스 샤츠의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등 단순한 흥미를 넘어 이른바 ‘영화탐독’에 이르게 해주는 길잡이 같은 책들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대부분의 책들이 꽤 기나긴 ‘절판’ 상태라는 것이 충격이었고, 더 나아가 ‘영화책 시장’이라는 얕은 지반에 한숨이 나왔다. 여기 힘들게 고른 10권의 재출간 촉구 서적이 있다. 그리고 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책도 추천했다. 더불어 세명의 ‘영화책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로저 코먼의 자부심 넘치는 책 제목처럼 ‘백권의 영화책을 만들고 한푼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아마 당신의 머릿속에는
SAVING CINEMA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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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은 평판이 좋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으며, 김영진과 김혜리도 지난호(945호) <씨네21>에 호의적인 글을 썼다. 나는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노예 12년>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있지만 관습적인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류영화라고 생각한다. 수작 혹은 범작. 서로 견해를 경청하는 평자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의 견해 차이가 생기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다만 이 영화는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 나는 여기서 <노예 12년>이라는 영화의 내용은 거의 거론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이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의 우리의 자리를 생각해보고 싶다. 그 자리는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한편의 영화 앞에서 종종 잊는 종류의 상식에 가깝다. 다소 원론적이고 뻔한
[신 전영객잔] 진실이 고통 이미지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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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이런 레퍼런스 무비까지 만들지 않았겠나.” 수월하게 투자받은 건 아닐 것 같다는 질문에 <몬스터>의 황인호 감독이 선뜻 보여준 건 자신의 휴대폰에 담긴 동영상 편집 클립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 <아저씨> <괴물> <황해> <밀양> 등의 장면이 편집되어 있고 거기에 짧은 설명들이 붙어 있는, 자신이 <몬스터>에서 그리려는 캐릭터나 장면 컨셉을 투자자들이 잘 알고 있는 영화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동시에 구미가 당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용 동영상 자료다. 이것이 영화 <몬스터>의 태생을 말해주는 적절한 일화일 거다. 별도의 변칙적인 설득 과정이 반드시 요구될 만큼 <몬스터>의 지향이 별스러웠다는 사실. 우리는 그 별스러움에 이끌려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만든 몬스터는 누구인가 만나보고 싶어진 것이다.
-원래는 시나리오
[황인호] 내 시나리오는 내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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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면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과 뮤지컬 <서편제>의 만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차지연은 2010년 <서편제>가 처음 뮤지컬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눈먼 소리꾼 송화를 연기했다. 세 번째 송화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각별하고 남달라 보인다. 전과 달리 그녀는 과감한 캐릭터 해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 이번 송화는 확실히 강해졌다고 한다. <아이다>의 아이다, <카르멘>의 카르멘처럼 기운 세고 거친 운명의 여성들을 꾸준히 맡아왔던 그녀인지라 송화의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데뷔 8년차 배우에게서 좀처럼 나올 수 없는 공력이자 배우 차지연만의 에너지다.
-어떻게 <서편제>를 세번씩이나 하게 된 건가.
=힘들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겠냐마는 <서편제>는 정말이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어린 송화부터 60, 70대 소리꾼 송화까지 한 사
[trans x cross] 에너지는 아껴 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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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 선택된 줄 알았어요.” 가족에게마저 혹독한 심판의 잣대를 들이미는 아버지에게 실망한 아들이 쏘아붙이자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분이 나를 선택한 것은 내가 그 일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에서, 창조주의 대리자인 노아는 가혹한 수행자다. 아름답고 선한 존재들만 살아남은 새로운 낙원을 열기 위해, 그는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타락한 세계의 완전한 종말을 이끈다. 하지만 그의 추진력을 막아서는 건 언제나 ‘인간적인’ 마음이다. 대홍수에 휩쓸린 생명체들이 울부짖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방주 속에 앉아, 노아가 경험하는 건 ‘생지옥’이다. 그의 완고한 모습에 사랑하는 아내마저 저주를 퍼붓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두가 당신을 증오할 거예요. 그게 ‘정의’예요.” 신인류 최초의 슈퍼히어로가 감내해야 할 정신적 고통은 그가 지은 방주만큼이나 거대하고 깊다.
노아를 연기하는 러셀 크로는 언젠가 “<
[러셀 크로] 불완전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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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스타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감독을 한번쯤은 만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그럴 때 배우와 감독은 각각 자신의 경력에서 절정에 이른다. 존 포드에게 존 웨인이 없었다면, 또 반대로 존 웨인이 존 포드를 못 만났다면, 두 영화인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명감독과 스타의 만남은 대개 한번이고, 이것도 행운인 셈이다. 평생 이런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는 영화인들이 더 많다. 그런데 그런 만남을 훈장처럼 여러 개 달고 있는 배우도 있다. 그런 화려한 경력의 대표적인 배우가 잔 모로다.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의 연인
잔 모로는 배우로선 뒤늦게 서른이 다 돼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모로를 스크린의 스타로 발굴한 감독은 루이 말이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를 통해서다. 프랑스에서 누벨바그가 막 시작될 때인데, 루이 말은 누아르 스타일의 범죄물에서 팜므파탈이기보다는 자포자기의 비관주의자로 모로를 묘사했다. 사랑을 위해 범죄까지
[한창호의 오! 마돈나] 누벨바그 세대 지성과 퇴폐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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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 Paddington
감독 폴 킹 / 출연 콜린 퍼스, 니콜 키드먼, 샐리 호킨스, 휴 보네빌
고향 페루로 가는 길을 잃고 영국에 정착하게 된 ‘패딩턴 베어’는 런던의 패딩턴역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다. 영화는 베스트셀러 동화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며, 콜린 퍼스가 패딩턴 베어의 모션 캡처와 목소리 연기를, 니콜 키드먼이 악역 박제사를 연기한다. 영국에서 11월 개봉예정.
[WHAT'S UP] <패딩턴> Padd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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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300: 제국의 부활> 빈 깡통
[헌즈 다이어리] <300: 제국의 부활> 빈 깡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