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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예술의 양식을 ‘편차’라고 말한다면, 넓은 의미에서 그 다양성 속에는 시차 역시 포함될 것이다. 3월11일부터 4월1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멀티플렉스의 포화로 아쉽게 놓친 최신 영화들을 모아 ‘동시대 영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최신 국내 개봉작과 미개봉작 중 높은 영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많이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을 모아 ‘시차’라는 타이틀로 한데 묶는다. 동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이 지닌 개성적인 편차를 통해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담론을 주고받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체 프로그램 중 16편은 국내 개봉작들이다. ‘바티칸’이란 무거운 소재를 우아하면서도 즐겁게 푼 난니 모레티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전하는 모호하고 세련된 우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 모데라토로 흘러가는 스릴러 <사이드 이펙트>를 비롯해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콩 호텔>과 브루노 뒤몽의 <까미유 끌로델>,
[영화제] 시간의 틈을 메우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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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화제작을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sia Cinema Fund, ACF) 지원작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별해 상영하는 ‘ACF 쇼케이스 2014 아시아 독립영화의 미래’가 3월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인디플러스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몽골, 타이 등에서 온 6편의 극영화와 4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올해 주제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미래’다. ‘미래’라는 단어와는 대조적으로 회고적 성격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산다>와 <콘크리트 클라우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상황을,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는 1977년 정부 탄압 시기를 각각 회고한다.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회고를 담은 <못> 역시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회고가 현재 완료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고는 과거에 머무는
[영화제] 부산에서 놓친 영화를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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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밤문화의 여왕이던 미스 신(민송아), 미스 고(한규리), 미스 최(유선영), 미스 리(태우)는 화려하지만 고된 서울 생활을 접고 전북 진안으로 떠나 ‘미스 콜 다방’을 개업한다. 전설의 ‘나가요’로 불리던 룸살롱 에이스들이 시골 마을에 도착하자 일대 소동이 일어난다. 동네 남자들, 괴이한 변태,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서 찾아온 남성들로 인해 다방엔 바람 잘 날 없다. 최근 복고몰이나 사투리의 유행에 편승한 혐의도 없지 않다. 케이블 드라마 <푸른 거탑>의 말년 병장 최종훈의 스타성과 함께 전북 진안의 지방색과 사투리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진안의 관광명소와 토산품, 숙박업소들이 다수 등장한다. 심지어 다방의 여성들은 토산품의 홍보모델을 하기도 한다. 영화는 그녀들이 윤락업을 접고 펜션형 홍삼카페를 개업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영화 <나가요 미스콜>은 제목부터 노골적이고 과감하다. 비합법적 성매매의 온상인 룸살롱이나 콜다방의 여성들이 주인공임
에로비디오의 추억 <나가요 미스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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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와 맞서 싸운 건 스파르타뿐만이 아니었다. 스파르타의 300 특공대가 육지에서 왕의 군대와 싸우고 있었다면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 연합군은 바다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설리번 스태플턴)은 페르시아에 항복하는 대신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아르테미시아(에바 그린)의 함대와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페르시아 전쟁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살라미스 해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이다.
잭 스나이더는 <300>(2007)에서 ‘정의의 화신’인 스파르타군과 싸우는 페르시아를 절대악으로 설정하고 이들을 ‘괴물’로 묘사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이번 <300: 제국의 부활>은 전작의 실수를 피하려고 나름 노력하지만 ‘우월한 서방 vs 미개한 비서방’의 대립 구도는 여전하다. 특히 주인공이 “자유”, “민주주의”, “정의”를 노골적으로 외치는 장면들과 페르시아군을 살인광으로 묘사한 장면들은 이 영화를 마음 편히 즐기기 어렵게 만
살라미스 해전의 시작 <300: 제국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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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이 돌아왔다. 마법의 손이라 불리는 도박계의 신(神) 켄(주윤발)은 오랜 친구 벤츠(허소웅)와 그의 아들 쿨(사정봉), 그리고 사촌 칼(두문택)을 마카오로 초대한다. 한편, 세계 최대 자금세탁 조직의 보스 고 회장(고호)은 보디가드 겸 킬러(장진)를 이용해 내부 스파이를 죽인다. 이에 그 스파이와 함께 조직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여자 경찰(경첨) 또한 위험에 처하면서 고 회장을 쫓던 중국, 홍콩, 마카오 경찰이 연합하여 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켄은 목숨을 담보로 한 일생일대의 도박 경기를 시작한다.
<주윤발의 도성풍운>의 원조이자 국내에 <정전자>로 소개됐던 <도신>(1989)은 유덕화, 알란탐 주연의 <지존무상>(1989)과 유덕화, 주성치 주연의 <도협>(1990) 사이에서 이른바 ‘홍콩 카지노무비’의 전성기를 대표했던 영화다. 그 모두 왕정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원규, 유진위 감독, 주성치 주연의 <도성
목숨을 담보로 한 일생일대의 도박 <주윤발의 도성풍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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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는 평범한 강아지가 아니다. 골칫덩어리였던 커다란 귀를 통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비포는 친구와 함께 온 세계를 여행하고 다니며 위기에 빠진 동물들을 도와준다. 비포에겐 참으로 많은 친구가 있어, 그의 생일이 되자 전세계의 동물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생일 파티에서 누군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자가 낯선 시간속으로 비포와 친구들을 초대한다.
<하늘을 나는 강아지, 비포와 친구들>은 시간 모험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왕국을 거쳐 신비한 스톤 에뮬릿을 모으러 다니는 비포와 친구들의 도전과 성장을 다뤘다. 본래 시간이란 네 가지 계절의 순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사계절의 수호자들은 신비한 마법의 스톤 에뮬릿을 훔쳐 한 계절만으로 된 왕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이러한 무질서가 지속되면 타임 아일랜드와 모든 계절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타임 아일랜드의 마법사는 지혜롭
계절의 왕국을 모험하다 <하늘을 나는 강아지, 비포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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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테이프는 이제 필요 없다. 21세기의 사다코는 TV, 컴퓨터, 휴대폰 등 모든 매체 속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살해당했던 사다코는 끈질기게 부활을 시도하는 한편 더 강해진 힘과 원한을 무기로 인류를 몰살하려고 한다. 전편에서 아카네(이시하라 사토미)의 몸 안에 봉인당했던 사다코는 5년 전 태어난 신비한 소녀 나기를 통해 다시 한번 세상에 나오려 하고, 그렇게 나기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는다. 한편 나기를 돌보고 있던 후코(다키모토 미오리)는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나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나기와 사다코의 정체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링>의 사다코는 잊는 편이 좋다. 이름과 최소한의 설정만 공유하고 있을 뿐 ‘사다코’ 시리즈는 자신만의 길을 간다. 지난해에 개봉한 <사다코 3D: 죽음의 동영상>도 사다코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통해 무서워하기에도 웃기에도 애매한 결과물을 만든 적이 있지만 이번 <사다
<링>의 사다코는 잊어라 <사다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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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얼음공주’ 제이드(가브리엘라 와일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얻은 데이빗(알렉스 페티퍼)은 특유의 성실함과 쾌활함으로 제이드의 마음을 녹여간다. 진실한 사랑을 꿈꿔왔던 제이드는 데이빗이 바로 자신이 바라던 남자임을 깨닫고 둘은 금세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모자랄 것 없이 자라 명문대 진학까지 앞두고 있는 딸이 대학도 가지 않은 자동차 정비소 집 아들과 만난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제이드의 아버지 휴(브루스 그린우드)는 제이드를 데이빗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애쓴다.
이야기도, 영화도, 새로울 것 없이 너무 ‘클래식’하다. 알고 보니 이 영화, 1981년, 브룩 실즈와 마틴 휴이트가 주연하고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엔들리스 러브>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시대 불변의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81년 <엔들리스 러브>의 포스터 문구가 2014년, “나는 순수와 작별한다”로 바뀐 만큼 사랑의 양
스무살, 철없던 시절의 첫사랑 <엔들리스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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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폴리는 캐나다의 젊은 여배우이며 감독이다. 요즘은 출연작보다 <어웨이 프롬 허> <우리도 사랑일까>와 같은 연출작으로 더 많이 언급된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지지층을 얻은 바 있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그녀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며 그녀와 어머니와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라 폴리는 먼저 자신의 유년 시절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화제의 중심에 놓는다. 어머니 다이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연극배우였다가 자식 많은 집안의 평범한 부모가 됐다. 활달하고 사교적인 여성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 가족들은 꽤나 짓궂은 농담 하나를 오래전부터 공유하고 있었다. ‘사라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가 집을 떠나 다른 지역의 연극 무대에 잠시 섰을 때 다른 남자를 만났고 사라를 임신했고 그걸 숨긴 것은 아닌가 묻는 감독의 물음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사실 사라 폴리를 포함하
특별한 가족 이야기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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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전적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어김없이 영화 제작자들을 유혹한다. 2007년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휴대폰 판매원’, 폴 포츠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원챈스>는 여기서 시작된 영화이다.
영국 남부 웨일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폴 포츠(제임스 코든)는 어린 시절부터 오페라 가수가 되는 꿈을 키운다. 하지만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타고난 노래 실력뿐이다. 친구도 없고 운도 잘 따르지 않던 그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음악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천금 같은 행운을 만나지만 결국 제대로 그 기회를 잡지도 못한다. 절망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와 휴대폰 판매원으로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그에게 어느 날, 평범했던 인생을 바꿀 ‘단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실존 인물을 극영화
평범했던 인생을 바꿀 ‘단 한번의 기회’ <원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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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누군가가 죽었을 때 남겨진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떠나간 사람을 애도하고, 그리워하다가 그의 빈자리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상실감에 빠지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막내딸 천지(김향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시작된다. 남겨진 가족은 천지의 엄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 마트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던 현숙은 의젓하고 애교가 많았던 천지의 죽음으로 상심이 크지만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평소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몰라, 나 바빠, 끊는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만지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어느 날 만지는 천지의 친구들로부터 화연(김유정)이 천지와 가장 친했다는 얘기를 듣고 화연을 만난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가족은 몰랐던, 천지에게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한 감독이 연출한 <우아한 거짓말>이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
죽음 뒤에 가려져 있던 사실들 <우아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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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이 다소 복잡하다. 할머니를 여의고 시골 마을 장터 노점상에서 야채를 팔며 살아가는 복순(김고은)은 좀 모자라지만 늘 씩씩하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 은정(김보라)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어느 날 이 자매의 집 앞에 꼬마 나리(안서현)가 당도하면서 진짜 사건이 시작된다. 나리의 언니는 살해당했다. 그녀는 공장 사장이 자신을 폭행한 화면이 담긴 휴대폰으로 사장에게 돈을 요구 중이었다. 사장은 친척인 익상(김뢰하)에게 그 휴대폰을 받아올 것을 명령했고 익상은 다시 태수(이민기)라는 자신의 동생이자 냉혹한 살인마에게 그 명령을 전달한다. 그러다 태수가 나리의 언니를 죽이고 나리를 그의 집까지 끌고 오지만 나리는 다시 도망친다. 그렇게 해서 나리는 인근에 있는 복순의 집으로 흘러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복순의 동생 은정이 태수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제 복순과 나리가 한조가 되어 살인마 태수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몬스터>의 각본을 쓰고 연출도 맡은 황인호 감
적잖이 막나가는 B무비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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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랜드> Waste Land
제작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 감독 루시 워커 / 출연 빅 무니스 외 / 수입 (주)모그커뮤니케이션 / 배급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 개봉 4월3일
기적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부터 피어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의 세계 최대 쓰레기 매립지인 ‘자르딤 그라마초’에는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카타도르’라고 불리는 브라질 사회의 최하층민인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희망, 너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다.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빅 무니스는 이들이 수거한 쓰레기를 재료 삼아 ‘카타도르’를 모델로 한 작품을 기획한다. 3년간의 쓰레기 예술의 탄생과정을 담은 <웨이스트 랜드>는 가장 낮고 더러운 곳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해나간다. 단순히 빈민가에 퍼진 흔한 희망가가 아니다. 이들이 만든 작품은 그 과정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Coming Soon] 3년간의 쓰레기 예술의 탄생과정 <웨이스트 랜드> Wast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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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혹은 가치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동일한 행위도 그것이 놓인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정상일 수도 있고 비정상일 수도 있다. 당연히 입고 다녀야 할 옷을 목욕탕 안에서 입고 있으면 ‘비정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고도의 지식이나 복잡한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을 떡하니 정부의 주요 목표로 내세운다는 건 이러한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거나 혹은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밖엔 해석할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간단한 생각을 안 하거나 못한 걸까? 우선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정부와 국민이 동일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정색하면서 묻는 표정이랄까? 혹은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있다고 해도 정부의 기준이 ‘옳기’ 때문에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비정상의 정상화