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자>는 유괴범의 지시에 속수무책 끌려다니는 부모의 무기력함,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의 자식을 유괴해야 하는 딜레마를 다룬다. 소재로만 보자면 <그놈 목소리> <세븐데이즈> 등 2000년대 후반 한국 스릴러들을 연상시킨다. 긴박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은 유사하지만, <보호자>는 훨씬 생활에 밀착된 느낌을 준다. 남의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먹이는 모습이 상세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유괴의 동기는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유명인사도 아니고 재산이 많지도 않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왜 유괴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유괴범은 유괴의 이유가 아빠들의 죄 때문이라 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딜레마를 던지고 인물들을 끝까지 갈등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추격전의 스릴이나 반전의 묘미는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다.
아담한 꽃가게를 운영하는 전모(김수현)는 저녁 무렵 이상한 전화
유괴범과 두 아버지 <보호자>
-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어린 소영(전수진)에겐 사회적 기반도 생활력도 없다. 아이를 원하는 불모의 여성 승연(이은우)은 소영에게 아이를 낳아줄 것을 간청한다. 소영과 승연은 시골의 별장에서 격리된 생활을 시작한다. 한달에 한번 별장에 들르는 남편(이승준)은 아내와의 성관계만을 바랄 뿐 아이에 대한 아내의 열망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 채 냉담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영객 화가(김영재)와 거친 사냥꾼들은 그녀들의 집 주위를 배회한다.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들의 불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들의 출몰은 별장 주위에 불온한 기운을 드리운다.
영화 <신의 선물>은 미혼모와 대리출산, 생명과 성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김기덕의 각본에 어느 정도 충실하다. 연출은 <홈, 스위트 홈>으로 데뷔한 김기덕 연출부 출신인 여성감독 문시현이 담당했다. 영화는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있음직한 일들이 아니라, 추상적인 공간에서 욕망과 동기만으로 추상화된 인물들이
미혼모와 대리출산, 생명과 성 <신의 선물>
-
작고도 소란스러우며 놀라운 세계다. 프랑스에서 온 애니메이션 <슈퍼미니>는 꼬마 무당벌레가 개미들과 함께 경험하는 모험을 다룬다. 3D로 제작된 곤충 캐릭터와 실사 배경의 자연 풍경이 어우러져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산통을 느끼고는 급히 산을 내려간 신혼부부가 남기고 간 간 피크닉 도시락에는 개미들이 탐낼 달콤한 것들이 가득하다. 생명의 신비한 탄생은 작은 곤충의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갓 알을 깨고 태어난 아기 무당벌레 삼 남매 중 한 꼬마는 가족과 함께 첫 비행을 하다 짓궂은 초파리떼에게 쫓겨 낙오되고 만다. 거칠고 위협적인 세계에 홀로 남겨진 꼬마는 비를 피해 우연히 각설탕 상자 속에 들어갔다가 검은 일개미들과 함께 멋진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은 다채로운 경관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국립공원 로케이션 촬영으로 아름다운 실사 배경을 담아내는 데 공들였다. 인간의 언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들릴 법한 자연의 소리들이 감정과 의미
작지만 위대한 도전을 만들어내는 세계 <슈퍼미니>
-
기원전 1200년, 티린스의 왕비 알크메네(로산느 매키)는 전쟁을 즐기는 남편 암피트리온(스콧 앳킨스)의 성품에 지쳐서 여신 헤라에게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알크메네는 제우스신의 아이 헤라클레스(켈란 루츠)를 잉태한다.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왕비를 몰아세우고, 첫째아들 이피클레스(리엄 개리건)만 편애한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헤라클레스는 헤베(가이아 와이즈)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 사이를 질투한 형 이피클레스가 아버지와 결탁해 그를 이집트로 추방한다. 그곳에서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는 검투사로 나서고, 동료 소티리스만이 그의 곁을 지킨다. 둘은 힘을 합쳐 다시 티린스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다. 헤라클레스가 암피트리온을 물리치고 그리스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을 영화는 긴박하게 쫓는다.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는 <클리프행어>(1993) 등으로 1990년대 초반 액션영화의 마에스
인간적인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
-
-
인도에는 무려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는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배달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은퇴를 앞둔 회계사 사잔(이르판 칸)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 그 역시 작은 식당에서 도시락을 배달시키곤 하는데 하루는 다른 도시락이 도착한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그 정성에 감탄한 사잔은 도시락을 말끔히 비워 다시 돌려보낸다. 물론 이는 작은 배달 사고였지만 도시락의 주인인 일라(님랏 카우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 것에 큰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다음날도 맛있는 도시락에 다음과 같은 짧은 편지를 넣어 보낸다. “맛있게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부터 사잔과 일라는 도시락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곧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기 시작한다. 유머러스하던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이때부터다.
먼저 우리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인도의 문화와 두 남녀의 진솔한 소통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기획이 눈에 띈다.
도시락을 통한 두 남녀의 진솔한 소통 <런치박스>
-
나이를 먹는 것이 괴로워지는 것은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어른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아이들에게 생일이란 생일 선물과 더 큰 자유에 가까워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발상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알렉산드로 아브라나스의 <은밀한 가족>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나이듦의 가장 가혹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다.
안젤리키(클로에 볼로타)의 열한 번째 생일. 가족들이 모여서 파티를 한다. 파티는 정갈하지만 흥겹지는 않다. 할아버지와 춤을 추던 안젤리키는 가족들이 모여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린다. 경찰과 사회복지사가 아이의 자살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인다. 하지만 집안은 ‘지나치게 평온’하고, 아이는 학교생활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안젤리키의 할아버지는 늘 아이들을 직접 학교에 데려다주고, 방학 직전 나오는 성적표를 직접 받으러 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정도로 열성이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복종하고 어
‘지나치게 평온한’ 집안 <은밀한 가족>
-
여자고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준기(장혁)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생님이다. 이제 갓 부임한 준기는 당돌한 아이들의 행동에 놀라곤 한다. 짓궂기로 유명한 한 아이는 수영 강습시간에 인공호흡법을 알려주는 준기의 목을 끌어당겨 입맞춤을 한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당황하는 준기의 모습에 깔깔거리며 즐거워한다. 준기는 아이들이 도가 지나친 장난을 해도 적당히 받아넘기며 교사와 제자의 거리를 지킨다. 그런 준기지만 다른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영은(조보아)의 적극적인 질문에는 말문이 막힌다. 영은은 스스로 겁이 없는 아이라며 준기를 도발한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방과 후, 우연히 영은과 준기만 텅 빈 학교에 남게 된다. 영은에게 끌리는 본능적인 욕망을 가까스로 다스리던 준기는 잠시 이성을 잃고 영은의 유혹에 넘어간다. 갑작스러운 정전은 이성이 잠시 정지된 준기의 상태를 암시한다. 준기는 순찰을 돌던 경비원의 발소리에 정신을 차리지만, 이 일을 빌미로 영은은 준기를 옥죄기 시작한다.
사랑에 대한 착각과 망상 <가시>
-
<방황하는 칼날>의 상현(정재영)은 경력이 오래된 공장 노동자다. 일거리가 늘 많아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몇년 전 아내를 암으로 잃고 중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밤 늦게까지 혼자 지내는 딸에게 항상 미안하다. 사건이 있던 날 밤에도 상현은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야근을 하고 늦게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집에 있어야 할 딸이 없다. 며칠이 지난 뒤 경찰(이성민)이 딸의 죽음을 알려온다. 딸이 성폭행당한 뒤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인근 미성년 불량배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망을 좁힌다. 한편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범인이 잡히기를 바라며 경찰서를 배회하던 상현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한통의 문자가 날아든다. 범인 중 한명의 집을 찾아간 상현은 거기서 딸이 성폭행당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들어온 범인 중 한명과 마주치고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이제 또 한명의 범인이 남았다. 상현은 그를 쫓아가 죽이기
선량한 피해자, 또 다른 가해자가 되다 <방황하는 칼날>
-
<인간중독>
제작 아이언팩키지 / 감독 김대우 출연 송승헌, 임지연, 조여정, 온주완 / 제공, 배급 NEW / 개봉예정 5월15일
때는 1969년이다. 혼돈의 시대이자 전쟁의 시대. 베트남전에 참전한 김진평(송승헌)은 촉망받고 존경받는 군장교다. 그의 아내 이숙진(조여정)은 그런 그가 군의 장성으로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란다. 그즈음 김진평의 부하 경우진(온주완)이 김진평 부부가 거처하는 군 관사로 이사를 오게 된다. 경우진의 아내이자 화교 출신의 여인 종가흔(임지연)도 함께 온다. 그러자 이곳 군 관사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랑 혹은 스캔들이 피어난다. 김진평과 경우진의 아내 종가흔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음란서생>과 <방자전>을 연출한 감독 김대우, 멜로영화적 감성을 지닌 배우 송승헌, 신인이지만 매력적인 이미지를 갖춘 임지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Coming Soon] 혼돈의 시대에 피어난 스캔들 <인간중독>
-
며칠 전 와세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수님, 그리고 10여명의 학생들을 학교로 초청하여 토론회를 열었다. 격년으로 중요한 현장을 직접 학생들과 방문한다는 교수님은 역시 언론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내뱉는 말만은 소위 ‘야마’가 확실했다. 그가 던진 야마는 다름 아닌 ‘반지성의 시대’. 일본과 한국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그가 내린 진단이다. 좌우의 문제 혹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현상은 ‘반지성’이 횡행하는 게 본질이라는 것. 지인의 소개를 통해 열게 된 토론회라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사실 ‘지성’이라고 하는 말이 주는 엘리트주의적 어감으로 인해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았다. 지성이 주는 위선적 느낌, 잘난 척에 대해 거부감이 많았고, 그래서 솔직한 ‘감성’을 프로그램에 담아내는 데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만든 <지식채널e>는 ‘감성 지식’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프로그램을 만들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반정치의 시대
-
단둘뿐인 공간에서 ‘선생님의 남편이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고 같은 방을 쓴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서툴게 말을 잇는 스무살 연하의 남자를 바라보는 마흔살 여자의 얼굴. 침착하려 애쓰는 표정 안쪽으로 사랑의 말들을 흡수하는 그 얼굴에 도리어 이쪽이 무언가를 들킨 것처럼 긴장하고 만다. 독학으로 재능을 쌓은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나 서한그룹 예술재단 산하 아트센터의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처럼 범상치 않은 부류의 사랑에 공감의 숟가락을 얹기 뭣해서, 사바나 초원의 생태계 다큐인 양 거리를 두려 해도 쉽지가 않다. JTBC 드라마 <밀회>를 볼 때면 이런저런 감정 중 유독 수치심에 반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카메라는 혜원이 선재를 보는 시점으로 연하남의 수줍은 질투를 화면 가득 서비스하는 대신, 선재를 올려다보는 혜원이 어떻게 반응하고 언제 이성의 끈을 놓는지 측면에서 기록한다. 선재에게 달려들어 키스하고도 “나 지금 너 아주 무섭게 혼내준 거
[유선주의 TVIEW] 숨을 곳 없는 수치심
-
profile
영화
2014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2009 <노먼> <캐리어스>
2007 <블랙 아이리쉬>
2005 <링2>
2004 <실종>
2002 <노 굿 디드> <상실의 시대>
드라마
2011∼2013 <리벤지1∼3>
2011 <비욘드 더 블랙보드>
2010 <벤허>
2006∼2010 <브러더스 앤드 시스터스1∼5>
2007 <Law& Order: 성범죄 전담반8>
2002∼2006 <에버우드1∼4>
2002 <글로리데이즈> <속죄>
2000 <세기의 연인 재키> <유령캠프>
오랫동안 춤을 춰온 사람은 몸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나보다. 검색 사이트에서 그녀의 얼굴사진을 몇초간 쳐다보면서 든 생각은 “체조 선수처럼 생겼다”였다. 아니나 다를까
[who are you] 에밀리 반캠프 Emily Van Camp
-
영국의 찌뿌둥한 날씨가 사람으로 변한다면? 바로 스티브 쿠간 같은 모습의 인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웬만해선 잘 펴지는 법이 없는 그의 미간은 처음 만난 사람이 오해하기 딱 좋을 정도의 주름이 잡혀 있다. 대개의 작품에서 단정한 슈트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나타나는 이 남자는 겉모습만 봐서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이나, 그의 차분한 목소리엔 상대방에 대한 거리감과 퉁명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곤경에 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그 모습이 큰 웃음을 준다. 짐 자무시가 연출한 옴니버스영화 <커피와 담배>의 아홉 번째 에피소드, <사촌?>의 한 장면. 배우 앨프리드 몰리나를 만난 스티브 쿠간은(실명으로 출연한다!) 자신이 더 잘나가는 배우라고 생각하며 ‘알고 보니 우리는 사촌 지간’이라는 몰리나의 말을 들은 체만 체 한다. 연락이나 하고 지내게 전화번호나 알려달라는 몰리나의 제안을 모호한 대답만 늘어놓으며 교묘하게 거절하던 쿠간은, 촉망받는
[스티브 쿠간] 나의 진심을 줄게요
-
영화 역사상 최고의 키스 장면은 무엇일까. 앨프리드 히치콕의 <오명>에서 캐리 그랜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나누는, 위험천만한 키스? 혹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에서 마시모 지로티와 클라라 칼라마이가 하는 의미심장한 키스는 아닐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하나의 좋은 참고자료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었다.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25년의 작업 끝에 200여장의 영화 포스터와 스틸 속 명장면으로 꼽히는 키스 신을 수록한 책 <입맞춤 수집가>(il collezionista di baci)를 낸 것이다.
“나는 입맞춤으로부터 비롯되는 다양한 떨림에 주목한다. 키스는 영화의 에필로그, 전환점, 분기점의 핵심이 되는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영화 속 키스 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비슷한 키스 신으로 보일지 몰라도 각각의 영화가 의도하는 입맞춤의 효과는 저마다 다
[로마] 떨리는 입맞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