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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출신 스티브 매퀸 감독은 구도의 파괴력을 잘 안다. 때로는 지나치게. 매퀸의 숙고에서 비롯된 <노예 12년>의 몇몇 숏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계속 쑥쑥 자라나 가슴을 파고들고 뇌리에 우거진다. 노예가 된 솔로몬(치웨텔 에지오포)은 백인 감독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간신히 발끝만 땅에 닿도록 목이 매달린다. 버둥거리는 그의 등 뒤에서 다른 노예들은 일과를 계속하고 벌레가 울고 바람이 분다. 이것이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평화로운 세계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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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의 포크 싱어 르윈(오스카 아이작)은 고생스런 여행 끝에 유명 매니저 버드 그로스만(F. 머레이 에이브러햄) 앞에서 실력을 보일 기회를 얻는다. 르윈의 노래를 듣고 난 버드의 평은 명쾌하다. “솔로로는 안 되겠어. 듀엣이었다고? 재결합하게.” 그러나 르윈의 파트너는 자살했으며 르윈에게는 듀엣이건 트리오건 새로운 팀의 일원이 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인사이드 <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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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사주명리학에서 역마(驛馬)는 살(煞)로 분류되었다. 이젠 그렇지 않다. 이제는 이동성과 유목생활이 가치를 인정받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작고, 가볍고, 빠른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오락과 소비는 유연성과 재미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는데, 그 결과는 뜻밖에도 새로운 방식의 감시체계다. <액체 근대> <유동하는 공포>를 비롯한 저술활동을 통해 현대사회의 유동성에 주목해온 지그문트 바우만은 1990년대부터 감시 연구에 집중해온 사회학자 데이비드 라이언과의 대담집 <친애하는 빅브라더>를 통해 감시사회로서의 현대사회를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대화’(둘 사이에 장기간에 걸쳐 오간 메일)를 묶은 것이기 때문에 쓰이는 언어와 논리전개 과정이 따라가기 쉬운 편이다. 전제는 이렇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감시조차도 국민국가 안에서의 그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권력은 국민국가 내부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공간과 역외 공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애틋한 자발적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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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으로서의 한국인이라는 개념은 그 출발부터가 수상쩍기 그지없지만 최근 들어 이전과 비할 수 없이 위태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농업이 주인 근교 혹은 지방도시를 지나다보면 애를 업은 아기엄마가 동남아에서 온 경우가 많고 또한 그만큼 많이 보이는 경우가 공장지대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 책은 한국에 사는 이주자의 삶과 일을 담은 르포르타주이자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주자를 대하는 방법의 해설서다.
[도서] 한국에 사는 이주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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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1980년대’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은 1982년 봄부터 86년 2월까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산문을 엮은 것이다. 미국 잡지며 신문을 뒤적거리며 스크랩한 뒤 그걸 일본어로 정리해 원고를 쓴 것이다. 그 묶음을 2014년에 읽자니 그야말로 “아! 그리운 80년대여!” 하는 심정이 된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콜라(광고)전쟁, <스타워즈>의 츄바카가 차례로 등장한다. 심심한듯하지만 무릎을 치게 하는 에세이를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또 한번 만난다.
[도서] “아! 그리운 80년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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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동물을 추적하는 두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라고 할 수 있지만, 다 떠나서 그저 웃기고 마음 찡한 읽을 거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 개정신판이 나온 <마지막 기회라니?>에는 두 필자의 사진과 더불어 책 속에 등장하는 코모도왕 도마뱀, 흰코뿔소 등의 사진이 실려 있으며, 리처드 도킨스의 인상적인 서문도 추가됐다. 이 책에 실린 동물들 중에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아 멸종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으니, 웃다 보면 마음이 아플 수밖에.
[도서] 웃기고 마음 찡한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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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적 관점은 영화분석의 화두 중 하나다. 영화를 바라볼 때 순수하게 텍스트 내부의 요소만을 고려할 것인가, 아니면 감독의 영화세계와 전작까지 고려할 것인가. 영화가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봤을 때 작가론은 그 세계의 문을 여는 유효한 방식이다. 때로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감독의 가치관은 물론 어린 시절의 추억. 심지어 사소한 습관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난해해 보이는 거장의 영화세계가 사소한 실마리를 계기로 단번에 이해되는 통쾌한 경험. 이런 측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은 실로 재밌고 충실한 안내서다.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자서전 이상이다. 구로사와 감독이 자신의 출생부터 학창 시절, 영화계 입문부터 <라쇼몽>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될 때까지의 삶과 기억을 꼼꼼하게 기록했으니 형식적으로는 완벽히 자서전이다. 하지만 소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소설가 우에쿠사와의 우정이나 자신을 영화로 이끈 형의 존재 등 빼곡
[도서] 책 제목이 ‘신의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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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회째를 맞은 마리끌레르영화제는 공식 명칭만 세번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소규모 영화제라 출발이 순조롭지 않은가 싶어 일단 지켜보는데 준비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개/폐막작으로 선정된 <아메리칸 허슬> <노예 12년>을 비롯해 지난해부터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는 34편의 국내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총집합했다. 기우뚱거리는 소형선에 뷔페식 만찬을 차려낸 사람은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직을 사임하고 곧장 마리끌레르영화제로 돌아온 오동진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영화제 비수기라는 2월을 틈타 강남 한복판인 청담동에 “화톳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노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어딘가 이질적인 것들의 모음 같다는 인상이다. 그것부터 물어봤다.
-201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JIMFF)와 패션지 <마리끌레르>가 함께한 ‘마리끌레르필름페스티벌+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시작이었다.
=당시 제천시는 큰 예산을 들이는데 영화제가 일
[flash on] 예술적이되 ‘더’ 대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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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성격의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 싸우다 정드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있는 <여배우는 너무해>는 연예가 가십과 노출 연극이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 걸그룹 출신의 연기자 나비(차예련)는 출연한 텔레비전 드라마를 말아먹는 발연기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온갖 가십의 먹잇감인 나비는 톱스타로서 유명세와 부를 가졌지만 배우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예 홍진우(조현재) 감독은 세계 영화제에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노출 수위 때문에 국내 개봉을 못하고 있는 처지다. 편집된 베드신 동영상이 떠돌고 있는 현실에 분개한 홍 감독은 연극 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다시 올려 관객의 평가를 받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노출 수위가 높다보니 출연하려는 여배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애국가 시청률’ 때문에 배역이 없어 고민인 나비와 여배우를 구하지 못해 곤혹스러운 홍 감독의 첫만남은 냉랭했다. 날선 자존심을 세우며 상대를
사사건건 부딪히는 두 남녀의 로맨틱 코미디 <여배우는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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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만 가득한 북극의 작은 마을. 악의 정령에 영혼을 잃어버린 주술사 크룰릭이 벌인 몹쓸 짓에 화가 난 북극의 수호신 세드나는 마을의 모든 동물이 사라지게 하는 저주를 내린다. 사냥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위기에 빠지고,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사릴라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디야(장민혁)와 부족장의 아들 사냥꾼 푸툴릭(윤세웅), 그리고 푸툴릭의 여자친구 애픽은 마을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이디야는 자신에게 주술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올겨울 내내 <Let it go>를 부르며 아직도 엘사의 화려한 마법에 빠져 있다면, <이디야와 얼음왕국의 전설>은 얼마간 심심한 애니메이션일지도 모른다. 북극의 원주민인 이누이트족들의 모습을 본떠 만든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으며,
이누이트족의 신화 속 이야기 <이디야와 얼음왕국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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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묘미는 다종다기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집중력과 인내심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친절한 설명도 없으며, 오히려 내용의 상당 부분을 거둬내서 어떤 관객에게는 불친절한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웃음도 자비도 없는 이 냉정한 서사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강렬함을 부인할 수 없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는 독일을 배경으로 쓴 클라이스트의 원작을 영화화했다. 감독은 일찌감치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으나 실행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세월만큼 원작의 의미를 분석하고 해체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든 공력을 짐작할 수 있다.
미하엘 콜하스(매즈 미켈슨)는 말 상인으로 사업 수완이 좋아 넓은 영지와 집을 소유하고 있다. 평소처럼 장에 내다 팔 말들을 끌고 다리를 건너려는데 갑작스레 통행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젊은 새 남작이 임의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이다. 전에 없
인간적인 고뇌와 선택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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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일까? 기업의 이윤과 사회적 가치는 공존하기 힘들어 보인다. 소통과 공감의 공동체가 와해되고 노동과 복지에서 소외된 계층이 늘어가자 최근 이들에 주목하는 ‘사회적 기업’이 대두되고 있다. <미스터 컴퍼니>는 약육강식의 패션 생태를 바꿔보겠다고 나선 사회적 벤처기업의 도전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윤리적 기업문화에 대한 최근 영화의 반성적 경향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2009년 삼성전자, 네이버, 다음 등 대기업을 그만둔 젊은이들이 대안적 의류사업을 꿈꾸며 모였다. 먹이사슬 하단에 있는 영세 업체를 착취하여 브랜드 가치만 집적하는 소위 ‘흡혈귀’적 패션계에 작은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포부였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율적 일터의 재미는 사라져가고 관계는 팍팍해져만 갔다. 이상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CEO와, 직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보다 가까운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
사회적 벤처기업의 흥망성쇠 <미스터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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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우(최성호)는 지금 위험한 존재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지만 슬픔과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 없어 괴롭다. 헌우는 선배가 집을 비운 사이 그곳에서 며칠간 머물게 된다. 선배의 집 주변에는 개발 중인 산이 하나 있다. 선배는 떠나기 전에 그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는데, “송장을 치우기 싫다”는 것이 하나였고, 또 다른 하나는 “노루 사냥을 위해 산속에 쳐둔 덫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혼자 남은 헌우는 어머니의 유품을 태우는 나름의 의식을 치른 뒤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다음날 그는 뒷산에서 여자의 비명을 듣는다. 소리가 난 곳에는 여자(김진욱)가 노루 덫에 걸려 있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자살 유예기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죽음으로 끌어오는 인력이라면 노루 덫에 걸린 여자는 그를 죽음에서 밀어내는 척력이다. 적어도 여자가 그의 곁에 있는 동안에는 그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여자는 누군가에게 쫓긴다. 남자에게 어머니라는 그늘이 옅어지는 동시에 여자에
한 남자의 자살 유예기 <레바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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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닐스의 모험>은 여성 최초로 1909년 노벨상을 받은 스웨덴의 문호 셀마 라게를뢰프의 아동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애니메이션의 대가 오시이 마모루가 1982년 연출한 작품을 2009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손본 것으로, 극장 개봉은 한국이 최초다. 국내에는 1980년대에 명절특집 장편만화로 소개된 바 있고, 1990년대에 TV시리즈로 방영됐던 추억의 만화영화다.
일요일, 부모님이 교회에 간 사이 홀로 남은 닐스는 요정 할아버지를 괴롭히다 난쟁이가 되어버린다. 평소 그의 장난에 시달리던 가축들은 작아진 닐스를 공격해온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닐스는 얼떨결에 기러기떼의 비행에 동참하게 된다. 날고 싶은 집거위 모르텐과 작은 수다쟁이 햄스터도 함께한다. 빨간 여우, 족제비, 수달의 집요하고 어수룩한 공격에 용기와 지혜로 맞서는 닐스는 인간에게 적대적이던 동물들의 믿음을 얻게 된다. 철새의 고향이자 꿈과 희망의 땅인 라플란드를 향하는 닐스와 친구들은 너른 세계를 누
학교가 아닌 자연에서 배우다 <닐스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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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살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공연 참여를 미끼로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로서는, 아무리 자신이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자유인’이라고 항변해봐도 소용이 없다. 그런 그에게 노예 신분과 함께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그는 선량한 백인으로 보이는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팔려간다. 하지만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빈더)라는 악명높은 두 번째 주인을 만나면서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다른 어떤 노예보다 높은 목화 수확량을 자랑하며 에드윈의 총애를 받는 팻시(루피타 니옹고)와 그런 팻시를 질투하는 엡스 부인(사라 폴슨) 사이에서 그는 노예제도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렇게 고된 노동과 끔찍한 매질 속에서도 그는 가족에게 다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헝거>(2008)와 <셰임>(2011)으로 주목받은 스티브 매퀸 감
1840년대 미국의 ‘노예제도’ <노예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