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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와 정은채. 멀찍이 떨어진 두 여인의 옆얼굴이 대구를 이룬다. 잔다르크가 주인공인 흑백영화 앞에서 정은채가 주인공인 또 다른 흑백영화가 펼쳐지는 것 같은 인상마저 든다. 전혀 다른 시대의 여인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 내밀한 감정이라도 주고받는 것일까. 묘한 긴장감이 어린다.
“잔다르크의 감정이 느껴져 고통스러웠다.” <잔다르크의 수난>을 처음 보고 느낀 감상을 ‘아픔’이라고 말하던 그녀. 현장에서 다시 만난 잔다르크가 이번에는 그녀에게 어떤 잔상을 남길까. 카메라를 등진 정은채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잔다르크의 애상에 젖은 얼굴을 통해 짐작해볼 뿐이다.
“나중에 눈물이 마르면 그때 음악의 힘을 빌릴게요.” 무성영화라는 컨셉에 맞춰 현장에도 음악이 따로 없는 상태. 하지만 정은채는 곧바로 감정을 추어올려 눈물을 떨군다. ‘컷’ 소리가 난 뒤에도 그녀의 눈물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춘정>으로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미랑 감독.
[씨네스코프] 여인의 얼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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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는 부지런히 살다가 노동운동에 눈을 뜨는 싱글맘 선희를 연기한다. <간첩> 이후 드라마에 전념하다가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다. 강도 높은 일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장에서 분위기를 리드하는 그녀는 아들로 출연하는 그룹 엑소의 멤버이자 신인배우인 디오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카트>의 후반부는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대변하는 강도 높은 장면들로 꾸려진다. 작은 힘이지만 아줌마들, 여성노동자들이 뭉쳤다. 노동자들의 살길은 연대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가슴 절절한 장면. 피켓 하나하나가 현실을 방불케 하는 <카트>의 중요 장면이다.
<카트>의 촬영은 김우형 촬영감독이 맡는다. 부지영 감독과는 실제 부부 사이. 24시간 내내 <카트>를 고민할 최적의 파트너다.
마트의 유니폼, 노동조합의 단체복으로 하나가 된 배우들. 김영애를 주축으로 문정희, 신인 천우희(왼쪽부터) 등 여배우들의 앙상블이 카트를 끌고 나가는 동력
[씨네스코프] 우리는 카트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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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시티2> Sin City: A Dame to Kill for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프랭크 밀러 / 출연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조셉 고든 레빗, 에바 그린
<씬 시티>가 9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아직 자세한 줄거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밀러의 원작 그래픽 노블 <씬 시티 2: 목숨을 걸 만한 여자>가 메인 플롯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씬 시티> 특유의 영상미와 액션이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두 감독은 이미 세 번째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북미에서 8월 개봉예정.
[WHAT'S UP] <씬 시티2> Sin City: A Dame to Kill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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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어떤이의 예술세계
[헌즈 다이어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어떤이의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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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노아> 방주를 남기남
[정훈이 만화] <노아> 방주를 남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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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살인사건>은 감탄을 자아내는 트릭과 인상적인 반전, 그리고 들고 다니며 읽기 신경 쓰이는 야릇한 표지로 유명하다.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무심코 챙겼다가 다른 승객이 볼세라 앞표지와 뒤표지를 붙여 손에 꼭 쥐고 읽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도 단숨에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파계 재판>은 그의 법정추리물. 화자는 법조기자이며, 법정에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가 부부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재판장에 선다. 피의자는 사망한 아내쪽과 불륜관계에 있었고, 그 사실을 알아챈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 유기, 얼마 뒤에는 그 아내마저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피의자의 변호사다. 그는 재력을 갖춘 데다 금실 좋고 영민한 아내를 두고 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조사해 검찰쪽과 맹렬히 맞선다.
법정물의 재미는 어쩌면 법의 가혹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죄를 입증할 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인상적인 법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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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접할 때 가장 먼저 꺼내드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제2의’라는 말이다. 매번 ‘제2의 봉준호’, ‘제2의 장준환’, ‘제2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으로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만큼 이 기관을 통해 발굴되는 실력 있는 신인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최익환 원장의 방침 아래 영화계와의 ‘스킨십’이 더 강해졌고, 상업영화의 틀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의 배출이라는 성격이 보다 뚜렷해졌다. 앞서 개봉한 작품 <잉투기>가 상반기 다양성영화 부문에서 호평을 이끈 데 이어,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세 작품이 차례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정훈 감독의 드라마 <들개>(개봉 4월4일)는 고등학생 시절 수제폭탄 제조범으로 소년원에 갔던 청년의 이야기를 청년실업과 관련해 긴장감 있게 엮어냈으며, 유원상 감독의 <보호자>(개봉 4월10일)는 유괴당한 딸을 구하기 위
[flash on] ‘제2의’라는 수식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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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 오타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김소영 교수의 유머러스한 자평이다. 그런 그녀는 아시아영화를 중심으로 한 횡단적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마포문화재단과 공동으로 ‘2014 트랜스 아카데미’를 개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예년에 비해 행사 내용을 더 알차게 구성했다. 3월26일부터 5월28일까지 매주 1회씩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강좌의 주제는 ‘한국영화와 인문학: 미학, 윤리, 정치학’이다. 그간 역사, 정치, 사회학적 방법론으로 영화라는 텍스트를 풍부하게 해석해온 연구자들이 마련한 대중 강좌다. <풍경>의 장률, <수련>의 김이창 감독 등이 초청돼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한다.
-‘트랜스 아카데미’는 언제부터 기획한 건가.
=2000년 문을 연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에서 2007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트랜스 아카데미’를 개최해왔다.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통해 영화이론에 대한 학문적 담
[flash on] 영화이론의 문턱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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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일컫는 여러 종류의 말이 있다. X나 Y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기도 하고, ‘88만원 세대’처럼 구체적인 액수를 쓰기도 하고, ‘인터넷 세대’처럼 새로운 문물의 이름을 빌려오기도 한다.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너는 무슨 세대니?’라고 나에게 (아무도 안 물어봐서 내가 직접) 물어본다면 ‘스니커 제너레이션’(Sneaker Generation)이라 대답할 것이다(이러면서 괜히 새로운 단어 하나 만들어낸다). 나에게 스니커는, 정확히 말해 운동화는, 계급을 나누는 지표였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으며 앞으로도 버리기 힘들 것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지금은 나이키며 아디다스며 뉴발란스 같은 신발들을 누구나 신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신발이 계급이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신지 못하는 아이들은 하얀색 실내화에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로고를 그려넣으며, 뜻하지 않게 미술 실력만 늘어갔다. 내가 그랬다. 나이키 로
[김중혁의 바디무비] 발에게 건네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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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징후 중 하나는 여위어가는 표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감정의 진폭을 게을리 반영한다. 배우도 사람이니 늙어감에 따라 안면근육이 둔해진다. 다만 그들은 캐릭터에 따라 표정의 스펙트럼을 좁혔다 넓힐 수 있다. 강제로 입양된 아들을 수십년 뒤 찾아나서는 <필로미나의 기적>의 주인공 필로미나는, 낙천적 천성과 신앙으로 끔찍한 슬픔을 쓸어 담으며 살아온 할머니다. 그녀를 연기하는 주디 덴치의 클로즈업은, 특정 표정과 감정이 관련돼 있다는 상식을 깨끗이 뒤엎는다. 배우가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된다는 연기의 설화를 그녀의 필로미나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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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만화가, 감독을 가족 친지로 두는 일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진배없다는 평소 믿음이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보면서 확고해졌다. 우선 픽션일 경우, 극중 캐릭터의 말과 행동에서 내 모습의 일부를 발견한다고 치자. 작가/감독이 아무리 “넌 영감을 줬을 뿐이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옛날 옛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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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백프로’로 불리는 천재 프로 골퍼 백세진(윤시윤). 승승장구하던 그는 방탕한 생활로 위기를 자초한다. 음주 사고로 친구도 잃고 목소리마저 안 나오는 상태로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옛 은사가 교장 선생님으로 있는 섬마을로 향한다. 그곳에는 전교생이 6명뿐인 폐교 직전의 초등학교가 있다. 아이들을 스포츠 특기생으로 키워 폐교만은 막아보려는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세진을 잡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섬에 머물게 된 세진은 골프를 배우려는 아이들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중에는 골프에 재능을 보이는 병주(여진구)도 있다. 술주정뱅이에 걸핏하면 매를 드는 아버지 밑에서 힘겹게 운동을 해나가는 아이다. 모든 게 부족한 상황에서 세진과 아이들은 과연 학교를 지킬 수 있을까.
<백프로>는 학교를 사수하려는 섬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공동 프로젝트다. 세진을 섬에 주저앉히려는 섬사람들의 단결된 행동이 과장되고 엉뚱하나 재미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세진이
섬마을 학교를 사수하라 <백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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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 전, 크로켓, 카레라이스 등 푸짐한 길거리음식이 널린 B급 음식 대축제장. 그중 제일은 장인이 전설의 소스를 이용해 만드는 볶음국수다. A급 음식 신봉자인 로열 황태자(이광수)는 축제장에 쳐들어가 B급 음식을 모두 없애려 한다. 한편 짱구(박영남)와 친구들은 부모 몰래 축제에 가서 볶음국수를 먹을 계획을 세우고 축제장으로 출발한다. 소스를 운반하던 미녀는 로열 황태자가 보낸 요원들에게 쫓기던 중 짱구 일행을 만나 소스를 짱구와 친구들에게 맡긴다. 짱구와 친구들은 먼 길을 떠나며 소스 항아리까지 떠안게 된다.
전편에서 우주의 운명을 책임질 기로에 놓였던 짱구가 다시 떡잎마을로 돌아왔다. 시리즈의 원래 성격대로 소소한 소재를 잔뜩 부풀린 이야기다. 지나치게 황당무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유머가 절로 웃음을 유발하는데 스테이크, 캐비어, 푸아그라, 송로버섯 등 고급 음식재료의 의인화가 귀엽고 참신하다. 짱구 일행이 카트를 타고 A급 요리사들의 주방을 누비게 되는 추격 장면도 박
짱구 시리즈 21번째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엄청 맛있어! B급 음식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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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서바이버>는 2005년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 펼쳐진 ‘레드윙 작전’을 다룬다. 레드윙은 탈레반 부사령관 ‘아마드 샤’를 제거하기 위해 네이비실 정예요원 4명이 투입된 작전명이다. 제목 그대로 외롭게 혼자 살아남은 마커스 러트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매력은 실감나는 전투 신을 보는 것이다. 아니, 본다기보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와 장비들은 미 육/해/공군의 전폭적인 협조로 사실대로 재현된다. 육군은 치누크, 아파치 헬리콥터 등을, 해병대는 차량과 실제 해병 등을 지원했다. 바그람 공군기지 등 작전본부의 모습 역시 리얼리티를 십분 살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레드윙 작전은 실패했다. 치누크 헬리콥터 한대가 산산조각났고 거기 타고 있던 작전 총괄 지휘자 에릭 크리스텐슨(에릭 바나) 소령과 16명의 특수부대원이 전원 사망했다. 이 일로 인해 고가치표적(high value target)을 제거하는 미군의 전략 자체가 수정되었다고 한다. 하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쳐진 ‘레드윙 작전’ <론 서바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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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빅 무니즈의 관심사는 어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이 “단 2분만이라도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바뀐다”라고 믿는다. 브라질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신이 찰나의 우연으로 뉴욕에 와 사진가가 된 것부터가 그러하다. 무니즈는 초콜릿 시럽, 설탕 등으로 그려낸 빈민의 초상으로 현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다음 타깃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에 자리한 자르딤 그라마초의 사람들이다. <웨이스트랜드>는 무니즈의 작업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자르딤 그라마초엔 세계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 이곳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카타도르들이 무니즈의 새로운 소재이자 동료다. 무니즈는 그들의 모습을 촬영한 뒤 그 사진을 다시 재활용 쓰레기로 모자이크한다. 모자이크 작업은 카타도르들과 함께 진행하고, 완성된 모자이크를 다시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 최종 결과물이 된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탄생한 예술 <웨이스트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