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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1946)는 ‘리타 헤이워스의 모든 것’이다. 오직 헤이워스에 초점을 맞춰 만든 작품이기도 하고, 또 마치 헤이워스의 실제 삶을 암시하듯 비밀스런 과거에, 강박적인 관계의 현재, 그리고 모호한 미래가 섞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헤이워스는 당시 ‘천재 청년’ 오슨 웰스의 아내였는데, 막 딸을 출산한 뒤 2년여의 공백을 깨고 <길다>에 출연했다. 말하자면 스크린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작품이었다. <길다>는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여신이 돌아왔다’는 뉴스들이 경쟁하듯 나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불과 28살이었던 그때가 삶의 절정이었고, 이후로는 팜므파탈의 운명을 보듯 탄식과 불안이 교차하는 복잡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길다’라는 캐릭터와 헤이워스의 운명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길다>, 관능의 정점
1943년 오슨 웰스와의 시끌벅적한 결혼은 천재와 미녀의 찬란한 결합으로 보였다. <시민 케인>(1941)과 <위
[한창호의 오! 마돈나] 여신의 관능, 매혹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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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피센트> Maleficent
감독 로버트 스트롬버그 / 출연 안젤리나 졸리, 엘르 패닝, 주노 템플, 샬토 코플리
예고편을 보면 디즈니 성을 향해 다가가던 카메라가 방향을 바꾸어 어둠의 숲으로 들어간다.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미녀>(1959)에 나오는 사악한 마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실사영화다. <아바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술감독 로버트 스트롬버그의 첫 연출작이며 5월 북미 개봉예정이다.
[WHAT'S UP] <말레피센트> Malefi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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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피끓는 청춘> 패션의 대혼란
[정훈이 만화] <피끓는 청춘> 패션의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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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SF소설이더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탄탄하면 흥미를 자아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실이 정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지구의 식민지가 된 달 사회를 배경으로 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 고전으로 칭송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여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생겨난 다부다처제를 설명해놓은 장면을 보면, 아직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마초이즘이나 성차별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그런 상황에서 실제 존재했던 사람들이 벌이는 일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제국>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쓴 소설이다.
주인공인 아우구스트 엥겔하르트는 1875년 뉘른베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극단적인 것들의 아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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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10번째 책. 2011년 7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기록한 112편의 독서일기를 날짜별로 배치하되, 왜 하필 그 시점에 그 책을 읽고 썼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함께 엮었다. 일기 앞에 발췌된 신문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사건과 장정일의 서평이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부터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김정은 체제>를 비롯한 정치/사회과학서들이 많다.
[도서] 112편의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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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원 40주년을 맞아 영화학자와 평론가, 영화계 종사자 등 62인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을 발표하고, 이와 함께 개별 작품들에 대한 평론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각각의 작품들이 대중과 평단에 사랑받았던 이유와 영화 미학에 대하여 각 영화 장르와 감독에 대한 전문적 소견을 갖춘 평론가와 학자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장점. <청춘의 십자로>부터 <파업전야> <쉬리> <강원도의 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도서] 한국영상자료원 창립 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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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울지 않는 아이> <우는 어른>이 출간되었다. <울지 않는 아이>는 에쿠니 가오리가 작품 활동 초기에 쓴 8년치 에세이를 모은 것이며, <우는 어른>은 <울지 않는 아이>를 발표하고 나서 5년 동안 쓴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그녀 특유의 여린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글이 많지만, 책 제목처럼 우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과 만족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도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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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전성시대다. 출판사마다 표지디자인부터 마케팅까지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전집을 내놓는 중이고, 신간도 꾸준히 추가 간행되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전집도 개성이 있어야 눈길을 끌게 되어, 민음사는 모던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로 코맥 매카시, 모옌,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니콜 크라우스나 조너선 사프란 포어 같은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을 위한 새로운 고전집을 내고 있다. 창비는 단편들을 지리학적으로 나누어 묶어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폴란드 하는 식으로 9권짜리 전집을 내기도 했고, 현대문학에서도 세계문학단편선을 간행했다. 문학동네는 양장본과 반양장본으로 나누어 가격을 달리 책정하고 독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었다. 이런 붐을 타고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출판사별로 네 가지 버전이 나오는가 하면 절판된 뒤 구하기 어려웠던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다시 살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문학동네에서 이
[도서] 한글이 왜 아름다운지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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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창립 40주년. 지난 1월15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은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 주요사업’기자간담회를 열고 반세기 한국 대중가요사를 정리한 <가요반세기>(김광수, 1968) 발굴과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개괄하고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한국영화 VOD온라인 기획전, 유튜브를 통한 한국고전영화 70편 상영,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 복원사업 등 중점 추진 사업에 대해 발표했다. 영상자료원의 2014년은 4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파주센터 이전 등 현재의 이슈가 교차하는 중요한 해다. 영상자료원에 들어온 지 어느덧 10년을 훌쩍 지나, 여러 주축 사업들을 담당하고 있는 조소연 경영기획부장을 만나 좀더 자세한 40주년의 얘기를 들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와 함께 부산에서 합동 워크숍을 가졌다고.
=3년째 합동 워크숍을 갖고 있다. 기관별 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3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첫회의 반응이
[flash on] 필름 보존이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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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맛>이라는 만화책 제목을 들은 사람은 대부분 고력양, 즉 동물 염소(goat)를 떠올린다. 뭐야, 흑염소 고아 먹는 이야기인가, 흑염소 맛에 중독된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흑염소를 먹어치우다가 결국 서로 싸우며 파멸하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이 염소는 그 염소가 아니라 수영장을 소독할 때 쓰는 염소다. “염소의 맛이라니, 웩!!” 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어떤 물질에든 맛은 있게 마련이다. 나도 염소의 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매캐한 냄새를 좋아하는 편이다. <염소의 맛> 주인공은 한발 더 나아간다. 수영할 때 코마개가 있으면 좋다는 충고에 “아, 그건 괜찮아요. 나는 애들 오줌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 각질 맛도 나름 좋아해서”라고 답한다. 이런 변태 청년을 보았나. 그런데 애들 오줌이나 각질의 맛이란 게 어떤 건가 궁금하긴 하다. 내가 이미 수영장에서 맛보고 있는, 바로 그 맛일까? 수영장 안에서는 다른 맛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염
[김중혁의 바디무비] 왼손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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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엡스는 상당히 잔인한 인물이다.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연기하며 에드윈을 정당화하려고 하진 않았다. 그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이해를 추구했을 뿐이다. 에드윈의 잔인한 행동이 어디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는지. 두려움과 부족함, 불안감 등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연기했다. 에드윈은 부인이 아닌 여자 노예를 사랑하지만, 이 무지한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다. 이처럼 에드윈에게서 지극히 인간적인 단점을 찾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관객이 그를 보며 아주 잠깐이라도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모든 인간이 결국은 연결돼 있는 것 아닌가. 모두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단순히 1차원적인 악역보다는, 입체적이며 때로는 바보 같아 우습기조차 한 인물이 흉포한 일을 저질렀을때 그 충격은 더할 것이라고 본다.
-왜 스티브 매퀸과 자주 작품을 하는가.
=단순하다. 그를 사랑한다. 스티브는 <
[현지보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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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노예 12년>의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의 소감은.
=복잡했다. 시나리오도 읽고 원작 자서전도 읽었는데, 곧장 ‘예스’라고 할 수 없었다. 솔로몬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그 자손들과 노예제도 등에 대해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 엄청난 작품에 어떻게 뛰어들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티브 매퀸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들 모두가 자신의 100%를 작품에 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스티브만큼 명확하고 강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와의 작업이 즐거웠다. 그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게 한다. 스티브는 배우들에게 격려와 동시에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질문은 항상 이렇다.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다른 감독들이 연기 방식에 대한 디렉션을 한다면, 스티브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 함께 생각하게 한다.
-노예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다. 영화에는 나무
[현지보고]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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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7일 한국 개봉예정인 스티브 매퀸의 <노예 12년>은, 지난 2013년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터넷 영화 포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97%의 신선도를 기록했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수많은 매체와 평론가들이 선정한 2013년 베스트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흑인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들이 활발하게 기획/제작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서도 <노예 12년>이 지닌 강렬한 드라마를 넘어서는 작품은 드물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유인에서 노예로 전락한 남자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이 작품은 솔로몬 노섭이 쓴 동명의 자서전이 원작이다. 영화 <노예 12년>이 개봉하기 전까지만 해도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은 대부분의 미국인조차 잘 알지 못하는 책이었으나, 지금은 “왜 이 책이 미 공립고교의 필독도서로 지정되지 않는지 의문이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정도로 재조명받고 있다.
영화는
[현지보고] 노예로 전락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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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다. 1월20일 CGV대학로 무비꼴라쥬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만찬>의 시네마톡은 영화제 기간 부산을 찾지 못했던 영화 팬들의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화정 기자는 “바깥 날씨가 영화 속 마지막 풍경과 비슷하기에 더 깊은 여운이 남는 것 같다”는 말로 시네마톡의 문을 열었다. 함께 참여한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무언가를 짜내기 위해 인공적인 장치를 쓰지 않는다. 현실의 모습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는 연출자의 의도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특별했”기 때문에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영화를 다시 봤는데 옳은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본격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만찬>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김동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문득 떠오른 한두 장면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만을 가지고 1신부터
[시네마톡]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