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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을 말할 때 분노라는 정서는 거의 피해가기 어렵다. <26년>에서 전두환을 모델로 하여 ‘그 사람’을 연기한 배우 장광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것을(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그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들의 분노의 감정들이 살아날 거라고 봤다.” 유사하게도 <변호인>을 말할 때는 슬픔이라는 정서를 거의 피해가지 못한다. 일명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는 작가 이외수는 <변호인>을 본 다음 “내가 저토록 어두운 세월을 건너 여기까지 왔구나. 세상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정의는 지금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몇번이나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만약 누군가가 영화의 만듦새를 두고 <26년>보다 <변호인>이 훨씬 뛰어나다고 말한다면 동의하지 못하겠다. 반대로 <26년>이 <변
우울증의 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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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이하 <남영동>)와 <변호인>은 모두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두 영화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발생했던 ‘공안 사건’과 그에 연루된 인물을 영화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남영동>에는 고 김근태씨가 피의자로 연루되었던 1985년의 ‘민추위 사건’이, <변호인>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로 참여했던 1981년의 ‘부림 사건’이, 각각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남영동>의 마지막 부분에는 각각 대통령과 장관이 된 두 인물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고, <변호인>의 마지막 부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집회 대열의 맨 앞에 앉아 있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1987년의 장면이 등장한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민추위 사건에 연루된 수배자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런 공통점과 관련성에도
고문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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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에게 노무현은 <변호인> 시절의 노무현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정의로운 탄생과 비장한 끝, 이렇게 두 이미지의 작용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 적어도 <변호인>을 보는 동안, 그들에게 노무현의 대통령 재임기간을 포함한 지난 30여년의 대한민국, 정치인 노무현의 행로, 그리고 우리의 때묻은 시간은 망각 속에 있다. 그 망각 속에서, 그러니까 각자의 위장된 기억 속에서 관객이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한때 우리에게는 영웅이 있었고, 그 영웅이 상징하던 가치가 있었으나, 그 영웅도, 가치도 빼앗겼다는 향수와 상실감이다. 실은 온전히 가져본 적도 없으나 잃었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그 감정은 지금 우리의 참혹한 현실과 무력감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그 반응이 딱히 이례적이라거나 정치적인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난 한국의 대중정치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가 관객에게 호소하는 방식에는 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국가 대신 국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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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의 이발사 성한모(송강호)는 출산 직전의 아내를 손수레에 싣고 달리다 엉겁결에 시위대의 행렬에 섞인다. 이내 군인들의 총탄이 쏟아지고 부상자들이 속출하자 시위대 중 몇명이 내달리는 성한모를 붙들고 사정한다. “선생님, 여기도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성한모가 겸연쩍어하며 하는 말. “아… 이 (흰색) 가운을 보고 오해들을 하시는 모양인데… 나는 의사가 아니에요….” 한편 <변호인>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체면 따위는 버리고 어디든 가서 명함을 돌린다. 그날도 한 고급 술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사장님들에게 달려가 명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술집 웨이터에게 멱살을 잡히는 봉변을 당한다. “어디 남의 점포 앞에서 찌라시를 돌리노?” 다급해진 송우석이 말한다. “저…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송… 우석… 이라 캅니다.”
직업에 대한 오인이라는 사건이 두 영화의 이발사와 변호사에게 똑같이 일어났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다음과 같은 후속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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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기대의 박수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어느 쪽도 이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까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2014년을 장식할 첫 1천만 영화는 <변호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봉 19일 만인 1월7일에 벌써 800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의 기세는 개봉 3주차에도 123만명을 기록하며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 게다가 800만 돌파 시점이 2013년 1천만 영화였던 <7번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물론 역대 흥행 1위였던 <아바타>(최종 관객수 1362만명)보다 6일이나 빠르다. 설연휴까진 특별한 경쟁작도 눈에 띄지 않아 벌써부터 역대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의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예상마저 조심스레 나온다.
극장가에 불어닥친 <변호인> 열풍을 읽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오간다. 누군가는 시대정신의 대변이라 치켜세우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잘 만든 상업영화일 뿐이라며
보편타당하게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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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이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을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민감할 수 있는 소재였기에 이 같은 열풍은 더욱 놀랍다. 사람들은 왜 지금 ‘변호인’에 열광하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소재가 한국영화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호인>의 흥행을 계기로 최근 한국영화가 사회적인 소재에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변호인>을 중심으로 4편의 사회적 소재 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각기 결이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아울러 개봉을 앞두고 있는 사회적 소재 영화들 소식도 알아본다. 당신은 <변호인>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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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용의자> 창조의 씨앗 혹은 악취
[헌즈 다이어리] <용의자> 창조의 씨앗 혹은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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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한민국은 <도가니>로 들끓었다. 장애인학교에서 행해진 비인간적 행위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도가니법’이 제정됐다. 영화 한편이 올린 엄청난 개가였다. <수상한 그녀>는 <도가니>의 파장을 불러일으킨 황동혁 감독이 1년에 걸쳐 준비한 신작이다.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했던 전작의 기운을 내려놓고 코믹 판타지물을 집어들다니,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이 영화는 요양원에 갈 위기에 처한 70대 할머니가 스무살 청춘의 몸이 되어 겪는 코믹한 해프닝이 주를 이룬다. 황동혁 감독은 “<도가니>를 보며 숨죽여야 했던 관객, 들고 갔던 팝콘을 먹지 못하고 가지고 나와야 했던 관객”을 언급하면서 이번 작품이 자신을 포함해 그때의 관객 모두에게 힐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상한 그녀>는 ‘수상한’ 선택이다. (웃음) 입양아의 사연을 그린 <마이파더>의 묵직한 울림과 <도
[황동혁] 이번에는 팝콘 먹으면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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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으로 뻗쳐 있다. 본업은 미술평론가이지만 한때는 시사칼럼도 열심히 썼고(“18대 대선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자전거 마니아로도 유명해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이라는 공저도 냈다. 지난해 12월엔 ‘미술평론가가 본 사물과 예술 사이’라는 부제를 단 <사물 판독기>를 출간했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칼럼 ‘반이정의 사물보기’를 다시 손봐 단행본으로 엮었다. 단독 저서는 <새빨간 미술의 고백> 이후 7년 만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지수가 최근 부쩍 치솟고 있다는 반이정 평론가를 <겨울왕국>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만났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던 그는 정작 자신의 신간 얘기보다도 영화 얘기에 더 신나하는 듯했다.
-<새빨간 미술의 고백> 이후 오랜만의 신간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이
[trans x cross] 이래 봬도 나름 ‘결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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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영혼을 품은 소녀? 실제의 심은경이 그랬다. 어릴 때 그대로의 무구한 모습도 여전한데 이따금씩은 갓 스물을 넘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성숙한 대답을 내놓았다. <헨젤과 그레텔>의 똘망똘망한 소녀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아역배우의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심은경은 과감한 성인배우의 역할에 도전하는 대신 3년간의 유학을 선택했다. 두편의 흥행작 <써니>와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의 출연으로 시나리오가 쏟아졌던 시기임에도 심은경은 미련 없이 유학길에 올랐다. “더 큰 배우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한 갈망”과 “시나리오들의 유혹”을 떨치고 심은경은 무사히 유학을 마쳤다. 복귀작이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다. 심은경이 성인이 된 뒤 처음 찍는 작품이거니와 성인 역으로 처음 출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름의 의지가 작용했으리라 짐작하며 오랜만에 찾은 촬영현장은
[심은경] 그녀의 스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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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1954)의 주인공 젤소미나는 성장이 멈춘 여성이다. 이를테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1959)의 주인공인 오스카와 비슷한 캐릭터다. 단 오스카는 나치 독일에서 자의로 성장을 거부했다면, 젤소미나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타의에 의해 성장이 중단된 경우다. 단호하고 광기에 가까운 의지의 오스카와는 달리 감성의 젤소미나는 연약하고 바보 같다. 펠리니에 따르면 전쟁과 파시즘을 겪은 이탈리아의 운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딸이고, 배우지 못했고, 성장하자마자 돈에 팔려가고, 길에 떠돌 운명이며, 결국 이용만 당하다 버려진다. 이탈리아의 관객은 젤소미나를 보고 자기 연민에 울었다. 그런데 전세계의 관객도 그녀를 사랑했다. 말하자면 젤소미나는 시대의 초상화가 됐는데, 그녀를 연기한 줄리에타 마시나는 이 역을 통해 영원히 영화사에 남았다.
펠리니와의 만남
1940년대 초 줄리에타 마시나가 로마대학에 다니며 대학연극반 활동을 할 때, 페데리
[한창호의 오! 마돈나] 고통받는 사람들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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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감독 더그 라이먼 / 출연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 빌 팩스턴, 라라 펄버
일본 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을 원작으로 하는 SF영화로, 외계인과의 전투 중에 사망하게 된 신병이 타임 루프 속에 갇히게 되어 삶과 죽음을 반복해 겪게 되는 이야기다. <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더그 라이먼이 연출을 맡았다. 북미에서 6월 개봉예정.
[WHAT'S UP] <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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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타잔 3D> 밀림의 변호인
[정훈이 만화] <타잔 3D> 밀림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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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처음 발을 내딛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기로 미끄러운 바닥,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 알싸한 소독약 냄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입장하던 순간의 부끄러움, 머뭇거림, 어디에 서서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난처함, 이 모든 것들이 공감각적으로 기억난다. 1분이라도 빨리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수영 선생님께서는 그걸 허락지 않으셨다. 수영장 예비교육을 마친 뒤에 본격적인 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쩌면 ‘일단 벗은 몸에 익숙해진 뒤에야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 십여명이 둥그렇게 서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가릴 곳은 다 가렸는데 어딘가 더 가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난감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수영장에서의 예절과 수업의 진도에 대한 이야기를
[김중혁의 바디무비] 몸의 진풍경을 경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