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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극장 총관객수 2억명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해였다.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그래서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1천만 배우’를 넘어 ‘2천만 배우’를 내다보는 송강호의 <변호인>이 기세등등한 지금, 사실상 20 14년의 카운트다운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무엇보다 2014년 한국 영화계는 단연 사극의 해다. 최민식의 <명량-회오리바다>와 하정우, 강동원의 <군도: 민란의 시대> , 그리고 해양 블록버스터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격전을 벌일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울 듯하다. ‘한국판 <와호장룡>’으로 불리는 <협녀: 칼의 기억>과 현빈이 정조로 복귀하는 궁중 스릴러 <역린>이 그 뒤를 잇는다.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는 세 남자도 주목할 만하다. 이정재는 격투기 스타로 변신하는 <빅매치>를 비롯해 <무뢰한>과 <신세계2&g
흥행의 제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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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의 에필로그 장면은 특이한 여운을 남긴다. 시위를 주동하다 구속된 주인공 송우석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들이 일일이 법정에서 호명된다. 당시 부산 지역 변호사들 가운데 절반 이상 숫자의 변호사들이 변호를 맡았다는 자막이 뜬다. 이 장면은 이상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에 기초했으나 굳이 그걸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전개되는 이 영화는 이 에필로그에 이르러 다시 한번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임을 확인시킨다. 그때까지 송강호의 송우석이었던 주인공에게서 노무현의 그림자가 강하게 얹히는 순간이다.
자연인 노무현을 존경했으나 대통령 노무현의 시대를 늘 불편한 심정으로 지냈던 나는 ‘국가는 곧 국민입니다’라고 울부짖는 영화 속 송우석의 사자후를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한 노 대통령의 말과 병렬시키기 힘들었다. 그것이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이자 한국 사회의 한계임을 인정해도 속이 쓰리는 건 마찬가지다.
권력을 쥐었으나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그의
[신 전영객잔] 영웅의 일대기에서 멈춰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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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때때로 본질을 흐린다. 2013년 영화계에 신선한 활력을 안긴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는 어느덧 오멸 감독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오멸은 <지슬>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저 오멸일 따름이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자신만의 언어, 지속 가능한 자신만의 작업방식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어이그, 저 귓것>(2009), <뽕똘>(2009), <이어도>(2011), <지슬>(2013)까지 오멸의 영화들은 형식적인 성취는 물론 제작 방식에서도 실험과 도전정신 위에 놓여 있다. 변하지 않는 건 그가 멈추지 않을 거란 사실뿐. 새로운 도전의 기운은 오멸 감독의 차기작 <하늘의 황금마차>에서도 어김없이 도드라진다. 호황이라곤 하지만 비슷한 기획영화가 쏟아졌던 2013 한국 영화계를 돌이켜보며 2014년의 오멸은 어떤 결과물로 또 한번 우리의 게으름을 깨워줄지 궁금해졌다. 형제들과
[오멸] “작가가 가장 자주 해야 하는 건 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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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1초까지 알람소리에 맞춰 살아온 ‘플랜맨’ 정석(정재영)은 짝사랑을 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지원(차예련)은 정석만큼이나 정연하고 깨끗하다. 정석은 용기를 내 보지만 그의 고백은 단정치 못한 소정(한지민)에게로 향하게 된다. 계획에 없던 상황, 정석의 머릿속에선 혼란의 적신호가 울려댄다. 게다가 인디밴드가수인 소정은 지원을 빌미로 자기가 꾸린 밴드에 정석을 몰아넣어버린다. 그런데 말이다. 이것 참, 묘한 일이다. 그를 한손에 쥐고 흔드는 이 여자에게 정석은 알 수 없는 두근거림, 혹은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칠칠맞지 못한 데다 지저분하기까지 한 소정의 이상한 매력, 대체 뭘까. 소정의 노랫말들이 그녀를 알아가는 데 작은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나칠 수 없었어. 혼자 웅크리고 있는 널. 외면할 수 없잖아. …
슬퍼 말아요. 삼각김밥. 30초면 돼. 충분해요. 두려워 말아요, 삼각김밥. 이젠 들어와요. 내 입속으로.” <삼각김밥>
아주 잠
[한지민] 완전히 변할 거야 계획 따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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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기타), 추명교(드럼), 장학(보컬), 최창록(기타), 강준형(베이스). 다섯명의 멤버로 구성된 헤비메탈 밴드 디아블로의 2013년은 다이내믹한 한해였다. 우선 디아블로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고(원년 멤버는 김수한, 추명교 두명뿐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밴드 경연대회에 난생처음 출전해 우승을 했고, 디아블로의 음악을 모티브로 게임을 개발했고, 신인 밴드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음악을 하면서 행복하려면 팬, 좋은 음악,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회사가 필요한데 그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된 때가 바로 2013년이었다”고 멤버 최창록은 말했다. 변방의 장르를 꼭 끌어안고서, ‘어떻게 하면 헤비메탈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던 디아블로를 만났다.
-밴드 결성 20주년을 맞은 올해, 디아블로의 다양한 활동을 볼 수 있었다.
=김수한_눈 깜짝할 사이에 1년이 지나간 것 같다. EP앨범 ≪The Keeper
[trans x cross] 음악을 놓아버리는 게 더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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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센던스> Transcendence
감독 월리 피스터 / 출연 조니 뎁, 레베카 홀, 모건 프리먼, 킬리언 머피
세계 최초로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던 천재 과학자가 과학 기술에 반대하는 집단의 공격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그의 두뇌를 인공지능 컴퓨터로 업로드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인셉션> <다크 나이트>의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의 첫 연출작이며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을 맡았다. 2014년 4월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트랜센던스> Transc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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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변호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정훈이 만화] <변호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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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최신가요인가요’라는 난데없는 제목의 음악글 연재 이후 1년 만이다. 돌아오게 되어 기쁘고, 다시 지면을 얻게 되어 기쁘다. 이상하게 <씨네21>에 글을 쓰게 되면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씨네21>이라는 잡지를 그만큼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씨네21>의 내용도 무척 좋아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어도) 주간지라는 형식이 주는 반복 역시 나를 평온하게 만든다. 할 말이 많든 적든, 재미있는 이야기든 아니든, 일주일에 한번은 영화 이야기가 나를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위해, 오직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있고, 카툰을 그리고 있고, 영화를 보고 있고, 정보를 모으고 있다. 그 결과물을 집결한 다음 일주일에 한번씩, 주간지라는 형식으로 나에게 배송해준다. <씨네21>의 필자들이 오직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런 식으
[김중혁의 바디무비] 아름답고도 격렬한, 몸·몸·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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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타이틀에 기재된 숫자는 순위와 무관합니다.
1. [클로즈 업] 그런데 과연 국가가 못하게 할 권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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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잘못 골랐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김선 감독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들여 <자가당착: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일부 장면을 자진 삭제할 것이라고 넘겨짚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2011년부터 계속된 <자가당착: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제한상영가 등급 논란에서 김선 감독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법정으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취소 결정을 이끌어내면서 독자들과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을 끌어냈다.
2. 반어에서 허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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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제목은 역설이다. 이 영화는 교황으로 추대되었지만 그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바티칸 궁을 도망쳐 버린 한 성직자에 관한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강건한 정치철학과 배꼽 잡을 만한 유머 감각을 지닌 이탈리아의 감독 난니 모레티는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연출했
2013년 씨네21의 최다 조회기사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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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로맹 가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자서전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 힘든 책을 종종 써온 이 작가는 여덟살짜리 애인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금붕어, 거미, 심지어 고무신 한짝을 먹어치우고 병원에 실려갔던 사연을 매혹적으로 펼쳐놓는 재주가 있다(<새벽의 약속> 중에서. 개인적으로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구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는 작가의 나이도 여덟살이었다). 실제로도 소설 같은 인생을 산 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단역배우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유럽을 떠돌다가 프랑스에 정착하고, 2차대전 때는 자유 프랑스 공군에 입대해서 나치와 싸우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프랑스 태생도 아니면서 우리로 치면 일제 시대에 독립군으로 활동한 정도의,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경력을 쌓은 셈이다.
종전 뒤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1956년 <하늘의 뿌리>라는 책으로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타고, 다시 “에밀 아자르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흑인만 무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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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볼라뇨가 간 질환으로 세상을 뜨고 몇달 뒤에 출간된 그의 유작이다. 스페인어권 문단으로부터 ‘금세기 최고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스페인과 칠레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한국어판은 다섯권으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80년이란 시간과 두개의 대륙을 넘나들며 수수께끼의 연쇄살인마와 유령 작가를 두 중심축으로 내세워 전쟁, 독재, 대학살로 점철된 20세기 유럽 역사에서 인간의 악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되어왔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도서] 인간 악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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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 소설도 운치 있고 재미있게 써내는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인의 거리감을 발로 뛰어다니며 파악해보자’는 ‘에도 산책’ 기획을 실행에 옮긴 결과물. 미야베 미유키의 첫 에세이이기 때문에 곳곳에 그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사와 아리마사, 교고쿠 나쓰히코와 함께 소속되어 있는 오사와 오피스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을 만날 수 있는, 도쿄 지역에 대한 독특한 여행기.
[도서] 독특한 도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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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공립대학교 관계자에게 들은 얘기. 학교에서 기숙사를 신축하면서 외부 학생으로 절반을 채울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물을 흐린다”는 게 반대 이유.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지금의 20대를 위로와 힐링이 아닌 다소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바라본다. 현재 20대가 생각하는 ‘윤리’와 ‘공정’ 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안 제시는 미흡하지만 관찰기로서는 흥미롭다.
[도서] 20대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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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사랑의 습관 A2Z>의 원래 제목은 <A2Z>이고, 사랑의 ‘습관’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사랑의 순간들을 A부터 Z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통해 재구성하고자 노력하는데 읽어보면 그마저도 어딘지 억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연애소설을 선물해야 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작가요 책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동화 속 구호의 가장 먼 곳에서 싹트고 꽃피는 어떤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이자 화자는 35살로, 출판사에 근무하는 제법 능력 있는 편집자다. 남편 역시 일 잘하는 편집자. 그런데 남편이 ‘그 여자’와의 관계를 고백한다. 엄밀히 말하면 캐물었더니 숨기지도 않고 술술 털어놓았을 뿐인데, 남편이 솔직하게 다 말해주는 통에 더 어쩔 줄 모르게 되어버렸다. 남편과는 아이 없이 동료처럼 지내는 사이. 이전에도 여자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결혼과 사랑에
[도서] 연애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